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읽을 그림책 쓰기
아이들과 하루 내내 집에서 보내는 어머니들은 어떤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아주 오랜 예전부터 품었다. 아마, 국민학생 적부터 이런 생각을 품었으리라. 국민학생 때에 ‘남녀평등’이나 ‘남녀차별’ 같은 말을 모르기도 했고, 이런 것 생각해 보지도 않았으나, 우리 집이 큰집이고 명절이며 제사이며 집일이 워낙 많은데다가, 어릴 때부터 나는 사내 아닌 가시내로 태어날 줄 알았다는 말을 숱하게 들은 터라, 마음속으로 ‘사내로 태어났어도 집일 잘 하면 되지’ 하고 생각했다.
중학교에 들고 고등학교 든 뒤에도, 대학교에 들어가서 다섯 학기를 다니다가 그만두는 동안에도, 신문배달 일을 하다가 출판사에 들어가 여러 해 일을 하는 사이에도, 이오덕 님 글과 책을 만지며 멧골자락에서 살다가, 옆지기 만나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까지, 언제나 이 한 가지 생각 ‘아이들과 하루 내내 집에서 보내는 어머니 마음’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요 한 달 즈음, 옆지기를 멀리 공부길에 보내고 두 아이하고 하루 내내 보내면서 새삼스레 깨닫는다. 어릴 적부터 바라던 일이 나한테 찾아왔고, 나한테 찾아온 이 일은 어떤 이야기 한 자락 들려주려 한다고 느낀다.
무얼까 무엇일까 생각하며, 지친 몸을 눕혀 하이타니 겐지로 님 동화책 《외톨이 동물원》(비룡소,2003)을 손에 집는다. 이 책을 장만한 지 한 해 훨씬 지났으나 아직 한 쪽도 못 펼쳤다. 읽자 읽자 다짐하며 곁에 두었으나, 읽지 못한 채 한 해 남짓 되니, 마룻바닥을 너저분하게 어지럽히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생각하며 며칠 앞서 마룻바닥을 좀 말끔히 치운다. 치우면서 이 책을 다시 손에 쥐고는, 이제 읽자, 어서 읽고 서재도서관에 갖다 놓자고 생각한다.
첫 쪽을 넘기고 두 쪽째 읽는데 눈물이 핑 돈다. 첫머리부터 글월 하나하나 더할 나위 없이 따사로운 사랑으로 적바림한 글이로구나 싶다. 누가 이 책을 옮겼는지 앞을 본다. 어쩔 수 없구나.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번역글은 어린이 눈높이하고 안 맞는다. 창작을 하든 번역을 하든 아이들 눈높이를 살피기 어려운가? 아이들 눈높이뿐 아니라, 아이들이 어른한테서 물려받을 사랑스러운 말을 헤아리기 힘든가?
하이타니 겐지로 님이 어떤 마음으로 이 동화를 썼는지 곱씹다가는, 우리 두 아이한테 읽힐 그림책을 어버이로서 손수 써야겠다고 느낀다. 8절 그림종이에 큼직큼직 정갈하게 글을 쓰고, 옆에 그림을 아이와 함께 그리면서 ‘우리 아이 그림책’을 스스로 엮어서 읽혀야겠다고 느낀다. 인천 화평동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도 당신 다섯 아이를 손수 그림책을 쓰고 그려서 읽히셨다지.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걷는책,2011)를 보면, 얼마나 넓고 깊은 사랑으로 아이들을 마주했는지 환하게 살필 수 있다.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이 환하고 따사로운 사랑을 받아먹으며 자라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러면, 바로 오늘 내가 쓸 글은 아이들과 함께 읽을 글이요, 바로 오늘 내가 그릴 그림은 아이들과 함께 누릴 그림이다.
즐겁게 살아가고 신나게 놀며 아름답게 꿈꾸는 이야기를 그림책 하나에 담자. 가장 사랑스럽고 가장 빛나는 말을 영글어 가장 고운 목소리로 읽을 노래를 짓자. 4346.7.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글쓰기 삶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