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208) -화化 10 : 무화 1
생명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며,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의 성취를 모두 무화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자크 브로스/양영란 옮김-식물의 역사와 신화》(갈라파고스,2005) 31쪽
‘생명(生命)’ 같은 낱말은 그대로 쓸 수 있겠지요. 그러나 글흐름을 살피면서 ‘목숨’이나 ‘숨결’로 손질할 수 있어요. ‘항상(恒常)’은 ‘늘’이나 ‘언제나’로 고쳐 줍니다. ‘한결같이’나 ‘꾸준히’나 ‘지며리’로 고쳐도 됩니다. ‘경우(境遇)’는 ‘때’로 다듬고, “과거(過去)의 성취(成就)를”은 “지난날에 이룬”이나 “그동안 이루어낸”으로 다듬습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이면, ‘무화(無化)’라는 한자말은 안 나옵니다. 글을 쓰는 분들이 곧잘 이 한자말을 쓰지만, 국어사전에까지는 안 싣는 한자말, 그러니까 중국말이거나 일본말인 바깥말입니다. 설마 싶어, ‘無化’와 짝을 이룰 ‘有化’가 국어사전에 실렸을까 찾아보니 ‘유화’도 국어사전에 없습니다.
참 마땅한 일일 테지요. 이런 바깥말을 한국말사전에 담아야 할 까닭이 없어요. 이런 바깥말을 한국사람이 쓸 까닭이 없어요.
한자 ‘무(無)’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봅니다. 한국말 아닌 한자 ‘무’인데,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나옵니다.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하고 “지금까지 애쓴 것이 무가 되어 버렸다” 같은 보기글이 실립니다.
모두 무화하는
→ 모두 없이 하는
→ 모두 없애는
→ 모두 없던 셈 치는
→ 모두 떨구어 내는
→ 모두 털어 버리는
…
생각을 기울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란, “아무것이 없는데 무언가 새로 만들다”입니다. 또는 “맨땅에서 무언가 만들다”예요. “지금까지 애쓴 것이 무가 되어 버렸다”란, “이제까지 애쓴 것이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입니다. 또는 “여태까지 애쓴 것이 사라져 버렸다”예요.
있던 것을 없던 것으로 돌린다는 뜻입니다. 있었는데 모두 없앤다는 소리입니다. 털어 버린다고, 떨구어 낸다고, 씻어 낸다고, 비워 버린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4338.8.1.달./4346.3.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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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은 늘 앞으로 나아가며, 때에 따라서는 지난날 이룬 모두를 없애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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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化)' 씻어내며 우리 말 살리기
(179) -화化 179 : 무화 2
나아가서 부주의 때문에 그의 삶은 무화無化된다고까지 저는 말하죠
《브뤼노 몽생종/임희근 옮김-음악가의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포노,2013) 48쪽
“부주의(不注意) 때문에”는 “작은 잘못 때문에”나 “잔잘못 때문에”나 “마음을 잘못 쓰는 바람에”로 손봅니다. “그의 삶은”은 “그 사람 삶은”으로 손질합니다.
그의 삶은 무화無化된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사라진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없어진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빈털털이가 된다고까지
→ 그 사람 삶은 텅 비어 버린다고까지
…
‘무화’라는 한자말 뒤에 ‘無化’를 덧달면,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더 잘 알아볼까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무화’라는 한자말을 안 쓸 노릇이지 싶어요.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만하도록 글을 쓸 일이요, 가장 쉬우면서 바른 말마디로, 가장 환하면서 또렷한 말투로 가다듬어야지 싶어요.
뜻과 느낌을 살려서 “송두리째 사라진다고까지”나 “통째로 날아간다고까지”나 “모두 허물어진다고까지”처럼 적을 수 있어요. “깡그리 없어진다고까지”나 “잿더미가 된다고까지”처럼 적어도 됩니다. 4346.3.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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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서 작은 잘못 때문에 그 사람 삶은 모두 허물어진다고까지 저는 말하죠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