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6.20. 새벽 일손



  마을 할배가 새벽 네 시 무렵에 나물짐 도와줄 수 있겠느냐 물으시기에 그리하겠다고 여쭌다. 마을 할매 다섯 분은 이미 새벽 두 시부터 곤드레를 베셨지 싶다. 베어낸 곤드레는 자루를 갈라서 담고서 보쌈처럼 나물쌈을 한다. 다만 나물쌈 한 보따리는 30킬로그램 즈음 될 듯싶다.


  베고 담고 묶고 나르자면 젊은일손이 꽤 들 텐데, 이 시골에서 놉을 찾을 길은 드물다고 한다. 아니, 젊은 일손은 많다. 시골아이가 새벽에 함께 일하고서 일삯을 받으면 된다. 시골이기에 있는 시골밭일을 일철마다 일삯을 12∼20만 원쯤 받으며 신나게 해보면, 초·중·고등학교 가르침이 얼마나 쉽고 스스로 애쓸 길인지 느끼리라.


  굳이 시골에서 편의점이나 피시방이나 배달 곁일만 찾으려니 일자리가 있겠는가. 손발과 온몸을 흙과 바람과 숲과 해한테 맞추어 움직이는 배움길이야말로 서울에서는 아예 어림조차 못할 대단한 살림빛이다.


  흙을 만지면 손에 흙물이 든다. 흙물이란 싱그러이 살림물이다. 우리나라 헌책집 일꾼도 으레 까무잡잡 일손빛이었다. 일하는 손길에는 흙책과 땀책과 멧새책이 부드러이 감돈다. 오늘 새벽에도 꾀꼬리가 우렁차게 새날을 알려준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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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6-21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놀님 손을 보니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놉‘이란 말을 오늘 여기서 처음 보고 알게 되었어요.
다른 글에서 ‘남새‘라는 말을 쓰신 것을 보고 풀과 같은 뜻 아닌가해서 사전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파란놀 2025-06-21 09:30   좋아요 0 | URL
여러모로 보면 저부터 스스로 부끄러운 손입니다. 저는 어제 새벽에 고작 두 시간 반을 일손을 도왔을 뿐인데, 시골 할매할배는 늘 이보다 시커멓게 흙물이 들도록 일하시거든요. 그렇지만 일손을 거들거나 도울 적에는 따로 사진을 못 찍게 마련이라, 흙물 든 손으로 사진기를 못 쥐니까요, 집으로 돌아가서 얼른 씻고서 전남 고흥에서 부산으로 일하러 나서는 시외버스에서 숨돌리고서 손전화로 찰칵 남겨 보았어요.

시골 할매할배를 그리고 기리는 마음이라서, 이래저래 부끄럽기만 합니다.

시골일을 하는 어르신은 요새도 ‘놉’이라고 하셔요. ‘인부’ 같은 일본말을 모르시기도 하다고 느껴요. 여러모로 보면, ‘놉’은 ‘놈’하고 말밑이 같다고 느낍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