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85 : 가장 좋은 책을 읽기

 


  나는 언제나 내 마음으로 느낄 ‘가장 좋은 책’을 읽습니다. 나는 둘째로 좋다고 여기거나 셋째로 좋다고 느끼는 책은 안 읽습니다. 언제나 그때그때 내 마음에 가장 좋다고 여기거나 느낄 책을 읽습니다. 다만, 오늘 내가 가장 좋다고 여기거나 느낄 책을 읽는다지만, 며칠이 지나고 보면 오늘 읽은 책보다 모레나 글피에 읽을 책이 한결 좋다고 여기거나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레가 지나고 보름이 지난 뒤 돌아보면, 예전에 가장 좋다고 느끼거나 여기며 읽던 책이 여러모로 후줄근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오늘 이곳에서 가장 좋다고 여기는 책을 장만해서 가장 좋은 넋을 추슬러 가장 좋은 손길로 책장을 넘깁니다.


  나는 언제나 내 몸으로 느낄 ‘가장 좋은 밥’을 먹습니다. 나는 둘째나 셋째로 좋은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노상 가장 좋다고 여기거나 느낄 밥을 먹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보금자리가 나로서는 가장 좋다고 여길 보금자리이지, 둘째나 셋째로 좋다고 여길 데가 아닙니다. 더없이 마땅한데, 이럭저럭 괜찮거나 이냥저냥 낫다 싶은 삶을 누릴 수 없습니다. 나들이를 다니든 먼먼 여행을 하든, 가장 가고 싶은 데를 골라 가장 누리고 싶은 하루를 누립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가장 빛나는 슬기와 깜냥으로 내 꿈을 펼칩니다.


  《람타, 현실 창조를 위한 입문서》(아이커넥,2012)를 읽습니다. 《아나시타시아 6 : 가문의 책》(한글샘,2011)을 읽습니다. 사람들마다 달리 받아들일 텐데, 어떤 분한테는 마음에 아무것 남기지 못하는 책이 될는지 모르나, 나한테는 내 넋을 새롭게 가꾸고 착하게 돌보는 길잡이책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만화책 《악마와 러브송》 열석 권을 챙겨서 읽고, 만화책 《나츠코의 술》 열두 권 또한 챙겨서 읽습니다. 나는 만화책을 모두 온돈을 치러 깨끗한 판으로 장만합니다. 글책이든 그림책이든 사진책이든 한 번 읽고 그치는 일이 없습니다. 만화책도 한 번 읽고 덮지 못합니다. 옆지기와 함께 읽고 아이들도 뒷날 함께 읽습니다. 곧, 적어도 네 사람이 한두 차례는 읽을 책입니다. 만화책이라서 아무 만화책이나 장만할 수 없을 뿐더러, 그림책이라서 ‘유치’한 책일 수 없어요. 늘 가장 예쁘고 빛나는 넋을 담는 책이요, 한결같이 마음을 살찌우면서 북돋우는 책이에요.


  가장 좋다고 여기는 책을 장만하는 만큼, 나는 내 주머니 가장 좋은 돈을 꺼내어 책값을 치릅니다. 내가 가장 좋은 땀을 흘려 번 돈으로 내가 가장 좋다고 여기는 책을 장만합니다. 내가 가장 좋다고 여기는 보금자리에서 내가 가장 좋다고 여기는 말미를 마련해서 읽습니다.


  내가 사랑할 짝꿍이란 나 스스로 가장 사랑할 짝꿍입니다. 사랑스러운 짝꿍과 누리는 하루란 가장 사랑스러운 나날입니다. 콩 한 알을 심든 벼 한 포기를 심든 가장 좋은 논밭에서 가장 좋은 땀을 흘립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가장 좋은 목숨물입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을에 가장 좋은 여름비가 내려, 가장 좋게 흙을 적시고 가장 좋게 도랑물이 흐릅니다. 논개구리는 가장 좋은 목청을 뽑아 가장 좋은 노래를 부릅니다. 깊은 밤 가장 좋은 바람소리를 들으면서, 내 곁 가장 좋은 살붙이하고 가장 좋은 꿈을 꾸며 잠듭니다. (4345.6.30.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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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84 : 전남 고흥에서 띄우는 편지

 


  이웃집 할아버지가 맨발로 경운기를 몹니다. 경운기를 길가에 대고는 길가에 펼쳐 말리던 마늘을 그러모아 그물주머니에 담습니다. 네 식구 천천히 거닐며 마실을 하는데, 이웃집 할아버지가 부릅니다. 이웃집 할아버지는 당신 딸아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니 당신 딸아이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지 않겠느냐 말씀합니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 동백마을 작은 집에서 살아가는 우리 식구는 이 마을 자그마한 어느 한 사람 이야기를 듣습니다. 1960년에 태어나 1984년에 그만 숨을 거두고 만 어느 ‘시골학교 교사’ 이야기를 듣습니다. 올 2012년 5월 30일에, 면소재지에 있는 도화중학교 한켠에 ‘무명교사 예찬비’를 옮겼다며, 이 빗돌이 예전에는 당신 딸아이가 교사로 일하던 흥양초등학교 한켠에 있었다고, 아마 한국에 ‘무명교사 예찬비’가 선 곳은 여기 한 군데만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웃집 할아버지 말씀을 들은 이튿날,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를 태우고 면소재지 중학교로 찾아갑니다. 학교 앞문 오른쪽에 빗돌이 있습니다. 빗돌에는 참말 ‘무명교사 예찬’이라는 글월이 새겨졌습니다. ‘핸리 반 다이크’라는 분이 쓴 글이라 하는데(맞춤법으로는 ‘헨리’가 맞으나 빗돌에는 ‘핸리’로 적혔습니다), 빗돌은 1985년 2월 24일에 새겼습니다. 이웃집 할아버지네 딸아이는 시골 초등학교를 나와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되었고, 이 시골 초등학교를 다니는 가난한 아이들을 도우려고 이녁 월급봉투를 쪼개었으며, 딸아이가 그만 숨을 거둔 뒤로는 할아버지가 딸아이 뜻을 이어 스물일곱 해 동안 장학금 나누기를 고이 이었다고 합니다.


  이름없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이 안 알려졌을 뿐인 시골 교사라 해야 맞겠는데, 시골 교사도 시골 교사이지만, 시골 교사인 딸아이 넋을 고이 이어 ‘흙을 일군 품’으로 시골 아이들한테 장학금을 마련한 시골 할아버지도 시골 할아버지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무명교사 예찬’이 있다면 ‘무명농사꾼 예찬’도, 조용히 흙을 일구는 사람을 기리는 노래도 있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서울 여자, 시골 선생님 되다》(살림터,2012)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다가 전남 고흥으로 시집가서 ‘흙일꾼 옆지기’로 지내다가 늦깎이로 교사가 되어 시골학교에서 가르치는 조경선 님이 쓴 교육일기입니다. 시골 교사 조경선 님은 “교사도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대학 평준화를 위한 활동을 함께 해 나갔으면 좋겠다. 대학이 서열화되어 있는 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끔찍한 입시경쟁에서 벗어나기 힘들(83쪽)”겠다고 얘기합니다. “(고흥)군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외부 도시로 진학하는 것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주말마다 서울의 입시학원 강사를 섭외해 소수의 아이들에게 입시 과목을 수강하도록(81쪽)” 한답니다. “농촌의 아이들은 서울이라는 도시로 가서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107쪽)” 한답니다.


  군청에서 돈을 대어 ‘이름난’ 학원강사를 불러 입시교육을 시켜 준들, 이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마치면 모두 큰도시 대학교로 나아가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삶이란, 돈이란, 꿈이란, 사랑이란, 공부란, 책이란 무엇일까요. (4345.6.1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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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15: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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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07: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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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83 : 책에 담는 이야기

 

 

  스웨덴 할머니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이 남긴 보배와 같은 이야기책 가운데 《그리운 순난앵》(열린어린이,2010)이 있습니다. 순난앵 이야기가 애틋해 여러 차례 읽었고, 따로 그림책으로 나온 판은 아이한테 곧잘 읽어 주었습니다. 순난앵마을 작은 아이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그마한 아이가 “오빠, 내 발이 그러는데, 보드라운 모래랑 푹신푹신한 잔디가 너무 좋대(26쪽).” 하고 읊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이 글월에 밑줄을 천천히 긋고는 오래도록 곱씹습니다. 나도 맨발로 보드라운 흙을 밟고 보드라운 가랑잎을 밟을 때에 참말 좋습니다. 내 발가락과 발바닥이 좋아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일본사람 콘노 키타 님이 그리는 만화책 《다음 이야기는 내일 또》(대원씨아이,2012) 셋째 권을 읽다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깜짝 놀랄 만큼 많은 걸 깨닫게 돼요. 난 사소한 일에도 짜증내고 화내고 언성을 높이는 아직 부족하고 못난 엄마지만, 마음은 언제까지나 중력을 거스르고 위로 위로 뻗어 나가고 싶어요(58쪽).” 하고 흐르는 대목을 두고두고 되읽습니다. 만화책이라 차마 밑줄을 긋지는 못합니다. 그저 곰곰이 되씹습니다.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날마다 깜짝 놀랍니다. 맑은 넋을 헤아리고 고운 꿈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꾸로 아이들이 어버이인 나를 바라볼 때에 어떤 넋과 꿈을 돌아볼 만한가 하고 되뇝니다. 나 스스로 고운 넋과 맑은 꿈으로 살아가면서 아이들 또한 즐겁게 좋은 이야기 물려받을 수 있어야 기쁜 하루가 되리라 느낍니다.


  책에 담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내가 아이들하고 누리는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아로새기는 내 좋은 이웃들 삶을 생각합니다. 내가 아이들하고 늘 어울리며 새롭게 되새기는 삶을 생각합니다.


  어떤 책을 읽을 때에 기쁠까요. 어떤 삶을 일굴 때에 기쁠까요. 어떤 책을 장만해서 읽고 책꽂이에 곱게 꽂으면 즐거울까요. 어떤 삶을 누리면서 아이들과 이야기꽃 피울 때에 즐거울까요.


  모든 길은 내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부터 ‘책에 길이 있다’고 말했겠지요. 내 마음속에 길이 있기에, 책을 읽는 동안 ‘아하, 오늘 내 삶이 바로 내가 찾던 길이로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책을 덮으면서 ‘그래, 오늘 내가 즐겁게 누리는 삶이 내가 찾던 길이네’ 하고 알아챕니다.


  마음으로 읽을 때에 비로소 책입니다. 마음으로 읽을 때에 비로소 삶입니다. 사랑도 믿음도 꿈도 이야기도 모두 마음으로 읽습니다. 책이든 신문이든 지식을 얻자며 읽을 수 없습니다. 붙잡는다 싶으면 가루처럼 바스라지는 지식은 붙잡을 수 없거니와, 어떠한 책도 지식을 담지 못합니다. 지식으로 보이는 헛것을 담으려 할 뿐입니다. 어떠한 책도 사랑을 담습니다. 오래도록 따숩게 돌아보면서 껴안을 사랑을 담습니다. 글을 쓰는 이부터 스스로 즐겁고, 글을 읽는 이까지 모두 즐거울, 가장 빛나는 사랑을 담는 책입니다. 애써 책을 읽으면서 내 씩씩하고 어엿한 길을 찾고 싶은 사람이란,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내 하루를 씩씩하고 어엿하게 돌보면서 아끼고픈 사랑을 빛내는 사람입니다. (4345.6.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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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82 : 고향이 되는 책

 

 

  2006년에 처음 나온 《열네 살의 철학》(민들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일본 푸름이 가운데 30만 남짓 이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하기에 그리 많이 읽는가 생각하다가는 그만 이 책을 잊은 채 여러 해 흐릅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봅니다. 나는 2006년 3월에 이 책이 나올 무렵 삶터를 옮겨야 했습니다. 이무렵부터 책짐을 싸서 이듬해 봄에 새 삶터로 옮겼지만, 혼자 책짐을 꾸리고 새 삶터를 알아보러 다니느라 이무렵 갓 나온 이 책은 끈으로 친친 묶인 채 한 해를 넘겼고, 새 삶터로 옮긴 뒤에도 끈에서 좀처럼 풀리지 못하다가 또 두 차례 더 삶터를 옮깁니다. 느긋하게 책을 펼칠 겨를 없이 하루하루 보냈어요. 이제 우리 식구는 고즈넉한 시골마을에 기쁘게 집을 얻어 지내기에 다시는 책짐을 꾸리지 않아도 되리라 생각합니다. 자그마치 여섯 해만에 《열네 살의 철학》이라는 책을 ‘갓 나온 책’으로 삼아 읽습니다.


  “나와 인류 전체는 다른 게 아니기 때문에 내가 좋아지지 않으면 인류는 좋아지지 않는 거야(170쪽).”라든지 “부모님은 일을 하기 위해 사는지, 아니면 살기 위해 일하는지, 과연 어느 쪽일까(131쪽)?”라든지 “관념이 현실을 만들지, 현실이 관념을 만드는 건 결코 아니야(92쪽).”라든지, 천천히 밑줄을 그으며 찬찬히 되새깁니다. 사람들이 쓰는 말은 어떻게 해서 태어났을까를 생각해 보자(40쪽)는 대목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내가 오늘 적바림하는 글 한 줄에는 어떠한 사랑과 꿈이 깃드는가를 되새깁니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버지더러 ‘책 그만 읽’고 ‘저희랑 같이 놀’자고 합니다. 책을 덮습니다. 아버지라고 책만 읽는 사람이 아니라, 이른새벽부터 늦은밤까지 너희랑 복닥이고 또 너희 밥을 먹이고 또 너희 옷을 빨고 또 너희 잠잘 집을 치우고 또 너희 누릴 온갖 것 건사한다며 땀흘리다가, 등허리 두들기며 살짝 허리 펴자면서 이렇게 몇 분쯤 책을 쥘 뿐인데, 요만큼이나마 봐주면 안 되겠니, 하는 말이 슬며시 새어나려다가 맙니다. 새삼스레 이런 말 한 마디 다시금 돌아봅니다.


  아이랑 손을 잡고 달립니다. 아이를 안고 간지럼 피웁니다. 같이 노래하고 같이 풀내음 맡습니다. 아이들 모두 가까스로 재우고 나서 살짝살짝 넘기던 《어머니전》(호미,2012)에 나오는 이 나라 섬마을 어머니들 삶이 떠오릅니다. 《어머니전》을 쓴 강제윤 님은 섬마을에서 만나는 할머니(어머니)들한테서 얘기를 찬찬히 듣고는 책 하나로 갈무리했는데, 어느 섬마을을 찾아가든 “이제는 할머니가 스스로 고향이 되었다(39쪽).”고 느낀다는 생각자락을 적바림합니다. 그래, 이런 말마따나 우리 식구들은 ‘아버지네 어머니랑 아버지’하고 ‘어머니네 어머니랑 아버지’를 뵈러 먼먼 마실을 다닙니다. 아이들 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보려고 먼먼 길을 기꺼이 찾아오십니다. 내 어머니와 옆지기 어머니는 당신 스스로 ‘고향’입니다. 나와 옆지기는 우리 스스로 아이한테 ‘고향’입니다. 그리고, 내 아버지와 옆지기 아버지한테 우리 집 두 아이는 ‘또다른 고향’이 됩니다. 먼먼 길 고단히 달려오면서 싱긋 웃을 수 있습니다. 먼먼 길 바쁜 틈 쪼개어 찾아오면서 맑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4345.5.20.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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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81 : 삶이 곧 시, 책이 바로 사랑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삼인,2012)를 엮은 이흥환 님은 “대개의 전쟁사가 전투 기록, 전략전술사로만 기술된 군사이거나 전쟁의 배경, 원인에만 치중한 정치사이다. 이런 기록은 생명력이 없다. 생명력이 없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며, 생명력이 없는 기록은 그래서 잊히기 쉽다(16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 대목에 밑줄을 그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죽었다 하더라도 이들 죽은 넋을 기리거나 돌이킬 수 있어야 역사일 텐데, 막상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죽었다 하는 싸움터 이야기를 들출 때에 으레 남쪽으로 쳐들어왔다느니 누가 나쁜 놈이라느니 하는 목청만 높이기 일쑤예요. 서울 어느 동네에서 마구 철거를 하며 재개발을 하려 들 때에 그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는데, 정작 이들 슬픈 넋을 기리거나 달래는 몸짓은 없이 법이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하는 목소리가 드높기까지 해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인걸요. 사람이 모여 이루어지는 마을인걸요.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마을을 아우른다는 나라인걸요.


  민주와 평화를 바라던 1980년대 어느 날 어느 곳에 몇 천이나 몇 만이라는 숫자가 모였다고 이야기하는 일도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어느 집회나 어느 모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내세우는 일도 썩 반갑지 않습니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천이나 만 사람쯤 모여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다문 한 사람이 수요집회를 하더라도 틀림없이 수요집회이고, 이 집회를 몇 분이나 몇 시간에 걸쳐 한다고 적바림할 까닭이 없어요. 한 사람이 모였건 열 사람이 모였건, 모인 사람들 뜻을 살피고, 모인 사람들 삶을 귀기울여 들으며, 모인 사람들 눈망울과 마음결을 함께 읽을 수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고정희 님 시집 《지리산의 봄》(문학과지성사,1987)을 다시 읽습니다. 오늘밤 이 시집을 다 읽고 덮을 텐데, 고정희 님이 당신 어머님한테 마지막 옷을 입히며 눈물을 적시는 이야기를 담은 시를 읽다가 “당신 칠십 평생 동안에 열린 산과 들의 숨소리가(수의를 입히며)”라는 글줄에 밑줄을 천천히 긋습니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흙을 일구던 늙은 어머니 몸과 마음에 깃들던 멧자락과 들판 내음을 맡을 수 있기에 이렇게 시를 썼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삶이 곧 시요, 시가 바로 삶이겠지요. 삶이 곧 글이며 그림이고 사진일 테지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 바로 삶일 테지요. 사랑이 시로 태어나고, 시가 사랑으로 거듭납니다. 꿈이 글이라는 옷을 입고, 글이 꿈이라는 모습으로 다시 샘솟습니다.


  일본 전통놀이 ‘카루타’를 삶으로 받아들인 아이들이 나오는 만화책 《치하야후루》(스에츠구 유키 그림) 첫째 권을 읽으면 123쪽에, 카루타 학원 스승이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한테 “100명의 친구가 생겼다고 여기고, 사이좋게 지내라.” 하고 이야기합니다. 놀이나 경기라는 틀을 넘어, 마음으로 사귀는 좋은 벗으로 지내라는 뜻입니다. 대회에서 1등을 하거나 높은 성적을 거둘 생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날마다 웃음꽃으로 어깨동무할 벗하고 삶을 짓는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책읽기는 삶읽기이면서 사랑읽기요 꿈읽기입니다. (4345.4.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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