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176 : 작은 마을 작은 책숲

 


 어릴 적부터 꿈을 하나 꾸었습니다. 어른이 된 내가 돈을 많이 번다면, 많이 버는 돈만큼 땅을 사야겠다고 꿈을 꾸었어요.

 

 땅장사를 하려는 마음으로 사고프다는 꿈이 아닙니다. 내가 조금씩 사들이는 땅뙈기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도록 놓아 주고 싶다는 꿈입니다. 어린 나는 ‘내셔널 트러스트’ 같은 이름은 알지 못했습니다만, 정치를 꾸리거나 경제를 이끈다는 사람들이 땅을 옳게 건사하지 않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몹시 슬펐어요. 왜 땅뙈기로 장사를 하지? 왜 좋은 땅에서 살아갈 좋은 생각을 안 하며 애꿎은 땅놀이를 하지?

 

 내가 돈을 모을 수 있을 때에는 숲이 숲 그대로 이어가고, 논밭은 논밭 그대로 돌보며, 멧자락과 갯벌과 바다는 멧자락과 갯벌과 바다 그대로 살리고 싶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사람들이 따로 지키는 숲이 아니라, 자연이 자연스레 싱그러이 살아나는 숲을 바랐어요. 나는 이 들판과 숲과 갯벌과 바다와 멧자락이 어우러지는 한쪽에 조그맣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살아가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고마워 듀이》(걷는책,2011)를 읽습니다. 첫머리에 “내가 사랑하는 아이오와 주 스펜서는 외부 사람들이 볼 때는 인구 1만 명의 작은 마을이다(32쪽).”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도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작은 사람이 되어 작은 숲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에 참 예쁘겠다고 느낍니다. 굳이 커다란 도시를 이루어야 한 나라가 대단해지지 않을 테니까요. 애써 커다란 도시로 찾아가야 내 밥벌이를 이룬다거나 내 뜻을 편다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버지는 자긍심을 가진 농부의 후예였으나 1950년대에 대형 탈곡기와 바인더 기계가 등장하면서 농업의 성격과 경제구조 자체가 바뀌었다. 큰 농기구를 살 수 없는 상황에서 농작물 생산량은 그대로이고 가격은 떨어지니 농장의 근간이 흔들렸다(355쪽).” 하는 이야기를 읽다가 바로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느낍니다. 아니, 이 나라에서 똑같이 일어난 일은 먼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일어났다고 깨닫습니다.

 

 조용히 착하게 살아갈 수 있으면 즐거울 텐데요. 내 손으로 흙을 일구어 내 몸을 살찌울 밥을 나 스스로 얻으면 기쁠 텐데요. 왜 커다란 농기계가 나와야 할까 모르겠습니다. 왜 경제와 산업과 수출과 무역을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얼마나 더 맛난 밥을 먹어야 할는지요. 얼마나 더 으리으리한 집에서 살아야 할는지요. 얼마나 더 멋스레 보인다는 옷을 걸쳐야 할는지요. 얼마나 더 빠르고 번쩍거리는 자가용을 굴려야 할는지요.

 

 사진쟁이 강운구 님은 《자연기행》(까치,2008)이라는 책에서 “어릴 적에 시골에서 자란 이들은 꿀풀이나 다른 꽃을 따서 향기로운 꿀을 빨아먹곤 했었다(38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꼭 시골이 아니더라도 흙을 밟거나 푸나무랑 벗삼던 사람이라면, 꿀풀도 먹고 까마중도 먹었어요. 풀내음과 꽃내음을 코로 입으로 손으로 가슴으로 받아들였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작은 시골마을 보금자리에서 햇살과 바람과 흙과 나무와 풀과 멧새가 골고루 들려주는 노래를 마음껏 들으면 좋겠습니다. (4345.2.17.쇠.ㅎㄲㅅㄱ)

 

- 시민사회신문에 싣는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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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75 : 자연을 잃은 책읽기

 


 ‘한 사진가와 살아온 14권의 사진책들’이라는 이름이 작게 붙은 사진책 《사진과 책》(안목)이 2011년 12월에 조용히 태어났습니다. 조용히 태어난 책을 조용히 읽습니다. 어수선히 떠들지 않는 목소리를 담은 책은, 갓 태어날 무렵에도 언론사들이 어수선히 떠들며 알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러 언론매체 소개를 널리 받지 못했습니다. 아니, 언론매체 소개를 거의 받지 못했어요.

 

 사진과 함께 살아가는 박태희 님은 《사진, 찍는 것인가 만드는 것인가》(2008)와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2011)를 한국말로 옮겼습니다. 손수 찍은 사진을 담은 《사막의 꽃》(2011)을 내놓기도 했으며, 이제 ‘사진을 말하는 사진책’인 《사진과 책》까지 내놓으며 사진밭 이야기를 한껏 북돋우는 길을 작게 엽니다.


 로버트 아담스라는 미국사람이 일군 사진책 《The New West》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박태희 님은 “만약 그의 사진에서 단순히 환경의 위기를 일깨우는 경고성 메시지만 읽혀지거나 새로운 지형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아름다움만 느껴졌다면, 그의 사진집은 내 책장 한켠에 처박혀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의 사진집을 펴놓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위로받는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분명 풍경을 넘어선 특별한 점이 있다는 얘기다(99쪽).” 하고 말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에 읽으며 새힘을 북돋운 사진책이라고 여긴 나날이었기에, 이런 사진책 열네 권을 그러모아 새로운 이야기책 하나 내놓겠지요. 박태희 님은 로버트 아담스라는 사람을 읽고, 나는 박태희라는 사람을 읽으며 로버트 아담스를 나란히 읽습니다.

 

 《사진과 책》이 태어나던 즈음, 모처럼 서울마실을 하는 길에 독립문 영천시장 어귀에 자리한 헌책방 〈골목책방〉을 들르는데, 마침 《한국의 발견》(뿌리깊은 나무,1983) 열한 권이 첫판으로 예쁘게 꽂힌 모습을 보았습니다. 낱권으로 하나씩 사서 읽다가 그예 짝을 못 맞추었는데 참 반갑구나 하고 인사하며 장만했습니다. 짐이 무거워 택배로 부쳐 주십사 이야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즐거이 받아서 읽습니다. 열한 권 가운데 전라남도 책을 먼저 뽑아서 고흥군 이야기부터 살핍니다. 1983년 통계로 고흥군은 19만이 넘게 살았고 외국사람은 열둘뿐이었답니다. 2012년 고흥군은 7만을 살짝 넘고 외국사람은 오백 안팎이에요. 1983년에 서울이나 다른 큰도시는 몇 만에 이르는 사람이 살았고 2012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까요. 이 숫자는 앞으로 얼마나 더 늘어날까요.

 

 서른 해 사이에 거의 1/3로 줄어든 고흥사람 숫자는 앞으로 더 줄어들밖에 없습니다. 이동안 도시사람 숫자는 차츰 늘어날 테고, 도시에서는 집이며 물이며 일자리이며 모자라다 하겠지요. 도시에서는 집을 새로 짓고 길을 새로 내며 자동차 새로 늘어나느라 자연이 더 무너져야 합니다. 자연을 더 파헤치고 아파트와 높은 건물 잔뜩 늘려야 해요.

 

 스스로 자연을 잃는 삶이고 맙니다. 스스로 자연을 잃는 넋이 되고, 스스로 자연을 잃는 사랑으로 흐릅니다. 돈과 문명을 얻는 만큼 자연과 사랑을 잃고, 돈과 문명을 읽는 만큼 자연과 사랑을 읽지 못합니다. (4345.2.5.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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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73 : 동시를 쓰는 사람

 

 

 나와 옆지기가 도시살이를 그대로 이었어도 우리 집 두 아이를 헤아리면서 동시를 쓸 마음을 품을 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어디에서 살아가든,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이 된다면 동시를 쓸 만하겠지요. 그런데, 아이를 사랑하자면 먼저 어버이로서 내 삶부터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권정생 님이 1967년에 손수 묶었다는 동시꾸러미를 고스란히 엮어 내놓은 《동시 삼베 치마》(문학동네어린이)가 2011년 7월에 선보였습니다. “옥수수네 엄마는 / 좋은 엄마지 / 뙤약볕이 따가워 / 꽁꽁 싸 업고 / 칭얼칭얼 한종일 / 자장 불러요 // 옥수수네 엄마는 / 가난한 엄마 / 소낙비가 뿌려도 / 우산이 없어 / 치마폭만 가리고 / 걱정하셔요(옥수수).” 하고 노래하는 동시를 그러모은 예쁜 책을 고맙게 읽습니다. 두 아이랑 옆지기하고 살아가는 나는 내 삶을 돌아보면서 즐거이 읽습니다. 먼 뒷날 우리 집 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 한글을 깨쳐 스스로 책을 읽을 무렵, 이 동시집도 읽을 수 있겠지요. 권정생 님이 열다섯 앞뒤였을 무렵 어떤 나날이었는가 하고 돌아보며 썼다는 동시이니, 1952년 앞뒤 즈음 이야기를 적바림한 동시라 할 텐데, 우리 집 아이들은 열 살 무렵이든 스무 살 무렵이든 서른 살 무렵이든 이 동시집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열 살 때에는 열 살 가슴으로 맞아들일 테고, 스무 살 때에는 스무 살 마음으로 받아먹겠지요. 서른이나 마흔에 되읽는다면 되읽는 나이에 새롭게 받아들일 테며, 쉰이나 예순에 처음으로 읽는다면, 이렇게 처음 읽는 나이에 맞게 기쁘게 아로새기겠지요.

 

 “노랑 나비 / 노랑 꽃에 / 노랑 꽃물 먹고 / 노오랗게 닮아 버렸다(나비).” 하는 노래를 읽습니다. 누구나 스스로 살아가는 터전에 걸맞게 마음씨를 다스립니다. 햇살 곱게 내리쬐는 푸른 들판이랑 멧자락을 옆에 끼며 살아간다면, 햇살 곱게 내리쬐는 마음씨가 되면서, 푸른 들판이랑 멧자락처럼 푸른 마음씨로 살아갑니다. 자동차들 붕붕 싱싱 내달리는 터전에서 살아간다면, 자동차마냥 붕붕 싱싱 내달리는 마음씨 되어 살아가요. 흙을 밟거나 만지며 살아간다면, 흙내음 물씬 나는 마음씨로 살아갑니다.

 

 “호박 넝쿨은 / 사이 좋게 어울려 / 빈자리 없이 퍼런 이파리를 / 덮는다 // 호박 넝쿨은 / 전쟁하지 않고 / 정답게 돌담 가득 / 꽃피웠다(호박 넝쿨).” 하는 노래를 읽습니다. 싸우는 사람은 바보요 밉보입니다. 싸우는 사람은 이웃과 동무를 괴롭히지만, 누구보다 나 스스로 괴롭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과 동무를 아끼지만, 누구보다 나 스스로 사랑스럽습니다.

 

 어여쁜 이야기꾸러미 《동시 삼베 치마》는 참말 권정생 님이 아니라면 쓸 수 없을 동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권정생 님처럼 어여삐 살아간다면, 어여쁜 마음결 살포시 담는 동시를 쓸 수 있습니다. 어여삐 살아가고자 하지 않으니까 어여쁘다 싶은 글을 쓰지 못해요. 어여쁜 삶이 어여쁜 말을 낳고, 어여쁜 말이 어여쁜 넋이 되어, 어여쁜 넋으로 어여쁜 꿈과 사랑을 꽃피웁니다. (4344.12.3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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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72 : 흙일꾼하고 읽을 책

 


 “나 꼭 (농약) 공중살포를 중지시킬 거예요! 아이들을 위해, 벼를 위해, 흙을 위해, 이것만은 꼭.” 하는 이야기가 일본만화 《나츠코의 술》(학산문화사,2011) 6권 42쪽에 실립니다. 1980년대 끝무렵 일본술 빚는 시골마을 이야기를 다루는 만화책 《나츠코의 술》입니다만, 오늘날 일본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한데, 여러모로 듣기로는 일본은 한때 ‘헬리콥터로 시골마을 들판에 농약을 뿌리던 일’을 끝없이 밀어붙이다가, 이제는 함부로 섣불리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사람이 타지 않는 헬리콥터로 안전(?)하게 농약을 뿌리는 일’을 ‘친환경’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온나라 곳곳에서 펼친다고 할 뿐 아니라, ‘항공방제’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더 많이 더 자주 합니다.

 

 “(일본에서 1980년대 끝무렵에) 쌀의 연간 생산량 3조 6000억 엔, 그리고 농기계 값이 8000억, 농약값 1800억, 비료 등 그 외 비용을 전부 합치면 1조 엔 이상. 알겠냐 나츠코? 쌀은 생산량의 1/4이 기업의 먹잇감이 되는 거야.” 하는 이야기를 일본만화책으로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국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아요. 흙일꾼이 풀약을 쳐야 하고, 농협에서 항공방제를 해 주며, 비료와 볍씨를 사서 쓰도록 하는 얼거리에서는, 정작 흙을 일구는 시골 할매랑 할배는 돈푼 제대로 만지기 어렵습니다. 농협은 해마다 살림을 키우지만, 시골 흙일꾼은 해마다 살림을 줄입니다.

 

 여태 모르고 살다가 항공방제를 알아봅니다. 우리 집 네 식구는 시골마을 한복판에서 살림을 꾸리기에 항공방제를 더 찬찬히 알아봅니다. 아직 논밭은 없고 살림집만 있는 시골살이인데, 앞으로 우리 몫 논밭을 마련해서 어린 두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함께 흙을 일군다 할 때에, 이 흙에 농협 헬리콥터가 ‘사람마저 안 탄 채’ 마구 날아와 농약을 뿌린다 하면, 우리는 어떻게 쌀을 먹고 푸성귀를 먹으며 열매를 먹어야 하나 걱정합니다. 벌써 여러 해 앞서부터 온나라에서 거두는 밤이나 열매는 항공방제를 해서 벌레가 안 먹도록 했답니다. 튼튼하고 좋은 밤을 먹는 일보다, 벌레 안 먹어 잘 팔리는 밤을 거두어 ‘농가소득증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농협과 관청 행정정책으로 항공방제를 한답니다.

 

 우리 마을 어르신들하고 《나츠코의 술》이라는 만화책을 함께 읽으면 좋겠다고 꿈을 꿉니다. 마을 어르신들 아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 돈벌이를 하느라 바쁘기에 책을 읽지 못하고, 마을 어르신들은 당신 아이들을 키우고 가르치며 흙을 일구느라 바빠 책을 읽지 못하며 살아갑니다. 일흔이나 여든 나이에 글씨가 깨알같은 만화책을 읽으실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돋보기를 쓴들 보일까요. 그래도,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고 마을 어르신들을 헤아리며 푸나무와 흙과 냇물을 떠올린다면, 이 만화책을 큼지막하게 복사해서 돌려읽기를 하고 싶어요.

 

 적어도, 사람들이 아무리 바보스럽다 하더라도, 한 가지는 다들 알아요. ‘저농약 곡식’이 ‘농약으로 키운 곡식’보다 비쌉니다. ‘친환경 유기농 곡식’이 ‘저농약 곡식’보다 비쌉니다. 비싸다는 소리란, 제대로 땀을 들여 옳게 지었다는 뜻이요, 사람들 몸에 좋다는 뜻입니다. 값싼 곡식을 먹는 사람들은 주머니를 아끼는 삶이 아니라 몸과 마음과 삶 모두를 갉아먹는 바보짓을 일삼는다는 뜻입니다. 옳은 목소리 외치려면 옳은 값 들여 옳은 밥 먹으며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4344.12.9.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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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2-09 09:44   좋아요 0 | URL
저는 몰랐네요,
하늘에서 그렇게 농약을 뿌리는군요. 하긴, 다들 유기농 채소를 찾지만
거기에 벌레로 구멍 뚫려있다면 질색을 하니 참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죠.
벌레 구멍이 있다는 것은, 벌레가 살만한 환경이라는건데도 질색을 하니 말이예요.

몇 년 후에는 된장님의 농사 이야기도 듣게 되는게 아닐까 기대합니다. ^^

숲노래 2011-12-09 11:05   좋아요 0 | URL
비닐집을 치면 하늘에서 뿌리는 농약을 안 맞을 수 있지만,
햇볕을 바라보고 빗물을 마시며 자라지는 못해요.
이래저래
한국은 문화며 농사며 무엇이든
다 한참 뒤처지기만 해요...
 


 책으로 보는 눈 171 : 예술책


 그림쟁이 강우근 님 새 이야기책 《동네 숲은 깊다》(철수와영희,2011)를 읽습니다. 이야기책 막바지로 접어들 무렵, 강우근 님은 “삶과 멀어진 예술은 그저 상품으로 소비될 따름이다. 상품이 되어 버린 예술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창의력만을 쫓는다(134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더할 나위 없이 맞는 말이기에 밑줄을 긋습니다. 여러 차례 되풀이해서 읽습니다.

 이 말마디 낱말 하나를 살며시 바꾸어 새로 읽습니다. ‘삶과 멀어진 언론은 그저 상품으로 쓰일 뿐이다. 상품이 되어 버린 언론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고 창의력(특종)만을 쫓는다.’ 다시금 낱말 하나를 살며시 바꿉니다. ‘삶과 멀어진 교육’으로 읽고, ‘삶과 멀어진 방송’으로 읽으며, ‘삶과 멀어진 정치’로 읽습니다.
 ‘삶과 멀어진 시민운동’이라든지 ‘삶과 멀어진 경찰’이라든지 ‘삶과 멀어진 인문학’이라든지 ‘삶과 멀어진 국회의원’으로 읽으면 어떤 느낌일까요. 이때에는 어떤 이야기가 샘솟을까요.

 삶은 겨루지 않습니다. 내 삶은 누구하고 겨룰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하고 복닥이는 하루는 아이들이랑 겨루는 삶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이웃 아이랑 겨룰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이 저희 어버이를 이웃 어버이랑 겨룰 까닭 또한 없어요. 겨룰 일조차 없지만, 견줄 일 또한 없어요. 겨루기도 견주기도 없으면서 끼어들기나 쳐들어가기나 흔들기나 딴죽걸기마저 있을 턱이 없습니다.

 밥을 차려 먹을 때에 누구하고 겨룰 일이란 없습니다. 날마다 좋은 밥을 즐겁게 먹습니다. 날마다 좋은 옷을 즐겁게 걸칩니다. 날마다 좋은 집에서 예쁘게 잠들고 예쁘게 일어나서 예쁘게 살림을 꾸립니다.

 만화쟁이 시이나 카루호 님 작품 《너에게 닿기를》(대원씨아이) 1권(2007)을 읽습니다. 201쪽에 “말하는 시점에서 이미 이루어졌어.”라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어버이한테서 고운 목숨을 선물받아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살아오며 ‘꿈을 꾼 일이 이루어졌다’고 느낀 적이 한 차례조차 없던 아이가, ‘꿈을 말한 때에 시나브로 이루어졌다’고 느꼈다고 이야기합니다. 차갑게 닫힌 채 도무지 열리지 않던 마음문을 활짝 열어젖힌 살가운 동무와 마주하면서 ‘네(동무아이)가 고마이 나눈 좋은 기운을 받아 나 스스로 내 마음문을 열었다’고 노래하는 대목이에요.

 참 좋은 말이로구나 생각하면서 만화책을 읽습니다. 《너에게 닿기를》 2권을 읽으면서도 마음으로 와닿는 사랑스러운 꿈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그래요. 맑은 넋이 되어 가슴으로 품는 좋은 꿈이라면, 이 꿈을 품으면서 조곤조곤 속삭일 때부터 이루어질 테지요. 밝은 얼이 되어 가슴으로 북돋우는 어여쁜 꿈이라면, 이 꿈을 북돋우면서 사근사근 속삭일 때부터 이루어질 테고요.

 좋은 책을 찾는 사람은 참말 좋은 책을 찾습니다. 인문책을 읽으려는 사람은 인문책을 읽고, 예술책을 바라는 사람은 예술책을 얻습니다.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은 자격증을 따기 마련이요, 돈을 벌려는 사람은 돈을 벌어요. 사랑을 이루고픈 사람은 사랑을 이루고, 권력을 노리는 사람은 권력을 얻겠지요. (4344.1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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