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지닥꽃 책읽기 (삼지닥나무)

 


  절집 한켠에서 자라는 삼지닥나무가 봄꽃을 가득 피웁니다. 똑같은 나무 없어 나무마다 이름 다르고, 똑같은 나무 없기에 나무마다 잎사귀와 꽃망울 다릅니다. 같은 참나무라 하더라도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잎사귀와 꽃망울과 열매 다르며, 같은 굴참나무라 하더라도 저마다 잎사귀가 달라요.


  머리카락이나 옷이나 신을 다르게 꾸민대서 저마다 다른 사람 모양을 띄지 않습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은행계좌를 남달리 건사한대서 다른 사람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아무것 없더라도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입니다. 서로서로 다른 사람이기에, 서로서로 아름답습니다. 저마다 다른 빛을 마음속에 품으니 저마다 다른 사랑입니다.


  우람하게 벌어지는 가지마다 꽃망울 흐드러지는 삼지닥나무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맘때 느티나무도 우람하게 벌어지는 가지마다 꽃망울 가득 맺습니다. 다만, 느티꽃은 풀빛이면서 되게 작아요. 느티꽃을 느티꽃인 줄 알아보는 사람 거의 없어요. 삼지닥나무는 척 보아도 희노랗게 피어나는 꽃잔치를 알아보겠지요. 느티꽃도 꽃잔치요, 닥꽃도 꽃잔치인데, 오늘날 사람들은 눈부신 빛깔을 마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꽃잔치라고 알아볼 테지요.


  눈을 감습니다. 눈을 감고 닥나무 곁에 섭니다. 코로 살결로 마음으로 닥꽃내음 번집니다. 눈을 감고 느티나무 옆에 섭니다. 코로 살결로 마음으로 느티꽃내음 스밉니다.


  두 눈으로 아름다운 빛 듬뿍 받아들일 수 있고, 마음 열어 아름다운 빛 찬찬히 맞아들일 수 있어요. 닥꽃은 닥꽃대로 고운 빛살 흩뿌립니다. 느티꽃은 느티꽃대로 맑은 빛무늬 퍼뜨립니다.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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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6 07:45   좋아요 0 | URL
와..삼지닥꽃송이가 무척 희한하게 생겼군요. ^^
마치 노란 종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것 같아요.
꽃종 속에서 노란 별들의 소리가 반짝반짝 들리는것 같아요.
정말 이 세상은 놀랍게 아름다워요. *^^*

파란놀 2013-03-26 08:49   좋아요 0 | URL
이 나무로 '닥종이'를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종이가 되어도 아름다울 텐데,
종이 아닌 꽃으로 보아도 몹시 아름답더군요 @.@
 

꽃마리 책읽기

 


  꽃마리가 꽃마리인 줄 몰랐다. 참 오래도록 꽃마리라는 풀이름을 모르며 살았다.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꽃마리를 꽃마리인 줄 모르면서 즐겁게 뜯어서 먹었다. 우리 집 마당에서건, 대문 앞에서건, 밭둑에서건, 이웃집 논둑에서건, 참 흔하게 피고 지는 이 들꽃이 무엇인가를 몰랐지만, 잎사귀 싱그럽기에 아이들과 함께 뜯어서 먹었다.


  네 이름은 꽃마리라고 누군가 붙였구나. 왜 꽃마리일까. 꽃마리라는 이름에는 어떤 넋이 깃들었을까. 먼먼 옛날, 긴긴 겨울 견디며 새봄 맞이했을 적에, 들판에 푸릇푸릇 어여쁜 기운을 봄까지꽃이랑 별꽃이랑 냉이랑 나란히 퍼뜨리는 너를 바라보던 누군가 꽃마리라는 이름을 떠올렸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느 들풀이지만, 봄까지꽃 별꽃 꽃다지 꽃마리, 너희는 풀이름에 ‘꽃’을 하나씩 붙이는구나. 너희 꽃송이는 아이들 거스러기 크기만 하다 싶은데, 아이들 새끼손톱보다 훨씬 작은데, 이 작은 꽃망울로 봄을 부르고, 봄내음 퍼뜨리며, 봄맛을 나누어 주는구나.


  네 잎사귀를 먹으며 하루를 빛낸다. 네 잎사귀를 만지며 하루가 기쁘다. 네 꽃대와 꽃송이까지 봄나물로 즐기며 하루하루 고맙다.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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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6 07:49   좋아요 0 | URL
봄까지꽃 별꽃 꽃다지 꽃마리 삼지닥꽃..오늘 외우고 다닐 봄꽃 이름들.
함께살기님, 감사합니다~*^^*

파란놀 2013-03-26 08:48   좋아요 0 | URL
외우지는 마시고 마음에 잘 담아 주셔요.
올봄에 즐기고
다음봄에 또 즐기고 하다 보면
저절로 스며들 이름이 되리라 생각해요~

북극곰 2013-03-26 09:57   좋아요 0 | URL
실제로는 이렇게 작은 꽃이었군요.
<꽃이 핀다>(보림)라는 그림책에서 보고는 색이 참 이쁘다 했거든요.
이름도 참 이쁘죠?

파란놀 2013-03-26 10:14   좋아요 0 | URL
우리 집 아이가 손에 쥔 모습 찍으면
얼마나 작은지 느낄 수 있을 텐데,
다음에는 그 모습 하나 담아야겠어요.

이름도 모양도... 또 맛까지!
참 좋답니다 ^^;;;;
 

꽃다지 책읽기

 


  땅바닥에 엎드리면 볼 수 있는 꽃다지. 뻣뻣하게 지나가면 볼 수 없는 꽃다지. 자전거로 휭 하고 달려도 볼 수 없는 꽃다지. 자가용을 쌩 몰아도 볼 수 없는 꽃다지. 그런데,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는 군내버스 타고 지나가면서도 꽃다지 내음을 맡고, 냉이 내음을 맡는구나.


  하기는. 나도 이웃 자가용 얻어타고 길을 달리다가도 매화내음을 느끼고 살구내음을 느끼기도 한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가도 능금내음이랑 복숭아내음을 느끼며 고개를 창밖으로 돌리기도 한다.


  마음이 있으면 느끼고, 느낄 수 있으면 보며, 바라보면 사랑이 샘솟는다. 꽃다지야, 너는 참 곱게 땅바닥에 붙어서 자라며 노랗게 노랗게 노랗게 꽃을 피우는구나. 네 꽃송이는 나비와 벌과 벌레한테 어울리겠지. 작은 나비와 벌과 벌레는 네 꽃가루 먹으면서 예쁜 숨결 잇겠지. 사람들이 잘 느끼지 못한다지만, 네 꽃가루가 바람 따라 들판에 날리면, 사람들 살결에도 보드라이 스며들겠지. 4346.3.2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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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색 책읽기

 


  금탑절을 거닐다가 현호색을 만난다. 디디고 오르는 돌 곁에 조그맣고 앙증맞게 피었다. 흙길에 돌을 놓아 디디고 오르도록 했기에 현호색이 씨앗을 퍼뜨려 이렇게 피어나는구나 싶다. 돌 아닌 시멘트로 디딤돌을 삼았다면, 흙과 돌로 이루어진 거님길이 아니라 쇠붙이 난간이나 계단을 만들었다면, 현호색뿐 아니라 다른 들풀도 이곳에 뿌리를 못 내렸겠지.


  파르스름한 꽃송이를 바라본다. 괴불주머니도 현호색과 같은 주머니가 달렸는데, 왜 현호색은 현호색이고 괴불주머니는 괴불주머니일까. 곰곰이 살피면, 현호색이랑 괴불주머니는 잎사귀 모양이 다르다. 나중에 꽃이 지고 씨앗을 맺을 때에도 씨방 모양이 다를까.


  현호색 푸른 잎사귀 몇 뜯어서 맛을 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다른 들꽃처럼 수없이 퍼지면서 흐드러지는 들꽃이 되지는 못한다고 느껴, 풀맛 보고픈 마음을 누른다. 예쁜 꽃송이 이루는 현호색은 잎사귀와 꽃송이가 어떤 맛일까. 오늘날은 시골이 파헤쳐지고 숲과 멧골이 무너지거나 구멍 뚫리기 일쑤라, 현호색 같은 들꽃은 보금자리를 쉬 빼앗긴다. 봄날 멧길 오르면 어렵잖이 볼 수 있는 들꽃 가운데 하나가 현호색이라고는 하나, 참말 ‘어렵잖이 볼 수 있다’고 쉬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말거나 현호색은 피고 질 테지.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현호색은 저들 깜냥껏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으며 어린 아기꽃 이듬해에 피어나도록 힘쓸 테지. 아주 조그마한 꽃송이 몇이지만, 둘레를 환하게 밝힌다. 냉이꽃도, 꽃마리도, 꽃다지도, 광대나물도, 모두 조그마한 꽃송이인데, 이 작은 꽃송이로 봄들판 어여삐 밝힌다. 그래, 네 잎사귀 맛을 못 보더라도, 네 맑은 꽃빛으로 사람들 가슴을 넉넉히 채워 주는구나. 4346.3.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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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208) -화化 10 : 무화 1

 

생명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성취를 모두 무화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크 브로스/양영란 옮김-식물의 역사와 신화》(갈라파고스,2005) 31쪽

 

  ‘생명(生命)’ 같은 낱말은 그대로 쓸 수 있겠지요. 그러나 글흐름을 살피면서 ‘목숨’이나 ‘숨결’로 손질할 수 있어요. ‘항상(恒常)’은 ‘늘’이나 ‘언제나’로 고쳐 줍니다. ‘한결같이’나 ‘꾸준히’나 ‘지며리’로 고쳐도 됩니다. ‘경우(境遇)’는 ‘때’로 다듬고, “과거(過去)의 성취(成就)를”은 “지난날에 이룬”이나 “그동안 이루어낸”으로 다듬습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무화(無化)’라는 한자말은 안 나옵니다. 글을 쓰는 분들이 곧잘 이 한자말을 쓰지만, 국어사전에까지는 안 싣는 한자말, 그러니까 중국말이거나 일본말인 바깥말입니다. 설마 싶어, ‘無化’와 짝을 이룰 ‘有化’가 국어사전에 실렸을까 찾아보니 ‘유화’도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참 마땅한 일일 테지요. 이런 바깥말을 한국말사전에 담아야 할 까닭이 없어요. 이런 바깥말을 한국사람이 쓸 까닭이 없어요.


  한자 ‘무(無)’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한국말 아닌 한자 ‘무’인데,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나옵니다.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하고 “지금까지 애쓴 것이 무가 되어 버렸다” 같은 보기글이 실립니다.

 

 모두 무화하는
→ 모두 없이 하는
→ 모두 없애는
→ 모두 없던 셈 치는
→ 모두 떨구어 내는
→ 모두 털어 버리는
 …

 

  생각을 기울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란, “아무것이 없는데 무언가 새로 만들다”입니다. 또는 “맨땅에서 무언가 만들다”예요. “지금까지 애쓴 것이 무가 되어 버렸다”란, “이제까지 애쓴 것이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입니다. 또는 “여태까지 애쓴 것이 사라져 버렸다”예요.


  있던 것을 없던 것으로 돌린다는 뜻입니다. 있었는데 모두 없앤다는 소리입니다. 털어 버린다고, 떨구어 낸다고, 씻어 낸다고, 비워 버린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4338.8.1.달./4346.3.25.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목숨은 늘 앞으로 나아가며, 때에 따라서는 지난날 이룬 모두를 없애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

 

 '-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79) -화化 179 : 무화 2

 

나아가서 부주의 때문에 그의 삶은 무화無化된다고까지 저는 말하죠
《브뤼노 몽생종/임희근 옮김-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포노,2013) 48쪽

 

  “부주의(不注意) 때문에”는 “작은 잘못 때문에”나 “잔잘못 때문에”나 “마음을 잘못 쓰는 바람에”로 손봅니다. “그의 삶은”은 “그 사람 삶은”으로 손질합니다.

 

 그의 삶은 무화無化된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사라진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없어진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빈털털이가 된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텅 비어 버린다고까지
 …

 

  ‘무화’라는 한자말 뒤에 ‘無化’를 덧달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더 잘 알아볼까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무화’라는 한자말을 안 쓸 노릇이지 싶어요.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만하도록 글을 쓸 일이요, 가장 쉬우면서 바른 말마디로, 가장 환하면서 또렷한 말투로 가다듬어야지 싶어요.


  뜻과 느낌을 살려서 “송두리째 사라진다고까지”나 “통째로 날아간다고까지”나 “모두 허물어진다고까지”처럼 적을 수 있어요. “깡그리 없어진다고까지”나 “잿더미가 된다고까지”처럼 적어도 됩니다. 4346.3.25.달.ㅎㄲㅅㄱ

 


* 보기글 새로 쓰기
나아가서 작은 잘못 때문에 그 사람 삶은 모두 허물어진다고까지 저는 말하죠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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