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84 : 전남 고흥에서 띄우는 편지
이웃집 할아버지가 맨발로 경운기를 몹니다. 경운기를 길가에 대고는 길가에 펼쳐 말리던 마늘을 그러모아 그물주머니에 담습니다. 네 식구 천천히 거닐며 마실을 하는데, 이웃집 할아버지가 부릅니다. 이웃집 할아버지는 당신 딸아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니 당신 딸아이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지 않겠느냐 말씀합니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이 마을 자그마한 어느 한 사람 이야기를 듣습니다. 1960년에 태어나 1984년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만 어느 ‘시골학교 교사’ 이야기를 듣습니다. 올 2012년 5월 30일에, 면소재지에 있는 도화중학교 한켠에 ‘무명교사 예찬비’를 옮겼다며, 이 빗돌이 예전에는 당신 딸아이가 교사로 일하던 흥양초등학교 한켠에 있었다고, 아마 한국에 ‘무명교사 예찬비’가 선 곳은 여기 한 군데만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웃집 할아버지 말씀을 들은 이튿날,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면소재지 중학교로 찾아갑니다. 학교 앞문 오른쪽에 빗돌이 있습니다. 빗돌에는 참말 ‘무명교사 예찬’이라는 글월이 새겨졌습니다. ‘핸리 반 다이크’라는 분이 쓴 글이라 하는데(맞춤법으로는 ‘헨리’가 맞으나 빗돌에는 ‘핸리’로 적혔습니다), 빗돌은 1985년 2월 24일에 새겼습니다. 이웃집 할아버지네 딸아이는 시골 초등학교를 나와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되었고, 이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는 가난한 아이들을 도우려고 이녁 월급봉투를 쪼개었으며, 딸아이가 그만 숨을 거둔 뒤로는 할아버지가 딸아이 뜻을 이어 스물일곱 해 동안 장학금 나누기를 고이 이었다고 합니다.
이름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이 안 알려졌을 뿐인 시골 교사라 해야 맞겠는데, 시골 교사도 시골 교사이지만, 시골 교사인 딸아이 넋을 고이 이어 ‘흙을 일군 품’으로 시골 아이들한테 장학금을 마련한 시골 할아버지도 시골 할아버지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무명교사 예찬’이 있다면 ‘무명농사꾼 예찬’도, 조용히 흙을 일구는 사람을 기리는 노래도 있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다가 전남 고흥으로 시집가서 ‘흙일꾼 옆지기’로 지내다가 늦깎이로 교사가 되어 시골학교에서 가르치는 조경선 님이 쓴 교육일기입니다. 시골 교사 조경선 님은 “교사도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대학 평준화를 위한 활동을 함께 해 나갔으면 좋겠다.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끔찍한 입시경쟁에서 벗어나기 힘들(83쪽)”겠다고 얘기합니다. “(고흥)군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외부 도시로 진학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주말마다 서울의 입시학원 강사를 섭외해 소수의 아이들에게 입시 과목을 수강하도록(81쪽)” 한답니다. “농촌의 아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로 가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107쪽)” 한답니다.
군청에서 돈을 대어 ‘이름난’ 학원강사를 불러 입시교육을 시켜 준들,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모두 큰도시 대학교로 나아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삶이란, 돈이란, 꿈이란, 사랑이란, 공부란, 책이란 무엇일까요. (4345.6.18.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