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빛/숲노래 우리말

곁말 76 함박구름



  달종이(달력)를 보면서 날을 세지는 않지만, 어릴 적에는 늘 달종이를 하나하나 세면서 “오늘은 어떤 날씨일까? 오늘은 어떤 구름일까? 오늘은 바람이 어떤 결일까? 오늘은 해가 언제 어디에서 뜨고 언제 어디로 질까?” 하고 꼬박꼬박 살피고 마음에 담았습니다. 여덟 살부터 날마다 이처럼 보내고 보니 열 살 즈음부터는 날씨알림(일기예보)보다 제 살느낌이 날씨를 바로 맞춥니다. 다만 여름에는 종잡지 못하겠더군요. 여름에는 소나기랑 무지개가 갑작스레 찾아오니까요. 구름 한 조각이 없던 하늘에 문득 구름송이가 생기고, 어느새 몽실몽실 위로 뻗을라치면 “아, 뭉게구름이다! 저쪽에서는 비가 올까?” 궁금한데, 이 뭉게구름은 느린 듯하면서 빨라요. 우리가 노는 쪽으로 다가오면 “얘들아, 비 오겠어! 달아나자!” 하고 외칩니다. 동무들은 “비? 구름도 없는데 무슨 비야?” “저기 뭉게구름이 다가오잖아.” “웃기지 마.” 뭉게구름은 어느새 우리 머리 위를 스치고 벼락처럼 굵은 빗방울이 와락 쏟아지고 지나갑니다. 뭉게구름은 마치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저리 갑니다. 이 뭉게구름을 1990년을 넘어선 뒤로 거의 못 봅니다. 다들 어디 갔을까요? 그래도 요새는 아주 커다란 구름인 ‘함박구름’을 늘 만나요.


함박 ㄴ (함지박) : 1. 속에 넉넉히·잔뜩·많이 담을 수 있도록 통나무를 둥그렇게 움푹 파서 쓰는 그릇. 2. 겉으로 드러나는 길이·넓이·높이·부피 같은 모습이 여느 것·다른 것보다 더 되거나 더 있거나 넘거나 넉넉히 남을 만하다.


함박구름 : 굵고 크게 피어난 구름.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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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말넋/숲노래 우리말

곁말 75 키움눈



  어릴 적에 ‘현미경’하고 ‘망원경’을 곧잘 헷갈렸습니다. 어른 눈길이라면 어떻게 둘을 헷갈리느냐고 묻겠지만, 어린이로서는 둘이 헷갈렸어요. 생각해 봐요. ‘현미경·망원경’은 우리말이 아니거든요. 바깥말이에요. “현미경으로 가까운 것을 크게 보니? 아니, 망원경인가?” “음,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런 말을 아홉열 살까지 동무하고 나누었습니다. 우리말 ‘먼눈’이 있습니다. ‘먼눈 ㄱ’은 멀리 있어도 보는 눈을 가리키고, ‘먼눈 ㄴ’은 눈이 멀어서 못 보는 눈을 가리켜요. ‘멀다’는 길게 떨어진 자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까맣게 닫은 모습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멀리 떨어졌어도 보는 살림이라면, ‘먼눈 ㄱ’으로 나타낼 만하다고 느껴요. 곁에 있는 작은 것을 키워서 보는 살림이라면 “키워서 본다”는 대목을 헤아려 ‘키움눈’처럼 새말을 지을 만하고요.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기를 바라면서 따사로이 키우는 어버이 손길처럼, 작은 숨결을 들여다보고 싶을 적에는 ‘키움거울’을 쓸 만하다고 느껴요. “눈을 똥그랗게 키워서 본다”고도 하거든요. 키우기에 튼튼하고, 키우기에 잘 알아보고, 키우기에 넉넉하고, 키우기에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신나게 놉니다.


ㅅㄴㄹ


키움눈 (키우다 + ㅁ + 눈) : 작은 것을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키워서 보여주는 살림. (= 키움거울. ← 현미경(顯微鏡)


먼눈 (멀다 + ㄴ + 눈) : 1. 멀리 있는 곳·것·모습·빛을 느끼거나 살피거나 보는 눈. 2. 다가오는 삶·날·길(앎삶·앞날·앞길)을 미리 느끼거나 살피거나 보는 눈. 3. 멀리 있는 곳·것·모습·빛을 느끼거나 살피거나 볼 수 있는 살림. (= 멀리보기. ← 망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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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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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말/숲노래 우리말

곁말 74 더듬꽃



  모든 사람은 다릅니다.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흔히 ‘여느(보통·평범·일반)’ 같은 낱말을 앞세우곤 하지만, ‘여느사람’조차 모두 달라요. “똑같은 ‘여느사람(보통이거나 평범한 사람·일반인)은 없”습니다. 누구나 다 다른 줄 제대로 알아차리는 눈에 알아보는 넋이라면, 구태여 ‘장애·비장애’ 같은 한자말을 안 끌어들이리라 봅니다. ‘장애·비장애’ 같은 한자말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되레 더 갈라치기로 기울면서 남남 사이로 쪼개진다고 느껴요. 웃으니까 ‘웃다’라 하고, 우니까 ‘울다’라 합니다. 다리를 저니까 ‘절다’라 하거, 눈이 하나이니까 ‘외눈’이라 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쉽게 말을 더듬었으니 ‘더듬이’ 같은 말을 들었는데, 풀벌레한테 난 ‘더듬이’를 떠올리면서, 또 영어 ‘안테나’가 우리말로는 ‘더듬이’이니,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면서 생각을 가꾸려 했어요. 이러다 문득 ‘더듬꽃’처럼 말끝을 새로 붙여 보았지요. 말끝 하나로 자칫 따돌리려는 뜻을 심기도 한다면 씻기도 할 테니, ‘장애자·장애인·장애우’처럼 한자놀이를 하기보다는, 우리답게 ‘꽃’이란 말결로 추스를 만합니다. 더듬더듬하기에 더 느끼거나 살피듯, 꽃이기에 가장 늦게 나타나되 더없이 빛나는 숨결이기도 합니다.


더듬다(더듬이·더듬새·더듬길·더듬꽃) : 1. 잘·제대로·똑똑히·또렷이·환하게·낱낱이·하나하나·모두·속속들이 보거나 알아보지는 않지만, 손으로 차근차근·가만가만·이리저리 짚거나 만지거나 건드리면서 찾으려 하다. 2. 잘·제대로·똑똑히·또렷이·환하게·낱낱이·하나하나·모두·속속들이 알거나 느끼기 쉽지는 않지만, 더 생각하거나 떠올리거나 돌아보면서 찾거나 짚으려 하다. 3. 잘·제대로·똑똑히·또렷이·환하게·낱낱이·하나하나·모두·속속들이 생각나거나 떠오르거나 돌아볼 만하지는 않지만, 살짝 흐리거나 모르겠어도 생각하거나 떠올리거나 돌아보려 하다. 4. 부드럽거나 매끄럽거나 깔끔하거나 똑똑하거나 또렷하게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못 하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적에 잇달아·자꾸·내내·늘 걸리거나 막히거나 씹히거나 뭉치다. 물이 흐르듯이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못 하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적에 차근차근·가만가만·하나하나 가누거나 다루거나 펴지 못 하다. 5. 잘·제대로·똑똑히·또렷이·환하게·낱낱이·하나하나·모두·속속들이 알거나 느끼거나 바라보지는 못 하는 채 세거나 읽거나 헤아리거나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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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곁말

곁말 73 돌이나라



  사내란 몸을 입고 태어나기에 잘나지 않고, 가시내란 몸으로 태어나서 잘나지 않습니다. 가시내는 가시내라는 숨결이고, 사내는 사내라는 숨빛입니다. 겉몸은 순이랑 돌이로 다를 뿐, 돌이하고 순이는 두 마음을 고루 품으면서 한 가지 몸으로 삶을 누리고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나눕니다. 힘이 좋은 쪽이 있고, 어질면서 슬기로운 쪽이 있습니다. 참하면서 착한 쪽이 있고, 고우면서 상냥한 쪽이 있습니다. 둘은 저마다 다른 넋이면서, 사람이라는 길로는 나란한 빛입니다. 오늘날 배움터에서 가르치는 발자취(역사)를 놓고 본다면 적잖은 나날을 ‘꼰대짓(가부장제)’으로 보냈습니다. 우두머리(지도자·왕·대표)가 서는 나라에서는 언제나 고리타분한 틀에 갇혔어요. 이 우두머리는 으레 사내였고, 사내들은 끼리끼리 감투를 쓰며 곰팡내를 풍기는 수렁에 잠기면서 싸움질을 끝없이 벌였습니다. 순이돌이가 사랑으로 보금자리를 지을 적에 싸움이 있을까요? 없지요. 사랑으로 지은 보금자리가 모인 마을에도 싸움이 없어요. 보금자리를 잊으며 ‘나라(정부)’를 세우겠다고 하며 그만 사랑도 마음도 잃는 길이에요. 앞으로는 돌이나라도 순이나라도 아닌, 아름나라로 가야지 싶습니다. 아니, 나라 아닌 아름누리·사랑누리·살림누리로 가야지요.


돌이나라 (돌이 + 나라 : 사내인 아버지를 바탕으로 틀을 세워서 집·마을·나라를 이끌어 가는 터전. 사내한테 모든 힘·이름·돈을 이어주거나 물려주거나 남기려는 틀.

(= 돌이누리·돌이마을·돌이판·돌이터·돌이살림·아버지나라·아버지누리·아버지마을·아버지판·아버지터·아버지살림·아범나라·아범누리·아범마을·아범판·아범터·아범살림·아빠나라·아빠누리·아빠마을·아빠판·아빠터·아빠살림. ← 부계사회, 부계씨족, 부계씨족사회)


순이나라 (순이 + 나라 : 가시내인 어머니를 바탕으로 틀을 세워서 집·마을·나라를 이끌어 가는 터전. 가시내한테 모든 힘·이름·돈을 이어주거나 물려주거나 남기려는 틀.

(= 순이누리·순이마을·순이판·순이터·순이살림·어머니나라·어머니누리·어머니마을·어머니판·어머니터·어머니살림·어멈나라·어멈누리·어멈마을·어멈판·어멈터·어멈살림·엄마나라·엄마누리·엄마마을·엄마판·엄마터·엄마살림. ← 모계사회, 모계씨족사회, 모계중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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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말 72 긴낮



  어릴 적에 어머니는 상냥하면서 어진 길잡이(교사)였습니다. 요새는 배움터 길잡이(학교 교사)가 어린이를 마구 때리거나 괴롭히는 짓이 사라졌다지만, 지난날에는 배움터에서 길잡이한테 뭘 물어볼 수 없었어요. 아주 무섭고 사나웠거든요. 어머니한테 여쭈면 “얘, 너희 학교 선생님들은 안 가르쳐 주니? 왜 늘 엄마한테만 묻니?” 하시지요. “몽둥이를 들고 노려보는데 무서워서 어떻게 물어봐요. 모르면 모른다고 때리는걸요.” “아유, 할 수 없지. 그래서 뭐?” 어느 날은 “‘하지’하고 ‘동지’가 뭐예요?“ 하고 여쭙니다. “하지랑 동지? 학교는 그런 절기도 안 가르치니?” “아직 책(교과서)에 안 나오는걸요.” “여름에 낮이 가장 길어서 ‘하지’이고, 겨울에 밤이 가장 길어서 ‘동지’야. 그러니까 긴낮이 하지이고, 긴밤이 동지이지.” “아, 그런 한자로구나. 그러면 ‘긴낮’하고 ‘긴밤’이라 하면 알기 쉬울 텐데요.” 왜 철눈(절기節氣)를 굳이 한자말로만 엮어야 할까요? 어린이부터 알기 수월하고 누구나 곧바로 알아차리도록 우리말로 쉽게 엮도록 마음을 기울이고 생각을 할 만하지 않을까요? 지난날 우리 어머니한테서 들은 말을 되살려 오늘은 저 스스로 어버이로서 우리 아이들한테 철빛을 사근사근 들려줍니다.


긴낮 (길다 + ㄴ + 낮) : 낮이 길고 밤이 짧은 날이나 때.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날을 가리키기도 한다. ( ← 하지夏至, 하짓날)

긴밤 (길다 + ㄴ + 밤) : 밤이 길고 낮이 짧은 날이나 때.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을 가리키기도 한다. (= 깊밤. ← 동지冬至, 동짓날)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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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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