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6.21.
 : 사진기 놓고 찬찬히

 


- 낮에 마을 빨래터를 청소하면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나서, 작은아이는 낮잠을 재운다. 낮잠 자고 일어난 작은아이는 배가 고프니 밥을 새로 짓는다. 밥을 먹은 아이들은 살짝 졸린 티가 나지만, 이럭저럭 잘 논다. 빨래터에서 물놀이 실컷 했나. 아이들은 다른 놀이보다 물놀이를 하며 기운을 많이 쏟는 듯하다. 그나저나 이 아이들 언제 저녁잠 자려나 모를 노릇이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자전거마실 가기로 한다. 자전거 타고 면소재지 한 바퀴 휘 돌고 돌아오면 차츰 해가 기울 테고, 날이 어두워지면서 조금씩 졸음이 쏟아지겠지.

 

- 아직 해가 걸렸지만 사진기는 집에 놓고 나온다. 오늘은 가벼운 몸으로 가 보자고 생각한다. 동백마을 어귀에서 옆마을인 신기마을 넘어서는 비탈길 있고, 이 비탈길 넘어서자면 으레 자전거 기어를 3*5에서 2*4로 바꾸는데, 오늘은 3*5를 그대로 둔 채 넘는다. 왜 이렇게 가벼울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어제 이 오르막 넘을 적에도 제법 가볍기는 했지만 2*5까지만 바꾸었다고 떠올린다. 아이 둘을 자전거수레와 샛자전거에 태우고 다닌 지 제법 된 터라 다리힘이 차근차근 올랐는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다리힘이 붙고 나면 오르막을 오르막으로 느끼지 않는다. 다리힘이 야무지면 비탈길도 그리 비탈이라고 느끼지 않는다. 다리힘이 아직 여릴 적에는 오르막이 길지 않거나 높지 않아도 ‘오르막은 오르막이네’ 하고 느끼는데, 다리힘이 차츰 붙는 동안 ‘오르막 높이를 덜 가파르게’ 느낀다.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구나.

 

- 맞바람이지만 시원하다. 면소재지로 가는 길에 맞바람이면 좋다. 돌아오는 길에는 등바람 될 테니까.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가 논배미에서 일하는 할매 할배를 마주할 때마다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할머니, 안녕하셔요! 내 치마 예뻐요?” “할아버지, 안녕하셔요! 내 치마 예뻐요?” 큰아이는 워낙 인사를 잘 하기는 하지만, 오늘 입은 치마가 무척 마음에 드는가 보다. 사람들 볼 적마다 큰소리로 부리면서 제 치마를 보아 달라고 한다.

 

- 면소재지에 딱히 볼일은 없다. 그냥 자전거를 타고 나왔다. 가게에 들른다. 아이들더러 과자 하나씩 고르라 한다. 아버지는 어제 면소재지에 나와서 가게에 들를 적에 산 ‘통밀과자’를 다시 골라 본다. 통밀과자도 되게 달기는 하지만, 어쨌든 다른 과자보다는 살짝 낫다. 그런데 큰아이가 딴죽을 건다. “아버지, 그 과자 아까(어제)도 샀잖아요? 먹어 봤잖아요?” “그래? 벼리가 고른 칸츄 과자도 아까(어제) 샀잖아? 먹어 봤잖아?” 벼리가 아무 말을 못 한다. 얘야, 먹고 싶은 과자를 골라서 먹으면 될 뿐이야.

 

- 다시 자전거에 아이들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려 하는데, 마침 가게로 들어오는 면내 초등학교 사내아이 하나 본다. 이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왔기에 눈에 뜨인다. 그런데, 자전거를 보니 기어를 1*7로 두었다. 응? 너 자전거 기어 어떻게 된 줄 아니? 기어를 저렇게 둔 채 자전거를 타면 체인이 바로 망가지고 기어도 엉터리가 된다. 아이를 불러세운다. “얘야, 자전거 기어 어떻게 있는 줄 아니? 네 자전거는 아주 잘못 되었어. 앞과 뒤에 이렇게 톱니가 있잖아. 앞에는 톱니가 크고 뒤에는 작은데, 앞에서 가장 낮은 데(1단)에 체인이 걸렸으면, 뒤에는 가장 큰 데(1단)에 체인이 맞물려야 해. 그래야 수평이 맞아. 그렇지 않고, 이 모습처럼 앞은 가장 낮은 데(1단) 있으면서 뒤는 가장 작은 데(7단)에 있으면 체인은 엉망이 되지. 그렇지만 아이는 말이 없다. 내가 기어를 바꾸어 주고 싶지만, 아이는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간다. 어쩔 수 없을까. 초등학교 어린이한테 자전거를 제대로 가르치거나 알려줄 만한 어른이 없을까. 시골이기 때문에 모르지는 않다. 도시에서도 이와 똑같은 모습을 언제나 본다.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어버이부터 자전거를 제대로 탈 줄 모른다. 학교에서 교사도 자전거를 탈 줄 모른다. 어른들 가운데 자전거를 제대로 탈 줄 아는 사람이 드물고, 기어도 체인도, 아주 조그마한 정비와 손질도, 하다못해 구멍난 타이어 때우는 일도 할 줄 아는 사람 몇이나 있을까. 아니, 집에 자전거 체인 슬지 말라고 닦아 주거나 기름 바르는 어른이 얼마나 있을까. 자전거를 아주 좋아하면서 자전거모임에도 나가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또 자전거여행을 다니거나 산과 들로 자전거로 누비려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주 밑바탕이 될 ‘자전거 다루기’조차 하나도 모르지 싶다.

 

- 집으로 돌아온다. 천천히 달린다. 면소재지 바깥자락 앵두나무에 앵두알 붉게 맺힌다. 아, 소담스럽구나. 이틀이나 사흘쯤 뒤면 아주 맛나게 익겠네. 그때쯤 아이들과 이 앞 지나가면서 몇 알 얻어먹어도 되느냐고 여쭈어 볼까.

 

- 이웃마을 할배들이 큰길에서 무언가를 태운다. 무엇을 태울까. 큰아이는 “아이, 냄새.” 하면서 싫어한다. 그쪽 길로 안 가고, 일부러 다른 논둑길로 돌아서 집으로 달린다. 큰아이는 언제부터인가 냄새를 아주 날카롭게 느낀다. 오늘도 자전거 타고 나오는데, 갑자기 “아이, 누가 뭘 태우나 봐? 뭐야?” 하고 말하기에 두리번두리번 살피는데, 연기 올라오는 모습이 안 보였다. 뭐지, 하고 생각하며 달리다 보니, 거리로 이 킬로미터쯤 떨어진 서호덕마을 끝자락 어딘가에서 아주 가늘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 먼 데에서 무언가 태우는 냄새를 맡은 셈이다. 오늘 낮에도, 빨래터 청소와 물놀이 마치고 집으로 걸어서 돌아오는데, 이웃집 할배가 경운기 몰며 집으로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며 눈코입 모두 가리더라. 이때에도 큰아이는 ‘경운기 달리며 나는 기름 냄새’ 싫다고 하는 몸짓이었다. 큰아이는 군내버스 타기 앞서도 버스에서 나는 휘발유 타는 냄새를 몹시 싫어한다. 군내버스나 시외버스에서 에어컨을 틀었으면 버스에 오르면서 “아유, 냄새!” 하면서 큰소리로 말한다. 사름벼리야, 네가 맞단다. 아버지도 버스 냄새 참 싫단다. 기름 타는 냄새도 싫어하지. 경운기도 짐차도 다 싫어. 그래서 이렇게 시골마을에 들어와서 살잖니. 그런데 우리 이웃들은 모두 자동차를 모는구나. 우리도 읍내를 드나들 적에는 군내버스를 타지. 네가 슬기로운 넋 빛내어 기름 태우지 않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까. 햇볕과 바람과 물을 먹으며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까. 달릴 때마다 싱그러운 냄새가 피어나는 아름다운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까.

 

(최종규 . 2013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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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2 07:48   좋아요 0 | URL
함께살기님 글을 읽다가 문득, 학교에서도 '자전거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만해도 자전거를 어릴 때 잠깐 타고는 안 탔기 때문에 지금 다시
자전거를 타고픈 마음은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자전거 타는 모습 보면 부러운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 앵두나무에 붉은 앵두가 맺혔군요. ~
오늘은 임의진님의 <앵두 익는 마을>,을 꺼내 읽어야겠어요. ^^

파란놀 2013-06-22 08:30   좋아요 0 | URL
일본에서는 '외발자전거'를 초등학교에서 모두 가르쳐요. 일본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자전거 면허증'을 받아야 자전거를 탈 수 있어요. 한국에서는 그저 돈으로 '24단 기어' 자전거를 아이들한테 함부로 사 주고는, 자전거를 어떻게 타라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