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부 책읽기


 “여보, 이리 와 봐요, 벼리가 책 읽어 주네.” 네 살 첫째 아이가 한 살 둘째 아이한테 책 읽어 주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듣는다. 그렇지만 새 보금자리로 살림집을 옮기고 나서 처음 겪는 ‘동생한테 책 읽어 주는 누나’인 만큼 사진으로 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벽종이 바르느라 바쁜 겨를이지만, 일손을 살짝 내려놓고 들여다본다. 어라, 그런데 그림책을 들고 읽어 주지 않네. 전화번호부를 들고 읽어 주네. 네가 전화번호부가 뭔 줄 아니? 네가 전화번호부 숫자나 깨알글을 읽을 줄 아니? 네 동생이 전화번호부를 펼치면 뭘 볼 수 있겠니?

 첫째랑 둘째 얼굴이 보이도록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첫째 아이가 전화번호부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얼굴을 가린다. 그저 놀자는 품이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어라무어라 종알거리며 책을 읽어 준다. 동생은 누나가 곁에 누워 뭐라뭐라 떠들며 놀아 주니 좋은 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에서 나오는 그림책은 네 살 아이가 들기에 좀 무겁다. 가볍고 값싸며 작게 만드는 한국 그림책은 거의 없다. 시골 작은 군 전화번호부는 네 살 아이가 들기에 퍽 가벼우면서 종이 또한 살랑살랑 잘 집히고 잘 넘어간다. 소꿉놀이 하듯이 책놀이 하는구나. (4344.10.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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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와 다시 책읽기


 우리 집 뿌리를 잃은 채 한 달 남짓 떠돈 끝에 드디어 마련한 새 보금자리에서 이모저모 집 손질을 얼추 마무리짓는다고 느껴 아이가 볼 그림책을 몇 권 장만한다. 아이가 볼 그림책까지 몽땅 짐을 묶었고, 이 짐은 아직 가져오지 못할 뿐 아니라, 바깥으로 떠돌면서 아이가 그림책 하나 느긋하게 펼칠 겨를이 없었다.

 오늘 낮 우체국 일꾼이 소포꾸러미를 갖다 준다. 책이 왔구나. 가위도 아직 없어 드라이버로 소포꾸러미를 끌른다. 아이가 볼 그림책부터 꺼낸다. 아버지가 읽을 책도 몇 권 곁들였다. 아이는 참으로 모처럼 제 집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림책을 넘긴다. 이제 밤나절 다 함께 잠들기 앞서 모두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잠자리에 누울 무렵,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한테 그림책 한두 권 읽어 줄 수 있겠지. 다음주나 다다음주 무렵에 책짐을 옮길 수 있을까. 부엌과 끝방 청소와 벽종이 바르기를 끝낸다면 책짐을 옮길 텐데, 다 끝마치지 못하더라도 먼저 책짐부터 옮기고 나중에 손수레로 살림짐을 나를까 싶기도 하다. (4344.10.28.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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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구멍 책읽기


 군청 농업축산과에서 전화가 온다. 우리보고 ‘귀농·귀촌 빈집 수리비 지원서’를 내라고 이야기한다. 빈집을 장만했다는 등기부등본과 영수증과 사진을 붙여 지원서를 내면 ‘빈집 수리비 도움돈 500만 원’을 준다고 한다.

 참 고맙다. 500만 원을 얻어 이 집을 고칠 수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가.

 어제에 이어 오늘 시골집 전기를 고친다. 전기를 고치는 데에 60만 원이 든다. 오늘은 부엌 자리 기울어지는 샤시문과 대들보 고치는 일을 한다. 얼마가 들는지 아직 모른다. 보일러와 양수기를 가는 데에 50만 원이 들었다. 그제 지붕을 고쳐 물샘을 막는 데에 360만 원이 들었다. 벽종이와 장판을 사는 데에 56만 원이 들었다. 벽종이와 장판은 옆지기 어머님하고 함께 붙이고 깔았다. 헌 싱크대를 치우고 새로 들이느라 65만 원이 들었다. 살림집 곁에 붙은 낡은 집을 헐고 터를 다지는 데에 40만 원이 들었다. 앞으로 어느 곳에 돈이 얼마나 더 들는지 알 길이 없다. 창호지만 발린 방문을 고치는 데에, 또 뭐를 하고 뭐를 하는 데에 살림돈을 얼마나 들여야 할는지 까마득하다.

 예전부터 느끼는데, 시골에서 집을 얻어 살아가려 할 때에도 돈이 참 많이 든다. 그렇다고 도시처럼 전세이니 월세이니 하고 얻어 지내지 못한다. 시골에서는 년세를 내는데, 아기자기하게 잘 꾸미고 살면 으레 집임자가 나가라고 해서 나가야 한다. 집을 사서 오래오래 눌러앉을 생각을 해야 한다. 집을 사고 땅을 사지 않으면 안 되니까 목돈을 마련하고 나서 시골살이를 헤아려야 한다.

 써야 할 데이니 써야 하는 돈이기에, 하루아침에 50만 원이니 300만 원이니 하고 쏙쏙 나간다. 그래, 잘 나가서 이 집이 예쁘게 자리잡도록 해 주어라. 그러고 나서는 우리 새 도서관에 껴안을 좋은 책을 마음껏 장만하는 돈이 되어 주어라. (4344.10.2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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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8 10:22   좋아요 0 | URL
된장님, 이 집인가요?
왜 제가 뿌듯한거죠? 보금자리를 마련하시고, 수리하시는 모습이 넘 기쁩니다.
거기다 500만원 지원이라니, 너무 다행이네요.

꼬옥 수리 다 마치시고 사진 올려주셔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구요 - 저는 오늘도 감기로 제정신이 아니거든요. ㅠㅠ

숲노래 2011-10-28 16:32   좋아요 0 | URL
네, 하루하루 집 돌보느라
눈 빠진답니다 @.@
 


 구르는 아이 책읽기


 첫째 아이는 잘 때에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른다. 이리 구르며 이불에서 벗어나기에 이불을 다시 여미면 어느새 저리 구르며 이불에서 벗어나서 이불을 새로 덮는다. 그러나 이내 이리로 또 굴러 이불에서 벗어나니까 이불을 거듭 여미고, 곧바로 저리 구르니 이불을 또다시 덮는다.

 아이는 어떤 꿈을 꾸면서 이렇게 데굴데굴 구르며 잠을 잘까. 아이는 날마다 어떤 삶을 맞아들이면서 이렇게 몸을 쉴까. 아이는 아주 조그마한 이불조각이면 몸을 덮을 수 있다. 아이는 아주 자그마한 천조각이면 몸을 감쌀 수 있다. 아이는 밥을 조금만 먹으면 되고, 아이는 짐을 조금만 들으면 된다.

 꽤 자주 구르고 또 구르며 자는 아이 곁에서 자는 아버지는 틈틈이 잠을 깬다. 이불을 걷으며 굴러간 아이 때문에 깨고, 아이가 이불을 걷어차며 맨몸으로 잘까 걱정스러워 잠을 깬다. 밤새 데굴데굴 구르는 아이는 누군가 제 몸에 이불을 덮는 줄 느낄까 알까 생각할까 깨달을까. 어버이 된 사람은 아이 곁에서 노상 아이를 느끼면서 따사로이 보살필 몫을 기쁘며 해맑게 맡는구나 싶다.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가 싱그럽다. (4344.10.25.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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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기에 담긴 826장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에서 첫밤을 지냈습니다. 살림집을 옮기느라 석 달 남짓 바깥잠을 자다가 비로소 집잠을 잡니다. 띄엄띄엄 예전 집에서 머물며 쉬기는 했는데, 새 보금자리에 깃들며 이것저것 고치고 손질하느라 짐을 제대로 풀지 못하며 벽종이를 바르고 바닥을 깔고 하면서 식구들이 고단합니다. 이동안 셈틀 자리를 잡을 수 없으니, 보름 남짓 사진기 메모리카드에 사진이 쌓입니다.

 내 사진기는 스스로 목숨을 다했습니다. 지난해에 한 번 크게 고쳤으나 다시금 목숨을 다했습니다. 어찌할 바 모르며 헤매는데 형이 형 사진기를 빌려줍니다. 형 사진기를 고맙게 얻어 쓰면서 형이 쓰던 16기가 메모리카드를 함께 받아서 씁니다. 덩치가 큰 메모리카드를 쓰기 때문에 보름 남짓 셈틀에 사진을 옮기지 못하며 지내면서도 826장에 이르는 사진을 건사합니다.

 골목마실을 하거나 헌책방마실을 하면 하루에도 삼사백 장이나 오륙백 장은 금세 찍습니다. 아무런 마실을 하지 못하면서 보름 남짓 헤매고 떠돌며 조금조금 담은 사진이 826장입니다. 조금조금 담았다지만 하루에 마흔 장은 넘게 찍었네 하고 헤아리다가 살짝 놀랍니다. 그렇구나, 사진을 거의 찍을 수 없이 지내는 하루하루라지만, 용케 이렇게 찍는구나, 아니 이렇게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서 내 마음을 쉬고 내 몸을 다스리는구나.

 새벽녘 까만하늘이 붉은하늘이 되다가 노란하늘로 빛나더니 천천히 파란하늘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홀로 깨어 가만히 바라보다가 사진기를 들어 노란하늘을 두어 장 담습니다. 나중에 아이한테 보여주려고 사진으로 담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으로 보여줄밖에 없고, 나중에는 아이 스스로 붉은하늘 노란하늘 파란하늘 골고루 바라보며 누릴 수 있겠지요. 느긋하게 지낼 집에 따사로이 뿌리내릴 때쯤 메모리카드 사진을 아이들하고 함께 바라보며 우리 식구 힘겨이 보낸 여러 나날을 예쁘게 되새기겠지요.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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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골마을에서 첫밤을 지내셨나요....
항상 좋은 일 가득하고, 건강하시기 빌겠습니다.

숲노래 2011-10-26 05:03   좋아요 0 | URL
반 해 넘게 집 옮기는 일에 시달리면서 몸이며 마음이며
몹시 힘들지만,
이제부터 즐거이 자리잡으며 살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