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80 : 푸름이한테 나쁜 책이란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책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1990년에 《아이큐점프》라는 만화잡지에 낱권부록으로 처음 옮겨진 작품입니다. 아이들은 이 만화에 푹 꽂혔습니다. 이와 달리 어른들은 《드래곤볼》을 ‘폭력과 외설로 물든 나쁜 만화’라는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학교에 이 만화책을 갖고 와서 보다가 걸리면 아주 신나게 얻어터질 뿐 아니라 하루 내내 학생과에서 벌을 서고 반성글을 수십 장 써야 하는데다가 ‘부모님을 학교에 불러 오도록’ 하기까지 했습니다.


  만화책 《드래곤볼》은 미르구슬을 놓고 벌이는 실랑이를 한쪽에 둡니다. 다른 한쪽에는 주먹힘으로 권력을 움켜쥐고픈 속셈을 키우는 무리가 있으며, 맞은쪽에는 오직 사랑과 평화를 아끼려는 뜻에서 ‘내 삶 갈고닦기’를 하려는 ‘자기 수련 무술 수행’으로 나아가는 젊은이가 있어요. 일본 소년만화인 탓에 사이사이 ‘여자 벗은 몸’ 모습이 나오기는 하는데, 이런 모습은 낱권책 처음 한두 권에서 몇 차례 나오고 그칠 뿐, 나중에는 더 나타나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조그마한 만화책 한두 칸이 ‘불온 외설’이 아니라, 이 나라 사회와 정치와 경제와 문화야말로 ‘불온 외설’이라 할 만하다고 느껴요.


  1990년부터 몇 해 동안 여러 시민단체와 청소년단체와 교사단체에서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책을 손가락질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서 빼앗은 이 만화책을 그러모아 공공장소에서 불태우곤 했습니다. ‘청소년 위해도서’인 만큼 불질러 마땅하다고들 외쳤습니다. 그런데 교무실 한구석에서는 이 ‘청소년 위해도서’를 아이들한테서 빼앗아 킬킬대며 읽는 어른 교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너희가 성년(열아홉 꽉 채운 나이)이 되면 마음껏 읽는데 왜 벌써 보려 하느냐?’ 하고 꾸짖었습니다. ‘위해도서’, 곧 ‘나쁜 책’이라면 푸름이한테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나쁜 책이 아닐까요. 어린이한테는 나쁘고 푸름이한테는 괜찮은 책이 있을까요. 푸름이한테는 걸맞지 않고 어른한테는 걸맞다 할 책이 있을까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다니는 아이들 보라며 만든다는 만화영화가 교육방송에서 흐릅니다. 이 만화영화를 살피면, 인형들이 자동차를 몹니다. 여자는 얼굴과 몸매를 예쁘장하게 보이도록 가꿉니다. 남자는 도시에서 회사원 일을 하는 모습으로만 나옵니다. 집이라면 온통 아파트일 뿐입니다. 스스로 흙을 일구거나 돌보는 모습은 나오지 않습니다. ‘정의를 지킨다’고 하면서 인형이랑 동물이 전쟁무기를 만들어 나쁜 무리를 물리친다고 나옵니다.


  토리야마 아키라 님이 빚은 만화책 《드래곤볼》 마흔둘째 권은 기나긴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면서 ‘손오공’이 “그렇군. 넌 아직 하늘을 나는 방법도 모르는구나. 하긴, 무리도 아니지. 스승도 없을 테고, 그런 걸 생각한 적도 없을 테니(240쪽).” 하고 말합니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손오공은 미르님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돈을 바라거나 권력을 꾀하거나 이름을 얻을 마음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아름답게 살아가면서 착하고 참다우며 맑은 길을 걷고 싶을 뿐입니다. 그래서, 손오공은 마음껏 하늘을 날고, 놀라우며 대단한 힘을 밑바닥에서 한껏 끌어올릴 수 있어요. 착한 삶에서 착한 넋과 꿈이 태어납니다. (4345.4.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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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79 : 이야기를 읽는 책

 


  나는 ‘오이겐 헤리겔’이라는 독일사람을 모릅니다. 이녁이 어떤 삶을 꾸렸고, 어떤 넋을 펼쳤으며, 어떤 사랑을 나누려 했는가를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이가 쓴 책 《마음을 쏘다, 활》(걷는책,2012)을 읽습니다. 조그마한 책 하나를 읽으며 어느 한 사람이 걸어간 삶과 누리던 넋과 나누던 사랑을 조용히 헤아립니다.


  누군가한테 묻듯, 또는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하는 듯, 혼자말로 “왜 스승은 필수적이긴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준비 작업을 경험 있는 제자에게 맡기지 않는가 … 무엇 때문에 그는 매 수업 시간마다 항상 똑같이 엄격하게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반복하며, 또 제자들에게 똑같이 따라하게 하는가(88쪽)?” 하고 이야기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스승이라 하는 사람뿐 아니라 여느 어머니도 이와 같아요. 아기한테 젖을 물릴 때 언제나 똑같은 몸짓입니다. 아기 기저귀를 갈며 늘 똑같은 매무새입니다. 아이들 밥을 차리며 노상 똑같은 몸가짐입니다.


  스스로 씨앗을 갈무리해서 심어 돌보아 거두는 사람이든, 다른 사람이 심어 돌보아 거둔 곡식을 돈을 치러 장만한 다음 집에서 물로 헹구고 밥으로 짓는 사람이든, 한결같이 ‘똑같은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날마다 되풀이해요. 아이들한테 옷을 입히려 하면, 더러워진 옷을 벗겨 새로 빨래하고 말리고 개고 건사합니다. 목을 넣고 팔을 넣으며 단추를 채웁니다. 어느 때라도 어느 한 가지 어긋나거나 바꾸지 않습니다. 가만가만 모든 일을 고스란히 되풀이합니다.


  어느 재주나 솜씨와 얽힌 자리에서만 모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이 되풀이한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으레 수저를 들어 밥이든 반찬이든 하나하나 집고 알맞게 입에 넣어 찬찬히 씹어서 삼켜요. 주걱으로 입에 퍼넣는대서 밥먹기가 이루어지지 않아요. 손을 움직이지 않고 밥상 앞에 멀뚱멀뚱 앉는대서 내 배가 그득 차거나 부르지 않아요. 여든 살이든 마흔 살이든 다섯 살이든, 스스로 수저를 들어 밥을 떠서 입에 넣어야 합니다. 날마다 끼니자리에서 이 일을 똑같이 되풀이합니다. 똑같이 똥을 눕니다. 똑같이 숨을 쉽니다. 똑같이 말을 합니다.


  집안일은 늘 같은 일이라고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집밖일이라 하는 회사일 또한 노상 같은 일 아닌가 싶어요. 언제나 같은 출근길입니다. 언제나 같은 길을 걷거나 같은 자동차나 버스를 탑니다. 언제나 같은 곳에 가서 같은 책상에 앉거나 같은 일터에 서요. 기계를 놀리든 책상맡 셈틀을 붙잡든 종이와 펜대를 붙잡든, 집밖일을 하는 사람들 누구나 날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해요.


  곧, 사람이 살아가며 빚거나 누리는 새로운 생각과 꿈이란, 어디에서나 싱그럽고 슬기롭게 태어나는구나 싶어요. 사진기를 들고 싸움터를 누비거나 집회 현장에 달려가야 ‘빛나거나 놀라운’ 보도사진이 태어나지는 않아요. 내 집에서 아이들 놀며 웃음짓는 모습을 마주하는 삶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을 때에도 얼마든지 ‘빛나거나 놀라운’ 사진이에요.


  빛나거나 놀라운 삶이기에 빛나거나 놀랍게 나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어요. 빛나거나 놀랍게 나눌 책은 날마다 언제 어디서라도 똑같이 누립니다. (4345.3.28.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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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78 : 삶을 읽는 길

 


  일본사람 오바나 미호 님이 그린 만화책 《아이들의 장난감》(학산문화사,2004) 둘째 권을 읽으면, 184∼185쪽에 “애초에 너희 엄마가 널 싫어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부모한테서 미움이나 받는 아이가 너처럼 제대로 자랄 수 있겠냐?”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는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기 앞서, 내 어버이한테 아이로 살아오는 동안에도 생각했습니다. 내가 내 아이들을 싫어할 수 없을 뿐더러, 내 어버이가 나를 싫어할 수 없어요. 곧, 내 모습은 내 어버이가 나를 사랑하던 모습이요, 내 아이들 모습은 내가 어버이로서 내 아이들을 사랑하는 모습인 만큼, 나 스스로 나를 살가이 사랑할 수 있을 때에, 나부터 좋은 삶을 꽃피우며 아이요 어버이인 나날을 즐거이 누릴 수 있어요.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둘째 권으로 나온 《나에게 돈이란 무엇일까?》(철수와영희,2012)를 읽으면, 69쪽에 “원래 돈을 벌려는 이유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잖아요. 그렇다면 열심히 일해서 돈 벌고, 번 돈은 우리가 가장 행복해지는 방식으로 잘 쓰면 되겠죠.”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 네 식구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기 앞서, 내 꿈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늘 헤아립니다. 돈이란, 많이 벌거나 적게 벌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나와 내 식구들이 사랑스레 살아가도록 이끄는 일을 즐기고, 서로서로 예쁘게 어우러지는 놀이를 누리며, 언제나 웃고 떠드는 이야기를 꽃피우는 나날일 때에 아름답다고 느껴요. 돈을 많이 벌거나 적게 벌자며 하는 일이란 없어요. 스스로 기쁘려고 하는 일이에요. 스스로 삶을 누리기에 알맞을 만큼 돈을 벌어요.


  먼먼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한테 돈을 더 많이 벌도록 이끄는 이야기를 담는 말이나 책은 아주 덧없습니다. 〈허생전〉이라는 옛문학도 있고, 러시아사람 톨스토이 님이 적바림한 〈사람한테는 땅이 얼마나 있어야 하나〉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돈벌이는 부질없습니다. 삶을 누리는 하루가 대수롭습니다. 돈더미는 덧없습니다. 삶을 나누는 사랑이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나날이 ‘처세·경영·자기계발’이라는 이름을 내건 ‘돈벌이 하자는 책’이 쏟아집니다. 돈벌이 또한 더 많이 더 크게 더 빨리 하자는 책이 넘칩니다. 사람으로 태어났을 때에는 누구나 아이를 사랑하는 길이나 아이를 보살피는 길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길을 몸과 마음에 담기 마련이지만, 스스로 좋은 삶길을 깨닫지 못하고는 ‘육아책·교육책·학습책’을 굳이 읽으려 합니다.


  종이로 된 책은 누구나 굳이 안 읽어도 됩니다. 종이로 된 책에는 삶도 생각도 슬기도 이야기도 없어요. 삶도 생각도 슬기도 이야기도 모두 내 가슴에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랑이요, 내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내 손으로 일구는 삶이요, 내 다리로 빛내는 슬기예요.


  곧, 어떤 책을 읽는가는 아무것 아닙니다. 이 책을 읽어도 되고 저 책을 읽어도 됩니다. 이 책을 안 읽어도 되고 저 책을 안 읽어도 됩니다. 내 삶을 읽고, 내 옆지기와 아이들 삶을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아무 지식이 없어도 됩니다. 오직 좋은 사랑과 빛나는 꿈을 건사하며 어깨동무하는 나날이면 넉넉합니다. (4345.3.1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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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77 : 어른이 되어 책읽기

 


  이 나라에 장애인이 470만 남짓 있다지만, 길거리를 나다니면서 ‘장애인 마주치기’는 참 어렵습니다. 우리들이 길거리를 하루 내내 누빈다 하더라도 ‘이처럼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장애인 스스로 동네마실을 하기 무척 힘들기 때문입니다.


  장날을 맞이해 두 아이를 데리고 네 식구 읍내마실을 합니다. 쉬가 마려울 때에 느긋하게 쉬를 할 만한 데를 찾기 만만하지 않습니다. 갓난쟁이 안고 다리를 쉴 만한 걸상을 찾기 벅찹니다. 마땅한 쉼터나 공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마, 여느 도시라 하더라도 걸상이나 쉼터나 공원을 찾기는 몹시 빠듯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한복판이나 부산 한복판에서 사람들 누구나 느긋하게 다리를 쉬며 아이들이 뛰놀 만하거나 어머니가 젖을 물릴 만한 곳은 얼마나 있을까요. 옆사람 담배내음이나  손전화 시끄러운 수다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한 쉼터는 얼마나 있을까요. 따사로운 햇살을 누릴 만한 눈부신 나무숲이나 풀숲은 어디에 있을까요.


  홍윤 님이 쓴 《별 다섯 인생》(바다출판사,2011)을 읽습니다. “아침부터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엄마는 활짝 핀 꽃이 눈에 띄어 집에만 있는 내게 보여준다며 사진을 잔뜩 찍어 오셨다(184쪽).” 하는 대목에 밑줄을 긋습니다. 스물다섯 나이에 당신 몸이 몹시 아픈 줄 깨달은 홍윤 님은 다른 숱한 사람들처럼 쉬 바깥마실을 하지 못합니다. 집안에서도 어머니가 일으켜세워 주고 어깨동무를 해 줍니다. 홍윤 님 어머님은 마흔 먹은 딸아이를 마치 갓난쟁이 때처럼 알뜰히 보살핍니다.


  그래, 내가 이분 어머니라 하더라도 이렇게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동네에서 새로 피는 꽃송이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집 바깥에서 겪은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우며 ‘이 땅에 태어나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나누겠지요.


  추리문학을 즐겨읽던 홍윤 님은 2010년 12월 13일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마흔을 살짝 넘긴 나이에 죽음길로 떠났습니다. 2011년이 저물던 12월 13일을 맞이해 《물만두의 추리책방》(바다출판사)과 《별 다섯 인생》이 나란히 나왔습니다. 나는 이 두 권 가운데 《별 다섯 인생》을 먼저 장만해서 천천히 읽습니다. 아픈 몸으로 아픈 글을 꾸준히 적바림하는 홍윤 님 글을 읽으며,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아픈 옆지기를 가만히 헤아립니다. 나는 얼마나 사랑스럽게 아픈 옆지기를 돌아보며 아끼는 사람일까요. 아이로 태어나 어른으로 살아가는 오늘, 나는 얼마나 어른다운 삶을 누리면서 내 살붙이를 아끼는가 궁금합니다.


  “그동안 안 읽은 책이 얼마나 많을까. 그 많은 책 중에 얼마나 많은 보석이 숨어 있을까. 그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빛내지 못한 것이 가슴에 박혀 아프다.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좋은 독자가 아니어서 죄송하다고. 그래도 제발 책을 쓰시라고 말씀드리면 너무 뻔뻔할까(321쪽).” 하는 말처럼, 아름다운 책은 참으로 많습니다. 아름다운 책이 많듯, 아름다운 사람이 많고, 내 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 마음밭에도 아름다운 사랑씨앗이 많이 자라겠지요.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떤 꿈과 사랑을 책 한 권에서 길어올리며 살아가나요. (4345.3.9.쇠.ㅎㄲㅅㄱ)

 

 

(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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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번째 글을 올리고 보니 174번째 글을 빼먹었다. -_-;;;; 바보로군...

 


 책으로 보는 눈 174 : 자연을 버린 책읽기

 


 케라 에이코 님이 그린 만화책 《あたしンち(私の家》가 있습니다. 이 만화책 이름을 한국말로 옮기면 “우리 집”입니다. 그런데 이 만화책을 한국말로 옮긴 곳에서는 “우리 집”도 “우리 엄마”도 아닌 “아따맘마’로 옮겼어요. 케라 에이코 님은 ‘와타시노’를 줄여 ‘아타(아따)’로 적고, 이녁 어머니와 식구들이 부대끼는 삶을 만화로 빚어 “우리 집”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아따맘마”라는 한글판 만화책 이름으로는 무슨 이야기를 밝힐 수 있을까 알쏭달쏭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아따맘마”는 일본말 ‘아따’랑 영어 ‘맘마’를 더한 이름입니다. 일본사람이 영어쓰기를 좋아한대서 “우리 엄마”를 “아따맘마(私の母)”처럼 적을는지 모르지만,  이 만화책을 내놓은 분은 영어로 이름을 적지 않았어요. 한글판 “아따맘마”에 나오는 사람들 이름을 한국 이름으로 붙이고, 어머니 아버지 고향을 전라남도로 삼으면서, 왜 책이름은 엉뚱하게 붙여야 했을까요.

 

 수수한 “우리 집”에서 벌어지는 수수하며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읽다가 자꾸자꾸 책이름이 걸립니다. 우리한테는 참말 훌륭하거나 놀랍거나 멋지거나 아름다운 글과 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카와 아키코 님이 쓴 《흙에서 자라는 아이들》(호미 펴냄,2011)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일본에 있다는 ‘숲 유치원’, 곧 자연 놀이터에서 자라며 뛰도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도시 물질문명이 한국보다 훨씬 앞선 일본은 ‘숲 유치원’ 또한 한국보다 훨씬 앞서 태어납니다. 일본에서는 ‘숲 유치원’ 말고도 ‘멧골학교’도 꽤 일찍부터 생겼습니다. 일본에서는 ‘생활협동조합’도 아주 일찍부터 이루어졌습니다. ‘푸른정당(녹생당)’ 또한 참으로 일찍부터 만들었고, 일본 책마을은 아이와 어버이와 교사가 나란히 읽을 그림책을 꽤 예전부터 알차게 빚었습니다.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24쪽).”는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오늘 한국땅에서는 ‘아이 낳은 어버이’가 자연을 어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는 몸가짐과 눈길이 달라진다고 느낄 일이 거의 없으리라 봅니다. 시골마을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줄어들며, 온통 도시로 몰려들고, 도시 가운데 서울과 경기도에서 북적거려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동물 캐릭터 같은 인공적인 것에 아주 익숙하다(25쪽).”는 말마따나, 오늘날 아이들은 ㅃㄹㄹ라느니 무엇이라느니 새겨진 신이나 옷이나 밥그릇이나 놀잇감을 뀁니다. 아이들은 자연하고 동떨어집니다. 아니, 아이들에 앞서 어른부터 자연하고 등을 져요. 자연하고 등을 지니 자연을 파헤치는 정책이 끊이지 않는데, 이보다 ‘사람인 이웃’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말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서로 도우며 품앗이하는 넋이 잊힙니다.

 

 집이 배움터가 되지 못하는 요즈음 한국입니다. 집이 삶터 노릇하고 동떨어지는 요즈음 한국이에요. 여기에, 마을도 학교도 공공기관도 문화시설도 배움터나 삶터나 사랑터나 만남터나 어울림터나 꿈터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4345.1.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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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2-17 23:03   좋아요 0 | URL
“부모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고 뭇 생명을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자연에 대한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진다(24쪽).”- 이것, 맞아요.

제가 밤길에 고양이를 무서워했더니 어릴 적 아이도 고양이를 무서워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턴 예쁜 야옹아, 하면서 불러 주고 그랬어요. 아이가 고양이를 예뻐하라고... 동물을 사랑하자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랬다기보다 무엇을 무서워한다는 게 대단한 스트레스잖아요. 하지만 무엇을 예뻐하면 행복해지잖아요. 요즘은 아이가 개나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자고 조를 정도이니, 성공한 것이죠. 제가 잘 했죠? ㅋ

숲노래 2012-02-18 06:51   좋아요 0 | URL
좋은 사랑은 삶 곳곳에 예쁘게 자리하면서
아이들하고 기쁜 웃음을 피어냈으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