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녘 (2022.7.19.)
― 서울 〈조은이책〉
한밤이라 여길 두 시 무렵부터 하루를 여는 살림을 1995년부터 꾸렸어요. 동틀녘이면 하루를 연 지 꽤 지난 뒤입니다. 아침에는 가볍게 눈을 붙입니다. “밤에 자야지, 왜 아침에 자느냐?”고 핀잔하는 이웃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숨빛을 누리자면 01∼03시 사이에 일어나서 한나절쯤 일한 뒤에 가볍게 쉬고, 차츰 해가 솟을 무렵 다시 한나절을 일하고서 낮밥을 차리고서 푹 쉬면 즐겁더군요. 이런 다음 해질녘까지 느긋이 보금자리를 돌보다가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기까지 오늘을 되새기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면 넉넉해요.
이런 하루살림을 얘기하면 “누가 그렇게 살 수 있나요? 어느 일터가 새벽에 열어요? 그런 하루를 보내려면 배움터는 어떻게 다녀요?” 하고 따지는 분이 많아요. 이때에 늘 “일터이든 배움터이든 다니고 싶으시면 다니셔요. 그런데 죽는 날까지 일터나 배움터만 다니지는 않겠지요? 꽃마무리(정년퇴직)를 하고서 기나긴 뒷삶은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요? 돈을 벌고 싶으면 돈을 벌되, 사람답게 살고 싶은 이웃님한테 사람답게 사는 길을 밝힐 뿐입니다.” 하고 덧붙입니다.
아침 일찍 부천에서 전철을 타고서 연천으로 다녀왔습니다. 같은 경기도여도 하늬녘하고 높녘은 참으로 머나먼 길입니다. 이튿날 고흥으로 돌아가자면 오늘은 서울에서 묵어야 합니다. 길손집에 가기 앞서 〈조은이책〉을 찾아갑니다. 마침 책모임이 있다기에 늦게까지 엽니다. 책시렁을 천천히 돌아보며 다리를 쉽니다.
어제 장만한 책을 미처 시골로 못 부쳐서 하룻내 안고 지며 다녔습니다. 저물녘에 새로 들른 마을책집에서도 책을 여럿 얹느라 등짐하고 손짐은 한결 묵직합니다. 어둑살이 내린 서울은 번쩍거립니다. 안골에 깃든 책집은 호젓하되, 버스를 타러 나오니 눈이 따갑습니다. 별빛을 품는 시골내기한테 서울버스 불빛은 괴롭습니다.
시끌벅적한 서울버스에 앉아 고요히 눈을 감습니다. 하늘빛으로 온몸에 거미줄을 그려 봅니다. 저녁빛을 잊은 서울이더라도 마음으로 그리면 별자리를 새길 만하다고 느낍니다. 종로3가에서 버스를 내렸고, 책짐을 그득 안고서 길손집을 찾아 걸어갑니다.
모든 글은 말을 담습니다. 모든 말은 삶을 담아요. 모든 삶은 마음을 담고, 모든 마음은 생각을 담고, 모든 생각은 넋을 담지요. 이 넋이 빛나는 씨앗으로 나아가도록 말결을 북돋우면, 저마다 하루를 즐거이 그리며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어버이로서 어디에서나 새넋이며 새살림을 짓는 길을 걷고, 무엇을 하든 아이들을 떠올리면서 이 길을 가꾸는 숨결을 다독입니다.
ㅅㄴㄹ
《그냥 내 마음을 들어주세요》(아동문학스테이지 참가자 38사람, 조은이책, 2022.5.31.)
《덴마크에서 날아온 엽서》(표재명 글, 박정원 엮음, 드림디자인, 2021.11.17.)
《그림 속 나의 마을》(다시마 세이조/황진희 옮김, 책담, 2022.6.15.)
《かいじゆうトゲトゲとミルクちゃん》(かどのえいこ 글·にしまきかゃこ 그림, ポプラ社, 2001.5.)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