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자장노래


 새벽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안 자려는 아이를 바라봅니다. 누구보다 아이 몸이 힘들 텐데 걱정스럽습니다. 아이가 낮잠을 한두 시간 새근새근 잔다면 한결 즐겁고 신나게 놀 텐데, 좀처럼 낮잠을 안 자려 합니다.

 해가 길어진 이른여름, 아이를 불러 자전거마실을 하자고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좋아서 뜁니다. 마실을 가는 길에 아이는 노래노래 부릅니다. 마실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는 꾸벅꾸벅 좁니다. 집에 거의 다 올 무렵 비로소 고개가 폭 꺾입니다. 이대로 집으로 들어갔다가는 다시 잠이 깰까 싶습니다. 자전거머리를 돌립니다. 마을을 조금 돌아보기로 합니다. 멧자락에 깃든 우리 집 둘레에는 아직 모내기가 멀었으나, 멧자락 아랫녘인 마을은 벌써 모내기를 마쳤습니다. 갓 모를 심은 논둑을 자전거로 달립니다. 아이는 살랑이는 바람을 맞아들입니다. 살랑이는 바람은 논자락 어린 모를 살살 건드립니다. 멧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빼고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조용한 논둑을 한창 달리다 보니 수레에 탄 아이가 옆으로 폭삭 쓰러집니다. 수레 한쪽에 머리를 기대어 잠듭니다.

 이제 아버지는 자전거를 더 천천히 달립니다. 수레가 덜 흔들리도록 천천히 자전거를 몰아 집으로 돌아옵니다. 마당에 자전거를 세웁니다. 아이 신을 벗깁니다. 안전띠를 풀고 영차 하고 아이를 안습니다. 갓난쟁이 둘째가 잠든 곁에 첫째를 눕힙니다. 첫째는 새벽 한 시 반까지 내처 곯아떨어집니다. 이러다가 새벽 한 시 반부터 새벽 다섯 시 이십오 분까지 잠들지 않고 놉니다. 이거야 원, 낮잠을 재우려고 자전거마실을 했다가, 아버지는 낮잠도 밤잠도 못 자며 눈자위가 벌겋습니다. (4344.6.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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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61 : 좋아서 읽는 책


 좋아서 읽는 책입니다. 좋아서 기쁘게 장만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예쁘게 선물하는 책입니다. 좋아서 내 삶으로 담고픈 책입니다. 좋아서 날마다 다시 들추는 책입니다. 좋아서 언제나 곁에 두면서 되새기는 책입니다.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좋아서 곱게 살림을 꾸립니다. 좋아서 나무를 아끼고 좋아서 꽃과 풀을 보듬습니다. 좋아서 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좋아서 파란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좋아서 누런 빛깔 흙을 맨발로 밟으며 보송보송한 기운을 살며시 받아들입니다. 좋아서 나비 날갯짓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만화책 《누나는 짱!》(와타나베 타에코 그림,학산문화사 펴냄)은 일본에서 1990년대 첫머리에 나왔고, 한국에서는 1999∼2000년에 옮겨집니다. 4권 87쪽을 보면, 다섯 쌍둥이가 툭탁툭탁 얽히다가는  “타쿠미도, 나오토도, 똑같지 않으니까 둘이 있는 거잖아?” 하는 이야기가 톡 튀어나옵니다. 쌍둥이라 으레 똑같이 생겼다고 여기지만, 똑같이 생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똑같은 삶이 아니요 똑같은 넋이 아니에요. 둘은 많이 닮았다 할 만하지만 ‘많이 닮았’을 뿐, ‘서로 다른’ 예쁜 목숨이에요.

 《누나는 짱!》 12권을 펼치면 100쪽에 “설령, 그래도 못 쉬어. 나를 대신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니까.”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만화책은 연예기획사에 몸담아 손꼽히는 가수나 연예인으로 뛰는 젊거나 어린 사람들이 나오는데, 고작 스물 안팎밖에 안 된 어린 사람들이 삶과 사랑과 사람을 꿰뚫는 눈이 참으로 남다릅니다. 아니, 남다르다기보다 ‘널리 사랑받는 손꼽히는 연예인’이기에 앞서 ‘나는 이 지구별에 내 어버이한테서 오직 하나뿐인 사랑을 받아 태어난 꼭 하나뿐인 예쁜 목숨’인 줄을 뼛속 깊이 알뜰히 아로새겨요.

 모두 열다섯 권에 이르는 만화책 《누나는 짱!》을 둘째 아이 똥기저귀를 빠는 틈틈이 읽습니다. 둘째가 우리 집으로 찾아온 지 꼭 이레가 되는 오늘까지, 이 아이는 날마다 똥기저귀를 마흔 장, 오줌기저귀를 두 장 즈음 내놓습니다. 몸이 아픈 옆지기는 집일을 하나도 못하기에 첫째 때하고 똑같이 둘째 때에도 기저귀 빨래나 집일을 아버지가 도맡습니다. 둘째 똥기저귀를 빨면서 ‘그래, 첫째 때에도 똥기저귀를 세이레까지 마흔 장 남짓 늘 빨았잖아?’ 하고 떠올립니다. 그때 어떻게 이런 빨래를 했나 나도 참 대단하구나 하고 생각하며 둘째 똥기저귀를 빱니다. 둘째 기저귀를 빨며 첫째한테 얘기합니다. ‘네가 아기였을 때에도 이렇게 했어. 네가 아기였을 때에는 둘째 때보다 훨씬 오래 안고 달래며 놀아 주었어.’ 그러나 첫째는 저한테 더 사랑을 쏟아 달라며 엉겨붙거나 달라붙습니다. 아이니까, 아직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라 할 테니까, 오래오래 더 깊이 사랑받고 싶으니까, 아이는 더 촐싹대고 더 방정맞게 굴겠지요.

 그러니까, 아이는 좋아서 엉겨붙습니다. 좋아서 떼를 씁니다. 좋아서 조잘조잘 떠들거나 노래를 부릅니다. 어버이는 좋아서 아이를 업고 안으며 토닥입니다. 좋기에 힘겹거나 바쁜 틈을 쪼개어 책을 읽습니다.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품에 살며시 안은 채 책을 읽습니다. (4344.5.3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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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책


 청바지를 빨고 이불을 빨아야 한대서 빨래기계를 들인다고 한다. 그러나 손으로 빨면, 보람과 땀과 값이 있다.

 식구가 늘고 아이가 여럿 있어 자가용이 있어야 한단다. 맞다. 그러나 여러 아이와 큰식구가 버스나 기차로 오가다 보면, 보람과 땀과 값이 있다.

 내 옷, 옆지기 옷, 아이 옷을 손으로 빨래한다. 이불을 빨래하고 청바지를 빨래한다. 이불 한 채를 빨면 기운이 폭 빠진다. 청바지 한 켤레를 빨면 손목이 저릿저릿하다. 물을 듬뻑 머금은 이불을 낑낑 들고 빨래줄에 널어 물짜기를 하면 등허리가 결린다. 청바지를 탕탕 털어 물방울이 흩날리면 눈을 질끈 감아야 한다.

 아기수레도 싣고, 기저귀도 실으며, 젖병도 싣고, 이렁저렁 옷가지를 챙겨 실어야 하니까 자가용이 있어야 한단다. 여러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 이리 뛰고 저리 달리니까 고단해서 자가용에 몰아넣으면 한숨을 덜면서 골 아픈 일이 적단다. 책방마실이라도 해서 책을 잔뜩 장만한다면 낑낑 끙끙 들고 오기 힘들지만, 자가용에 실으면 거뜬하단다.

 차츰 더운 날이 된다. 찬물로 북북 비비고 밟으며 이불을 빨아서 넌다. 빨래를 하면서 땀을 흘리지 않는다. 헹굼물로 쓰기 앞서 낯을 씻고 팔다리에 끼얹는다. 몸씻이를 하며 이불을 빨래한다. 해바라기 하는 마당에 이불을 널면서 눈을 살짝 찡그린다. 이불과 기저귀에 비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한참 마실하다 보면 어느덧 다리가 아프다며 안아 달라는 아이를 덥석 안는다. 장마당에서 여러 먹을거리를 장만하느라 가방이 꽤 무겁다. 뒤로는 가방이, 앞으로는 아이가 무게를 서로 버틴다. 첫째는 아기수레 없는 채 즐거이 네 살 어린이로 자랐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고, 씩씩한 몸뚱이가 있기에, 첫째는 제 다리로 이 땅을 당차게 박차며 함께 뛰논다.

 몸이 고단하니 이것저것 생각하기 어렵다. 이것저것 생각하기 어려우니 책 한 권 펼치기 만만하지 않다. 어버이부터 책읽기를 제대로 못하니까 아이한테 책읽기를 하라고 이르지 못한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버이가 쉴새없이 하는 일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는 이 심부름을 하고 저 일을 거든다. 나는 아이한테 집살림이나 집일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 그저 우리 집 살림과 일을 바삐 하는 모습을 아이한테 보여줄 뿐이다. 꽃이나 풀이나 나무한테 어떤 이름이 붙는지 낱낱이 알지 못할 뿐더러, 낱낱이 알아볼 겨를이 없다. 이러다 보니 아이한테 늘 “벼리야, 꽃이나 풀이나 나무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도 이 꽃이나 풀이나 나무가 예쁜 줄 느끼면 돼. 고마운 꽃이고 어여쁜 풀이며 사랑스러운 나무야.” 하고 말한다. 멧자락에서 날마다 듣는 수많은 멧새 소리를 하나하나 가누지 못하지만, “우리 집 둘레에 새가 참 많이 살지? 아버지는 새 이름을 잘 몰라. 그러나 이 새들 목소리가 다 다르구나 하고 느껴. 다 다른 새들 목소리를 날마다 새벽부터 밤까지 언제나 들을 수 있으니 좋구나.” 하고 말한다.

 앞마당 빨래줄에 널어 나부끼는 기저귀 사이사이로 뜀박질을 하며 노는 아이를 바라본다. “벼리야, 네 동생처럼 네가 어릴 적에 네 아버지는 이렇게 네 기저귀를 빨아서 햇볕을 쬐어 주었단다.” 아이는 햇볕을 머금으면서 자란다. 둘째가 태어나서 집일이 곱배기로 느는 바람에 집안 비질이나 걸레질조차 거의 못하며 지내지만, 첫째는 착하게 제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사랑스레 자란다. 밥상을 차리면 행주질을 맡으려 하고, 밥상을 치울 때에도 행주질을 해 보려 애쓴다. 착한 아이야, 너한테는 책이 따로 없어도 된다. 집안과 집밖이 모두 고우며 맑은 책이란다. (4344.5.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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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30 22:34   좋아요 0 | URL
아이쿠,빨래와 청바지를 직접 빠신다니 힘이 많이 드시겠네요.가끔은 문명의 이기를 좀 이용하셔도 좋을듯 싶습니다^^

숲노래 2011-05-30 22:54   좋아요 0 | URL
세탁기 파는 데를 한번 가 보았는데, 이불을 빨 만한 녀석을 사려면 100만 원은 있어야 하더군요... 그냥 이대로 잘 살아야지요 ^^;;;;
 



 시골 라디오 소리


 바람이 불고 새가 우짖는 시골 한켠에서 퍽 귀가 따갑게 하루 내내 들리는 소리란, 밭일을 하는 사람인지 개장수네인지 공장에서인지 마을회관에서인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치지 않는 라디오 소리.

 뻐꾸기 우는 소리를 비롯해서 숱한 멧새가 우는 소리와 개구리가 우는 소리는 몇 시간을 고스란히 들어도 조금도 시끄럽거나 귀가 따갑지 않다. 바람이 부는 소리라든지, 바람에 나뭇잎 나부끼는 소리 또한 하나도 안 시끄러우며 귀를 따갑게 하는 적이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하고 라디오가 주절대는 소리는 몇 분만 듣더라도 금세 귀가 따가우며 괴롭다.

 바람이 부는 소리는 싱그럽고, 산들바람은 몸을 시원하게 감싼다. 자동차가 내달리는 소리는 차디차고, 자동차가 빵빵거리는 소리는 귀청을 찢는다. 나뭇잎이 한들거리는 소리와 기저귀 빨래가 마르는 소리는 차분히 스며들면서 내 마음을 토닥인다. 손전화 울리는 소리와 텔레비전 새소식 소리는 날카롭게 파고들면서 내 생각을 억누르거나 짓밟는다. (4344.5.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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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30 22:35   좋아요 0 | URL
흠,시골이시라면 FM인가요? AM인가요? 서울이야 FM이 팡팡 터지지만 시골은 어쩐지 모르겠군요^^

숲노래 2011-05-30 22:51   좋아요 0 | URL
글쎄.. 라디오를 안 들으니 모르겠지만... 라디오 소리도 노래 소리도... 참 귀에 거슬려요... ㅠ.ㅜ
 



 한 시간 이십 분


 밤 0시를 갓 넘긴 때부터 한 시간 이십 분 동안 갓난쟁이 둘째 똥기저귀가 다섯 차례 나온다. 똥기저귀는 그냥 담그면 안 되기에 밑빨래로 똥 기운을 빼내어 목초물 탄 물에 담그는데, 이렇게 세 차례를 하자니, 잠자리에 들기 앞서 담근 기저귀 빨래 두 장까지 해서 다섯 장이 된다. 더 쌓이면 안 되겠구나 싶어 석 장을 두벌빨래를 한다. 옆지기 핏기저귀도 두 장 빤다. 이제 숨을 좀 돌릴 만한가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고 싶지만, 갓난쟁이는 넉 장째 똥기저귀를 내놓는다. 똥기저귀이기에 곧바로 애벌빨래를 한다. 옆지기 핏기저귀가 한 장 새로 나오기에 이제 더 없겠지 생각하며 애벌빨래를 마친 뒤 두벌빨래를 한다. 핏기저귀 또한 애벌빨래하고 두벌빨래를 해야 손빨래로 핏기를 빼낸다. 핏기저귀가 나온 지 조금 지나면 손빨래로 핏기를 빼기 몹시 힘들다. 아니, 못 빼낸다. 이때에는 두 장이나 석 장까지 기다렸다가 삶아서 핏기를 뺀다. 깊은 밤에 빨래를 하면, 갓난쟁이와 옆지기를 함께 보살피려고 찾아오신 외할머니가 주무시다가 깰밖에 없다. 밤에는 되도록 빨래를 안 하고 싶으나, 물 소리와 헹굼 소리와 비빔 소리와 털기 소리를 내고야 만다. 손에 물이 마를 틈이 없네 하고 생각하며 방으로 돌아와 빨래대에 빨래를 너는데 다섯 장째 똥기저귀가 나온다. 이런이런. 아가야, 뭐니? 밤에 왜 이다지도 똥개놀이를 시키니? 그러나, 기저귀를 갈고 빨래를 해야 하는 사람보다, 속이 썩 안 좋아 한 시간 이십 분 사이에 똥기저귀를 다섯 장이나 내놓아야 하는 아기야말로 힘들 테지. 나야 손에 물기 마를 겨를이 없이 몰아친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몸이 버틴다. 속이 꾸르르해서 자꾸 똥기저귀를 내놓는 갓난쟁이는 속이 더부룩한데다가 똥꼬까지 아플 테지.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대로 있고, 힘든 사람은 힘든 사람대로 있다. 힘드는 사람한테 힘들겠군요 하고 걱정하려 한다면, 힘드는 사람이 보살피는 아픈 사람이 얼마나 아파서 괴로운가를 함께 근심해 주면 얼마나 좋으랴 싶다. 책을 읽는 사람은 앎조각을 쌓재서 책읽기를 할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쌓고 믿음을 다지재서 책읽기를 할 사람이다. 내 삶을 보고 힘들 사람 삶을 보며 아플 사람 삶을 보도록 이끄는 책읽기이다. (4344.5.29.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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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1-05-30 22:22   좋아요 0 | URL
흠 이젠 된장님 같으신 분은 없지요.대부분 힘들다고 종이 기저귀를 이용하니까요.
된장님이 빠시는 방법을 보니 옛날 우리 할머님들이 하신 방법과 같으신가봐요^^

숲노래 2011-05-30 22:53   좋아요 0 | URL
예전부터 누구나 하던 빨래가 이제는 다 사라지고... 쓰레기만 나오는 빨래가 되고 말아요. 빨래하고 나오는 헹굼물뿐 아니라, 종이기저귀나 세탁기도 오래지 않아 쓰레기가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