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간쯤 앞서 두 아이를 재운다.

아이들 재우기란 쉬우면서 어렵다.

아이들 재우는 일이 어려운 적 없다.

아이들이 하루 내내 고단하게 놀았어도

안 잠들려 하기 마련이라

아이들 재우기란 퍽 어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조곤조곤 잠자리에서 이야기 건네며

자장노래 부르면 곧 잠든다.

그래서 아이들 재우는 일이란

어려우면서 쉽고

쉬우면서 어렵다.

 

오늘,

두 아이 재우다가

한 가지를 생각한다.

이듬날 아침이든 낮이든 저녁이든

어제 전화를 안 받으신

친할머니나 친할아버지한테

다시 전화를 걸어

큰아이 8월 생일선물로

일찌감치 '트럼펫' 사 주십사 하고

이야기를 하려 한다.

 

트럼펫?

비싼 악기일까?

싼 악기일까?

나는 모른다.

다만, 우리 살림에 허리띠 졸라매고 또 졸라매면

어찌저찌 중고로 살 듯하기도 할 듯한데

만만하지는 않네.

큰아이가 세 살 적부터

삐삐 영화를 보며

삐삐가 트럼펫 보는 모습에 홀려

"아버지, 나 트럼펫 사 주셔요." 하고 말했는데

벌써 세 해째 트럼펫을 못 사준다.

얘야, 트럼펫 값이라고 해 보았자,

새것은 좀 힘들고

중고로는 50~70만 원 사이에서

좋은 것 있는 듯하더라.

 

비싸다면 비싸지만,

안 비싸다면 안 비싼 값이야.

그나저나 네 아버지가 지난 세 해 동안

트럼펫 값 모으지 못해

아직까지 장만해 주지 못했잖니.

 

엊그제에는 <스윙걸스> 영화를 보며

아버지한테 말했지.

"아버지, 나 저거 사 달라고 했잖아요?"

아, 아, 참말 미안하구나.

너는 사 달라고 해서 사 주면,

한때 갖고 놀다가 잊어버리더라도

이내 다시 즐겁게 갖고 놀 뿐 아니라

참말 잘 갖고 놀잖니.

 

아무튼.

네 아버지는 오늘 살림살이로서는

트럼펫 사 주기가 조금 꽤 벅차단다.

그렇다고 너희 친할아버지 살림이 넉넉하지는 않아.

교사로 정년퇴직 하시고서 다달이 받는 연금 있으시지만

그 돈 거의 다 적금으로 부으시잖니.

 

그래도, 아버지는 네 이름을 빌어

슬쩍, 아니 되게 미안하고 쑥스럽고 부끄럽고 싫지만,

네 친할아버지한테 부탁하려고 해.

"아버지, 손녀딸이 트럼펫 불고 싶대요."

한 마디를 하려고.

 

그러나, 네 친할아버지가 전화를 받아야 이 말을 건네겠지.

부디, 오늘밤에 네 친할아버지가 술 안 자시고 잠드셔서

이듬날 아침에는 네 아버지 전화를

네 친할아버지가 받기를 빌어 다오.

 

네 아버지는 참말 네 친할아버지한테 말할 생각이야.

"트럼펫 하나 사 주셔요." 하고.

 

돌이켜보면, 네 아버지가 네 친할아버지한테

무엇 하나 해 달라고 말한 적 한 번도 없는데

오늘, 아니 내일, 참말 처음으로

이 말 한 마디 할 생각이야.

 

되든 안 되든,

안 받아들여 주시든 어찌 되든...

 

아, 아, 팔십만 원... 팔십만 원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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