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손님 (도서관일기 2013.7.10.)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포두면에서 산다는 분이 도서관으로 찾아오겠다 전화를 한다. 군내버스를 타고 동백마을에서 내린 뒤 연락을 한다고 한다. 마당에 옷가지와 이불과 베개를 잔뜩 널고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으로 간다. 장마가 살짝 쉬는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는 땡볕이 후끈후끈 내리쬔다. 이불도 옷가지도 베개도 잘 마른다. 장마비 내리는 동안 집안이 눅눅해지며 이불과 옷가지와 베개에 스미던 물기가 바짝바짝 마르는구나 싶다. 며칠 뒤 또 비가 온다 하니, 햇살내음 듬뿍 받기를 바라면서 이불과 옷가지와 베개를 평상이며 마당에 잔뜩 깔아 놓고 도서관으로 간다.


  햇볕은 따갑고 뜨겁지만, 우리 도서관에 깃들며 창문을 열면 시원하다. 이곳이 폐교 되기 앞서도 이렇게 시원했을까. 폐교가 된 뒤 운동장이며 학교 건물 둘레며 온통 풀밭이 되어 뙤약볕을 한껏 받아들여 주면서 풀바람이 불기에 시원하지는 않을까.


  2011년 가을에 사진책도서관을 고흥으로 옮기면서 여태껏 ‘젊은이’가 우리 도서관에 오겠다고 전화하며 찾아온 적은 오늘이 처음이다. 교사나 어른을 따라 함께 온 젊은이와 푸름이는 있지만, 스스로 씩씩하게 찾아온 사람은 아직 없다. 오늘 손님은 여러모로 반가운 사람이로구나 하고 느낀다. 참 마땅한 일인데,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이 읽을 책이지, 억지로 누군가 끌여들여 손에 책을 쥐도록 할 수 없다. 시골숲이 아름답다 하더라도 스스로 시골로 찾아와 숲에 깃들어야 시골숲이 어떻게 아름다운가 하고 느낀다. 시골바람이 시원하다 하더라도 스스로 시골로 찾아와 바람을 쐬어야 자동차 배기가스로 가득한 도시바람하고 사뭇 다른 달콤한 시골바람 시원한 맛을 느낀다.


  남이 추천하는 책을 읽는다고 해서 내 마음을 살찌우지 못한다. 내 마음이 끌리는 책을 스스로 찾고 살피면서 어떻게 내 마음을 건드리거나 움직이도록 이끄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궁금한 대목은 스스로 찾아서 밝힌다. 아쉬운 대목은 스스로 갈고닦아서 북돋운다. 기쁜 대목은 동무들과 도란도란 책이야기를 펼쳐 나눈다. 아름다운 대목은 마음에 잘 아로새겨 내 삶길에 밑바탕으로 삼는다.


  돌이켜보면, 어느 도서관도 ‘도서관 홍보’를 하지 않는다. “우리 도서관으로 오십쇼!” 하고 홍보하는 데는 없다. 도서관은 늘 그 자리에서 씩씩하게 책터를 가꾸면 된다. 사람들 스스로 말미를 마련하고 생각을 열며 책을 손에 쥐어야 한다. 도서관은 언제나 누구한테나 문을 열어야 할 뿐이고, 사람들이 찾고 싶은 책을 언제라도 내어줄 수 있도록 책시렁 알차게 갖추어야 할 뿐이다.


  반가운 손님을 앞에 두고 책꽂이 자리를 바꾼다. 지난해에 새로 들인 책꽂이에 곰팡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원목 아닌 합판으로 짠 책꽂이는 참말 쓸 것이 못 된다. 아무리 새로 들인 책꽂이라 하더라도 합판으로 댄 책꽂이는 도서관에 두어서는 안 되는구나 싶다.


  나무로 빚은 책을 나무로 짠 책꽂이에 둘 때에 도서관이 된다. 나무로 지은 집에 온갖 나무 알뜰살뜰 가지를 뻗고 푸른 잎사귀 빛낼 때에 보금자리가 된다. 책이란 나무빛이라 하겠구나. 집이란 보금자리숲이라 하겠구나. (ㅎㄲㅅㄱ)

 


* 사진책도서관(서재도서관)을 씩씩하게 잇도록 사랑스러운 손길 보태 주셔요 *
* 도서관 지킴이 되기 : 우체국 012625-02-025891 최종규 *
* 도서관 지킴이 되어 주는 분들은 쪽글로 주소를 알려주셔요 (011.341.7125.) *
* 도서관 나들이 오시려면 먼저 전화하고 찾아와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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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책 36] 한 마디 말

 


  능금씨 심으면 능금나무 자라고
  부추씨 떨어지면 부추풀 돋으니
  씨앗 한 톨 온누리 어루만진다.

 


  어른들이 고운 말 즐겁게 쓰면, 아이들도 고운 말 사랑스레 쓴다고 느껴요. 어른들이 고운 말을 잊거나 즐겁게 주고받는 말빛을 잃으면, 아이들도 고운 말을 잊을 뿐 아니라 서로서로 즐겁게 말빛 주고받는 기쁨을 잊어요. 한 마디 말은 언제나 한 마디 말씨앗이에요. 두 마디 말은 늘 두 마디 말씨앗이고요. 능금씨 한 톨이 뿌리를 내려 우람한 능금나무 되고는 맛난 능금알 베풀듯, 곱게 나누는 말씨 한 마디는 아름다운 말나무 되어 온누리 따사롭게 보듬는 사랑스러운 말빛이 됩니다. 4346.7.13.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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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7-14 18:09   좋아요 0 | URL
장일순님의 <나락 한알속의 우주>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작은 나락 한알 속에서 우주를 보는 것, 씨앗 한톨 에서 온누리를 읽을 수 있는 것 말입니다.
 

골목꽃

 


  골목 한켠에 피어나는 꽃은 사람들 눈에 확 뜨이도록 커다란 송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씨앗은 조그마한 뿌리를 내리고 조그마한 줄기를 올린 뒤 조그마한 잎사귀를 벌려 조그마한 꽃송이 틔웁니다. 풀밭은 아주 조그마한 풀포기가 수없이 얽히고 설켜 이루어집니다. 커다란 풀 몇 있는대서 풀밭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조차 잊은 온갖 풀이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자라기에 풀밭이 되어요.


  그늘진 골목 한켠에 풀이 돋습니다. 햇볕 한 조각 살짝 비출까 말까 싶은 자리에 꽃이 맺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사람들이 지나다닙니다. 누군가는 담배꽁초를 버리고, 누군가는 쓰레기를 버립니다. 그렇지만, 골목꽃은 씩씩하게 피어납니다. 골목꽃은 맑은 빛깔 살그마니 내놓아 커다란 도시 한쪽에 조그맣게 그림을 그립니다. 풀과 벌레와 사람과 흙이 서로 손을 맞잡아 따사로운 보금자리 되는 그림을 조그맣게 그립니다. 4346.7.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골목길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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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빛나는 책시렁

 


  나뭇잎이나 나뭇줄기는 쓰다듬거나 비빈다고 닳지 않는다. 살아서 바람을 마시는 목숨은 닳지 않는다. 사람도 쓰다듬거나 어루만진다고 해서 닳지 않는다. 산 목숨은 닳지 않고 단단해진다. 산 숨결은 닳는 일 없이 한결 곱게 빛난다. 고운 손길 뻗어 쓰다듬을 적에 사랑이 스민다. 맑은 눈빛 드리워 어루만질 때에 이야기가 샘솟는다.


  나무에서 태어난 책은 사람들이 만지고 만질 때마다 조금씩 닳는다. 나이를 먹는 책은 천천히 낡는다. 백 사람도 만 사람도 손으로 만져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천 해 지나고 이천 해 흐르는 사이 종이가 바스라지고 책등이 조금씩 터진다.


  그런데, 낡거나 닳는 책은 껍데기가 낡거나 닳더라도 빛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책은 껍데기나 종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책은 종이에 얹은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읽는 책이지, 종이를 읽거나 껍데기를 읽는 책이 아니다. 사람들은 책이라고 하는 그릇에 담은 이야기를 살피고 헤아리며 즐길 뿐, 껍데기에 붙인 이것저것을 살피거나 헤아리거나 즐기지 않는다. 겉장은 단단한 종이로 새로 붙여도 된다. 속종이는 아예 새로운 종이에 다시 박아서 묶을 수 있다. 그런데, 겉장을 새로 붙이든 속종이를 새로 찍어서 묶든, 속에 얹는 글(이야기)은 한결같다.


  가지 하나 부러지더라도 나무는 나무이다. 잎사귀 모두 떨구어도 나무는 나무이다. 꽃이 새로 필 적에도 나무는 나무이다. 벼락을 맞아 부러지거나, 나무꾼이 도끼로 베어 그루터기만 남아도 나무는 나무이다.


  아이들이 과자 먹던 손가락으로 책에 기름을 묻히더라도 책은 책이다. 빗물이 떨어져 책종이가 일어나도 책은 책이다. 끈으로 질끈 묶인 채 몇 해 동안 책손 손길을 타지 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리더라도 책은 책이다. 많이 팔리는 책도 책이고, 책손 한 사람이 알뜰히 사랑해도 책이다.


  나무가 빛나는 책시렁을 바라본다. 나무에서 태어난 책은 나무를 잘라 마련한 책시렁에 놓이면서 빛난다. 어쩌면, 사람들 숨결도 늘 나무가 아닐까. 나무가 있어 집을 짓고, 불을 피우며, 연장을 마련한다. 나무가 있어 그늘이 있고 푸른 바람이 불며 둘레에 온갖 풀이 자란다. 나무가 있어 새들이 깃들어 노래한다. 나무가 있기에 숲이 우거지면서 냇물이 흐른다. 나무가 있어 구름이 피어나고 무지개가 뜨며 별들이 반짝반짝 빛난다. 4346.7.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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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7만 원 서울 여관

 


  서울에서 볼일 보고 나서 서울에 있는 여관에 아이들과 묵으며 바로 씻기고 재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찾아가는 여관마다 ‘주말’이라 하면서 하루 묵는 삯 7만 원을 달라고 말한다. 올봄에 묵을 적에는 3만5천 원을 받기에, 이만 한 값이면 애써 택시를 타고 일산까지 가서 할머니 댁이나 이모 집에서 묵지 않아도 되겠다고 여겼는데, 여관삯이 꽤 많이 세다.


  갑자기 비가 들이붓는다. 작은아이는 잠들었다. 큰아이도 아주 고단하지만, 씩씩하게 아버지 손을 잡고 졸음과 힘겨움을 참는다. 퍼붓는 빗길을 큰아이 손을 잡고 작은아이를 품에 안는다. 작은아이 안은 팔에 천가방을 둘 꿰었다. 빗물 옴팡 뒤집어쓴 채 이 여관 저 여관 들어가서 값을 묻는데, 어느 집이나 똑같이 7만 원을 부를 뿐 아니라 “주말에는 가족을 안 받는다.”고 말한다. “어디 가든지 다 똑같을 거예요. 일부러 고생하지 마세요.” 하고 ‘자못 친절하게(?)’ 말씀하는 분도 있다. 그러고 보니, 여관골목 이곳을 드나드는 젊은이가 몹시 많다. 그래, 이들이 한두 시간 놀고 나가면서 주말에 이삼만 원 쓰도록 하면 여관골목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겠지. 시골에서 평일이나 주말을 모른 채 살던 우리 식구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판이 된다.


  마지막으로 알아본 여관 처마 밑에 쪼그려앉는다. 작은아이 안고 일산 부름택시로 전화를 건다. 마침 신촌 언저리에 택시 한 대 있단다. 잘 되었구나. 우리 택시 타고 일산 이모 집으로 가자. 퍼붓는 비를 다시 맞으며 택시 있는 곳으로 간다. 아이들은 택시에 타서 자리에 앉자 이내 곯아떨어진다. 비오는 저녁 서울서 일산 가는 택시삯은 19500원. 작은아이는 옷만 갈아입혀 눕힌다. 작은아이는 옷을 갈아입혀도 잠을 안 깬다. 큰아이는 몸을 씻기고 머리까지 감기고 잠옷으로 입히니 스스로 누워 곧바로 잠든다. 4346.7.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책과 헌책방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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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7-14 18:13   좋아요 0 | URL
빗길에 아이 둘 데리고 먼 나들이 잘 다녀오셨는지 안그래도 궁금했습니다.
힘드셨겠지만 보람있는 하루였으면 좋겠어요.

파란놀 2013-07-15 06:35   좋아요 0 | URL
아이들 시골집에서 씩씩하면서 거리낌없이 뛰놀 수 있도록
오늘 잘 돌아가야지요~~~~~

도시에서 이틀 이럭저럭 잘 보냈습니다

카스피 2013-07-14 22:26   좋아요 0 | URL
지방에 다닐적에 여인숙에 잔 기억도 나고 여관에서 잔 기억도 납니다.근데 서울에 아직도 여관이 있나 보군요.대부분 모텔로 바뀐것으로 알고 있는데............

파란놀 2013-07-15 06:35   좋아요 0 | URL
이름만 모텔로 바꾸지
다 여관이에요

appletreeje 2013-07-15 05:46   좋아요 0 | URL
아이쿠...고생이 많으셨네요...
이곳은 여전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파란놀 2013-07-15 06:36   좋아요 0 | URL
네, 아침에 서울에 있는 출판사 들렀다가 기차 타고 돌아갈 텐데,
우리 식구 움직이는 길에는
비가 살짝 멈추기를 마음속으로 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