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나부터 (2022.7.26.)

― 인천 〈나비날다〉



  나부터 날마다 즐겁게 배울 수 있기에, 날마다 새롭게 글 몇 줄 적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나부터 날마다 즐겁게 배울 수 없다면, 날마다 새롭게 글쓰기를 못 할 뿐 아니라, 밥짓기에 옷짓기에 집짓기도 못 하고, 그저 다른 사람 글을 베끼거나 훔칠 뿐이요, 밥옷집도 사다가 쓰는 길이지 싶습니다.


  한자말 ‘필사’는 우리말로 ‘베껴쓰기’입니다. 베끼기는 나쁘지 않되, 베끼다 보면 ‘배움’이 아닌 ‘그대로 따라하기’에 젖어듭니다. 훔침쟁이(표절작가)는 어려서부터 베껴쓰기를 익히 하던 이들입니다. 훌륭하다고 여길 만한 글이 있더라도 ‘베껴쓰기(필사)’가 아닌 ‘배워쓰기(자기 것으로 소화)’를 할 노릇이에요. 훌륭하다고 여기는 글을 읽으면서 느낀 ‘내 삶’을 내 말씨에 마음씨에 글씨에 솜씨로 적어야 비로소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글을 쓰면 됩니다. 글쓰기 길잡이책(이론서·지도서)은 안 읽어야지요. 읽겠다면 글을 읽고, 읽으려면 삶을 읽을 일입니다. 마음을 읽고 해바람비를 읽고, 아이 눈망울을 읽고, 풀꽃나무를 읽고, 풀벌레하고 새를 읽으면 누구나 글빛이 영글어 알뜰살뜰 글님으로 설 만합니다.


  글을 왜 못 쓰느냐 하면, 자꾸 베끼기 때문입니다. 남 눈치를 보니까 글을 못 씁니다. 잘 쓰려 하니까 글이 망가집니다. 널리 팔리기를 바라니 글뿐 아니라 마음이 무너집니다. 글이나 책이 좀 팔리니 콧대가 높아 어느새 마음이 시들어요.


  가랑비를 온몸으로 맞아 보아야 가랑비를 느끼고 배우고 알아서 가랑비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함박비를 온몸으로 누리고 비놀이를 해보아야 함박비를 느끼고 배우고 알아서 함박비 이야기를 씁니다. 사랑이 아닌 사랑타령이 넘치는 글밭입니다. 사랑을 해본 적이 없고, 사랑을 생각하지 않으니, 짝짓기놀음을 하면서 ‘짝짓기’가 마치 ‘사랑’인 줄 잘못 알면서 글만들기(창작)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작’은 안 해야 글쓰기를 이룹니다. ‘비평’도 안 해야 글쓰기를 누려요. 삶짓기를 하면 글은 저절로 태어납니다. 살림짓기를 하면 눈을 저절로 뜹니다. 사랑짓기를 나부터 하기에 ‘창작과 비평’이 아닌 ‘삶·살림·사랑짓기’를 바탕으로 글살림을 스스로 북돋웁니다.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에 느즈막히 깃듭니다. 배다리 마을책집에서 오늘 저녁에 ‘우리말 참뜻풀이 이야기꽃’을 신나게 폈습니다. 말 한 마디에 서린 살림길을 헤아리면서 누구나 말꽃지기로 서는 새빛을 한바탕 펴느라 기운을 다 썼습니다. 천천히 기지개를 켜고 책 한 자락을 쥡니다. 오늘밤 읽을 책입니다.


ㅅㄴㄹ


《버티고 있습니다》(신현훈 글, 책과이음, 2022.3.18.)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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