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책 28] 새롭게 아름다운 빛

 


 스러지는 모든 것
 머잖아
 새롭게 아름다운 빛 되어요.

 


  옆지기와 나는 아이들한테 늘 이야기해요. 어떤 목숨이든지 죽는다고 하면, 다시 이곳에 아름다운 숨결로 찾아온다고요. 자동차에 치여 죽은 들짐승이나 멧새이건, 겨우내 말라죽은 잠자리나 나비이건, 모두 새로운 숨결로 아름답게 태어난다고 이야기해요. 우리 사람들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해요. 스스로 살려고 하면 살아가는 사람이나, 그만 숨을 거두고 만다면 이 땅에 아름다운 사랑 피어나기를 빌면서 새 숨결 되리라 믿어요. 우리들이 늘 먹는 모든 밥도 이 땅을 푸르게 가꾸던 숨결이에요. 쌀알도, 푸성귀도, 고기 살점도, 모두 목숨입니다. 이 고마운 목숨을 반갑게 맞아들여 내 숨결을 잇고 내 삶을 아낀다고 느끼지요.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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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함께 그린다

 


  세 살 산들보라가 크레파스로 죽죽 금긋기를 하다가 내팽개친 종이 한 장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종이는 이대로 두면 틀림없이 쓰레기처럼 버려지리라. 그렇다고 여섯 살 사름벼리가 이 종이에 그림을 그릴 듯하지는 않다. 깨끗한 종이에 그림을 그리려 할 테지.


  큰아이가 그림 그리는 곁에 ‘작은아이가 죽죽 금을 그은 종이’를 펼치고는 우리 집 후박나무를 그려 본다. 잎사귀를 어떻게 그릴까 생각하다가, 모두 동글동글 하나씩 그려 넣는다. 생각보다 느낌이 좋다 싶어 바지런히 동글동글 잎사귀 넣는다. 큰아이가 묻는다. “아버지, 여기는 왜 다 안 그려?” 음, 그게 다 그린 그림인데?


  후박나무 위쪽을 그린 다음 하늘빛을 입히는데, 노랑나비 네 마리 그리고, 고추잠자리 세 마리 그린다. 노랗게 맑은 해님을 그린다. 작은아이가 크레파스를 쥐더니 해님 둘레를 죽죽 긋는다. 작은아이 딴에는 그림을 함께 그리겠다는 뜻이다. 좋아. 네 마음대로 죽죽 그어 주렴.


  이윽고 후박나무 아래쪽 그릴 때. 무얼 그릴까 하고 1초쯤 생각하다가 나무뿌리를 그리기로 한다. 나무뿌리를 죽죽 잇다가는, 몇 가지 글씨를 넣는다. 맨 먼저 나무. 작은아이가 곁에서 자꾸 ‘나무’라고 말하기에 나무를 적는다. 그러고서 뿌리를 쓴다. 그러고서 잎을 쓰고 꽃을 쓰고 열매를 쓴다. 마지막으로 씨앗을 쓴다. 가만히 생각하니, 나무는 뿌리와 잎과 꽃과 열매에 씨앗, 이렇게 다섯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할 만하네.


  아래쪽 빛깔을 입힌다. 이야, 여러 날 걸려 그림 한 장 다 그렸네. 큰아이도 제 그림을 다 그리고는 아버지 그림을 바라본다. 아까와는 달리 “어, 아버지 그림 잘 그리네.” 하고 말한다. 그래? 그러면 아버지가 그림을 왜 잘 그린다고 생각하니? 알겠니? 아버지는 아버지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니까 잘 그려. 아버지가 언제나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에 담으니까 잘 그린단다. 사름벼리 너도 말이야, 네가 좋아하는 마음속 이야기를 늘 그리니까, 너도 그림을 잘 그리지. 그래서 네 그림을 온 집안에 잘 보이도록 붙인단다. 4346.6.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아빠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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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6-27 08:42   좋아요 0 | URL
그림이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너무 좋습니다.
나무 나비 잠자리 해님 뿌리
땅 위의 푸르름과 땅 아래의 따뜻한 흙 색감이 어우러져 이야기를 하는군요..
이 그림 한 장 벽에 붙여 놓으면 매일 우주와 함께 있는 느낌일 것 같아요. ^^
그림이 무척 탐이 납니다. ㅎㅎ

파란놀 2013-06-27 08:58   좋아요 0 | URL
이번 그림은 나뭇잎 동글동글 하느라 좀 오래 걸렸는데,
아이들과 또 다른 그림을 하나 그리면
선물할게요.

어떤 그림 그리면 좋을는지
3초 생각하니 떠올랐습니다 ^^;;;
 

꽃밥 먹자 11. 2013.6.23.

 


  아침에 밥을 먹자 부르니 인형을 한아름 가져와서 늘어놓는다. 저녁에 밥을 먹자 부르고 보니 밥상에 연필통이 있다. 너희들 밥 먹자는 뜻이니, 그냥 놀겠다는 뜻이니. 밥상을 다 차려서 불렀으면 즐겁게 밥을 먹자. 그러고 나서 마음껏 놀면 되잖니. 인형놀이는 밥 먹은 뒤 하고, 밥상을 책상 삼아 그림놀이 했으면 연필통은 치워 주셔요.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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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글 읽기
2013.6.25. 큰아이―누나와 동생

 


  한창 글씨쓰기를 하다가 글씨를 더는 안 쓰고 그림을 그린다. 얘, 얘, 뭐 하니? “응, 누나하고 산들보라야.” 큼지막하게 그린 아이는 저(사름벼리)고, 조그맣게 그린 아이는 동생(산들보라)이란다. 그래, 네가 동생보다 키나 몸집이 아직 크지. 그나저나 동생한테도 치마를 입히네. 동생은 머리카락 아직 많이 짧은데 동생한테도 긴머리카락 그려 주네. 그렇게 그려야 예쁘니까 그렇게 그렸지?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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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미국에서 옆지기가 전화를 건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듣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는지 잘 모르겠다. 그저 할 말은 앞으로 다다음달까지 즐겁게 지내고 돌아오라는 말뿐. 전화기에 줄을 이어 두 아이한테 하나씩 작은 소리통을 내준다. 아이들은 귀에 소리통을 꽂고는 어머니 목소리를 듣는다. 어머니 목소리 들으니 좋니? 어머니가 먼 데 계시니 이렇게 목소리만 들을 수 있단다. 그런데, 너희가 꿈속에서 어머니를 그리면서 즐겁게 만나 하늘 훨훨 날아다니는 이야기 빚으면, 참말 너희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개운하고 싱그러운 하루 맞이할 수 있지. 찬찬히 기다리자. 두 달은 길면서 짧은 나날이란다. 4346.6.27.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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