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번호부 책읽기


 “여보, 이리 와 봐요, 벼리가 책 읽어 주네.” 네 살 첫째 아이가 한 살 둘째 아이한테 책 읽어 주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기에 대수롭지 않게 듣는다. 그렇지만 새 보금자리로 살림집을 옮기고 나서 처음 겪는 ‘동생한테 책 읽어 주는 누나’인 만큼 사진으로 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벽종이 바르느라 바쁜 겨를이지만, 일손을 살짝 내려놓고 들여다본다. 어라, 그런데 그림책을 들고 읽어 주지 않네. 전화번호부를 들고 읽어 주네. 네가 전화번호부가 뭔 줄 아니? 네가 전화번호부 숫자나 깨알글을 읽을 줄 아니? 네 동생이 전화번호부를 펼치면 뭘 볼 수 있겠니?

 첫째랑 둘째 얼굴이 보이도록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첫째 아이가 전화번호부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얼굴을 가린다. 그저 놀자는 품이다.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어라무어라 종알거리며 책을 읽어 준다. 동생은 누나가 곁에 누워 뭐라뭐라 떠들며 놀아 주니 좋은 듯하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에서 나오는 그림책은 네 살 아이가 들기에 좀 무겁다. 가볍고 값싸며 작게 만드는 한국 그림책은 거의 없다. 시골 작은 군 전화번호부는 네 살 아이가 들기에 퍽 가벼우면서 종이 또한 살랑살랑 잘 집히고 잘 넘어간다. 소꿉놀이 하듯이 책놀이 하는구나. (4344.10.3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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