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봄빛, 자운영

 


  봄꽃이며 봄풀이며 봄나무이며 지난해에 다 보았어도, 올해에도 다시 기다립니다. 올해에 새로 보는 봄꽃이랑 봄풀이랑 봄나무랑 지난해하고 똑같을 수 없어요. 나는 모든 봄꽃과 봄풀과 봄나무를 똑같이 기다리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자운영 꽃송이를 더 기다립니다. ‘자운영’이라는 이름 그대로 한겨레 삶터에 오래 뿌리내린 들꽃은 아니지만, 참으로 널리 뿌리내리는 꽃이에요.

  너무 마땅한데, 귀화식물이면 어떻고 안 귀화식물이면 어때요. 이 나라에 들어온 지 천 해가 되면 어떻고 백 해가 되면 어때요. 오늘부터 앞으로 천 해가 흐르면 참말 이야기가 모조리 달라지잖아요. 그때에는 모두 똑같은 들꽃일 뿐이잖아요.


  우리 집 아이들도 나도 모두 자운영은 꽃송이랑 잎사귀랑 줄기랑 모두 먹습니다. 참으로 몽땅 보드랍고 맛깔스러워요. 가만히 두거나 땅을 갈아엎어 거름으로 삼아도 좋지만, 날것 그대로 먹으며 내 숨결 되도록 받아들여도 좋아요.


  전남 고흥에서는 삼월 이십육일 언저리부터 구경하는 자운영 꽃망울이 아리땁습니다. 아이들 자전거수레에 태워 들마실 하다가, 얘들아, 예쁜 꽃 사진 찍어 될까 하며 물으며 사진기 들면 다들 싫어합니다. “우리 집 앞에 있는데 왜 또 찍어요?” 하는 아이들 이야기 들으면서, “그래, 그러네.” 하며 이웃집 논둑에서 자라는 자운영도 사진으로 찍고 싶습니다. 4346.4.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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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4-04 02:06   좋아요 0 | URL
어떤 맛일지 궁금해요.
작년과는 또다른 맛이 나겠지요? :)

파란놀 2013-04-04 07:22   좋아요 0 | URL
꽃빛처럼 참 고운 맛이랍니다!

appletreeje 2013-04-04 15:11   좋아요 0 | URL
아아~이 꽃이 자운영이군요~!
꽃송이가 마치 새끼새들이 입을 뾰족하니 올리며 노래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아침에 김경미님 시에, 청보라색 자운영이 나오던데 청보라색깔도 있나요?
언제까지 피어나는지도 궁금해요~^^

파란놀 2013-04-04 16:45   좋아요 0 | URL
그런데 '청보라빛 자운영'은 저도 아직 보지 못했고, 사진으로도 보지 못했어요. 설마 싶어 자운영 사진 죽 살펴보니 꼭 한 장 나오기는 하네요.

어느 풀꽃이든 '한 종'만 있는 법이 없으니 청보라빛 자운영도 어딘가에는 틀림없이 있기는 있으리라 생각해요. 다만... '청보라 자운영' 검색하면 하나도 안 나옵니다... -_-;;; 다른 종으로 '아기자운영'을 살펴보면 청보라빛 자운영이 나오네요.
 

아이들과 잠자리

 


  아이 어머니가 아흐레째 집에 없다. 그러나 앞으로 열하루 더 아이 어머니는 집에 돌아올 수 없다. 아이 어머니는 스무 날 집을 비우면서 아픈 마음과 몸을 달래는 길에 나섰다. 아이들이 차츰차츰 어머니를 그린다. 문득 생각한다. 아버지가 여러 날 집을 비울 때에 우리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너무 마땅하지만, 아버지가 집을 비울 적에도 아이들은 아버지 집에 없다면서 아버지를 그리워한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집에 없든 아버지가 집에 없든 똑같은 셈이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집에 함께 있으면서 밥을 같이 먹고 잠을 같이 자며 놀이도 같이 하기를 바란다.


  작은아이는 졸음이 쏟아져 곯아떨어진다. 작은아이도 틀림없이 어머니가 많이 그리우리라. 그래도 아버지 품에서 달게 잠든다. 큰아이는 울먹인다. 어머니 집을 비운 지 아흐레만에 울먹인다. 큰아이 달래고 어르며 겨우 잠자리에 누인다. 한숨을 길게 길게 다시 길게 내쉬다가, 천천히 나즈막하게 자장노래를 부르다가는, 노랫말을 몽땅 바꾸어 큰아이한테 바치는 노래로 부른다. “사름벼리 예쁜 아이 씩씩한 아이 튼튼한 아이 ……”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어머니 그리는 아이한테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아이들 더 사랑하고, 아이들 더 아끼며, 아이들 더 보살피며, 살그마니 쓰다듬는 일이 될 테지.

 

  큰아이야, 작은아이야, 네 아버지가 얼마나 예쁜 아버지이니? 예쁜 아버지로 하루를 함께 보냈니? 아버지가 안 예쁘고 미운 아버지로 하루를 함께 보냈니? 같이 잘 노는 아버지로 하루를 즐겼니? 아버지가 같이 안 놀아 주면서 너희는 심심하게 보냈니? 꿈나라에서 아름다운 날갯짓으로 고운 이야기 길어올려 주렴. 꿈누리에서 맑은 눈빛으로 먼 곳 있는 어머니한테 기운 내라고 어깨 토닥여 주렴. 4346.4.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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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3 23:32   좋아요 0 | URL
아유...사름벼리가 울먹이는군요. 그렇지요.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겠지요.
더구나 아직 어린 아기들인데요. 그래도 아버지 따스하고 사랑 가득한 손길 안에서 씩씩하게 어머니 기다리라 믿어요.
예쁜 아버지, 함께살기님! 편안하고 고운밤 되시길 기도 합니다. ^^

파란놀 2013-04-04 00:23   좋아요 0 | URL
네, 이제 저도 손가락이랑 온몸이 다 꼬부라지네요.
자판을 두들기면서도 자꾸 오탈자 나와서 다시 치느라 힘들어요.
이제 참말 두 아이 사이에 드러누워
좋은 밤 아이들 빌면서 저도 좋게 자야지요..,....
 

찔레잎 푸른 숨결

 


  찔레나무에 새잎 돋는다. 찔레나무는 봄나무 가운데 푸른 잎사귀를 퍽 일찌감치 내놓는다. 매화나무를 보면 푸른 잎사귀 돋기 앞서 살며시 발그스름한 빛 감도는 하얀 꽃잎을 내놓고, 개나리나무를 보면 푸른 잎사귀 나기 앞서 노랗게 맑은 꽃잎을 내놓는다. 감나무도 뽕나무도 대추나무도 모두 푸른 잎사귀이고 맑은 꽃잎이고 나지 않으나, 찔레나무는 예쁜 잎사귀를 활짝 내놓아 들판을 곱게 밝혀 들일하는 사람들한테 봄이 왔다고 널리 알린다.


  아이들과 찔레나무 앞에 선다. “벼리야. 찔레꽃잎 먹은 일 생각나니? 지난해 봄에 찔레꽃잎 먹었는데.” “응.” 참말 떠올리면서 말했을까.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찔레 잎사귀는 아직 못 먹어 봤지? 찔레 푸른 잎사귀도 맛있단다.” 하고 얘기하면서, 아버지가 먼저 찔레 푸른 잎사귀 뜯어서 먹는다. 한 잎 뜯어 큰아이한테 내민다. 큰아이가 입에 넣어 씹더니 맛있다고 말한다. 한 잎 더 뜯어서 준다. 작은아이한테도 한 잎 뜯어서 준다. 두 아이 모두 맛있게 잘 씹어서 먹는다.


  그래, 이게 찔레잎 맛이란다. 봄맛이지. 푸른 숨결 맛이지. 푸른 봄노래 맛이지. 4346.4.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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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데려가는人 2013-04-04 02:10   좋아요 0 | URL
아... 너무 싱그러운 잎이네요.
전 봄에 연둣빛 새잎이 날 때가 정말 이쁘더라고요.
무슨 꽃이고 무슨 나무인지는 잘 모르지만,
새싹일 때는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데
점점 자기 형태를 갖추어갈 때 뭔가 짠한 게 있어요.
나는 아직 내가 장미인지 코스모스인지 민들레인지 모르고 사는데
얘네들은 자기 본성대로 무심하게 피어나는구나, 싶어서요.

파란놀 2013-04-04 07:23   좋아요 0 | URL
새잎 돋을 때 한 번 따서 먹어 보셔요.
나중에 잎이 무럭무럭 자라고 나면
알 수 있잖아요.
그러면, 봄에 먹은 그 잎이
이렇게 자라는구나 하고 느끼며
온마음이 환해지기도 합니다~
 

앵두꽃 책읽기

 


  새봄 새 앵두꽃 기다렸다. 앵두꽃이란 얼마나 꽃내음 그윽하면서 달콤하던지. 앵두꽃은 앵두나무 가지마다 얼마나 촘촘히 아리땁게 피어나면서 마을 환하게 밝히던지. 해마다 새 앵두꽃 바라볼 수 있어 기쁘다. 해마다 새 앵두알 마주할 수 있어 기쁘다. 우리 집에는 앵두나무 없지만, 이웃집 앵두나무와 이웃마을 앵두나무에 피어난 꽃을 구경하고 싶어 나들이를 다닌다. 참말 앵두나무 한 그루에 피어난 어마어마한 예쁜 꽃 즐길 수 있으니 나들이를 나설 수 있다. 시골마을까지 공연이나 노래잔치 하려는 연예인이나 가수는 거의 없을 테고, 애써 와 보아야 돈벌이 힘들 테니, 시골마을 사람들이 ‘도시사람처럼 문화와 예술 누릴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겨울 지나며 봄이 찾아오는 때부터 여름 지나 가을이 되기까지, 또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찾아오는 동안, 얼마나 흐드러진 빛잔치 이루어지는가. 지난해 겨울에 읍내에서 심수봉 님 노래잔치 있었고, 심수봉 님 노래잔치 표는 일찌감치 다 팔렸다. 먼 곳까지 오신 심수봉 님 노래를 곧바로 듣는 즐거움 누릴 수 있나 했더니 안 되고 말았는데, 앵두나무 구경하러 나들이를 하는 사람은 아직 우리 식구만 있는 듯해서, 앵두나무 둘레에서 실컷 꽃을 보고 냄새를 맡으며 꽃가루를 마신다. 4346.4.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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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꽃 책읽기

 


  봄까지꽃이랑 꼬딱지나물꽃이랑 별꽃이 조그맣게 흐드러지는 들판 사이사이 유채꽃이 피어난 다음, 바야흐로 자운영 꽃송이 이쁘게 벌어지는데, 이즈음 딸기풀에서도 딸기꽃 하얗게 벌어집니다.
  별꽃은 조그맣게 빛나는 하얀 꽃송이입니다. 꽃마리는 별꽃보다 자그맣게 빛나는 하얀 꽃망울입니다. 딸기꽃은 소담스레 터지는 하얀 꽃봉오리입니다.


  먹음직스러운 딸기알 크기처럼 딸기꽃 맺힐까요. 딸기알은 붉게 타오르지만, 딸기꽃은 하얗게 빛납니다. 딸기꽃 지며 맺는 깨알 같은 씨앗 박힌 열매도 맨 처음에는 새하얗습니다. 차츰 익으며 발갛게 달아올라요.


  하얀 딸기꽃 내음 고루 퍼지며 벌과 나비 찾아옵니다. 벌과 나비 꽃가루 먹으러 마실을 다니니, 멀디먼 바다 건너 제비 찾아들며 시골마을 들판과 시골집 마당에서 째째째째 노래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모두 봄노래 즐깁니다. 4346.4.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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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4 00:16   좋아요 0 | URL
봄까지꽃, 꼬딱지나물꽃, 별꽃, 자운영 (자운영은 한번도 못 보았는데, 자운영하면 공선옥님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가 생각나요. ^^;;;), 유채꽃, 딸기꽃...어쩜 이리도 예쁜 이름들일까요~?
딸기꽃을 보니까, 울아들이 꼬마였을때 '딸기 2근에 얼마'라는 가격표를 보다가
"엄마! 나 딸기 이근만 사줘!"해서 하하하~웃었던 생각이 나네요. ^^

파란놀 2013-04-04 07:25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숫자를 읽으며 우리 말과 한자말 두 가지로 읽어야 하니
참 괴로우리라 느껴요. 아무튼,
저도 몇 해 앞서까지는 도시사람이기는 했으나,
이제 시골에서 딸기꽃 늘 바라보면서
새삼스럽게
숲이 얼마나 고운지 늘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