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들이는 말



보안성 : 내가 군대에 들어가던 1995년은 삐삐가 한창 나돌며 손전화가 조금씩 퍼지는 무렵이었는데,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군사훈련’을 한다면서 중대마다 무전병을 이끌고 움직이는데, 이 무전기란 조금만 떨어지면 씨알조차 안 먹혔다. 감감하지. 그때 소대장은 남몰래 손전화를 켰고, 더듬이(안테나)가 뜨면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주고받았다. 대대장은 소대장·중대장이 무전기를 안 쓰고 손전화를 쓰는지 알기는 했으나, 저 스스로도 중대에 뭘 시키고, 중대에서 소대에 뭘 시킬 적마다 무전기는 으레 먹통이기에 그냥 손전화로 시키기 일쑤였다. K-2도, M60도, 박격포도, 무반동총도, 날마다 닦고 기름을 먹이지만 정작 총알이 안 먹힐 만큼 낡았으니 “야, 우리, 싸움 나면 총도 못 쏘고 그냥 죽겠네.” “뭐, 저쪽(북녘)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고 수다. 책을 구경하기 어렵던 그곳이지만, 말미를 얻어 바깥을 다녀온 이들은 으레 책을 샅에 숨겨 들어왔고, ‘보안성’을 안 거친 책을 읽던데, 난 26달 동안 책 하나 못 읽고 뺑뺑이만 했다. 2020.9.2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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