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 물구나무 그림책 71 파랑새 그림책 71
송창일 지음, 이승은.허헌선 인형, 이상혁 사진 / 파랑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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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21

 


눈이 내리지 않는 이 나라
― 눈사람
 이승은·허헌선 인형,이상혁 사진,송창일 글
 파랑새 펴냄,2008.7.10./9800원

 


  눈사람을 굴리자면 눈이 얼마만큼 내려야 할까요. 눈이 소복소복 내리면, 눈이 펑펑 내리면, 꺄아 소리치면서 바깥으로 나와서 눈사람을 굴릴 만할까요.


  눈이 올라치면 어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저런, 저런, 길이 막히겠는걸.’ 어른들은 어느새 두 다리로 걷는 어른 아니라, 자가용을 몰거나 버스를 타는 어른 되고 말아, 하늘을 하얗게 채우며 빛나는 눈송이를 반기지 않습니다. 눈이 오는 겨울날, ‘오늘은 버스 말고 전철 타야겠어.’ 하고 생각하는 어른들투성이인 도시입니다. 시골에서도 다르지 않아요. 시골에서도 어른들은 ‘자동차 다니기 나쁘니’까 얼른 눈을 쓸자며 넉가래로 밀고 빗자루로 쓸지요.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가기 앞서부터 곰곰이 생각합니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어른도 아이도 가만히 지켜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눈을 쓸자면 다 내리고 나서 쓸면 되어요. 괜히 한참 내리는데 쓸 까닭 없어요. 한참 내릴 때에 눈을 쓸며 다니면, 발에 눌린 자리는 더 쓸기 어렵지요.

  눈이 오는 날이면 언제나 어릴 적 들은 옛말 ‘눈이 많이 와야 이듬해에 농사가 잘 된다’라는 한 줄 떠오릅니다. 눈이 많이 와서 들판에 소복소복 쌓이면 이런 벌레 저런 벌레 잘 죽기도 하고, 겨우내 흙이 포근하게 쉬며, 이 눈이 녹는 봄에는 고운 물기 퍼져 한결 기름질 수 있다고 해요. 그러니까, 더더욱 눈은 그대로 둘 노릇이에요.


  그러나, 어떻게 보면, 도시도 시골도 온통 아스팔트길이고 시멘트땅입니다. 흙이 그대로 남은 땅이 거의 없어요. 도시에서 텃밭 일구는 사람 매우 적어요. 도시에서 빈터 남은 데 거의 찾아볼 길 없어요. 하늘하늘 내리는 눈이 느긋하게 쉴 자리 없어요. 도시에서는 눈이 거추장스러워 얼른 치우려 할밖에 없어요. 도시에서는 자동차를 맨 먼저 걱정하면서 염화칼슘 같은 화학약품 마구 뿌릴밖에 없어요. 아스팔트 밑에 깔린 흙땅이 염화칼슘 때문에 더러워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아니, 흙땅이 아스팔트한테 깔리고 자동차한테 눌리며 얼마나 아파 하는 줄, 도시사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아요.

 

 

 


  송창일 님 글에 맞추어 인형을 만든 이승은·허헌선 님입니다. 두 분이 만든 인형을 예쁘장하게 사진으로 찍은 이상혁 님입니다. 어린이가 읽는 사진책 《눈사람》(파랑새,2008) 한참 들여다보고, 아이들과 읽습니다. 눈사람이 앙증맞고, 눈사람한테 마음을 쓰는 아이들이 아름답습니다. 아이들 돌보는 어머니가 사랑스럽고, 시골마을 조그마한 집이 살갑습니다. 아름다운 넋으로 글을 쓴 사람 있어, 이 아름다움을 받아 인형을 만듭니다. 아름다움 깃든 인형 바라보면서 사진으로 아름답게 보여주려고 마음을 기울인 한 사람 있습니다. 그래요, 옛날에는, 아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날에는, 모두들 이렇게 눈을 맞이하고 집에서 복닥복닥 놀며 하루를 길고 아름답게 보냈어요. 눈이 오니 눈을 바라보면서 눈 노래 불러요. 눈을 바라보며 즐겁게 뛰놀고, 눈을 기쁘게 맞이했어요.


  이제 도시에서는 눈을 아름답게 맞아들이면서 눈놀이 아름답게 누리지 못할까요. 이제 도시에서는 눈을 사랑스레 마주보면서 눈사람 사랑스레 굴리지 못할까요. 이제 도시에서는 눈을 즐겁게 바라보면서 눈싸움 신나게 뒹굴지 못할까요.


  예쁜 사진책 《눈사람》인데, 눈사람 굴리기를 ‘흘러간 옛일’로만 여기기는 너무 아쉽습니다. 고운 사진책 《눈사람》이니, 겨울눈 이야기를 ‘지나간 옛일’로만 여기기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오늘 이곳에서도, 오늘날 도시와 시골 어디에서도,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고 아이들이 땀 송송 흘리며 눈사람 굴릴 수 있어야지 싶어요. 눈을 만지며 손이 얼얼하고, 눈을 굴리며 싱그럽게 웃으며, 눈을 척척 쌓으며 두 손 번쩍 치켜들 수 있어야지 싶어요.


  무대가 아파트나 빌라라 하더라도, 삶터가 도시요 서울이라 하더라도, 길 한복판에 눈사람 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자동차를 멈추게 하는 눈사람 곳곳에 선다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천천히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서 하늘과 땅과 이웃과 동무를 살뜰하게 마주하며 반갑게 손을 흔들고 싱긋빙긋 웃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눈놀이 즐기고, 눈놀이 사진으로 기쁘게 담으며, 눈놀이 이야기 두고두고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4346.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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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6-22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승은 허헌선 인형작가의 전시회에 갔다가 이 부부 작가를 직접 뵌적이 있어요. 코 뾰족하고 눈 파란 인형이 아니라 누가 봐도 우리를 닮은, 우리 삶이 드러나는 작품들이었어요. 그러고보니 그게 벌써 오래전 일이네요.

파란놀 2013-06-22 13:41   좋아요 0 | URL
아, 전시회를 가셨군요!
그러고 보니, 저도 예전에 전시회에 가 본 적 있는 듯도 하고...
저로서는 퍽 어릴 적 일이라서요~ ^^

이렇게 사진그림책으로 나온 적 있는 줄 보고는
놀라면서 반가웠어요.
 

비가림 농사

 


  나는 ‘유기농’으로 고추농사를 짓는다는 사람 말은 믿지 않는다. 거름을 사람 똥오줌으로 줄 만큼 고추밭에 뿌릴 수 없기도 하거니와, 같은 땅에 해마다 고추를 심을 수 없기도 하다.


  비닐을 씌우면서 곡식과 열매를 키우는데 ‘유기농’과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믿을 수 없다. 비닐집 세워서 농사를 지으면 ‘비닐농사’이지, 다른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다. 감자밭에도 고추밭에도 마늘밭에도 배추밭에도 무밭에도 온통 비닐을 씌우는 비닐농사를 하는 오늘날 흐름이라면, 섣불리 ‘유기농’이나 ‘친환경’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그래서 요새 어떤 흙일꾼은 ‘노지 감자’라는 말을 쓴다. ‘노지(露地)’는 일본말로 ‘맨땅’을 가리킨다. ‘맨땅 감자’란 뜻인데, 이렇게 따로 이름을 안 붙이면 사람들이 제대로 모른다고 한다.


  귀농이나 귀촌을 가르치거나 알려준다는 모임이나 자리를 보면, 으레 ‘비닐집 짓’고 밭두둑마다 넓게 ‘비닐을 까’는 모습부터 보여주던데, 왜 이렇게 ‘생각있고 뜻있다’는 사람조차 비닐사랑에 매달리는지 알쏭달쏭하다.


  얼마 앞서 어느 모내기잔치 행사에 갔을 때에 여러 사람 주고받는 이야기를 곁에서 들었다. 한 사람이, 고추나 여러 가지 푸성귀 심어 기르면서 ‘푸성귀가 빗물 맞으면 안 되어 비가림 시설을 한다’는 말을 한다. 다른 한 사람이, 그러면 그 농사는 친환경도 유기농도 아닌 ‘비가림 농사’ 아니냐고 말을 한다. 아까 말한 사람은, 그게 아니고 유기농으로 하려면 ‘비가림 시설을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러니 다른 한 사람이 다시, ‘그게 바로 비가림 농사이지 뭐냐’면서, ‘언제부터 고추고 토마토고 빗물 안 마시고 자라느냐고, 이녁 밭에서는 고추도 배추도 무도 무엇도 빗물 잘 마시면서 잘 큰다’고 덧붙인다.


  가만히 따지면, 오늘날 도시사람 먹는 모든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는 ‘농약 농사’와 ‘항생제 농사’와 ‘비료 농사’에다가 ‘비닐 농사’로 거둔다. 곧, 오늘날 사람들은 몽땅 ‘농약·항생제·비료·비닐 농사’로 거두는 곡식이랑 푸성귀랑 열매를 먹는 셈이다. 아니, 감자도 고구마도 참외도 수박도 딸기도 토마토도 멜론도 블루베리도 커피도 포도도 사과도 배도 복숭아도 아닌, 농약과 항생제와 비료와 비닐을 먹는 셈이다. 4346.6.2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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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청소

 


  오늘은 우리 동백마을 ‘마을 청소’ 하는 날이다. 그러나 우리 식구는 안 간다. 아이들 어머니는 미국에 있고 나 혼자 두 아이를 돌보니, 아무리 새벽 다섯 시 반부터 청소를 한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두고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어제 낮에 아이들 데리고 마을 빨래터에 가서 빨래터 청소를 한다. 풀베기야 요새는 다 기계를 써서 슥슥 밀고, 가장 품을 많이 들이는 일이 바로 빨래터에 낀 물이끼 벗기기이니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나는 마을 청소가 안 내킨다. 마을 청소라 하지만, 마을 고샅 곳곳에서 씩씩하게 자라는 들풀을 모조리 베어내거나 뽑는다. 제대로 된 청소를 하자면, ‘비닐’ 조각들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이며 밭이며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태우는 온갖 쓰레기들부터 제대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마을운동 벌이며 시골집 지붕으로 쓰던 석면(슬레트) 조각을 치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풀은 너무 크게 자랐으면 조금 베고, 다른 풀은 그대로 두어야지 싶다.


  이른 새벽부터 이웃집 풀 베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낫으로 베는 소리가 아니라 기계가 기름 먹으며 윙윙 돌아가는 소리이다. 나는 기계 윙윙 돌리는 소리 들으면 골이 아프다. 그러니까, 오늘은 이른 새벽부터 골이 띵하다. 4346.6.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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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쯤 앞서 두 아이를 재운다.

아이들 재우기란 쉬우면서 어렵다.

아이들 재우는 일이 어려운 적 없다.

아이들이 하루 내내 고단하게 놀았어도

안 잠들려 하기 마련이라

아이들 재우기란 퍽 어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곤조곤 잠자리에서 이야기 건네며

자장노래 부르면 곧 잠든다.

그래서 아이들 재우는 일이란

어려우면서 쉽고

쉬우면서 어렵다.

 

오늘,

두 아이 재우다가

한 가지를 생각한다.

이듬날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어제 전화를 안 받으신

친할머니나 친할아버지한테

다시 전화를 걸어

큰아이 8월 생일선물로

일찌감치 '트럼펫' 사 주십사 하고

이야기를 하려 한다.

 

트럼펫?

비싼 악기일까?

싼 악기일까?

나는 모른다.

다만, 우리 살림에 허리띠 졸라매고 또 졸라매면

어찌저찌 중고로 살 듯하기도 할 듯한데

만만하지는 않네.

큰아이가 세 살 적부터

삐삐 영화를 보며

삐삐가 트럼펫 보는 모습에 홀려

"아버지, 나 트럼펫 사 주셔요." 하고 말했는데

벌써 세 해째 트럼펫을 못 사준다.

얘야, 트럼펫 값이라고 해 보았자,

새것은 좀 힘들고

중고로는 50~70만 원 사이에서

좋은 것 있는 듯하더라.

 

비싸다면 비싸지만,

안 비싸다면 안 비싼 값이야.

그나저나 네 아버지가 지난 세 해 동안

트럼펫 값 모으지 못해

아직까지 장만해 주지 못했잖니.

 

엊그제에는 <스윙걸스> 영화를 보며

아버지한테 말했지.

"아버지, 나 저거 사 달라고 했잖아요?"

아, 아, 참말 미안하구나.

너는 사 달라고 해서 사 주면,

한때 갖고 놀다가 잊어버리더라도

이내 다시 즐겁게 갖고 놀 뿐 아니라

참말 잘 갖고 놀잖니.

 

아무튼.

네 아버지는 오늘 살림살이로서는

트럼펫 사 주기가 조금 꽤 벅차단다.

그렇다고 너희 친할아버지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아.

교사로 정년퇴직 하시고서 다달이 받는 연금 있으시지만

그 돈 거의 다 적금으로 부으시잖니.

 

그래도, 아버지는 네 이름을 빌어

슬쩍, 아니 되게 미안하고 쑥스럽고 부끄럽고 싫지만,

네 친할아버지한테 부탁하려고 해.

"아버지, 손녀딸이 트럼펫 불고 싶대요."

한 마디를 하려고.

 

그러나, 네 친할아버지가 전화를 받아야 이 말을 건네겠지.

부디, 오늘밤에 네 친할아버지가 술 안 자시고 잠드셔서

이듬날 아침에는 네 아버지 전화를

네 친할아버지가 받기를 빌어 다오.

 

네 아버지는 참말 네 친할아버지한테 말할 생각이야.

"트럼펫 하나 사 주셔요." 하고.

 

돌이켜보면, 네 아버지가 네 친할아버지한테

무엇 하나 해 달라고 말한 적 한 번도 없는데

오늘, 아니 내일, 참말 처음으로

이 말 한 마디 할 생각이야.

 

되든 안 되든,

안 받아들여 주시든 어찌 되든...

 

아, 아, 팔십만 원... 팔십만 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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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3.6.21.
 : 사진기 놓고 찬찬히

 


- 낮에 마을 빨래터를 청소하면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나서, 작은아이는 낮잠을 재운다. 낮잠 자고 일어난 작은아이는 배가 고프니 밥을 새로 짓는다. 밥을 먹은 아이들은 살짝 졸린 티가 나지만, 이럭저럭 잘 논다. 빨래터에서 물놀이 실컷 했나. 아이들은 다른 놀이보다 물놀이를 하며 기운을 많이 쏟는 듯하다. 그나저나 이 아이들 언제 저녁잠 자려나 모를 노릇이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전거마실 가기로 한다. 자전거 타고 면소재지 한 바퀴 휘 돌고 돌아오면 차츰 해가 기울 테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조금씩 졸음이 쏟아지겠지.

 

- 아직 해가 걸렸지만 사진기는 집에 놓고 나온다. 오늘은 가벼운 몸으로 가 보자고 생각한다. 동백마을 어귀에서 옆마을인 신기마을 넘어서는 비탈길 있고, 이 비탈길 넘어서자면 으레 자전거 기어를 3*5에서 2*4로 바꾸는데, 오늘은 3*5를 그대로 둔 채 넘는다. 왜 이렇게 가벼울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어제 이 오르막 넘을 적에도 제법 가볍기는 했지만 2*5까지만 바꾸었다고 떠올린다. 아이 둘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우고 다닌 지 제법 된 터라 다리힘이 차근차근 올랐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다리힘이 붙고 나면 오르막을 오르막으로 느끼지 않는다. 다리힘이 야무지면 비탈길도 그리 비탈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다리힘이 아직 여릴 적에는 오르막이 길지 않거나 높지 않아도 ‘오르막은 오르막이네’ 하고 느끼는데, 다리힘이 차츰 붙는 동안 ‘오르막 높이를 덜 가파르게’ 느낀다.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구나.

 

- 맞바람이지만 시원하다. 면소재지로 가는 길에 맞바람이면 좋다. 돌아오는 길에는 등바람 될 테니까.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논배미에서 일하는 할매 할배를 마주할 때마다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할머니, 안녕하셔요! 내 치마 예뻐요?” “할아버지, 안녕하셔요! 내 치마 예뻐요?” 큰아이는 워낙 인사를 잘 하기는 하지만, 오늘 입은 치마가 무척 마음에 드는가 보다. 사람들 볼 적마다 큰소리로 부리면서 제 치마를 보아 달라고 한다.

 

- 면소재지에 딱히 볼일은 없다. 그냥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가게에 들른다. 아이들더러 과자 하나씩 고르라 한다. 아버지는 어제 면소재지에 나와서 가게에 들를 적에 산 ‘통밀과자’를 다시 골라 본다. 통밀과자도 되게 달기는 하지만, 어쨌든 다른 과자보다는 살짝 낫다. 그런데 큰아이가 딴죽을 건다. “아버지, 그 과자 아까(어제)도 샀잖아요? 먹어 봤잖아요?” “그래? 벼리가 고른 칸츄 과자도 아까(어제) 샀잖아? 먹어 봤잖아?” 벼리가 아무 말을 못 한다. 얘야, 먹고 싶은 과자를 골라서 먹으면 될 뿐이야.

 

- 다시 자전거에 아이들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마침 가게로 들어오는 면내 초등학교 사내아이 하나 본다. 이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왔기에 눈에 뜨인다. 그런데, 자전거를 보니 기어를 1*7로 두었다. 응? 너 자전거 기어 어떻게 된 줄 아니? 기어를 저렇게 둔 채 자전거를 타면 체인이 바로 망가지고 기어도 엉터리가 된다. 아이를 불러세운다. “얘야, 자전거 기어 어떻게 있는 줄 아니? 네 자전거는 아주 잘못 되었어. 앞과 뒤에 이렇게 톱니가 있잖아. 앞에는 톱니가 크고 뒤에는 작은데, 앞에서 가장 낮은 데(1단)에 체인이 걸렸으면, 뒤에는 가장 큰 데(1단)에 체인이 맞물려야 해. 그래야 수평이 맞아. 그렇지 않고, 이 모습처럼 앞은 가장 낮은 데(1단) 있으면서 뒤는 가장 작은 데(7단)에 있으면 체인은 엉망이 되지. 그렇지만 아이는 말이 없다. 내가 기어를 바꾸어 주고 싶지만, 아이는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간다. 어쩔 수 없을까. 초등학교 어린이한테 자전거를 제대로 가르치거나 알려줄 만한 어른이 없을까. 시골이기 때문에 모르지는 않다. 도시에서도 이와 똑같은 모습을 언제나 본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어버이부터 자전거를 제대로 탈 줄 모른다. 학교에서 교사도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어른들 가운데 자전거를 제대로 탈 줄 아는 사람이 드물고, 기어도 체인도, 아주 조그마한 정비와 손질도, 하다못해 구멍난 타이어 때우는 일도 할 줄 아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아니, 집에 자전거 체인 슬지 말라고 닦아 주거나 기름 바르는 어른이 얼마나 있을까. 자전거를 아주 좋아하면서 자전거모임에도 나가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또 자전거여행을 다니거나 산과 들로 자전거로 누비려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주 밑바탕이 될 ‘자전거 다루기’조차 하나도 모르지 싶다.

 

- 집으로 돌아온다. 천천히 달린다. 면소재지 바깥자락 앵두나무에 앵두알 붉게 맺힌다. 아, 소담스럽구나. 이틀이나 사흘쯤 뒤면 아주 맛나게 익겠네. 그때쯤 아이들과 이 앞 지나가면서 몇 알 얻어먹어도 되느냐고 여쭈어 볼까.

 

- 이웃마을 할배들이 큰길에서 무언가를 태운다. 무엇을 태울까. 큰아이는 “아이, 냄새.” 하면서 싫어한다. 그쪽 길로 안 가고, 일부러 다른 논둑길로 돌아서 집으로 달린다. 큰아이는 언제부터인가 냄새를 아주 날카롭게 느낀다. 오늘도 자전거 타고 나오는데, 갑자기 “아이, 누가 뭘 태우나 봐? 뭐야?” 하고 말하기에 두리번두리번 살피는데, 연기 올라오는 모습이 안 보였다. 뭐지, 하고 생각하며 달리다 보니, 거리로 이 킬로미터쯤 떨어진 서호덕마을 끝자락 어딘가에서 아주 가늘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 먼 데에서 무언가 태우는 냄새를 맡은 셈이다. 오늘 낮에도, 빨래터 청소와 물놀이 마치고 집으로 걸어서 돌아오는데, 이웃집 할배가 경운기 몰며 집으로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며 눈코입 모두 가리더라. 이때에도 큰아이는 ‘경운기 달리며 나는 기름 냄새’ 싫다고 하는 몸짓이었다. 큰아이는 군내버스 타기 앞서도 버스에서 나는 휘발유 타는 냄새를 몹시 싫어한다. 군내버스나 시외버스에서 에어컨을 틀었으면 버스에 오르면서 “아유, 냄새!” 하면서 큰소리로 말한다. 사름벼리야, 네가 맞단다. 아버지도 버스 냄새 참 싫단다. 기름 타는 냄새도 싫어하지. 경운기도 짐차도 다 싫어. 그래서 이렇게 시골마을에 들어와서 살잖니. 그런데 우리 이웃들은 모두 자동차를 모는구나. 우리도 읍내를 드나들 적에는 군내버스를 타지. 네가 슬기로운 넋 빛내어 기름 태우지 않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까. 햇볕과 바람과 물을 먹으며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까. 달릴 때마다 싱그러운 냄새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까.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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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2 07:48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글을 읽다가 문득, 학교에서도 '자전거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만해도 자전거를 어릴 때 잠깐 타고는 안 탔기 때문에 지금 다시
자전거를 타고픈 마음은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모습 보면 부러운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 앵두나무에 붉은 앵두가 맺혔군요. ~
오늘은 임의진님의 <앵두 익는 마을>,을 꺼내 읽어야겠어요. ^^

파란놀 2013-06-22 08:30   좋아요 0 | URL
일본에서는 '외발자전거'를 초등학교에서 모두 가르쳐요.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전거 면허증'을 받아야 자전거를 탈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그저 돈으로 '24단 기어' 자전거를 아이들한테 함부로 사 주고는, 자전거를 어떻게 타라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