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가랑잎

 


단풍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버드나무
온갖 나무들
가으내 붉고 노랗게
빛잔치 벌이면서
헌 잎사귀
살포시
떨구는데,

 

후박나무는
오월 접어들며
새 잎사귀
천천히
열더니,
유월 앞두고
짙붉은 헌 잎
투둑 투둑
내려놓는다.

 


4346.5.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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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읽을 그림책 쓰기

 


  아이들과 하루 내내 집에서 보내는 어머니들은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아주 오랜 예전부터 품었다. 아마, 국민학생 적부터 이런 생각을 품었으리라. 국민학생 때에 ‘남녀평등’이나 ‘남녀차별’ 같은 말을 모르기도 했고, 이런 것 생각해 보지도 않았으나, 우리 집이 큰집이고 명절이며 제사이며 집일이 워낙 많은데다가, 어릴 때부터 나는 사내 아닌 가시내로 태어날 줄 알았다는 말을 숱하게 들은 터라, 마음속으로 ‘사내로 태어났어도 집일 잘 하면 되지’ 하고 생각했다.


  중학교에 들고 고등학교 든 뒤에도, 대학교에 들어가서 다섯 학기를 다니다가 그만두는 동안에도, 신문배달 일을 하다가 출판사에 들어가 여러 해 일을 하는 사이에도, 이오덕 님 글과 책을 만지며 멧골자락에서 살다가, 옆지기 만나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까지, 언제나 이 한 가지 생각 ‘아이들과 하루 내내 집에서 보내는 어머니 마음’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요 한 달 즈음, 옆지기를 멀리 공부길에 보내고 두 아이하고 하루 내내 보내면서 새삼스레 깨닫는다. 어릴 적부터 바라던 일이 나한테 찾아왔고, 나한테 찾아온 이 일은 어떤 이야기 한 자락 들려주려 한다고 느낀다.


  무얼까 무엇일까 생각하며, 지친 몸을 눕혀 하이타니 겐지로 님 동화책 《외톨이 동물원》(비룡소,2003)을 손에 집는다. 이 책을 장만한 지 한 해 훨씬 지났으나 아직 한 쪽도 못 펼쳤다. 읽자 읽자 다짐하며 곁에 두었으나, 읽지 못한 채 한 해 남짓 되니, 마룻바닥을 너저분하게 어지럽히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생각하며 며칠 앞서 마룻바닥을 좀 말끔히 치운다. 치우면서 이 책을 다시 손에 쥐고는, 이제 읽자, 어서 읽고 서재도서관에 갖다 놓자고 생각한다.


  첫 쪽을 넘기고 두 쪽째 읽는데 눈물이 핑 돈다. 첫머리부터 글월 하나하나 더할 나위 없이 따사로운 사랑으로 적바림한 글이로구나 싶다. 누가 이 책을 옮겼는지 앞을 본다. 어쩔 수 없구나.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번역글은 어린이 눈높이하고 안 맞는다. 창작을 하든 번역을 하든 아이들 눈높이를 살피기 어려운가? 아이들 눈높이뿐 아니라, 아이들이 어른한테서 물려받을 사랑스러운 말을 헤아리기 힘든가?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 동화를 썼는지 곱씹다가는, 우리 두 아이한테 읽힐 그림책을 어버이로서 손수 써야겠다고 느낀다. 8절 그림종이에 큼직큼직 정갈하게 글을 쓰고, 옆에 그림을 아이와 함께 그리면서 ‘우리 아이 그림책’을 스스로 엮어서 읽혀야겠다고 느낀다. 인천 화평동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도 당신 다섯 아이를 손수 그림책을 쓰고 그려서 읽히셨다지.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걷는책,2011)를 보면, 얼마나 넓고 깊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마주했는지 환하게 살필 수 있다.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이 환하고 따사로운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러면, 바로 오늘 내가 쓸 글은 아이들과 함께 읽을 글이요, 바로 오늘 내가 그릴 그림은 아이들과 함께 누릴 그림이다.


  즐겁게 살아가고 신나게 놀며 아름답게 꿈꾸는 이야기를 그림책 하나에 담자.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빛나는 말을 영글어 가장 고운 목소리로 읽을 노래를 짓자. 4346.7.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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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5. 2013.7.1.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사이좋게 앉아서 책을 펼친다. 마루문을 거쳐 멧새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어온다. 바람이 불어 후박나무를 흔들고 풀잎을 건드린다. 조용히 흐르는 아침 소리를 들으면서 만화책이건 그림책이건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침햇살이 밝아 마룻바닥에 앉아 시원하게 하루를 연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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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7-06 09:10   좋아요 0 | URL
보라가 들여다보고 있는 저 책은 무엇인가요~?
왠지 재미나 보여서요~
글자를 몰라도 그림만 바라보고 있어도 보라나 저희 마음에도
저마다가 일구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솟아나올 듯 합니다. ^^

파란놀 2013-07-06 11:00   좋아요 0 | URL
<동그란 지구의 하루>라는 그림책이랍니다.

얼마 앞서 이 그림책 느낌글을 띄웠어요.
http://blog.aladin.co.kr/hbooks/6440864 (<- 요기에)

아홉 가지로 다른 삶과 아이들 모습을
한 갈래로 엮어서 빚은 그림책이랍니다~
 

아름답구나 하고 느끼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이 사람은 어떻게 써서 들려줄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하다. 스스로 아름다운 넋 되어 살아왔기에 아름답구나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 품으면서 일하고 놀고 어깨동무하고 웃고 했기에 아름답네 싶은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삶을 빛내기에 글이 빛나고, 글이 빛나기에 이웃들한테 밝은 빛 나누어 준다고 본다. 이야기책 《외톨이 동물원》을 읽는 아이와 어른 모두 가슴속에 밝은 빛을 품고 꿈과 사랑을 한결 새롭게 일굴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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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동물원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허구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3년 1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15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7월 06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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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된 책은 없다

 


  “검증된 책”을 말씀한 분이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먼저 국어사전부터 살핍니다. 한자말 ‘검증(檢證)’은 “검사하여 증명함”을 뜻합니다. ‘검사(檢査)’는 “사실이나 일의 상태 또는 물질의 구성 성분 따위를 조사하여 옳고 그름과 낫고 못함을 판단하는 일”을 뜻하고, ‘증명(證明)’은 “어떤 사항이나 판단 따위에 대하여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서 밝힘”을 뜻합니다. ‘조사(調査)’는 “사물의 내용을 명확히 알기 위하여 자세히 살펴보거나 찾아봄”을 뜻합니다. 곧, ‘검증’이란 “옳고 그름이나 낫고 못함을 살펴보거나 찾아보아서 밝히기”입니다. 그러면, “책을 검증하는” 일은 할 수 있을까요.


  온누리에 “검증된 책”은 없다고 느낍니다. 어느 책도 “검증되지 않”으며, 어떠한 책도 “검증할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어느 책이든 읽는 사람 몫입니다. 어떠한 책도 쓰는 사람 몫입니다. 글을 읽는 사람은 어떤 틀이나 굴레에 얽매여 책을 살필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잣대나 울타리에 갇혀서 책을 쓸 수 없습니다.


  많이 팔린 책이라서 “검증된 책”이 아닙니다. 비평가나 전문가가 칭찬하는 책이라서 “검증된 책”이 아닙니다.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로 이름이 오르면 “검증된 책”일까요? 누가 책을 ‘검증’할 수 있을까요.


  그림이나 사진이나 만화를 ‘검증’할 수 없습니다. 노래나 춤을 ‘검증’할 수 없습니다. 웃음이나 눈물을 ‘검증’할 수 없어요. 꿈과 사랑을 ‘검증’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글 또한 어떠한 틀이나 잣대로도 ‘검증’할 수 없어요.


  책이란,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엮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글과 그림과 사진을 ‘검증’할 수 없는데, 책을 어떻게 ‘검증’하지요? 책에 담는 글과 그림과 사진이란, 우리 삶입니다. 우리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책을 엮습니다. 웃음과 눈물, 꿈과 사랑, 숲과 사람과 하늘과 바다와 햇살 들을 이야기로 갈무리해서 책을 일굽니다. 웃음도 숲도 햇살도 ‘검증’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책을 ‘검증’할까요?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책 읽으면 돼요.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는 삶 일구면 돼요. 누구나 스스로 아름다운 넋 품으면 돼요. 누구나 스스로 착한 일 즐기면 돼요.


  ‘검증’이란 무엇이요, 어떤 사람이 책을 ‘검증’하려 들까요. 책을 ‘검사’하거나 ‘조사’하는 짓을 누가 왜 하려 들까요.


  돌이켜보면, 이 나라에 퍽 오랫동안 “검증된 책”이 나돌았습니다. 이른바 ‘검인정 교과서’와 ‘불온도서’가 책을 ‘검증’하던 짓입니다. “검인정 교과서”는 아이들한테 삶을 얼마나 올바르게 보여줄까요. ‘불온도서’ 도장이 찍힌 책은 왜 우리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라고 여길까요.


  사회나 문화를 ‘검증’할 수 없습니다. 삶을 ‘검증’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검증된 책을 읽는다” 하고 말한다면, 스스로 틀에 갇히거나 울타리에 얽매이겠다는 뜻입니다. 사회권력과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이 책을 틀에 가두거나 짓누르는 짓이 ‘검증’이라고 느낍니다. 책을 틀에 가둔다는 뜻은, 책에 담는 웃음과 꿈과 사랑과 이야기 모두를 틀에 가둔다는 뜻입니다. “검증된 책을 읽는다”는 말은, 권력자가 짓밟는 대로 길들여지거나 끄달린다는 소리가 됩니다. 사람들 스스로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 노예가 된다는 소리가 됩니다.


  책을 ‘검증’하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고, 책을 ‘검증’하려는 정부기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책을 내놓으려 하는데 ‘허가’를 받아야 하거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글을 쓰지 말라는 뜻이 되고, 사람들이 이녁 삶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는 뜻이 됩니다.


  가벼운 말로 “베스트셀러는 검증된 책이니, 베스트셀러를 즐긴다.” 하고 말할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책은 처음부터 어떤 ‘검증’도 있을 수 없어요.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든지, 많은 사랑이 사랑하는 책은 있겠지만, “검증된 책”이란 있을 수 없어요.


  나를 찾아나서는 책읽기요, 내 넋을 살피는 책읽기라 한다면, 내 삶을 살찌우는 책읽기이고, 내 삶길 빛내는 책읽기라 한다면, ‘남들이 검증해 놓은 틀’에 맞추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눈빛을 밝혀 책을 찾아서 읽을 뿐입니다.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마음을 열어 이녁한테 아름다울 책을 살펴서 읽을 뿐입니다. 4346.7.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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