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봄빛, 자운영
봄꽃이며 봄풀이며 봄나무이며 지난해에 다 보았어도, 올해에도 다시 기다립니다. 올해에 새로 보는 봄꽃이랑 봄풀이랑 봄나무랑 지난해하고 똑같을 수 없어요. 나는 모든 봄꽃과 봄풀과 봄나무를 똑같이 기다리지만, 이 가운데에서도 자운영 꽃송이를 더 기다립니다. ‘자운영’이라는 이름 그대로 한겨레 삶터에 오래 뿌리내린 들꽃은 아니지만, 참으로 널리 뿌리내리는 꽃이에요.
너무 마땅한데, 귀화식물이면 어떻고 안 귀화식물이면 어때요. 이 나라에 들어온 지 천 해가 되면 어떻고 백 해가 되면 어때요. 오늘부터 앞으로 천 해가 흐르면 참말 이야기가 모조리 달라지잖아요. 그때에는 모두 똑같은 들꽃일 뿐이잖아요.
우리 집 아이들도 나도 모두 자운영은 꽃송이랑 잎사귀랑 줄기랑 모두 먹습니다. 참으로 몽땅 보드랍고 맛깔스러워요. 가만히 두거나 땅을 갈아엎어 거름으로 삼아도 좋지만, 날것 그대로 먹으며 내 숨결 되도록 받아들여도 좋아요.
전남 고흥에서는 삼월 이십육일 언저리부터 구경하는 자운영 꽃망울이 아리땁습니다. 아이들 자전거수레에 태워 들마실 하다가, 얘들아, 예쁜 꽃 사진 찍어 될까 하며 물으며 사진기 들면 다들 싫어합니다. “우리 집 앞에 있는데 왜 또 찍어요?” 하는 아이들 이야기 들으면서, “그래, 그러네.” 하며 이웃집 논둑에서 자라는 자운영도 사진으로 찍고 싶습니다. 4346.4.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