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뿌리캐기 (2022.10.24.)

― 서울 〈서울책보고〉



  서울 내방나루 곁 마을책집 〈메종인디아〉를 들르고서 방배나루로 걸어가서 〈서울책보고〉로 찾아갑니다. 시월이 무르익어도 낮에는 꽤 덥다고 할 만합니다. 아침저녁뿐 아니라 낮에도 서울은 어디나 북적입니다. 느긋이 걸으면 곳곳에서 밀치면서 앞지르는 물결에 휩쓸립니다. 걷다가 멈출 수 없고, 문득 쪼그려앉아 길꽃을 들여다볼 틈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많고 빨리 흐르는 서울인데, 틈이며 말미만큼은 모자란 서울입니다. 들꽃이 자랄 틈새나 나무가 오를 자리도 모자란 서울입니다. 숲이 퍼질 곳이 모자라고, 누구나 느긋이 드러누워 구름을 바라볼 풀밭이 모자란 서울이에요.


  모든 하루는 사랑스러우면서 고마이 흐르는 햇빛이요 별빛일 텐데, 바쁘게 밀치고 밟고 앞지르려 할 적에도 이 하루를 느낄 수 있을까요. 날마다 새롭게 퍼지는 빛살을 얼마나 품을 만한가요. 땅밑으로도 줄잇는 가게는 해바람비를 모르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땅거죽에 높이 솟은 집채에 가득한 가게도 한낮에 불을 밝히면서 햇볕을 멀리합니다.


  큰가게는 일부러 미닫이를 가리고 때바늘(시계)을 치운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서울은 통째로 해바람비를 가리고 철빛을 막으면서 우리 눈코귀입을 길들인다고 느껴요. 날마다 새롭게 뜨는 해를 못 보고 못 느낀다면, 어떤 어른이 될까요? 날마다 새롭게 돋는 별을 안 보고 안 찾는다면, 어떤 아이가 될까요?


  모든 안타까운 일을 파헤치면, 뿌리는 배움수렁(입시지옥)에도 가닿고, 서울바라기(도시화)에 가닿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인천-서울 전철길’은 오래도록 불수레(지옥철)란 이름이에요. ‘인천-서울 전철길’에 찡기는 사람들은 아주 좁다란 곳에 사람이 사람이 아닌 짐짝으로 짓눌리고 뒹굴어요. 왜 인천·부천 사람들은 서울로 돈을 벌러 가야 할까요? 왜 시골 아이들은 제 텃마을(고향)에 머물면 못난놈이란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나요?


  오늘날 ‘인구감소 + 지역소멸’이란 이름을 붙이는 골칫거리는 아무리 큰돈을 들여도 못 풀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부터 바꾸어 우리 삶을 먼저 바꾸기’는 안 하는 채 어느 하나도 이룰 수 없으니까요. 싸움(군대와 전쟁무기)으로는 아름길(평화)을 누리지 못하지만, 싸움판이 없더라도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마음과 삶’이 아니라면 아름길은 이곳에 없을 수밖에 없어요. 나무가 자라려면 뿌리를 뻗어야 하고, 말썽을 씻으려면 말썽거리를 뿌리뽑을 노릇입니다.


ㅅㄴㄹ


《청년과 징병문제》(고영훈, 총리원 교육국 청년부, 1957.9.15.)

《하천풍언 선생 강연집》(하천풍언/장시화 옮김, 경천애인사, 1939.4.20.첫/1960.4.14.재판)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