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된 책은 없다

 


  “검증된 책”을 말씀한 분이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먼저 국어사전부터 살핍니다. 한자말 ‘검증(檢證)’은 “검사하여 증명함”을 뜻합니다. ‘검사(檢査)’는 “사실이나 일의 상태 또는 물질의 구성 성분 따위를 조사하여 옳고 그름과 낫고 못함을 판단하는 일”을 뜻하고, ‘증명(證明)’은 “어떤 사항이나 판단 따위에 대하여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증거를 들어서 밝힘”을 뜻합니다. ‘조사(調査)’는 “사물의 내용을 명확히 알기 위하여 자세히 살펴보거나 찾아봄”을 뜻합니다. 곧, ‘검증’이란 “옳고 그름이나 낫고 못함을 살펴보거나 찾아보아서 밝히기”입니다. 그러면, “책을 검증하는” 일은 할 수 있을까요.


  온누리에 “검증된 책”은 없다고 느낍니다. 어느 책도 “검증되지 않”으며, 어떠한 책도 “검증할 수는 없”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어느 책이든 읽는 사람 몫입니다. 어떠한 책도 쓰는 사람 몫입니다. 글을 읽는 사람은 어떤 틀이나 굴레에 얽매여 책을 살필 수 없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잣대나 울타리에 갇혀서 책을 쓸 수 없습니다.


  많이 팔린 책이라서 “검증된 책”이 아닙니다. 비평가나 전문가가 칭찬하는 책이라서 “검증된 책”이 아닙니다.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로 이름이 오르면 “검증된 책”일까요? 누가 책을 ‘검증’할 수 있을까요.


  그림이나 사진이나 만화를 ‘검증’할 수 없습니다. 노래나 춤을 ‘검증’할 수 없습니다. 웃음이나 눈물을 ‘검증’할 수 없어요. 꿈과 사랑을 ‘검증’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글 또한 어떠한 틀이나 잣대로도 ‘검증’할 수 없어요.


  책이란, 글과 그림과 사진으로 엮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글과 그림과 사진을 ‘검증’할 수 없는데, 책을 어떻게 ‘검증’하지요? 책에 담는 글과 그림과 사진이란, 우리 삶입니다. 우리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어 책을 엮습니다. 웃음과 눈물, 꿈과 사랑, 숲과 사람과 하늘과 바다와 햇살 들을 이야기로 갈무리해서 책을 일굽니다. 웃음도 숲도 햇살도 ‘검증’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책을 ‘검증’할까요?


  누구나 스스로 좋아하는 책 읽으면 돼요. 누구나 스스로 사랑하는 삶 일구면 돼요. 누구나 스스로 아름다운 넋 품으면 돼요. 누구나 스스로 착한 일 즐기면 돼요.


  ‘검증’이란 무엇이요, 어떤 사람이 책을 ‘검증’하려 들까요. 책을 ‘검사’하거나 ‘조사’하는 짓을 누가 왜 하려 들까요.


  돌이켜보면, 이 나라에 퍽 오랫동안 “검증된 책”이 나돌았습니다. 이른바 ‘검인정 교과서’와 ‘불온도서’가 책을 ‘검증’하던 짓입니다. “검인정 교과서”는 아이들한테 삶을 얼마나 올바르게 보여줄까요. ‘불온도서’ 도장이 찍힌 책은 왜 우리들이 읽어서는 안 되는 책이라고 여길까요.


  사회나 문화를 ‘검증’할 수 없습니다. 삶을 ‘검증’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검증된 책을 읽는다” 하고 말한다면, 스스로 틀에 갇히거나 울타리에 얽매이겠다는 뜻입니다. 사회권력과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이 책을 틀에 가두거나 짓누르는 짓이 ‘검증’이라고 느낍니다. 책을 틀에 가둔다는 뜻은, 책에 담는 웃음과 꿈과 사랑과 이야기 모두를 틀에 가둔다는 뜻입니다. “검증된 책을 읽는다”는 말은, 권력자가 짓밟는 대로 길들여지거나 끄달린다는 소리가 됩니다. 사람들 스스로 다람쥐 쳇바퀴를 돌듯 노예가 된다는 소리가 됩니다.


  책을 ‘검증’하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고, 책을 ‘검증’하려는 정부기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책을 내놓으려 하는데 ‘허가’를 받아야 하거나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글을 쓰지 말라는 뜻이 되고, 사람들이 이녁 삶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는 뜻이 됩니다.


  가벼운 말로 “베스트셀러는 검증된 책이니, 베스트셀러를 즐긴다.” 하고 말할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책은 처음부터 어떤 ‘검증’도 있을 수 없어요.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든지, 많은 사랑이 사랑하는 책은 있겠지만, “검증된 책”이란 있을 수 없어요.


  나를 찾아나서는 책읽기요, 내 넋을 살피는 책읽기라 한다면, 내 삶을 살찌우는 책읽기이고, 내 삶길 빛내는 책읽기라 한다면, ‘남들이 검증해 놓은 틀’에 맞추어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눈빛을 밝혀 책을 찾아서 읽을 뿐입니다.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마음을 열어 이녁한테 아름다울 책을 살펴서 읽을 뿐입니다. 4346.7.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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