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느긋하게 읽어서 스스로 배우는 것
 [책이 있는 삶 3] '빠르게 많이' 읽기를 경계함


 제가 책읽는 모습을 보는 분들은 놀랍니다. 그다지 빨리 읽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그렇게 많은 책소개 글을 언제 다 쓰느냐고 묻습니다. 가만히 보면, 저는 책을 더디게 읽는 편이고, 여러 권을 겹쳐서 읽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무척 빠르게 많이 읽는 듯하지만, 오래오래 느긋하게 여러 가지를 읽기에 여러 가지 책을 두루 알 뿐입니다. 책을 읽은 지는 퍽 오래되었으나 책 이야기를 글로 쓴 지는 얼마 되지 않기도 하고요.

 책은 저에게 지식을 건네주는 교사가 아닙니다. 지식은 책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얻을 수도 있고 인터넷이나 신문에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스스로 깨달아 얻을 수도 있고요. 책에서 지식을 얻을 때, 책은 그냥 ‘참고서’입니다. 옆에 놓고 도움 삼는 책이요. 하지만 저에게 책은 올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열고 보여주는 스승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일을 하면서 깨닫고 느끼고 새롭게 헤아리는 갖가지 이야기를 만나고 배우는 마당입니다. 미처 겪지 못한 일을 다른 이들이 먼저 겪은 이야기로 들으며 차근차근 준비할 수 있을 때도 있고, 앞으로 겪을 일을 맞이하도록 마음다짐을 할 때도 있고, 벌써 겪은 일을 하나둘 되짚으며 돌아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느긋하게 읽습니다. 서둘러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읽다가 가슴을 울리는 대목을 만나면 잠깐 책을 덮고 숨을 몰아쉽니다. 그 대목 하나로 하루 내내 즐겁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얻기보다는 그때그때 제 자신을 이끌고 일깨우는 슬기를 얻고픈 책입니다.


.. 빨리 어른이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아름다움이 있다. 빨리 개구리가 되는 것이 올챙이의 목적이나 그것이 결코 행복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올챙이는 올챙이 때의 헤엄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  《쇼지 사부로-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특수교육,1990) 122쪽


 《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란 책은 판이 끊어졌기에 헌책방에서 만났습니다. 지난해 8월 22일에 신촌에 있는 헌책방에서 산 뒤로 오늘 아침까지 181쪽을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가슴을 울리는 대목이 많아서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이 대목도 그래요. “빨리 어른이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이 아니”듯, “빨리 책을 읽는 것이 책읽기(독서)가 아닐” 테지요?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책에 담은 줄거리를 제대로 헤아리는 것이 책읽기라고 봅니다. 책을 읽는 빠르기는 하나도 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몇 권 읽었느냐도 마찬가지입니다. 통계 내기 좋아하는 분들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한 달이나 한 해에 책을 몇 권 읽는지를 조사하지요? ‘권수 조사’는 하지만, 자기가 읽은 책을 제대로 자기 것으로 삼았는지, 읽은 뒤에 얼마나 자신이 달라졌는지는 살피지 않습니다.

 지금은 더는 하지 않는 어느 방송사 ‘책읽기 추천 풀그림’은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는 내세우지만 “그 책을 읽어서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떻게 살아가고 일하고 놀고 어울려야 좋은지”는 이야기하지 못했습니다. 또 “책을 읽는 마음가짐과 몸가짐”, “추천하는 책에서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헤아리는가”는 살피지 않았습니다.


.. 현명해지고 싶은 고매한 희망을 품고 어려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헛수고로 끝났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애당초 그러한 책을 읽으려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믿어버린대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잘못은 오히려 난해한 책을 한 번밖에 읽지 않고 그것으로 많은 것을 얻으려고 했던 데에 있다.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하면, 전문서가 아닌 바에야 설령 아무리 난해한 책이라도 독자를 절망시키는 일은 없다 ..  《모티머 J.애들러-독서의 기술》(범우사,1986) 26쪽


 책을 느긋하게 읽는 일은 어려운 책을 읽을 때에도 참 좋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읽어 나가다 보면, 날마다 새로 얻고 아는 것이 있는 터라, 처음 읽을 때는 낯설고 어렵던 이야기들이 차츰차츰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퍽 빠르게(하지만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는 느린) 그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어요.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과제물을 내야 한다고 허겁지겁 읽어제끼는 책에서 무엇을 얻거나 배우겠습니까? 책을 읽어 독후감을 쓰겠다고 하면 독후감도 독후감대로 쓰이지 않지만, 책은 책대로 읽히지 않습니다. 책 읽은 느낌을 쓰고프다면 책을 즐겁게 읽으면 그만이에요. 즐겁게 읽은 책이라면 책 읽은 느낌이 술술 즐겁게 풀려나옵니다. 어렵고 딱딱하고 시간에 쫓겨 거칠게 대충대충 읽은 책은 독후감을 쓸 때 괜히 말이 어려워지고 딱딱해지고 거칠어지며 대충대충이 되고 말아요.

 이런 말도 한번 생각해 보면 좋겠군요. 일본에서 이름난 지식인인 다치바나 다카시란 사람은 책을 ‘빨리 많이’ 읽어내는 일을 늘 힘주어 말하지요? 그런 생각을 맞바로 비판한 이야기입니다.


..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한 쪽 읽는데 1초, 좀 늦더라도 2,3초’라는 읽기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은 가능한 방법은 아니다. 굳이 심신에 무리를 주면서라도 훈련을 거듭하면 나한테도 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책을 그렇게나 빠른 속도로 읽지 않으면 안 되는지 그것을 모르겠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내가 읽은 재미있는 책, 엉터리 책 그리고 나의 대량 독서술, 경이의 독서술》은 서평집이기도 하지만, 거기서 예로 들고 있는 책 가운데 5분이나 15분에 읽어버리고 싶은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매력이 있을 것 같은 책이라면 여느 때처럼 느릿느릿 읽고,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손에 들지 않는다 ..  《야마무라 오사무-천천히 읽기를 권함》(샨티,2003) 18쪽


 느긋하게 책을 읽는 일만큼 책읽기에서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지식을 얻고자 읽는 매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읽어서 즐기는’ 것이고, ‘읽어서 즐기는 가운데 스스로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읽어서 즐기는 가운데 스스로 얻는’ 것은 슬기일 수 있고 지식일 수 있고 정보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얻고 배우고 깨우치더라도 좋습니다. 읽는 맛, 보람, 재미, 즐거움, 알뜰함, 반가움, 멋짐, 훌륭함, 눈물, 웃음, 슬픔, 기쁨, …… 같은 온갖 것을 느낄 수 있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싶어요.

 사람이 어떤 일을 빨리 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 사람은 나기 무섭게 죽어야 가장 중요하고 좋은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빨리 일을 해내는 것보다 ‘제대로 즐겁고 올바르고 알맞게’ 해내는 게 중요하겠지요? 책읽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꼭 ‘천천히’일 까닭은 없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알맞는 빠르기로 ‘느긋한 마음’을 품고 읽을 때가 가장 좋지 싶어요.

 책을 고를 때도 느긋하게, 책을 사서 읽을 때도 느긋하게, 읽으면서 시나브로 얻은 것을 마음으로 즐기고 몸으로 옮길 때도 느긋하게 하는 일이 바로 책읽기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멋진 일이자 놀이라고 생각합니다. (4337.10.13.물.ㅎㄲㅅㄱ)


= 글을 쓰는 사이에 소개한 책 =
1.새와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
 - 지은이 : 쇼지 사부로 / 옮긴이 : 정필화 / 펴낸곳 : 특수교육(1990.7.24)
2.독서의 기술
 - 지은이 : 모티머 J.애들러 / 옮긴이 : 민병덕 / 펴낸곳 : 범우사(1986.12.20)
3.천천히 읽기를 권함
 - 지은이 : 야마무라 오사무 / 옮긴이 : 송태욱 / 펴낸곳 : 샨티(2003.11.11)

***
차분하고 느긋하게 책을 읽는 방법을 말하고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책읽기가 한결 즐겁고 반가운 일이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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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책을 즐겨 읽어 볼까요?
 [책이 있는 삶 2] 껍데기가 아닌 속살을 살펴봅시다


 저는 없는 이야기를 꾸며서 지은 책은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없는 이야기를 꾸민다고 할 때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진득하게 담아내면 눈길이 쏠립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만 엮어낸 책은 달갑지 않습니다.

 뜬구름 잡는다는 이야기가 `공상과학'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터무니없는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 앞뒤가 어긋나는 소리, 우리 삶을 비틀거나 한편으로 치우치게 보는 소리가 바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삶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소리 또한 뜬구름 잡는 소리이며 우리 삶에 눈멀고 귀멀게 하는 이야기 또한 뜬구름 잡는 소리입니다.

 털털하게 털어놓는 글이 좋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자 흉허물없이 다가오고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가 좋습니다. 글도 그림도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곱고 멋있게 쓰거나 지으려는 글, 그림, 사진은 입맛에 안 맞습니다. 언뜻 보면 무언가 남다르거나 멋있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하지만 두고두고 다시 곱씹으면 영 아닙니다. 때깔만 곱다고 맛있는 사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 자기를 드러낸 글은 소설이든 수필이든 희곡이든 시든 동화든 무엇이든 좋습니다. 없는 걸 있는 듯 그려낸 글은 영 와닿지 않습니다. 억지로 불러오는 웃음과 어거지로 쥐어짜는 눈물은 그야말로 지겹습니다. 그런 글을 볼 때면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삶이 억지 웃음을 불러와야 할 만큼 재미가 없는가? 우리 삶이 어거지 울음을 쥐어짜야 할 만큼 눈물나는 아픔이 없는가?


 .. 고등학교를 갓 졸어한 겨울 오후였다. 집에서 선창가에 내려간다고 가니까 한 달 전에 팔려간 우리 집 소가 양지 쪽 말뚝에 매어져 서서 되새김을 하면서 눈을 버꿈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소 앞으로 다가가서 소를 쓰다듬어 주면서 `마침 우리 동네에 있어서 좋다'며서 중얼거리다가 선창가로 내려가려고 하는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가서 보니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도저히 그냥 내려갈 수가 없어서 한참 동안 머리랑 등이랑 쓰다듬어 주면서 `울지 마라. 울지 마라' 달래 주면서 선창가로 내려갔다. 소가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 <우리가 뽑은 대장>(지식산업사,1985) 130쪽


 소가 흘리는 눈물을 본 사람은 얼마쯤 될까요. 소가 흘리는 눈물을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며 사는 사람은요. 우리는 우리가 즐겨 먹는 고기가 되는 고기소들 아픔과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 밥통으로 들어오는 온갖 남새며 곡식을 생각할 틈도 없습니다. 꾸역꾸역 집어넣기 바쁩니다. 돈을 잘 세서 알맞은 값으로 밥과 고기와 물을 사서 뱃속으로 집어넣습니다.

 문득 드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우리 밥통으로 집어넣는 밥처럼 우리 머리와 가슴에 담고 느끼는 책도 그렇게 보지 않는가 해서요. 그 책 하나를 애틋하게 느끼면서 사는지, 그냥 돈이 있으니까 사는지, 남들에게 교양 있어 보이려고 흐름에 쫓기고 이끌려가면서 사는지...

 책을 책대로 제대로 느끼는 눈이 얕으면 새책방에 가든 헌책방에 가든 도서관에 가든 읽을 책이 없습니다. 맞춤법이 오래된 책이라고, 세로쓰기 책이라고, 낡고 떨어진 헌책이라고 줄거리가 나쁘지 않습니다. 책은 겉껍데기가 아무리 깨끗하여도 줄거리가 엉망이면 책 값어치가 없습니다. 겉껍데기는 걸레와 같다 해도 그 안에 담은 줄거리가 아름답고 알차면 그 책은 아름답고 알찬 값어치를 갖고 대접을 받습니다.

 사람은 어떠할까요. 옷차림새가 말쑥하고 돈이 많아야 참 사람일까요? 말은 번듯번듯 잘하고 또박또박 말을 잘하거나 듣기 좋은 말을 예의바르게 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일까요?

 책을 보는 눈, 사람을 보는 눈, 뭇 목숨을 보는 눈은 다르지 않습니다. 한 흐름입니다. 함께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눈과 마음으로 뭇 목숨을 아끼고 보살필 수 있습니다. 뭇 목숨을 아끼고 보살피는 눈과 마음으로 애틋하며 아름다운 책을 골라낼 수 있습니다. 책을 아끼고 보살펴서 애틋하며 아름다운 책을 살필 수 있고 골라낼 수 있는 마음은 새책방이나 헌책방이나 도서관으로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줍니다.

 책 겉모습이나, 책을 쓴 사람 이름이나, 펴낸 곳 이름이나, 글감에서 자유로울 때 자신에게 알맞고 좋다고 느낄 만한 책이 보입니다. 겉껍데기가 아닌 즐거리를 보고자 책을 삽니다. 겉보기가 아니라 몸에 좋고 맛이 좋은 먹을거리를 삽니다. 보기에만 좋은 아무 먹을거리나 사서 먹을 수 없듯 겉껍데기만 고운 책을 사서 맹탕인 줄거리를 읽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책방에서 사거나 빌려서 읽고 느끼는 책 하나는 우주입니다. 온 목숨입니다. 지구입니다. 삶입니다. 우리 삶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듯 자신이 골라서 읽는 책 열 권 가운데 빠지거나 모자란 책 하나 없습니다. 헌책방이든 새책방이든 도서관이든 어느 곳에서 만나는 책이든 마찬가지이고요.

 다만. 요새는 날이 갈수록 껍데기만 번들번들 뒤집어씌워서 눈가림과 눈속임으로 책 장사로 팔아치우는 책이 참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겉발림 책에 속아넘어갑니다. 씁쓸한 요즘 모습입니다. 아무 먹을거리나 사 먹을 수 없듯 아무 책이나 사 읽을 수 없게 되었거든요.

 잘못하면 거짓되고 치우치고 비틀리며 우리 삶을 눈멀게 하는 `농약에 물들 열매들'과 같은 책을 골라서 살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읽을 책이라면 `호박과 같은 책'이어야지 싶습니다. 겉보기는 못생겨도 맛은 좋고 몸에 좋은 호박 말입니다. (2003.2.21. 처음 씀 / 2004.9.9. 고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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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마음을 함께 느끼니 책이 좋다
 [책이 있는 삶 1] 우리 가슴을 울리는 책을 찾아보자


 지지난달 밤, 《마더 존스 자서전》(평민사,1978)을 다 읽었습니다. 참 좋은 책인데 여러 달에 걸쳐서 아주 천천히 읽었습니다. 몸이 고단한 날은 책을 읽다가 곯아떨어지기도 했고, 어느 날은 책을 읽느라 다른 일을 못하기도 했습니다. 마더 존스란 사람은 1830년에 태어나 1930년까지, 꼭 100 해를 산 분입니다. 이름은 ‘메어리 존스’이고, 미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훌륭한 일을 했다고 해서 이름 앞에 ‘어머니(마더,mother)’란 말을 붙였다고 해요. ‘마더 데레사 수녀’처럼 말이에요. 우리 나라에는 전태일 님 어머님한테 이런 이름을 붙여 ‘이소선 어머님’이라 합니다.

 그 마더 존스가 1923년 어느 날, 버지니아 지사를 찾아갔답니다. 이 버지니아 지사는 지사로 지낸 스물세 해 동안 미국에서는 ‘가장 서민을 생각하는 정책’을 펼친 사람이라고 하는군요(마더 존스 말로는). 찾아간 까닭은 감옥에 애꿎게 갇힌 노동자들 때문입니다. 그저 ‘파업’을 했다는 까닭만으로 경영주들이 고용한 사설 보안관과 군인에게 붙잡혀 옥살이를 여러 달째 하는 가녀린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그네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어야겠다며 지사를 찾아갔대요(그때 나이는 93살이었겠군요).


.. “지사님 들어 보세요. 무슨 소리가 들리지요?”
그는 잠깐 귀를 기울였다.
“아뇨, 아무 소리도 안 들립니다.”
“난 들려요. 난 여자들, 사내애들, 계집애들이 밤에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어요. 그들의 아버지가 감옥에 있어요. 아내와 어린애들은 먹을 것도 없이 울고 있어요”
“조사해 보겠읍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고 나는 그가 약속을 지킬 것임을 알았다 ..  〈236쪽〉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이 모두 풀려났답니다. 지사로서는 그런 일이 ‘돈 많은 경영주’들이 몰래 하는 짓이라 하나하나 알아채기 어려웠겠지요. 하지만 그런 애꿎은 소식을 들으면 곧바로 풀어 주려 애썼답니다.

 아무튼 버지니아 지사도 지사이고, 마더 존스도 마더 존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어요. 마더 존스가 “난 들려요. 난 여자들, 사내애들, 계집애들이 밤에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어요” 하는 대목에서요. 거짓말이 아니라 참말로 들었거든요. 그런 목소리를 들었기에, 울음소리를 들었기에 아흔셋이라는 참으로 늙은 할머니 몸으로도 그네들을 돕고자 나서거든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참 젊은 나이이고, 참 할 수 있는 일도 많으며, 돈도 퍽 넉넉하다고 할 수 있어요(한 달에 50만 원 넘게 번다면). 그런데 우리들은 무얼 하나요? 무슨 소리를 듣나요?

 그리고 누군가가 “난 들려요. 난 여자들, 사내애들, 계집애들이 밤에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어요” 하고 우리에게 이야기를 걸 때, 그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 주고, 똑바로 눈을 맞대고 들으면서, 함께 일을 풀자고 다짐할 수 있는가요?

 책 한 권을 읽어도 온몸과 온마음을 다해서 읽어야 좋은 까닭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를 듣는 거예요. 울음과 웃음을 듣는 거라고요. 이 세상 곳곳에 있는 울음소리를 듣고 웃음소리를 듣는 거지요. 그래서 나 혼자만 잘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함께 잘 살아갈 삶을 생각하는 겁니다.


 〈밥 한 그릇〉

 나더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한마디로 대답하리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병들어 본 사람은 알리
 병들어 밥을 먹지 못해 본 사람은 알리
 밥 한 그릇 삭혀서 똥을 눌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행복이라는 걸.
 사랑도 싸움도 그 다음이다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게 해준
 밥 한 그릇의 소중함을 뼈에 사무치도록 알게 해준
 놀랍고 큰 힘,
 그 힘에 대해 고마워할 줄 앎은
 그 다음이다.
 나는 믿는다 그 힘을.
 그 힘 앞에 깨끗이 무릎 꿇는다.


 교사이자 시인이었던 정영상 님이 죽은 뒤 나온 유고시집 5《물인듯 불인듯 바람인듯》(실천문학사,1994)에 나오는 시 하나입니다. 저는 이 시 하나 때문에 이 시모음 한 권을 샀어요.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무릎을 쳤고, 시인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어 봅니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은 돈 몇 푼으로 얻을 수 있는 밥 한 그릇이 아니에요. 농사지은 분들 피땀이 서려 있습니다. 해와 물과 바람과 땅이 어우러져 있어요. 나락에게는 자기 몸을 바치는 아픔이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먹고 있어요. 돈을 먹는 게 아니라 생명을 먹으며 우리 생명을 이어가요.

 아. 시 하나를 읽으며 이런 걸 느낄 수 있다니. 그래서 이런 시를 듬뿍 담은 시모음을 만나서 찬찬히 읽는 맛은 그 무엇과도 견주기 어렵습니다.


 [엄마] 으아아앙!
 [아이] 왜 울어 엄마? 무슨 일 있는 거야?
 [엄마] 지난 여름에 비해 올해는 체중이 너무 늘어서 비키니를 입으면 흉측해 보여!
 [아이] 지구 인구의 반은 먹을 게 없어서 단지 1그램도 살찌지 못하는 판국에, 엄마는 부끄러워서 위로 받으려고 그런 말이나 하고…… 너무한다는 생각 안 들어?


 어젯밤 ‘끼노’란 아르헨티나 만화가가 그린 《마팔다》(아트나인,2004) 7권을 보았습니다. 7권을 여는 만화 가운데 둘째 편에 “엄마가 비키니 수영복을 못 입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꼬마 마팔다는 엄마가 살쪄서 비키니를 못 입는 걱정보다는, 가난한 나라에서 굶고 있는 가녀린 사람들 걱정을 하라고 한 마디 툭 쏩니다.

 《마팔다》란 만화는 1964년∼1973년에 아르헨티나 만화잡지와 일간지에 이어실렸다고 합니다. 무정부주의, 인본주의, 세계평화, 사랑과 믿음과 평등, …… 여러 가지를 말한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그런 사상보다는 ‘한 칸 한 칸에 담는 뼈있는 이야기’가 이 책을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합니다.

 “지난 여름에 비해 올해는 체중이 너무 늘어서 비키니를 입으면 흉측해 보여!”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고, 연속극이나 영화에서도 흔히 나오는 말입니다. 자, 그렇다면 그 다음에 어떤 말을 넣으면 좋을까요?

 참 좋다고 할 만한 책, 읽어서 가슴 뿌듯하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이라면 그 다음 대목, 마지막 넷째 칸에서 우리 가슴으로 파고들거나 뒷통수를 칠 뿐 아니라, 우리가 옳고 착하고 아름답게 생각하며 살아갈 길을 밝혀 줍니다. 이런 데에서도 책을 읽는 맛을 담뿍 느낄 수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책을 읽는 일이란 어떤 일일까요?

 미처 몰랐거나, 제대로 몰랐던 일을 알아가면서 ‘아,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면서 편하게 살았구나’ 하는 걸 깨닫고 팔을 걷어부칠 줄 아는 일은 아닐까요? 콩 한 쪽도 나눠 먹듯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나누는 일은 아닐는지요?

 머리속에 지식만 집어넣는 일은 ‘책읽기’가 아닙니다. 그건 용두질(자위행위)이라고 생각해요. 책읽기란 지식을 익히는 일을 넘어서 우리 마음에 살뜰하고 아름다운 생각을 아로새기는 일이에요. 생각을 아로새기기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삶에 받아들여서 자기 깜냥대로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길이고요. 그래서 저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즐깁니다. 목소리를 들으려고요, 울음소리와 웃음소리를 들으려고요. 가슴으로 파고드는 한 마디를 듣고, ‘어, 지금 내가 뭘하고 있지? 어디에 있지?’를 느끼려고요. (2004.6.11.처음 씀 /2006.12.26.고쳐 씀)

***
요즘 “책을 안 읽는다”는 말이 많고 “책을 읽자”는 운동도 합니다. 그런 여러 가지 일도 나름대로 까닭이 있고 좋기도 하지만, 중요한 본질을 놓치지 싶어요. 그냥 무턱대로 “책을 읽자”고 하기보다는, 책을 읽으니 이렇게 좋더라, 이런 것을 함께 나누는 책을 읽자고 넌지시 이야기를 들려주면 더 좋으리라 생각해요. 그런 뜻에서 이런 기획글을 꾸준하게 써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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