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다시 책읽기
우리 집 뿌리를 잃은 채 한 달 남짓 떠돈 끝에 드디어 마련한 새 보금자리에서 이모저모 집 손질을 얼추 마무리짓는다고 느껴 아이가 볼 그림책을 몇 권 장만한다. 아이가 볼 그림책까지 몽땅 짐을 묶었고, 이 짐은 아직 가져오지 못할 뿐 아니라, 바깥으로 떠돌면서 아이가 그림책 하나 느긋하게 펼칠 겨를이 없었다.
오늘 낮 우체국 일꾼이 소포꾸러미를 갖다 준다. 책이 왔구나. 가위도 아직 없어 드라이버로 소포꾸러미를 끌른다. 아이가 볼 그림책부터 꺼낸다. 아버지가 읽을 책도 몇 권 곁들였다. 아이는 참으로 모처럼 제 집 방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그림책을 넘긴다. 이제 밤나절 다 함께 잠들기 앞서 모두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잠자리에 누울 무렵,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한테 그림책 한두 권 읽어 줄 수 있겠지. 다음주나 다다음주 무렵에 책짐을 옮길 수 있을까. 부엌과 끝방 청소와 벽종이 바르기를 끝낸다면 책짐을 옮길 텐데, 다 끝마치지 못하더라도 먼저 책짐부터 옮기고 나중에 손수레로 살림짐을 나를까 싶기도 하다. (4344.10.28.쇠.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