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삶
 ― 사진기에 담긴 826장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에서 첫밤을 지냈습니다. 살림집을 옮기느라 석 달 남짓 바깥잠을 자다가 비로소 집잠을 잡니다. 띄엄띄엄 예전 집에서 머물며 쉬기는 했는데, 새 보금자리에 깃들며 이것저것 고치고 손질하느라 짐을 제대로 풀지 못하며 벽종이를 바르고 바닥을 깔고 하면서 식구들이 고단합니다. 이동안 셈틀 자리를 잡을 수 없으니, 보름 남짓 사진기 메모리카드에 사진이 쌓입니다.

 내 사진기는 스스로 목숨을 다했습니다. 지난해에 한 번 크게 고쳤으나 다시금 목숨을 다했습니다. 어찌할 바 모르며 헤매는데 형이 형 사진기를 빌려줍니다. 형 사진기를 고맙게 얻어 쓰면서 형이 쓰던 16기가 메모리카드를 함께 받아서 씁니다. 덩치가 큰 메모리카드를 쓰기 때문에 보름 남짓 셈틀에 사진을 옮기지 못하며 지내면서도 826장에 이르는 사진을 건사합니다.

 골목마실을 하거나 헌책방마실을 하면 하루에도 삼사백 장이나 오륙백 장은 금세 찍습니다. 아무런 마실을 하지 못하면서 보름 남짓 헤매고 떠돌며 조금조금 담은 사진이 826장입니다. 조금조금 담았다지만 하루에 마흔 장은 넘게 찍었네 하고 헤아리다가 살짝 놀랍니다. 그렇구나, 사진을 거의 찍을 수 없이 지내는 하루하루라지만, 용케 이렇게 찍는구나, 아니 이렇게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서 내 마음을 쉬고 내 몸을 다스리는구나.

 새벽녘 까만하늘이 붉은하늘이 되다가 노란하늘로 빛나더니 천천히 파란하늘로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홀로 깨어 가만히 바라보다가 사진기를 들어 노란하늘을 두어 장 담습니다. 나중에 아이한테 보여주려고 사진으로 담습니다.

 처음에는 사진으로 보여줄밖에 없고, 나중에는 아이 스스로 붉은하늘 노란하늘 파란하늘 골고루 바라보며 누릴 수 있겠지요. 느긋하게 지낼 집에 따사로이 뿌리내릴 때쯤 메모리카드 사진을 아이들하고 함께 바라보며 우리 식구 힘겨이 보낸 여러 나날을 예쁘게 되새기겠지요. (4344.10.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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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4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골마을에서 첫밤을 지내셨나요....
항상 좋은 일 가득하고, 건강하시기 빌겠습니다.

숲노래 2011-10-26 05:03   좋아요 0 | URL
반 해 넘게 집 옮기는 일에 시달리면서 몸이며 마음이며
몹시 힘들지만,
이제부터 즐거이 자리잡으며 살아가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