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조정권 (2022.10.18.)

― 서울 〈신고서점〉



  서울 인왕산 곁 마을배움터에서 하루를 가꾸는 푸름이를 만나고서 한두 시간쯤 책을 살필 짬이 납니다. 〈신고서점〉을 찾아갑니다. 느긋이 책빛을 머금고서 광화문으로 옮기려 했는데, 책집에 깃든 지 얼마 안 되어 따르릉 울립니다. 늦은낮에 뵙기로 한 분이 벌써 그쪽에 닿았답니다.


  서둘러 자리를 옮겨야 하지만 5분만 스스로 누리기로 하면서 골마루를 살살 거닙니다. 예전에 이미 읽은 책이지만 “이런 겉그림이었나?” 싶어 집어드니 글님이 조정권(1949∼2017) 님한테 드린 손글씨가 있습니다. 노래책 한 자락에 남은 손글씨를 보고서 다른 노래책도 뒤적이니 여럿에 글님 손글씨가 있군요.


  여러 해 앞서 흙으로 돌아간 조정권 님이 지내던 살림집이라든지 일터 한켠에 쌓였다가 내놓았구나 싶습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니 서로 다르게 하루를 살아내고서 이 하루를 다 다른 눈길로 가다듬은 다음 다 다른 손길을 살려서 글을 씁니다. 모든 책은 다르고, 모든 손글씨는 다릅니다. 우리말 ‘손글씨’란 낱말을 쓰는 분이 있지만 영어 ‘캘리그래피’를 쓰는 분이 있는데, ‘이쁜글씨’나 ‘바른글씨’보다 ‘그저 손글씨’를 사랑하는 이웃님이 늘기를 바랍니다.


  잘 쓴 글씨를 따라해야 하지 않아요. 훌륭하다고 여길 만한 글을 베껴쓰기(필사)해야 하지 않아요. 잘 쓴 글씨이건 훌륭한 글이건, 그저 ‘읽고서 새긴 다음 우리 나름대로 삭인 새글씨에 새글로 풀어낼’ 적에 서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말 ‘베끼다·배우다’는 비슷하되 다릅니다. 둘 모두 지켜보고서 따라가는 몸짓을 그리지만, ‘베낄’ 적에는 그냥 머물거나 맴도는 결이요, ‘배울’ 적에는 삭이고 가다듬어 우리 손길이나 몸짓을 살리는 결입니다.


  풀을 죽이려고 뿌리기에 죽임물입니다. 죽임물을 뿌려서 살아날 풀은 없습니다. 이 풀죽임물은 풀뿐 아니라 땅을 죽이고, 땅밑으로 스며들면 냇물이며 샘물까지 죽이고, 나중에는 갯벌하고 바다까지 죽입니다. 이와 달리, 바다에서 피어난 구름이 빗물로 바뀌어 내릴 적에는 들숲을 모두 살리고 먼지를 말끔히 씻어 줍니다. 빗물 바닷물은 살림물입니다.


  풀(잡초)이 보기 싫다면서 죽임물(농약)을 뿌리면 얼핏 반듯하거나 가지런해 보일 테지만, 숨결이 사라집니다. 베껴쓰기(필사)나 예쁜글씨(캘리그래피)는 ‘다 다른 숨결을 죽이려는 농약’이지 싶어요. 어깨동무나 살림짓기로 가기를 바랍니다. 자랑글이 아닌 살림글로 수수하면서 투박하게 오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빕니다.


ㅅㄴㄹ


《샘그림문고 1 김영숙 만화작법》(김영숙, 샘, 1988.5.15.)

《햄버거에 대한 명상》(장정일, 민음사, 1987.3.30.)

《진흙소를 타고》(최승호, 민음사, 1987.4.15.)

《이 강산 녹음 방초》(박종해, 민음사, 1992.3.30.)

《내 무거운 책가방》(교육출판 기획실 엮음, 실천문학사, 1987.4.20.첫/1988.8.30.재판)

《풀빛판화시선 5 노동의 새벽》(박노해, 풀빛, 1984.9.25.)

《먼 바다》(박용래, 창작과비평사, 1984.11.5.첫/1988.7.5.재판)

《白衣從軍》(김성영, 횃불사, 1979.4.15.)

《三中堂文庫 356 뻐꾸기 둥지위를 날아간 사나이 (下)》(켄키지/김진욱 옮김, 삼중당, 1977.9.10.첫/1977.12.20.중판)

《한권의책 21 백범 일지》(김구, 학원사, 1986.7.1.첫/1990.10.31.8벌)

《성남지역실태와 노동운동》(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엮음, 민중사, 1986.7.10.)

《왜 그리스도인인가》(한스 큉/정한교 옮김, 분도출판사, 1982.2.22.첫/1983.4.20.재판)

《한국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장주근 글·이인실 그림, 대한기독교서회, 1974.11.30.

《통일교실》(민성일, 돌베개, 1991.8.1.)

《丸 MARU 8月特大號 421호》(高野 弘 엮음, 潮書房, 1981.8.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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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2022.7.26.)

― 인천 〈나비날다〉



  나부터 날마다 즐겁게 배울 수 있기에, 날마다 새롭게 글 몇 줄 적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나부터 날마다 즐겁게 배울 수 없다면, 날마다 새롭게 글쓰기를 못 할 뿐 아니라, 밥짓기에 옷짓기에 집짓기도 못 하고, 그저 다른 사람 글을 베끼거나 훔칠 뿐이요, 밥옷집도 사다가 쓰는 길이지 싶습니다.


  한자말 ‘필사’는 우리말로 ‘베껴쓰기’입니다. 베끼기는 나쁘지 않되, 베끼다 보면 ‘배움’이 아닌 ‘그대로 따라하기’에 젖어듭니다. 훔침쟁이(표절작가)는 어려서부터 베껴쓰기를 익히 하던 이들입니다. 훌륭하다고 여길 만한 글이 있더라도 ‘베껴쓰기(필사)’가 아닌 ‘배워쓰기(자기 것으로 소화)’를 할 노릇이에요. 훌륭하다고 여기는 글을 읽으면서 느낀 ‘내 삶’을 내 말씨에 마음씨에 글씨에 솜씨로 적어야 비로소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글을 쓰면 됩니다. 글쓰기 길잡이책(이론서·지도서)은 안 읽어야지요. 읽겠다면 글을 읽고, 읽으려면 삶을 읽을 일입니다. 마음을 읽고 해바람비를 읽고, 아이 눈망울을 읽고, 풀꽃나무를 읽고, 풀벌레하고 새를 읽으면 누구나 글빛이 영글어 알뜰살뜰 글님으로 설 만합니다.


  글을 왜 못 쓰느냐 하면, 자꾸 베끼기 때문입니다. 남 눈치를 보니까 글을 못 씁니다. 잘 쓰려 하니까 글이 망가집니다. 널리 팔리기를 바라니 글뿐 아니라 마음이 무너집니다. 글이나 책이 좀 팔리니 콧대가 높아 어느새 마음이 시들어요.


  가랑비를 온몸으로 맞아 보아야 가랑비를 느끼고 배우고 알아서 가랑비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함박비를 온몸으로 누리고 비놀이를 해보아야 함박비를 느끼고 배우고 알아서 함박비 이야기를 씁니다. 사랑이 아닌 사랑타령이 넘치는 글밭입니다. 사랑을 해본 적이 없고, 사랑을 생각하지 않으니, 짝짓기놀음을 하면서 ‘짝짓기’가 마치 ‘사랑’인 줄 잘못 알면서 글만들기(창작)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작’은 안 해야 글쓰기를 이룹니다. ‘비평’도 안 해야 글쓰기를 누려요. 삶짓기를 하면 글은 저절로 태어납니다. 살림짓기를 하면 눈을 저절로 뜹니다. 사랑짓기를 나부터 하기에 ‘창작과 비평’이 아닌 ‘삶·살림·사랑짓기’를 바탕으로 글살림을 스스로 북돋웁니다.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에 느즈막히 깃듭니다. 배다리 마을책집에서 오늘 저녁에 ‘우리말 참뜻풀이 이야기꽃’을 신나게 폈습니다. 말 한 마디에 서린 살림길을 헤아리면서 누구나 말꽃지기로 서는 새빛을 한바탕 펴느라 기운을 다 썼습니다.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책 한 자락을 쥡니다. 오늘밤 읽을 책입니다.


ㅅㄴㄹ


《버티고 있습니다》(신현훈 글, 책과이음, 2022.3.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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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아리는 (2022.7.20.)

― 안양 〈뜻밖의 여행〉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버스길을 살핍니다. 서울서 고흥 가는 버스는 빈자리가 없습니다. 놀이철인 듯싶습니다. 고흥·안산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하루 하나 있는데, 빈자리가 많군요. 안양을 들러 〈뜻밖의 여행〉에 책마실을 갈 수 있겠습니다.


  여름날 길바닥은 후끈하고 버스나 전철은 서늘합니다. 나무 곁에 서면 시원하지만, 집안에 바람이(에어컨)를 들이는 집이 늘어날 뿐, 마당을 놓고 나무를 심으려는 이웃을 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잿집(아파트)하고 부릉이(자가용)를 치우면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도 ‘나무 심고 마당 거느리는 집’을 장만할 만해요. 고작 서른·마흔 해조차 버티기 힘든 잿집이 아닌, 두고두고 뿌리내릴 살림집을 헤아리는 마음이 하나둘 늘어야 비로소 이 나라를 뒤엎으리라 생각합니다.


  범계나루에서 내려 걸으려는데, 나오는곳에 따라 나왔으나 아리송합니다. 이 나라 어디나 매한가지인데, 길알림판은 뚜벅이 아닌 부릉이한테 맞추더군요. 어린이는 어쩌라고 이 따위일까요? 이웃손님(외국여행자)도 이 나라 길알림판에 고개를 절레절레할 만합니다. 그러나 나라지기·벼슬꾼·글바치는 으레 안 걷습니다. 걷지 않는 이들은 길알림판을 엉터리로 세우고, 거님길을 허술하게 깔아요.


  책집 〈뜻밖의 여행〉을 드디어 찾아내어 골목으로 들어서려는데 늙수그레 아저씨가 “남자가 치마를 입네? 남자가 왜 치마를 입어?” 하면서 떠듭니다. “여보셔요, 늙은씨, 남을 구경하지 말고 이녁 넋을 보셔요. 이녁 스스로 넋을 바라보지 않으면 이녁은 늙어죽음이라는 길을 누구보다 빠르게 치달립니다. 딱한 분아.”


  책집 둘레는 쉼터이고, 크고작은 새가 내려앉아 노래합니다. 책집 앞은 큰길이고 허벌나게 시끄럽습니다. 책집은 쉼터하고 큰길 사이에서 우리가 스스로 아로새길 ‘새소리’를 들려주는 징검다리입니다. 어떤 새를 보려나요? 북새판을 보려나요, 멧새노래를 보려나요?


  새를 새로 바라보지 못 하는 까닭이라면 ‘교육’과 ‘학습’ 탓이 크고, 무엇보다 글바치(작가·편집자·출판사)가 99.9퍼센트 서울에 사는 탓입니다만, 글을 읽든 안 읽든 우리부터 스스로 시골사람으로 안 사는 탓이 훨씬 크지 싶습니다. 서울사람으로만 있기에 ‘도시 중심 + 인간 중심 사고방식’으로 줄거리가 기울어요.


  널찍한 자리맡에 앉아서 노래꽃 ‘삶길’을 적습니다. 삶이라는 길이 무엇일까 하고 헤아리니 글줄이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다시 범계나루로 걸어가고 안산버스나루로 갑니다. 걸으면서 풀밭을 바라봅니다. 달걀꽃에 은행싹에 소리쟁이·씀바귀를 마주할 적마다 멈춥니다. 살살 쓰다듬고서 다시 걷습니다.


ㅅㄴㄹ


《꼬마 안데르센의 사전》(공살루 M.타바리스 글·마달레나 마토주 그림/도동준 옮김, 로그프레스, 2019.6.20.)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가야 여행》(황윤, 책읽는고양이, 2021.4.20.)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한스 에르하르트 레싱/장혜경 옮김, 아날로그, 2019.7.5.)

《책숲마실》(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20.9.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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녘 (2022.7.19.)

― 서울 〈조은이책〉



  한밤이라 여길 두 시 무렵부터 하루를 여는 살림을 1995년부터 꾸렸어요. 동틀녘이면 하루를 연 지 꽤 지난 뒤입니다. 아침에는 가볍게 눈을 붙입니다. “밤에 자야지, 왜 아침에 자느냐?”고 핀잔하는 이웃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숨빛을 누리자면 01∼03시 사이에 일어나서 한나절쯤 일한 뒤에 가볍게 쉬고, 차츰 해가 솟을 무렵 다시 한나절을 일하고서 낮밥을 차리고서 푹 쉬면 즐겁더군요. 이런 다음 해질녘까지 느긋이 보금자리를 돌보다가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기까지 오늘을 되새기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면 넉넉해요.


  이런 하루살림을 얘기하면 “누가 그렇게 살 수 있나요? 어느 일터가 새벽에 열어요? 그런 하루를 보내려면 배움터는 어떻게 다녀요?” 하고 따지는 분이 많아요. 이때에 늘 “일터이든 배움터이든 다니고 싶으시면 다니셔요. 그런데 죽는 날까지 일터나 배움터만 다니지는 않겠지요? 꽃마무리(정년퇴직)를 하고서 기나긴 뒷삶은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요? 돈을 벌고 싶으면 돈을 벌되, 사람답게 살고 싶은 이웃님한테 사람답게 사는 길을 밝힐 뿐입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아침 일찍 부천에서 전철을 타고서 연천으로 다녀왔습니다. 같은 경기도여도 하늬녘하고 높녘은 참으로 머나먼 길입니다. 이튿날 고흥으로 돌아가자면 오늘은 서울에서 묵어야 합니다. 길손집에 가기 앞서 〈조은이책〉을 찾아갑니다. 마침 책모임이 있다기에 늦게까지 엽니다. 책시렁을 천천히 돌아보며 다리를 쉽니다.


  어제 장만한 책을 미처 시골로 못 부쳐서 하룻내 안고 지며 다녔습니다. 저물녘에 새로 들른 마을책집에서도 책을 여럿 얹느라 등짐하고 손짐은 한결 묵직합니다. 어둑살이 내린 서울은 번쩍거립니다. 안골에 깃든 책집은 호젓하되, 버스를 타러 나오니 눈이 따갑습니다. 별빛을 품는 시골내기한테 서울버스 불빛은 괴롭습니다.


  시끌벅적한 서울버스에 앉아 고요히 눈을 감습니다. 하늘빛으로 온몸에 거미줄을 그려 봅니다. 저녁빛을 잊은 서울이더라도 마음으로 그리면 별자리를 새길 만하다고 느낍니다. 종로3가에서 버스를 내렸고, 책짐을 그득 안고서 길손집을 찾아 걸어갑니다.


  모든 글은 말을 담습니다. 모든 말은 삶을 담아요. 모든 삶은 마음을 담고, 모든 마음은 생각을 담고, 모든 생각은 넋을 담지요. 이 넋이 빛나는 씨앗으로 나아가도록 말결을 북돋우면, 저마다 하루를 즐거이 그리며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어버이로서 어디에서나 새넋이며 새살림을 짓는 길을 걷고, 무엇을 하든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이 길을 가꾸는 숨결을 다독입니다.


ㅅㄴㄹ


《그냥 내 마음을 들어주세요》(아동문학스테이지 참가자 38사람, 조은이책, 2022.5.31.)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표재명 글, 박정원 엮음, 드림디자인, 2021.11.17.)

《그림 속 나의 마을》(다시마 세이조/황진희 옮김, 책담, 2022.6.15.)

《かいじゆうトゲトゲとミルクちゃん》(かどのえいこ 글·にしまきかゃこ 그림, ポプラ社, 200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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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캐기 (2022.10.24.)

― 서울 〈서울책보고〉



  서울 내방나루 곁 마을책집 〈메종인디아〉를 들르고서 방배나루로 걸어가서 〈서울책보고〉로 찾아갑니다. 시월이 무르익어도 낮에는 꽤 덥다고 할 만합니다. 아침저녁뿐 아니라 낮에도 서울은 어디나 북적입니다. 느긋이 걸으면 곳곳에서 밀치면서 앞지르는 물결에 휩쓸립니다. 걷다가 멈출 수 없고, 문득 쪼그려앉아 길꽃을 들여다볼 틈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많고 빨리 흐르는 서울인데, 틈이며 말미만큼은 모자란 서울입니다. 들꽃이 자랄 틈새나 나무가 오를 자리도 모자란 서울입니다. 숲이 퍼질 곳이 모자라고, 누구나 느긋이 드러누워 구름을 바라볼 풀밭이 모자란 서울이에요.


  모든 하루는 사랑스러우면서 고마이 흐르는 햇빛이요 별빛일 텐데, 바쁘게 밀치고 밟고 앞지르려 할 적에도 이 하루를 느낄 수 있을까요. 날마다 새롭게 퍼지는 빛살을 얼마나 품을 만한가요. 땅밑으로도 줄잇는 가게는 해바람비를 모르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땅거죽에 높이 솟은 집채에 가득한 가게도 한낮에 불을 밝히면서 햇볕을 멀리합니다.


  큰가게는 일부러 미닫이를 가리고 때바늘(시계)을 치운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서울은 통째로 해바람비를 가리고 철빛을 막으면서 우리 눈코귀입을 길들인다고 느껴요. 날마다 새롭게 뜨는 해를 못 보고 못 느낀다면, 어떤 어른이 될까요? 날마다 새롭게 돋는 별을 안 보고 안 찾는다면, 어떤 아이가 될까요?


  모든 안타까운 일을 파헤치면, 뿌리는 배움수렁(입시지옥)에도 가닿고, 서울바라기(도시화)에 가닿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인천-서울 전철길’은 오래도록 불수레(지옥철)란 이름이에요. ‘인천-서울 전철길’에 찡기는 사람들은 아주 좁다란 곳에 사람이 사람이 아닌 짐짝으로 짓눌리고 뒹굴어요. 왜 인천·부천 사람들은 서울로 돈을 벌러 가야 할까요? 왜 시골 아이들은 제 텃마을(고향)에 머물면 못난놈이란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나요?


  오늘날 ‘인구감소 + 지역소멸’이란 이름을 붙이는 골칫거리는 아무리 큰돈을 들여도 못 풀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부터 바꾸어 우리 삶을 먼저 바꾸기’는 안 하는 채 어느 하나도 이룰 수 없으니까요. 싸움(군대와 전쟁무기)으로는 아름길(평화)을 누리지 못하지만, 싸움판이 없더라도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과 삶’이 아니라면 아름길은 이곳에 없을 수밖에 없어요. 나무가 자라려면 뿌리를 뻗어야 하고, 말썽을 씻으려면 말썽거리를 뿌리뽑을 노릇입니다.


ㅅㄴㄹ


《청년과 징병문제》(고영훈, 총리원 교육국 청년부, 1957.9.15.)

《하천풍언 선생 강연집》(하천풍언/장시화 옮김, 경천애인사, 1939.4.20.첫/1960.4.14.재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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