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호색 책읽기
금탑절을 거닐다가 현호색을 만난다. 디디고 오르는 돌 곁에 조그맣고 앙증맞게 피었다. 흙길에 돌을 놓아 디디고 오르도록 했기에 현호색이 씨앗을 퍼뜨려 이렇게 피어나는구나 싶다. 돌 아닌 시멘트로 디딤돌을 삼았다면, 흙과 돌로 이루어진 거님길이 아니라 쇠붙이 난간이나 계단을 만들었다면, 현호색뿐 아니라 다른 들풀도 이곳에 뿌리를 못 내렸겠지.
파르스름한 꽃송이를 바라본다. 괴불주머니도 현호색과 같은 주머니가 달렸는데, 왜 현호색은 현호색이고 괴불주머니는 괴불주머니일까. 곰곰이 살피면, 현호색이랑 괴불주머니는 잎사귀 모양이 다르다. 나중에 꽃이 지고 씨앗을 맺을 때에도 씨방 모양이 다를까.
현호색 푸른 잎사귀 몇 뜯어서 맛을 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다른 들꽃처럼 수없이 퍼지면서 흐드러지는 들꽃이 되지는 못한다고 느껴, 풀맛 보고픈 마음을 누른다. 예쁜 꽃송이 이루는 현호색은 잎사귀와 꽃송이가 어떤 맛일까. 오늘날은 시골이 파헤쳐지고 숲과 멧골이 무너지거나 구멍 뚫리기 일쑤라, 현호색 같은 들꽃은 보금자리를 쉬 빼앗긴다. 봄날 멧길 오르면 어렵잖이 볼 수 있는 들꽃 가운데 하나가 현호색이라고는 하나, 참말 ‘어렵잖이 볼 수 있다’고 쉬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사람들이 걱정하거나 말거나 현호색은 피고 질 테지.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현호색은 저들 깜냥껏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으며 어린 아기꽃 이듬해에 피어나도록 힘쓸 테지. 아주 조그마한 꽃송이 몇이지만, 둘레를 환하게 밝힌다. 냉이꽃도, 꽃마리도, 꽃다지도, 광대나물도, 모두 조그마한 꽃송이인데, 이 작은 꽃송이로 봄들판 어여삐 밝힌다. 그래, 네 잎사귀 맛을 못 보더라도, 네 맑은 꽃빛으로 사람들 가슴을 넉넉히 채워 주는구나. 4346.3.25.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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