제비꽃 몰라도 돼

 


  제비꽃 모르는 사람 뜻밖에 퍽 많다. 도라지꽃 모르는 사람 또한 꽤 많다. 감꽃이나 능금꽃 알아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돌이켜보면, 나라고 해서 이런 꽃 저런 꽃 처음부터 알지 않았다. 내 곁에서 늘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가 이런 꽃 저런 꽃을 알아보면서 “어머, ○○꽃 피었구나, 예뻐라!” 하고 말할 적에 꽃이름 하나둘 익힐 수 있었다. 국민학교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교사나 동무가 “이야, ○○꽃 피었네, 예쁘구나!” 하고 말하면 새롭게 꽃이름 둘씩 셋씩 받아들이곤 했다.


  그러나, 꽃이름을 모른대서 꽃이 어여쁜 줄 모르지는 않다고 느낀다. 꽃이름을 안대서 꽃이 아름다운 줄 안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마음으로 아낄 때에 비로소 꽃을 어여삐 여겨 사랑한다. 마음으로 아끼지 못할 때에 얄궂게 지식만 머리에 담을 뿐, 꽃내음 꽃결 꽃빛 어느 하나 가슴으로 스미지 못한다.


  내가 제비꽃을 언제부터 알았는지 떠올려 본다. 잘 모르겠다. 퍽 어릴 적 내 어머니 놀람말 한 마디부터 알았지 싶지만, 또렷하게 언제부터인지는 잘 모른다. 인천에서 나고 자라면서 제비꽃 볼 일은 아주 드물었다. 충남 당진 외가에 마실을 가면서 비로소 제비꽃을 보았지 싶고, 이때 빼고는 어디에서고 제비꽃 만날 일 드물었으리라 느낀다. 어른이 되어 인천에서 골목마실 바지런히 하는 동안 제비꽃 거의 못 보았다.


  시골집 우리 밭자락과 대문 앞과 마을 논둑마다 제비꽃 한창이다. 이 제비꽃을 알아보는 사람은 알아보고, 못 알아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친다. 제비꽃 곁에서 봉우리 한결 일찍 터뜨린 봄까지꽃을 알아볼 만한 사람이라면 이 꽃도 알아보지만, 아기 손톱보다 작은 봄까지꽃 못 알아보는 사람은 어른 새끼손가락 손톱 크기만 한 제비꽃 또한 못 알아본다.


  나는 제비꽃을 바라보며 싱긋빙긋 웃는다. “이야, 논둑 따라 이렇게 물결치듯 피었어요! 참 이쁘지요!” 서른 마흔 쉰 예순 되도록 제비꽃이라는 꽃 한 송이 느긋하게 돌아본 적 없던 이웃들이 “이게 제비꽃이에요? 처음 보네.” 하고 말씀한다. 시골에서 살더라도 자가용으로만 움직이던 이웃들도 제비꽃을 못 알아본다. 두 다리로 걸어서 논밭에서 살고 흙을 만지던 할매와 할배가 아니고서는, 시골사람이라 하더라도 제비꽃을 모른다. 그렇지만, 참말 제비꽃 몰라도 된다. 삶을 알면 되고, 사랑을 알면 된다. 꽃이름 모른다 하더라도 ‘이렇게 조그마하면서 어여쁜 꽃이 우리 누리를 밝히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이 작은 들꽃 어여쁜 봉우리 빛깔과 내음과 결을 내 가슴에 담아 사랑스러운 이야기 한 자락 누리자고 생각하면 된다. 삼월 셋째 주는 ‘제비꽃 물결’이다. 4346.3.2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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