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82 등산



  “등산 하시나요?” “아닙니다.” “뭐 하시는 분이세요?” “국어사전을 씁니다.” “뭐라고요?” “우리말사전을 쓰는 사람이 나라에 몇 없으니 아마 처음 보실 텐데 국어사전을 쓰기에 어디를 가든 온갖 책을 잔뜩 사서 모든 말을 살피고 수첩에 모든 말을 적어요.” “우리말도 좋은데 사람들이 영어를 너무 많이 써요.” “어느 말이건 스스로 마음을 나타내도록 생각을 지으면 되는데 학교를 오래 다니고 책을 많이 읽을수록 나 아닌 남이 들려주는 틀에 쉽게 갇히니 스스로 무슨 말을 쓰는 줄도 모르지요. 좋거나 나쁜 말이란 없이 그저 오늘 우리 모습을 고스란히 비출 뿐이에요.” 책짐을 이고 지고 안고 다니면, 더구나 민소매 깡똥바지(또는 치마바지) 차림에 80리터 등짐차림인 사람을 쳐다보며 비슷비슷하게 묻기에 비슷비슷하게 얘기합니다. 문득 돌아보니 저처럼 책짐을 짊어지고서 걷거나 버스·전철을 타는 이웃을 못 본 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책사랑벗은 서로서로 못 만나는 셈일는지 모릅니다만 스무 해 앞서만 해도 길에서 이따금 스쳤어요. 누리책집으로 장만하는 이웃이 늘었을 테고, 부릉이 짐칸에 싣는 이웃도 늘었을 테며, 책을 이제는 안 읽는 이웃도 늘었겠지요. 그러나 저는 꿋꿋하게 책사랑길을 갈 생각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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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7.2. 어느 만큼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일손은 어느 만큼 건사할 수 있는가 하고 돌아보면, 하루하루 즐겁게 여밀 만큼 다루는구나 싶습니다. 살림을 돌보고, 일을 하고, 아이들하고 놀고, 온집안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풀꽃나무랑 해바람비를 바라보고, 별빛을 느끼고, 빨래를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책숲을 건사합니다.


  쟁이듯 그러모은 꾸러미랑 책을 차곡차곡 제자리에 놓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책살림은 언제나 곁에서 기다립니다. 기다리고 지켜보고 바라봅니다. 숲노래 씨 손길이며 눈길을 기다리면서 받기도 하지만, 고라니랑 꿩이 둘레에서 지나가면서 노래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책한테 무슨 귀가 있어서 새노래를 듣느냐?”고 나무라는 분이 있을 텐데, 책은 우리 발자국 소리를 느끼고 알아듣습니다. 우리가 손을 뻗어 사그락사그락 한 쪽씩 넘기는 손길을 느끼고 기뻐합니다.


  밥을 먹으며 손에 쥐는 수저도 매한가지예요. 밥그릇이며 솥도 똑같습니다. 모두 우리 손길하고 숨결을 느낍니다. 돌이랑 물한테 숨결이 없다고 여기나요? 풀한테는 눈코귀입이 없고 소랑 돼지랑 닭한테만 눈코귀입이 있다고 여기지는 않나요? 낫으로 슥슥 그을 적에 아파하는 풀은 없지만, 부릉부릉 시끄럽게 울리며 밀어대는 짓에는 모든 풀이 아파서 눈물을 흘립니다.


  말이란, 마음을 담은 소리이자 물결입니다. 말 한 마디에도 숨결이 서립니다. 아무 말이란 없어요. ‘아무’가 아닌 ‘우리 마음’을 담는 말입니다. 말을 아무렇게나 읊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마음을 아무렇게나 팽개쳤다’는 뜻입니다. 말씨 하나로도 마음을 얼마든지 느끼고 읽습니다. 그래서 책이란, 사르르 펼쳐서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훑으면서도 읽지만, 가만히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면서도 읽습니다.


  눈속임을 하는 책은 슬쩍 보거나 만지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을 담은 책도 슬쩍 보거나 만지기만 해도 알 수 있어요. 눈가림을 하는 책은 한 쪽씩 읽으면서도 훤히 느끼고, 사랑을 펴는 책은 한 쪽씩 읽으면서 눈물웃음으로 밝게 느낍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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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181 따라쓰기



  따라하려 들면 누구나 무엇이든 못 하게 마련입니다. 토끼는 토끼처럼 뛰고 달릴 뿐, 거북이처럼 기지 못 합니다. 거북이는 거북이처럼 길 뿐, 토끼처럼 뛰거나 달리지 못 합니다. 거북이가 헤엄치듯 토끼가 헤엄칠 수 있을까요? 둘레 숱한 이웃님은 자꾸만 ‘훌륭한 책(추천도서·권장도서·명작)’을 읽으려 하십니다만, 저는 제발 ‘훌륭한 책’을 읽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훌륭한 책’을 아무리 읽는들 훌륭한 사람으로 깨어나지 않거든요. 훌륭한 사람으로 깨어나는 길은 늘 하나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나를 꾸밈없이 바라보고 사랑할 노릇입니다. 스스로 제 모습을 사랑하지 않기에 얼굴을 꾸미고 옷차림을 꾸밉니다. 말을 꾸미고 글까지 꾸미지요. 그러나 꾸밈은 참낯이 아닌 겉낯입니다. 속임낯이자 가림낯이에요. 따라하지 말아요. 따라읽지 말아요. 따라쓰지 말아요. 아무리 ‘훌륭한 책’이어도 따라쓰기(필사)를 하다가는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잊고, 스스로 사랑하는 하루하고 멀리 떨어집니다. 오직 우리 모습을 꾸밈없이·티없이·가없이 즐겁게 노래하면 어느새 사랑이 피어나고, 우리는 저마다 다르면서 새롭게 ‘아름꽃’으로 나아갑니다. 가볍게 생각해요. 즐겁게 읽어요. ‘훌륭길’ 아닌 ‘우리길’을 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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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6.26. -랑 -하고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마감글 하나를 드디어 매듭을 지어서 보냅니다. 담가 놓은 빨래를 곧 해야겠습니다. 바삐 마칠 일은 했으니, 아침까지 내린 빗물이 고였을 책숲으로 가서 빗물을 치워야지요.


  지난밤하고 새벽에 문득 ‘-랑’이라는 토씨에 ‘-하고’라는 토씨를 새삼스레 돌아보았습니다. 이름씨(명사)나 움직씨(동사)나 그림씨(형용사)만 말밑(어원)을 살피지 않습니다. 토씨에도 말밑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태 우리말 토씨가 어떤 말밑인지 살핀 일은 아예 없다시피 했다고 느껴요.


  토씨 ‘-랑’은 ‘라’가 말밑이고, ‘-하고’는 ‘하다’가 말밑입니다. 이 실마리를 갈무리하고 보니 하루가 훅 지나가더군요. 으레 ‘-랑·-하고’를 입말(구어)에서 쓰고 ‘-과·-와’를 글말(구어)에서 쓴다고 가르지만, 오랜 우리말은 ‘글씨가 없이 말씨만 있’어요. 글하고 말을 갈라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저 말을 마주하고 바라볼 적에 삶을 마주하고 바라볼 수 있어요. 말이랑 삶을 하나로 마주하고 바라볼 수 있으면, 누구나 스스로 사랑에 숲에 살림에 빛을 품고 나누는 실마리를 열 수 있습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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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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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3.6.23. 쓱쓱싹싹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나흘에 걸쳐 내리 책숲손님을 맞이합니다. 이동안 말꽃엮기(사전편집·교정)는 하나도 할 수 없고, 집안에 쌓은 책을 치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태 미룬 책숲은 쓱쓱싹싹 치우고 추스릅니다.


  새삼스럽지만, 벌여놓고서 안 치우거나 안 추스른 살림이 참 많습니다. 다만, 차근차근 하면 됩니다. 서두를 마음은 접고서 하나씩 느슨히 할 노릇입니다. 한자말로는 ‘청소’일 테지만, 어릴 적부터 으레 듣고 쓰던 쉬운 우리말로는 ‘쓱’이나 ‘쓱쓱’이나 ‘싹싹’이나 ‘쓱쓱싹싹’입니다. 설마 싶어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살피니 ‘쓱쓱싹싹’은 올림말로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주아주 옛날부터 으레 쓰는 수수한 살림말이지만, 말꽃지기(국어학자) 눈에 여태 안 걸렸다고 여길 만합니다.


  며칠 동안 쓱쓱싹싹 하고 보니 등허리가 결리지만, 살짝 누우면 얼마든지 곧게 펼 만합니다. 오늘은 빨래를 두 벌 했고, 집일도 추슬렀고, 아직 글일이나 말꽃일은 한참 미루었으나, 느슨히 이따가 하자고 생각합니다.


  다가오는 7월부터 고흥에서 어린이·푸름이·어른하고 ‘노래꽃수다(시창작 + 시골살림 누리기)’를 열다섯걸음으로 폅니다. 고흥살이 열세 해에 걸쳐 고흥에서 고흥 이웃하고 ‘이야기꽃(강의)’을 제대로 펴기로는 이제 두 판째입니다. 시골 어린이·푸름이·어른은 “이 시골에서 뭔 노래꽃수다(시창작 수업)냐 여길는지 모르나, 오히려 시골이기에 더더욱 노래꽃수다를 펴면서, 이 시골빛을 저마다 스스로 노래로 얹는 눈빛과 손빛을 가꿀 일”이라고 봅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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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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