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헤아리는 (2022.7.20.)

― 안양 〈뜻밖의 여행〉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버스길을 살핍니다. 서울서 고흥 가는 버스는 빈자리가 없습니다. 놀이철인 듯싶습니다. 고흥·안산을 오가는 시외버스가 하루 하나 있는데, 빈자리가 많군요. 안양을 들러 〈뜻밖의 여행〉에 책마실을 갈 수 있겠습니다.


  여름날 길바닥은 후끈하고 버스나 전철은 서늘합니다. 나무 곁에 서면 시원하지만, 집안에 바람이(에어컨)를 들이는 집이 늘어날 뿐, 마당을 놓고 나무를 심으려는 이웃을 보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잿집(아파트)하고 부릉이(자가용)를 치우면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도 ‘나무 심고 마당 거느리는 집’을 장만할 만해요. 고작 서른·마흔 해조차 버티기 힘든 잿집이 아닌, 두고두고 뿌리내릴 살림집을 헤아리는 마음이 하나둘 늘어야 비로소 이 나라를 뒤엎으리라 생각합니다.


  범계나루에서 내려 걸으려는데, 나오는곳에 따라 나왔으나 아리송합니다. 이 나라 어디나 매한가지인데, 길알림판은 뚜벅이 아닌 부릉이한테 맞추더군요. 어린이는 어쩌라고 이 따위일까요? 이웃손님(외국여행자)도 이 나라 길알림판에 고개를 절레절레할 만합니다. 그러나 나라지기·벼슬꾼·글바치는 으레 안 걷습니다. 걷지 않는 이들은 길알림판을 엉터리로 세우고, 거님길을 허술하게 깔아요.


  책집 〈뜻밖의 여행〉을 드디어 찾아내어 골목으로 들어서려는데 늙수그레 아저씨가 “남자가 치마를 입네? 남자가 왜 치마를 입어?” 하면서 떠듭니다. “여보셔요, 늙은씨, 남을 구경하지 말고 이녁 넋을 보셔요. 이녁 스스로 넋을 바라보지 않으면 이녁은 늙어죽음이라는 길을 누구보다 빠르게 치달립니다. 딱한 분아.”


  책집 둘레는 쉼터이고, 크고작은 새가 내려앉아 노래합니다. 책집 앞은 큰길이고 허벌나게 시끄럽습니다. 책집은 쉼터하고 큰길 사이에서 우리가 스스로 아로새길 ‘새소리’를 들려주는 징검다리입니다. 어떤 새를 보려나요? 북새판을 보려나요, 멧새노래를 보려나요?


  새를 새로 바라보지 못 하는 까닭이라면 ‘교육’과 ‘학습’ 탓이 크고, 무엇보다 글바치(작가·편집자·출판사)가 99.9퍼센트 서울에 사는 탓입니다만, 글을 읽든 안 읽든 우리부터 스스로 시골사람으로 안 사는 탓이 훨씬 크지 싶습니다. 서울사람으로만 있기에 ‘도시 중심 + 인간 중심 사고방식’으로 줄거리가 기울어요.


  널찍한 자리맡에 앉아서 노래꽃 ‘삶길’을 적습니다. 삶이라는 길이 무엇일까 하고 헤아리니 글줄이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다시 범계나루로 걸어가고 안산버스나루로 갑니다. 걸으면서 풀밭을 바라봅니다. 달걀꽃에 은행싹에 소리쟁이·씀바귀를 마주할 적마다 멈춥니다. 살살 쓰다듬고서 다시 걷습니다.


ㅅㄴㄹ


《꼬마 안데르센의 사전》(공살루 M.타바리스 글·마달레나 마토주 그림/도동준 옮김, 로그프레스, 2019.6.20.)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가야 여행》(황윤, 책읽는고양이, 2021.4.20.)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한스 에르하르트 레싱/장혜경 옮김, 아날로그, 2019.7.5.)

《책숲마실》(최종규·사름벼리, 스토리닷, 2020.9.16.)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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