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한 줄, 기다리며 읽는 책

 


  천종호 님이 쓴 책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2013)를 읽다가 282쪽에서 “소년들이 비행을 저지르는 배경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크지만 대체로 정신적·심리적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 같은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소년법정에서 아이들한테 판결하는 일을 맡는 천종호 님은 이 아이들을 소년원으로 보내야 하는지 시설로 보내야 하는지, 아주 너그러이 봐주어야 하는지를 놓고 늘 마음앓이를 한다고 밝힙니다. 잘못을 묻기는 하되 사람을 다그칠 수 없는 노릇이니까요. 아이들이 맑고 밝으며 슬기롭게 살아가기를 바라지, 끔찍한 짐을 짊어진 채 바보스레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를 적에 ‘돈 때문이라기보다’ ‘마음에 생채기를 입은 탓’이 크다고 한다면, 어른들도 이와 같지 않으랴 싶습니다.


  잘못을 저지르는 어른들은 참말 왜 잘못을 저지를까요. 전쟁무기를 만드는 어른들은 왜 전쟁무기를 만들까요. 이념에 따라 사람을 죽죽 나누어 삿대질하는 어른들은 왜 사람을 이념에 따라 나누려 할까요. 가방끈 길이로 푸대접을 하거나, 살빛을 놓고 푸대접을 하는 어른들 마음밭은 어떤 모습일까요. 왜 어른들은 당신부터 온누리를 아름답게 일구지 않으면서, 아이들한테만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답게 살아가라 말할까요.


  강성미 님이 쓴 책 《내 아이가 사랑한 학교》(샨티,2013)를 읽습니다. 65쪽을 읽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강성미 님이 아이를 보낸 발도르프 학교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 봅니다. “교실 안, 학교 안, 운동장, 어디라도 아이들이 접하는 공간은 부드러운 색과 부드러운 재료로 꾸며진 발도르프 학교와 자상함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눈으로 보는 것, 피부로 접촉하는 것, 코로 냄새 맡는 것들도 입으로 먹는 음식처럼 우리의 내면에 들어와 중요한 양식이 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는 이야기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에 있는 초등학교 건물을 보면, 분홍빛 페인트를 바르기도 하고, 노란빛 페인트를 바르기도 합니다. 눈이 막 어질어질합니다. 학교 울타리에는 예쁘장하게 보이려는 그림을 잔뜩 그리기도 합니다. 눈이 마구마구 돕니다.


  그래요. 어른들은 왜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으면서 건물 벽에 ‘원색’ 페인트를 바를까요. ‘원색으로 바른 방’에 들어가면 누구라도 몇 분 버티지 못하고 머리가 어지럽다 하는데, 왜 초등학교 건물 벽에 ‘원색’ 페인트를 바를까요. 아이들을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아니라고 느끼지만, 아이들을 아끼는 길을 너무 모르는구나 싶어요. 아이들한테 ‘좋은’ 그림 보여주고 싶은 뜻은 알겠으나, 시멘트 울타리에 그림을 그리려면, 아이들한테 맡겨야지요. 어른 눈높이로 아무 그림이나 그리지 않을 노릇입니다. 섣부른 어른 생각대로 아이 마음결을 함부로 재거나 따지지 않을 노릇입니다.


  그런데, 학교 건물부터 아이들한테 그리 살갑지 않습니다. 이 나라 학교는 도시이든 시골이든 몽땅 시멘트집입니다. 차가운 시멘트로 바르고, 교실 칸은 죄다 똑같습니다. 마치 감옥처럼 짓는 학교 건물이에요. 냉·난방이라든지 첨단시설 갖추는 데에는 마음을 기울이지만, 아이들이 무척 긴 나날 이곳에서 보낸다는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해요. 포근한 보금자리 같은 학교 건물이 없습니다. 따스한 마을 같은 학교 건물이 없습니다. 더 들여다보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부터 그리 살갑거나 따스하거나 사랑스럽지 않아요. 아이들은 대학입시에 발맞추어 시험공부를 할 뿐이에요. 아이들은 밥짓기·옷짓기·집짓기를 학교에서 하나도 못 배워요. 어린이집과 유치원부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아이들한테 밥·옷·집하고 동떨어진 지식만 집어넣어요. 아이들은 대학교 아닌 대학원까지 다니거나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와도 스스로 ‘삶짓기’를 하지 못하는 얼거리예요.


  미야자와 겐지 님 동화책 《늑대 숲, 소쿠리 숲, 도둑 숲》(논장,2000)을 읽습니다. 동화책 첫머리인 8쪽에 “빗속의 푸른 대숲을 보면 좋아서 눈을 깜박깜박하고, 푸른 하늘을 끝없이 날아가는 매를 발견하면 깡충거리며 손뼉을 쳐서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겐쥬를 몹시 얕잡아보고 놀려댔기 때문에, 겐쥬는 점점 웃지 않는 척하게 되었습니다.”와 같은 이야기를 읽습니다. 숲을 사랑하고 숲을 누리는 겐쥬라 하는 여린 아이를 마을 아이들은 얕잡아보았답니다. 그러나 겐쥬는 이런 눈길이나 놀림에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숲을 가슴 깊이 받아들였다고 해요. 왜 어린 아이들이 ‘몸과 마음 여린 아이’를 따사로이 어깨동무하지 못하면서 놀릴까요. 왜 ‘숲을 누리며 아끼는 넋’을 보듬지 못할까요. 꿈을 기다리면서 사랑을 바라면 누구라도 아름다운 눈빛 밝힐 텐데요. 봄볕 기다리면서 봄꽃 바라면 누구라도 맑은 봄내음 한껏 누릴 텐데요.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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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글 넣어 책 부치기

 


  이번에 《이야기밭》이라 하는 내 사랑스러운 ‘1인 잡지’를 만들어 봉투에 주소 적고 하나하나 부치면서, 쪽글을 하나하나 적어서 넣어 본다. 내 ‘1인 잡지’를 받아보면서 ‘사진책도서관 함께살기’를 씩씩하게 지키도록 돕는 분들한테 조그마한 글월 띄워 본다.


  봉투 싸랴, 봉투에 주소 적으랴, 쪽글 하나하나 쓰랴, 아무리 짧게 쓴다 하더라도 한 사람한테 보낼 봉투 꾸리는 데에 꽤 긴 겨를과 품이 든다. 오늘 스물 몇 통 꾸리는 데에 벌써 두 시간 즈음 든다. 손목도 아프고 목아지도 당기고 허리도 쑤시고 아이들 밥도 못 차려 주고. 그렇지만, 이렇게 쪽글을 쓰는 동안 즐겁다. 짤막한 한두 줄이라 하더라도 이야기 한 자락 띄워 봄바람 봄내음 보낼 수 있어 좋다.


  여러 날 걸쳐 부치더라도 이렇게 쪽글을 쓰자 생각한다. 시골사람 들에서 풀 뜯어 먹는 흐름처럼, 책 하나 부칠 때에도 찬찬히 싸목싸목 웃으면서 하자. 아이들이 아버지 곁에서 조잘조잘 노래하면서 잘 논다.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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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트라우마 -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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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생각하는 삶인가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9] 손석춘, 《박헌영 트라우마》

 


- 책이름 : 박헌영 트라우마, 그의 아들 원경과 나눈 치유 이야기
- 글 : 손석춘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3.4.17.)
- 책값 : 13000원

 


  고흥군 봉래면 봉래산 편백나무 숲길 한켠에 피나물밭 있습니다. 피나물 아는 이한테는 피나물밭이요, 피나물 모르는 사람한테는 아무것 아닙니다. 모르는 사람한테는 피나물이 안 보일 뿐더러, 노랗게 피어나는 꽃 또한 안 보이지요. 줄기를 톡 꺾거나 잎을 톡 뜯을 적에 나오는 발그스름한 물을 보며 피나물이라 하기도 하고, 노란 꽃송이 바라보며 노랑매미꽃이라 하기도 합니다.


  풀이름이 피나물인 만큼 나물입니다. 먹는 풀입니다. 누군가는 꽃만 바라보며 꽃 사진 찍을 테지만, 누군가는 이야 맛난 풀이로구나 하면서 줄기와 잎을 톡톡 끊어 나물로 삼습니다. 또, 누군가는 사진으로도 안 찍고 나물로도 안 먹을 테지요.


  사람들마다 피나물꽃 바라보는 삶이 다릅니다. 사람들마다 풀 한 포기 마주하는 삶이 다릅니다. 집일 도맡는 누군가 피나물 뜯어서 날푸성귀로 밥상에 차린다면 먹을 테지요. 양념을 해서 나물무침으로 밥상에 차려도 먹을 테지요. 살짝 데쳐 나물버무림을 해서 밥상에 올려도 먹을 테지요. 그러나, 정작 스스로 피나물 뜯으러 멧마실 다니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식구들한테 피나물 먹이려고 멧마실 다니며 숲바람 마시는 사람은 참 적습니다.


.. 박정희가 일본 육사에서 일본 왕에게 충성을 굳게 맹세하고 있을 때, 대다수 자칭 ‘민족주의자’들이 일제의 앞잡이로 전락해 갈 때, 박헌영은 불굴의 의지로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 박헌영은 살인적인 감옥 생활을 이겨가며 1939년 만기 출옥했다. 박헌영은 다시 혁명 활동에 들어가 지하조직인 경성콤그룹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1945년 8월 15일 현재 그는 광주에서 벽돌공장 노동자로 은신하며 지하운동을 벌여 나가고 있었다. 따라서 그해 9월 서울에서 조선공산당이 재건될 때 그가 지도자인 책임비서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박헌영 이상으로 일제와 줄기차게 투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  (7, 28∼30쪽)


  고흥군 봉래면 버스터에서 군내버스를 탑니다. 여섯 살 세 살 아이들 데리고 버스에 타니, 어른 한 사람 버스삯만 치릅니다. 도화면 동백마을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포두면까지 가는 버스를 탑니다. 버스삯 3100원입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큰도시라면 이만 한 거리 달리는 데에 버스삯 2000원조차 안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골이니 이만 한 삯 치릅니다.


  누군가, 이만 한 버스삯 비싸다 여길 수 있습니다. 누군가, 이만 한 버스삯 내느니 자가용 타겠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가용 장만하는 값이나 기름값은 쌀까요. 게다가, 군내버스로 3100원 내는 거리라면, 시골에서 택시 타고 달릴 적에 31000원쯤 나오는 거리입니다. 도화면 동백마을 우리 집에서 고흥읍내까지 군내버스로 1500원인데, 택시삯으로 치면 15000원 나와요.


  참말,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느낄밖에 없습니다. 다 다르게 느낄밖에 없는 까닭은, 사람들마다 삶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더 깊이 살핀다면, 고흥군 봉래면, 곧 바깥나로섬 옛사람은 나로다리 놓이기 앞서는 굳이 이만 한 길 달릴 까닭 없어요. 바깥나로섬 옛사람은 바깥나로섬에서 밥과 옷과 집을 스스로 건사하며 살았지요. 안나로섬 옛사람도 굳이 다른 데 돌아다니지 않고 스스로 이녁 마을에서 밥과 옷과 집을 손수 건사하며 살았어요.


  아이들과 군내버스를 타고 시골마을 구비구비 돌아서 집으로 갑니다. 원세동세거리에서 군내버스를 내리고는, 고흥읍에서 우리 마을 거쳐 도화면소재지와 지죽까지 달리는 군내버스를 새로 잡아 탑니다. 두 가지 군내버스를 타면서, 그야말로 시골자락 골골샅샅 홀가분하게 누빕니다. 이웃마을 봄맞이를 버스 창밖으로 바라봅니다. 바닷바람 쐬고 들바람 쐬며 숲바람 쐽니다. 버스삯 3100원과 1100원으로 한 시간 남짓 시골마실 흐드러지게 즐깁니다.


  아마 누군가 이 길을 자가용으로 달린다면, 군내버스로 달릴 때처럼 느긋하게 즐기지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가용을 모는 사람은 앞만 보아야 하니까요. 이쪽도 저쪽도 실컷 내다볼 수 없어요. 자가용은 어디에든 멈추어 마음껏 돌아볼 수 있다지만, 멈추기 앞서까지는 거의 아무것도 제대로 누리지 못해요.


.. “김삼룡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너밖에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중부경찰서로 가서 그가 잘 있는지 보고 오랬습니다. 그래서 가 보니 아저씨가 진짜 거기 있더라고요. 나무로 된 긴 의자에 앉아 있는데 한쪽 가랑이는 피로 말라붙어 검붉었어요.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 다친 다리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모르겠고, 수갑이 나무에 채워져 있었어요.” “김삼룡과 눈이 마주쳤나요?” “네. 저는 하도 놀라 말도 못 하고 그냥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아저씨가 무서운 눈빛으로 저를 봐요. 아는 척을 못 하게 하는 거예요. 아예 접근을 못 하게끔 압박합니다. 저는 뒷걸음질쳐서 복도에서 나왔어요.” ..  (52∼54쪽)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인천 골목동네에서 태어났고, 작은아이는 충청북도 음성 멧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나는 어릴 적 인천에서 늘 제비를 바라보며 골목동무하고 뛰놀았습니다. 국민학교를 마치는 1987년까지 제비를 보며 놀았는데, 중학교에 들어서는 1988년부터 새벽 일찍 학교에 붙들리고 밤 열 시 넘어서야 비로소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에서 풀려나느라, 이때부터 제비 구경은 한 차례도 못합니다. 눈으로는 참고서와 교과서를 쳐다보아야 하는 수험생이 되었지만, 마음으로는 교실 창밖을 바라보면서 제비들 날갯짓 올려다보며 동무들과 골목에서 뛰놀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두 아이와 고흥 시골자락에 깃들어 지내면서 처마 밑 제비들 날마다 만납니다. 지난해 봄에는 둥지 하나만 있었는데, 여름 끝물에 어미 제비가 낡은 둥지 하나를 바지런히 손질해서 둥지가 둘 되었습니다. 올해 봄, 지난해 우리 집에서 태어난 새끼 제비들 모두 돌아와서 두 군데 둥지에 깃들며 놉니다. 어른인 나도, 우리 집 두 아이들도 늘 제비를 보고 제비 노랫소리 들으며, 제비똥 떨어지는 섬돌 언저리 신을 바라봅니다. 똥받침 달았어도 제비들은 어디에든 똥을 떨굽니다.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가만히 제비를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중학생 되고부터 이 제비들하고 어울리지 못했지만, 우리 아이들 열너덧 살 될 무렵 갑자기 제비하고 등을 지고 마는 굴레에 갇히도록 할 생각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제비 노랫소리 듣고, 개구리 노랫소리랑 풀벌레 노랫소리 그득그득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풀내음 맡고 숲바람 쐬며 들햇살 먹는 싱그러운 숨결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점수따기 피 튀기는 끔찍한 싸움터에 아이들 내몰리도록 하고 싶지 않아요. 밥이랑 옷이랑 집을 아이들 손수 건사하고 마련하며 보듬을 수 있도록, 맑고 씩씩한 삶 누리는 길 함께 일구고 싶어요.


.. 일제 강점기에 살인적인 고문을 이겨내며 혁명 운동에 나선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죽인 사실은 아무리 한국전쟁의 참화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사회주의자로서 금도를 벗어난 야만이었다. 그 과정에서 끔찍한 고문이 자행됐다는 증언은 그들이 진정으로 사회주의 혁명에 헌신한 사람들이었는가를 회의하게 해 준다 … 평생을 민족독립과 사회주의 혁명에 바친 박헌영을 죽인 것은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미군정도, 이승만 정권도 아니었다. 김일성이었다 ..  (93, 104쪽)


  손석춘 님이 원경 스님 만나 주고받은 이야기를 갈무리하면서 찬찬히 엮은 인문책 《박헌영 트라우마》(철수와영희,2013)를 읽습니다. 원경 스님은 ‘원경’이요 ‘스님’인 한편, ‘박헌영 아들’이라고 합니다. 소설쓰는 김성동 님하고 자동차 타고 멧길 달리다가 그만 비탈길에서 고꾸라져 다친 이야기를 읽고는, 아, 그때 그분이 바로 이분이었네, 하고 무릎을 칩니다. 그무렵 다쳤을 때에 왜 김지하 님한테 연락할 생각 못했나 하고 읊는 대목 읽다가, 그렇구나, 모두 그렇게 이어지는 끈이었네, 하고 무릎을 칩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이 책 《박헌영 트라우마》에서 글로 만나기 앞서, 다른 사람한테서 먼저 들었어요. 1970년대에 잡지 《뿌리깊은 나무》 편집장으로 일하던 윤구병 님이 있고, 윤구병 님 옆지기로 김미혜 님이 있는데, 두 분이 슬기를 모아 엮은 《보리 초등국어사전》을 만들 때에 나는 두 분하고 함께 일했습니다. 나는 편집장이었고, 윤구병 님은 기획자였으며, 김미혜 님은 출판사 사장님이었습니다. 일하다가 쉬며 차 한 잔 마실 때에, 함께 도시락 펼치고 밥을 먹을 때에, 김미혜 님이 곧잘 지난날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는데, 그때 그 교통사고 이야기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어요. 김성동 님이 그 교통사고 뒤로 얼굴 사진 안 찍는다 하던 이야기도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삶이지요. 살기도 하고 죽음 문턱을 넘나들기도 하는 삶이지요. 서로 만나고, 서로 이야기하며, 서로 어울리는 삶이지요. 슬픈 일이 찾아들다가도, 기쁜 일이 찾아들고, 서글픈 일이 몰려들다가도, 아름다운 일이 넘실거리는 삶이지요.


  더없이 마땅한 흐름이라고 느낍니다. 가을날 서늘서늘 바람 찾아들어 들판에 풀포기 거의 다 말라죽을 무렵, 모든 풀과 나무는 씨앗을 한껏 흙바닥에 떨굽니다. 이러면서 풀잎과 나뭇잎 씨앗 위로 내려놓아 씨앗이 얼어죽지 않도록 보듬고, 기나긴 겨울 동안 눈이 소복소복 내리면서 씨앗들은 시나브로 흙 품으로 스밉니다. 햇살 따사롭게 거듭나며 새로 봄이 찾아오면, 지난해 흙 품에 안긴 씨앗 하나둘 천천히 깨어납니다. 새 숨결 틔우며 새 잎 올립니다. 다시금 싱그럽게 푸른 잎사귀 내놓고, 마알갗 꽃망울 터뜨립니다. 풀과 나무는 해마다 삶과 죽음 갈마들면서 한결 푸르고 맑으며 씩씩합니다. 사람도 이와 같아요. 사람들 누구라도 봄이 있고 여름과 가을이 있으며 겨울이 있어요. 그리고, 다시 봄이지요.


.. “그것보다도 어머님이 계셨다는 사실 자체가 보통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진작 알았다면 그리워하기라도 했을 텐데, 외로울 때 가서 멀리 그림자라도 보고 올 수 있었을 텐데.” … “한산 스님이 사실을 역사적으로 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역사가 심판하고 다뤄야 할 것이지, 인간이 인간을 상대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 “안기부에다 제가 박헌영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발한 스님도 있어요.” … “아버지의 복권은, 우리 손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급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대신 남로당 전체, 이름 없이 산화된 그 사람들의 명예를 정말이지 바로 찾아야 합니다.” ..  (130, 132, 148, 159쪽)


  박헌영이라 하는 분 삶은 어떤 빛이었을까요. 봄빛이었을까요. 겨울빛이었을까요. 일본 제국주의자가 후려갈기던 주먹질을 견뎌야 하는 겨울빛이었을까요. 일본 제국주의자 물러간 자리에 ‘일본 제국주의자한테 빌붙은’ 이들이 권력을 뽐내며 우쭐거리던 등쌀에 다시금 허덕여야 하던 시리디시린 겨울빛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느 정당 높은 자리에 올라 어떠한 혁명을 이룰 수 있던 여름빛이나 가을빛이었을까. 이 땅 가난한 농사꾼들이 지주한테 시달리던 굴레를 벗겨내는 평등과 자유와 민주를 바라던 꿈결 어여쁜 한창 새싹 돋는 푸른 봄빛이었을까요.


  박헌영 님은 이슬처럼 죽습니다. 박헌영 님 둘레에 있던 숱한 사람도 이슬처럼 죽습니다. 북녘에는 북녘대로 어떤 권력자가 독재를 부리듯 숱한 사람을 죽이며 권력을 거느립니다. 남녘에는 남녘대로 어떤 권력자가 독재를 부리듯 숱한 사람을 죽이며 권력을 거머쥡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적에 죽은 사람은 권력자가 아닙니다. 남녘에서도 북녘에서도 ‘여느 시골마을 흙일꾼’이 싸움터로 붙들려 나가 죽습니다. 한국전쟁통에 ‘지주’나 ‘일제 앞잡이’가 죽지 않았습니다. 미군 부대 폭격기가 퍼부은 폭탄은 시골마을 조그마한 살림집을 몽땅 불태웠고, 이 나라 예쁜 숲과 들을 온통 불질렀습니다.


  전쟁은 권력자와 권력자가 다툰 힘싸움이나 힘겨루기가 아닙니다. 마을을 살찌우고 나라를 북돋우는 ‘가장 밑자리에 있는 시골 흙일꾼’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꼭둑각시로 세웁니다. 싸우려면 권력자끼리, 우두머리끼리 싸울 노릇이지, 막상 전쟁통에 우두머리는 어딘가에 숨어서 힘여린 사람들을 죽음터로 내몰기만 합니다. 혁명이란 무엇이길래 시골 흙일꾼 손에 총자루를 쥐어 주었을까요. 민주란 무엇이기에 시골 흙일꾼 손에 칼자루를 안겨 주었을까요.


  서로서로 죽여야 평화가 찾아오거나 통일이 되거나 혁명이 되거나 민주를 이루는가요. 서로서로 흙을 만지면서 살림을 꾸리지 않고도 평화나 통일이나 혁명이나 민주를 이룰까요.


  북녘 김일성이나 김정일이라 하는 사람도 밥을 못 먹으면 죽습니다. 남녘 이승만이나 박정희리 하는 사람도 밥을 안 먹으면 죽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먹는 밥은 누가 짓는가요. 이들 스스로 짓는가요. 아니지요. 바로 시골 흙일꾼이 짓지요. 이들 권력 우두머리가 지내는 궁궐 같은 집은 누가 짓나요. 이들 권력 우두머리가 입는 으리으리한 옷은 누가 깁나요. 이들 권력 우두머리가 타고다니는 자동차는 누구 돈으로 장만하는가요. 바로 시골 흙일꾼 피땀이 있기에 권력 우두머리도 권력을 누립니다.


.. “우리 후세대들이 김일성이나 전쟁 책임 이런 걸 떠나서, 지금과는 다른 세계관에서 남북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 그때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 “외롭고 배고픈 이웃을 생각하면서, 뭔가를 나누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 “상대방의 시각으로도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은 금을 그을 수가 없는 거거든요.” ..  (170쪽)


  인문책 《박헌영 트라우마》를 읽으며 생각을 가다듬습니다. ‘아버지 박헌영’이 꿈꾸던 혁명이란, 곧, ‘아버지 박헌영’이 한겨레 삶자리를 아름답게 일구려 한 밑바탕은 무엇이었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들 원경’이 바라는 삶이란, 곧 ‘아들 원경’이 한겨레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돌보려 한 밑힘은 무엇일까 하고 가누어 봅니다.


  책을 읽다가 틈틈이 밥을 짓습니다. 아이들 먹일 밥을 짓습니다. 아이들 밥을 먹이고 손과 낯 씻긴 뒤 이를 닦입니다. 숨을 살짝 돌리고서, 아이들 옷가지를 빨래합니다. 방바닥을 쓸고 닦습니다. 이불을 들어 마당에서 팡팡 턴 다음 햇볕을 쪼입니다. 아이들 마당으로 쪼르르 따라나와서 까르르 웃으며 놉니다. 아이들 웃음소리 들으며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는 다시 책을 손에 쥡니다.


  혁명이란 삶을 바꿀 때에 혁명입니다. 민주란 삶을 아름답게 돌볼 때에 민주입니다. 삶은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저마다 스스로 밥과 옷과 집을 짓는 삶이 되도록 바꾸어야겠지요. 책을 읽거나 이론을 외운대서 혁명이 되지 않아요. 총이나 칼을 들기에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아요. 혁명은 낫과 호미로 이룹니다. 민주 또한 제도나 선거로 이루지 못해요. 책을 읽든 학교를 다니든 신문을 읽든 민주하고는 동떨어집니다. 민주는 들과 숲과 메와 바다를 골고루 사랑하는 손길일 때에 민주입니다. 멧자락에 구멍내어 고속도로 내는 짓은 민주가 아닙니다. 도시에서 펑펑 쓰는 전기를 뽑으려고 시골 아름다운 터전에 핵발전소랑 화력발전소 아무렇게나 때려짓는 짓은 민주가 아닙니다. 밥을 나눌 때에 평화라고 말들은 하지만, 돈 많은 기업이나 재산꾼들 스스로 밥(엄청난 재산)을 기꺼이 이웃하고 나누지 못해요. 돈은 많이 움켜쥐지만, 사랑은 조금도 붙잡지 못해요.


  이제 책을 다 읽었으니 내려놓습니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릅니다. 같이 놀자고, 같이 노래하자고, 같이 춤추자고 부릅니다. 그래, 아버지는 아이들 손에 이끌려 같이 놀고 같이 노래하며 같이 춤춥니다. 이론이나 학문으로 따질 것 없이, 육아지침서나 육아이론서를 들출 것도 없이, 아이들 노랫소리가 책입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혁명입니다. 아이들 이야깃소리가 민주요 평화요 통일이며 사랑입니다.


  무엇을 생각하는 삶인가요. 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하는 삶을 일구는가요. 아니, 삶을 일구기나 일구는가요. 생각을 하기는 하는 삶인가요. 인문책 《박헌영 트라우마》는 꼭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박헌영 아들’이 아닌 ‘스님 원경’이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사랑하면서 하루하루 웃음꽃으로 누리는가 하는 이야기 한 자락 들려줍니다. 잘 읽었습니다. 책 아닌 삶을 잘 읽었습니다.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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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한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손석춘님의 책은 '껍데기는 가라'로 만났었지요.
오늘도 웃음꽃으로 누리는 삶, 감사한 마음으로 시작합니니다.

파란놀 2013-04-09 12:03   좋아요 0 | URL
귀하게 여겨 주시니 귀한 글이 되네요~ ^^
즐겁게 하루 열며
따사로운 봄빛 누리셔요.

저는 오늘 두 아이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좀 멀리 나들이 다녀올까 싶어요~

페크pek0501 2013-04-09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서로 죽여야 평화가 찾아오거나 통일이 되거나 혁명이 되거나 민주를 이루는가요"

이 글 읽으니 전쟁 무기도 나라 간에 첨단적 기술로 경쟁한다는 슬픈 사실을 생각하게 되네요.
모든 지구인이 다 평화롭게 살면 그런 데에 쓰는 국가 경비를 다른, 좋은 데에 쓸 수 있을
텐데요. 인간이라서 그런 가요?

파란놀 2013-04-09 16:22   좋아요 0 | URL
전쟁무기가 산업이 되고,
이 전쟁무기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참 많아요.
군인도 바로 '전쟁산업 노동자'이기도 하지요......

국방비가 없어지면
지구는 평화와 완전 무상교육... 완전 무상평등... 이루어진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말하기

 


  어느 책 하나 이야기를 쓰려고 여러 날 생각에 잠긴다. 어느 책 하나 얼마나 제대로 읽힐 수 있을까 하고 헤아리면서, 이 책을 읽은 내 느낌을 갈무리하기 앞서, 곰곰이 생각을 다스린다. 다른 사람들이 이 책 하나에 나온 사람을 놓고 말밥을 내놓거나 말다툼을 벌이거나 말잔치 벌이는 일은 대수롭지 않다. 그나저나 참 말밥이 많다. 문득 생각한다. 어느 한 사람을 놓고 말밥 내놓는 사람은 무슨 마음일까? 말밥을 내놓는 그 사람 마음에는 어떤 생각이나 사랑이 있을까? 고작 책 몇 권 읽었대서 어느 한 사람을 ‘잘 안다’고 밝힐 수 있을까? 스스로 어느 한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듣는다든지, 또는 스스로 어느 한 사람 곁에서 얼마쯤 함께 살아가며 지켜보고 나서, 차근차근 어느 한 사람 말밥을 내놓는가?


  볍씨 한 톨을 생각해 본다. 코끼리 만지기는 재미없다. 나는 볍씨 한 톨을 생각하고 싶다. 누군가는 볍씨 한 톨만 보고 ‘벼’나 ‘쌀’을 말할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겨를 깎은 하얀 알맹이를 보고 ‘벼’나 ‘쌀’을 말할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모판에 빽빽하게 심어 조금 자란 푸른 싹을 보고 ‘벼’나 ‘쌀’을 말할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무논에 옮겨심은 볏모를 보고 ‘벼’나 ‘쌀’을 말할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모심개(이앙기)에 실은 모판을 보고 ‘벼’나 ‘쌀’을 말할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여름날 들판 바라보며 ‘벼’나 ‘쌀’을 말할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가을날 누렇게 익은 논자락 바라보며 ‘벼’나 ‘쌀’을 말할는지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마트에 놓인 쌀푸대를 보고 ‘벼’나 ‘쌀’을 말할는지 모르며, 누군가는 가시내(어머니나 할머니나 옆지기)가 차려서 내놓는 밥상을 받으며 ‘벼’나 ‘쌀’을 말할는지 모른다.
  자, 어떤 모습을 보고 나서야 ‘벼’나 ‘쌀’을 제대로, 슬기롭게, 알맞게, 사랑스럽게, 찬찬히, 똑똑히 이야기를 한다고 밝힐 만할까.


  스스로 낫을 쥐어 벼포기 베어 보지 않고서도 ‘벼’나 ‘쌀’을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맨발로 무논에 들어가 모를 심어 보지 않고서도 ‘벼’나 ‘쌀’을 슬기롭게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피를 뽑은 적 없으면서도 ‘벼’나 ‘쌀’을 알맞게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방아를 찧고 켜를 까부른 일 없으면서도 ‘벼’나 ‘쌀’을 사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흰쌀 누런쌀 보리쌀 찹쌀 멥쌀을 잘 씻고 불려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밥을 지어서 식구들 먹을 밥상 차린 적 없으면서도 ‘벼’나 ‘쌀’을 찬찬히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 볍씨 갈무리하여 건사한 뒤 이듬해에 기쁘게 심을 씨앗을 얻었구나 하는 따사로운 숨결 느끼지 않고서도 ‘벼’나 ‘쌀’을 똑똑히 말할 수 있을까. 볏짚을 엮어 새끼를 꼰 적 없이도, 볏짚으로 꼰 새끼로 짚신을 삼은 적 없이도, 볏짚으로 꼰 새끼를 더 굵게 이어 지붕 이은 적 없이도, 참말 ‘벼’나 ‘쌀’을 말할 만할까.


  나는 박헌영이라 하는 사람과 《박헌영 트라우마》라고 하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나로서는 박헌영이라 하는 사람을 ‘안다’고도 ‘잘 안다’고도 ‘읽었다’고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려 한다. 볍씨 한 톨이 내 손바닥에 놓이다가 흙 품에 안겨 한 해를 살아내고는 새로운 볍씨 한 톨로 내 손바닥에 놓이는 결과 삶을 돌아보면서 글을 쓰려 한다. 사람이 사람을 말하는 일이란, 얼마나 따사로우면서 애틋한 사랑인가 하고 생각해 본다. 4346.4.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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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4-09 10:17   좋아요 0 | URL
사람이 사람을 말하는 일이란, 얼마나 따사로우면서 애틋한 사랑인가...
정말 그렇군요. 사람이 사람을 말하는 일이란, 얼마나 따사로우면서 애틋한 사랑인가,

파란놀 2013-04-09 12:03   좋아요 0 | URL
우리는 서로를 '비판'이 아닌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혁명도 평화도 평등도 민주도...
모두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느껴요...

페크pek0501 2013-04-09 12:39   좋아요 0 | URL
한 권의 책으로 두 편의 글을 쓰셨군요.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파란놀 2013-04-09 16:21   좋아요 0 | URL
글 둘이라기보다...
이 글은 '박헌영이라는 사람을 놓고
욕질만 해대는 어떤 사람들 모습'을 보고 나서
아주 슬픈 마음이 되어 쓴 글이랍니다........
 

시골집 빨래

 


  먼먼 옛날 시골사람들 빨래는 어떠했을까 헤아려 본다. 사진이 한국에 처음 들어올 무렵 사진을 찍던 이들이 ‘여느 시골 여느 살림집’ 빨래를 사진으로 찍은 일이 거의 없을 뿐더러, 무지개빛 사진이 나오고 나서도 무지개빛으로 시골집이나 골목집 빨래를 담아내어 보여준 이가 거의 없으니, 옛날 옛적뿐 아니라 백 해쯤 앞서 살던 사람들 빨래를 헤아리기는 쉽지 않다 할 만하다.


  그렇지만, 나 스스로 시골사람으로 살아가면서 내 빨래를 바라보며 돌이켜본다. 우리 아이들 옷가지를 빨아서 마당에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며 곰곰이 생각한다. 먼먼 옛날 시골사람들 빨래빛 얼마나 고왔을까. 먼먼 옛날뿐 아니라, 오늘날 골목동네 골목사람들 빨래결 얼마나 맑을까.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살림집 빨래를 바라볼 적에도 참 곱다고 느낀다. 가끔 도시로 마실을 나가서 골목동네 거닐 때에도 골목집 골목빨래 더없이 예쁘다고 느낀다.


  그래, 빨래빛이란 옷빛일 뿐 아니라 삶빛인걸. 빨래결이란 옷결이면서 삶결인걸. 작은 사람들 작은 살림살이는 자그마한 대로 참 예쁘고, 큰 사람들 큰 살림살이는 또 큰 대로 참 예쁘지.


  아버지가 빨래를 마당에 널어 두니, 아이들이 빨랫대 언저리에서 빨래빛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논다. 그래, 너도 참 예쁘다. 빨래도 예쁘고, 너도 예쁘며, 유채꽃도 예쁘다. 4346.4.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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