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90 : 낡은 책과 낡아가는 책

 1980년대 첫무렵, ‘부림출판사’에서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 님 책을 손바닥책 열다섯 권으로 펴냅니다. 이곳에서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을 내기 앞서 수많은 다른 출판사에서도 띄엄띄엄 이분 책을 냈고, 이때 뒤로도 갖가지 출판사에서 드문드문 이분 책을 내놓았습니다. 《길은 있었네》, 《이 질그릇에도》, 《빛이 있는 동안에》, 《살며 생각하며》, 《빙점》 같은 책은 여러 곳에서 다 다른 판으로 옮겨졌는데, 저작권계약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던 지난날 《창가의 토토》를 이곳저곳에서 슬그머니 펴낸 일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다만, 《창가의 토토》는 2000년에 ‘프로메테우스출판사’에서 새로 펴내며 더욱 널리 사랑받고 있는데,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은 ‘한물 간 낡은 이야기’라고들 여기며 손사래를 치곤 합니다.

 헌책방에서 《여인의 사연들》(1984,박기동 옮김)이라는 자그마한 책을 찾아내어 읽습니다. 처음부터 제가 읽으려고 산 책은 아닙니다. 개신교 모임에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비슷하게 보내주는 데에 따라가며 한 해 동안 봉사를 한다는 처제가 성경을 읽는다고 하기에 문득 떠올라 미우라 아야코 님 책이랑 안소니 드 멜로 님 책이랑 채규철 님 책이랑 헌책방에서 찾아내어 선사하는데, 이 책은 제가 아직 읽어 보지 않아서 저 먼저 찬찬히 훑고 주려고 빼놓습니다.

 “하지만요, A꼬 씨, 당신이 결혼한 상대방은 하나님이 아니라구요. 완전하진 못하다구요. 말하자면 평범한 한 사람의 인간인 거예요.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는 인간인 거예요(16쪽).”

 마음이 아프고 힘들고 쓸쓸한 ‘여인’들이 미우라 아야코 님한테 편지를 꽤나 자주 써서 보낸답니다. 이런 편지에 하나하나 답장을 보내 주다가 몹시 많이 쌓이는 편지를 다 삭여내지 못해 잡지에 ‘공개 답장’을 적었답니다. 루이제 린저 님도 ‘마음이 아파 힘들다는’ 줄거리로 편지를 써 보내는 사람이 많아, 처음에는 하나하나 답장을 하다가 너무 벅차 ‘공개 답장’을 아예 낱권책으로 여러 차례 펴낸 적 있습니다. 모두들, 여느 사람들이 여느 삶에서 겪는 마음앓이를 당신 일처럼 곰삭이며 풀어낸 셈입니다.

 “우리들이 아름답게 되는 길은 화장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요? 나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내면에서 풍요로움이 풍겨나오는 그 표정에서 느껴요(54쪽).”라는 말처럼 겉삶이 아닌 속삶으로 우리 모두 기쁘게 어깨동무하자는 뜻을 나누려 했구나 싶습니다.

 지난주부터 《동네에너지가 희망이다》(이매진,2008,이유진 씀)라는 이야기책하고 《엄마의 밥상》(얘기구름,2008,박연 그림)이라는 만화책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보름쯤 앞서 인문사회과학책방과 만화전문책방에서 장만했는데, 이와 같은 책이 지난해에 나온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김에 언론 소개글이 있었나 뒤적이니 한두 차례 아주 조그맣게 실린 적이 있고, 꼭 한 번씩 소개글을 써 준 사람이 있으나, 널리 읽힐 만한 자리에 실리지 못했습니다.

 혜화동 인문예술책방 〈이음아트〉 큰일꾼은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며 책을 갖추어 놓는다’고 했는데, 이런 책은 작은 책방에든 큰 책방에든 꽂히기 힘들고 우리 눈에 뜨이기도 너무 어려운 나머지, 한 해 두 해 더께만 쌓이다 그예 낡아 버리고 말겠구나 싶습니다. (4342.6.18.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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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91 : 새로운 책과 새로워지는 책

 엊그제 새 자전거를 한 대 장만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타고다닌 자전거는 모두 닳고 망가졌기에 더 손질할 수조차 없었거든요. 자전거를 장만하면서 자전거집 일꾼한테서 ‘자전거 사용설명서’를 여러 권 얻습니다. ‘자전거를 새로 장만하는 사람치고 이러한 설명서를 챙기는’ 사람은 거의 없기에 잔뜩 쌓여 있다고 합니다. 설명서를 집으로 가지고 와서 찬찬히 훑으니, 이 설명서만 꼼꼼히 읽고 스스로 해 보아도 ‘웬만한 자전거 손질은 스스로 해낼’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이달에 《자전거 홀릭》이라는 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모임을 이끄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 쓴 책으로, 자전거를 처음 가까이하거나 이제 막 좋아하려는 사람한테 길잡이가 될 만하구나 싶습니다. 돈으로 사는 자전거가 아닌, 마음으로 껴안는 자전거가 얼마나 좋은 길벗인가를 보여줍니다.

 지난달에 《두 발 자전거 배우기》라는 그림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아이들한테 네발자전거에서 두발자전거로 넘어가는 흐름을 보여주는 그림책인데, ‘자전거를 좋아하며 늘 타는’ 제 눈으로 보기에 자전거를 옳게 못 그리기도 했으며, 자전거가 마치 ‘남보다 빨리 달리려고’ 있다는 듯한 이야기를 슬며시 심어 주기에 반갑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한테 왜 자전거를 사 주고 타도록 하고 가르치는가요? 아이들은 왜 자전거를 선물받고 타야 하는가요? 책에 담긴 그림은 예쁘장하지만 그예 예쁘다고만 말하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이 네발에서 두발로 갈아타는 일이란 ‘홀로서기’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은 없이 ‘자전거로 바람을 가르는 기쁨’을 엉뚱한 쪽에서 받아들이도록 한다면, 청계천에 전기로 수도물 끌어들어 흐르게 하면서 시원하다 말하는 모습하고, 또한 서울과 부산에 물길을 내고 나라안 물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하고 매한가지 아닌가 싶습니다.

 지지난달에는 《고물자전거 날쌘돌이》라는 그림책이 하나 나왔습니다. 버려진 자전거, 아니, 아이들이 처음에는 엄마 아빠한테 졸라서 ‘번쩍번쩍’하는  새 자전거를 비싼 값에 장만하고 난 뒤 마구잡이로 싱싱 달리다가 함부로 내던지고 내팽개치고 비오는 날에도 바깥에 두는 바람에 찌그러지고 다치고 구멍나고 빛바래고 슬어 버린 자전거가 되살아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저 스스로도 어린 날 겪어 보았지만, 짐자전거이든 세발자전거이든, 한 주에 한 번은 말끔히 닦아 주어야 오래도록 즐겁게 탄 다음 동생한테든 동무한테든 아이들한테든 물려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사이 아이들은 자전거를 닦을 줄 모르고 내처 달릴 뿐입니다. 자전거 사 주는 어버이 또한 자전거 닦기와 손질을 함께할 줄 모르며, 돈으로 값만 치를 뿐입니다.

 나날이 쏟아지는 새 물건이 많으니, 자전거 또한 새롭고 더 나아 보이는 녀석으로 갈아타기만 하면 되는지 모릅니다. 날마다 수없이 많은 책이 쏟아지니, 겉보기에 그럴싸한 책을 쥐어들며 자꾸자꾸 새책만 찾으면 되는지 모릅니다. 가짓수는 꾸준히 늘고 새 이야기는 늘 넘치는데, 고이 스며들며 가슴으로 묻어나는 책은 어째 가물에 콩 나는 듯합니다. 새로운 책으로 새로워지는 마음결과 삶터는 찾아보기 어렵고, 새로운 책으로 새로운 돈만 벌겠다는 마음보와 세상물결은 어렵지 않게 찾아봅니다. (4342.6.2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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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쓰는 공선옥 아줌마, 1:20으로 수다 떨기
 ― ‘문학동네 인터넷방’에 ‘소설 1일 연재’ 하는 공선옥 님과 독자들 모임



 출판사 문학동네 인터넷방(http://cafe.naver.com/mhdn)에 올 2009년 1월 12일부터, 소설쓰는 공선옥 님 작품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날마다 실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실리는 공선옥 님 작품에는 날마다 서른 꼭지 안팎으로 댓글이 달리면서, 공선옥 님 작품을 놓고 독자들마다 이런저런 느낌과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날마다 이어실리는 소설은, 신문에 날마다 실리는 소설하고 마찬가지로 여길 수 있으나, 신문소설과는 사뭇 다른 ‘인터넷방 이어쓰기’가 된다고 느낍니다. 신문에 실리는 소설에도 독자들은 편지로 당신들 느낌과 생각을 나누게 되지만, 인터넷방에 이어실리는 소설에는 그날그날, 아니 그때그때 독자들 느낌과 생각을 주고받게 됩니다. 소설을 쓰는 분으로서는 독자들 느낌과 생각이 어떠하든, 당신 스스로 이어나가려는 흐름을 고이 지킬 수 있는 한편, 독자들이 느끼거나 생각하는 줄기를 곰곰이 되짚으면서 당신 소설을 조금씩 다르게 추스를 수 있기도 합니다. 문학은 작가 혼자서 외로운 방에 틀어박혀서 머리를 짜내어 이루는 이야기이지만은 않으니까요. 외로운 방에 틀어박혀서 뽑아내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방에 들어가기 앞서까지 수많은 사람을 부대끼고 숱한 세상살이를 치러내야 하니까요.

 이를테면, 3월 6일에 올라온 38회치 작품에 달린 댓글을 죽 돌아보면 이렇습니다.


 [뒷북소녀] 다행히 정신이는 기사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됐군요. 환이가 상처 받은걸까요? 그럼, 안 되는데...^^;;
 [서울아이] 아..어쩌죠, 어쩌죠.. 환의 소박함이 소심함이 아니기만을...
 [렌] 설마! 환이 소심남은 아니겠지요? 저렇게 가 버리면 어떡해!
 [설해목] 진만이 이 나쁜넘의 쒜이.... 어쩌자고 남의 가난한 행복에 재를 뿌리고.... 우이씨.. 열받네.. 그니까 니가 좋아하는 여자도 제대로 못 잡는 것이다.. 이것아.. 라고 해금이 대신 말해 줘야지..-.-
 [렌] 근데 아이디는 '뒷북소녀'신데 일등이시네요 ㅎㅎ
 [미망] 아...순식간에........ 사라진 내 가난한 행복..... 어쩜좋아~~~
 [설해목] 렌님.. 음~~~~ 그거 유머라고 하신 건 아니죠? ^^;; 아닐거야.. 설마~~~
 [hoolahoop] "진만이 이 나쁜넘의 쒜이.... " 직접 듣고 시포...ㅋㅋㅋ
 [hoolahoop] 승희에게 따뜻한 밥 해먹이던 진만이... 그의 상처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에요. 그래도 넘 심하게 삐뚫어졌는데요...-_-
 [해라] 내 가난한 행복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ㅜ.ㅜ 어쩌죠. 이 모든 건 진만 때문이야!!! ㅜ.ㅜ
 [뒷북소녀] 렌님... 제 닉네임은 그 뒷북이 아니라 다른 뒷Book이랍니다... :)



 바로바로 올라오는 댓글은, 소설을 쓰는 분한테뿐 아니라 소설을 싣는 매체 분들, 그러니까 출판사 편집자와 기획자한테도 ‘앞으로 펴낼 작품을 독자들이 어떻게 헤아리거나 받아들이는가’를 곱씹게 되는 좋은 도움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출판사 일꾼도 여느 독자와 마찬가지로 독자가 되어, 자기 일터에서 나오는 작품과 작가로서가 아닌 가깝고 반가운 마음으로 작품에 좀더 깊숙하게 빠져들 수 있을 테며, 이렇게 ‘작가-독자-출판사’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문학 하나가 우리 삶으로 한결 깊숙하고 푸근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지난 2월 18일 저녁 일곱 시에, 서울 서교동 ‘별 포차’라는 술집에서 “1차 오프라인 독자모임 : 공선옥 선생님과 술 한잔 어때요?”를 엽니다. 독자들이 공선옥 님을 만나뵈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하기도 했고, 소설쓰는 공선옥 님 또한 인터넷 댓글로만이 아닌 바깥자리에서 소주 한잔 부딪히며 스스럼없이 수다를 떨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 작가도 독자와 똑같은 사람이며, 똑같이 술을 좋아하고, 똑같이 사람 사귐을 좋아하는데다가, 똑같이 조촐한 만남을 즐기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이리하여 독자 스무 사람과 소설쓰는 공선옥 님은 첫자리와 둘째자리를 이으면서 술 한잔을 주고받았고, 소설쓰는 공선옥 님은 소설읽는 스무 사람하고 1:20 수다 떨기를 했습니다. 한손에는 소주잔을 들고, 다른 한손에는 담배를 들면서 이 자리에서 저 자리로 바지런히 옮겨 다니면서 “내 소설보다 댓글 보는 게 더 재미있어.” 하고 말하면서 이가 훤히 보이도록 시원하게 웃습니다.

 “(인터넷에 일일연재를 하면) 독자들이 ‘이런 얘기 넣어 주세요’ 하고 요구하기를 바라는데, 그런 게 없어서 …… 오늘은 독자들 의견을 듣고 취합해 보고 싶어서 왔어요.” 하는 공선옥 님은, 둘레에 앉은 독자들한테 손수 술잔을 채워 주면서, “오늘 원고를 넘기는데, (소설에 나오는) ○○이가 고뿌도 아니고 글라스에 원샷을 하다가 푹 쓰러져 버렸어 …… 아니, 나는 내가 쓰면서도 혼자서 막 웃어.” 하면서 또 즐겁게 웃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소설 줄거리를 “오늘 이 자리에 나오셨으니까 특별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하면서 살며시 귀띔을 하고, 소설에 나오는 사람이름을 놓고는, “시골사람들이 봉석이를 봉섹이라고 해.” 하고 덧붙이고, 손 한번 잡자는 독자하고 뜨겁게 손을 맞잡으면서, “아유, 독자의 손을 잡아 보고, 웬 영광이냐.” 하면서 너스레를 떱니다. 뒤이어, “이게 연예인으로 치면 팬미팅을 하는 거죠?” 하면서 다시 웃고, 둘러앉은 독자와 출판사 분들이 모두 함께 웃으면서 술잔을 거듭 비우게 됩니다.

 서로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는, “저기, 나는 나오는 인물을 얘기를 (이 자리에서 독자들한테) 다 해 주고 싶어.” 하면서, 어느 독자가 ‘공선옥 선생님이 생각하는 문학은 무엇이느냐’고 여쭈는 말에는, “나는 (내가 쓴 소설이) 많이 안 팔리더라도, 몇 사람이더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또는 마음이 흔들리기까지는 않더라도 마음을 울리면 좋겠어요. 사실은 (소설에 나오는) 해금이 아버지가 몸이 아퍼. 고문 받았어. 처음에 끌려갔잖아 …… (앞으로 나올 이야기 살짝 귀띔) …… 그 시대 상황이 아버지가 너무 힘든 거야.” 하는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해금이네) 아버지가 농사를 아주 잘 지어 놓으셨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감나무가 너무너무 잘 자랐는데 …… 그래서 해금이가 글을 쓰는 거야. 이건 내가 쓰는 게 아니고 해금이가 글을 쓰는 거야. 내가 쓰는 게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해금이가 글을 쓰는 거지. 작가가 되는 거지.” 하고 덧붙입니다. 당신이 쓰는 소설은 당신 글만이 아닌, 당신 삶만이 아닌, 당신 둘레에서 살아가는 마음아프고 가슴시린 모든 이웃들 삶임을, 그 이웃들 삶을 당신 이름 석 자를 빌어서 쓰게 됨을 이야기합니다.

 다른 독자가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 문학은 죽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여쭙자, “소설이 참 좋은 게, 어떤 삶이든 다 이해하고 싶고, 다 용인이 돼. 시는 삶을 깊이 한다면, 소설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을 넓게 해 주는 거 같아. 쓰는 사람도 타인의 삶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거잖아. 어떤 삶도 이해가 돼. 당장에는 소설이 너무 힘도 발휘를 못하지만, 나중에는 다 발휘를 하게 돼.” 하면서 문학과 소설 모두 앞으로도 크든 작든 우리를 살찌우는 힘을 펼쳐 보이면서 널리 나눌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고는, “(요즘 유행하는) 판타지 소설은 범죄예요. 타인의 삶을 차단시켜요. 자기 마스터베이션이라고 할까. 순간의 껌이에요. 순간으로 즐기고 끝내면서 타인과 나를 차단시키는 치명적인 마약이에요. 이런 판타지 소설을 좋아할 사람이 누구겠어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할 사람은 바로 정치인이에요. 판타지 소설 그것이 당신과 나하고 삶을 이어주지 않아요.” 하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자연스레 공선옥 님 당신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조곤조곤 풀어놓습니다. “내 글을 보고 우울하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도스토예프스키하고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을 보고 우울해 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인간의 진실이기 때문이에 우울해도 좋은 문학이에요. (우리 삶의) 본질을 보니까.”

 이어서 마지막말을, 이제부터 좀더 신나게 술과 삶과 이야기에 빠져들자면서 한 마디 마무리말을 붙입니다. “살아 있을 때, (문학을 하면서) 생명에 대한 최대한의 경의를 보내는 거지. 나의 생명을, 최대한의 축복을.” 그리고 ‘다 함께 짠!’

 밤은 깊어가고 술도 깊어가고 사람과 사람 사이 만남과 이야기도 깊어갑니다. 집이 먼 사람은 일찍 일어나고, 집이 멀지만 오늘 만남이 반갑고 즐거운 사람은 새벽 첫차가 올 때까지 마주앉아 깊은 밤을 함께 지새웁니다. (4342.3.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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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76 : 헌책방에 안 가 보니 헌책방을 모른다

 헌책방에 가 보지 않은 분은 헌책방에 어떤 책이 있고 어떤 이야기를 얻고 어떤 마음밥을 먹을 수 있는지 모릅니다. 도서관에 가 보지 않은 분이 도서관 얼거리나 책갖춤을 모르는 일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헌책방이고 도서관이고 찾아가 보도록 일러 주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고 이끌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어버이 스스로 헌책방이나 도서관 나들이를 못하거나 안 합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는 회사일 하랴 바쁘고, 회사 다니기 앞서는 대학교에서 학점 따랴 사랑놀이 하랴 바쁘며, 대학교 다니기 앞서는 중고등학교에서 입시싸움 치르랴 바쁩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겨우 틈이 나는데, 이무렵 아이들 손을 잡고 헌책방과 도서관 나들이를 하는 어버이는 얼마쯤 될까요. 우리가 어린이였을 때 우리 어머니 아버지 되는 분들도 ‘지금 아이를 낳아 기르는 우리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먹고사느라 바빠 제때 제곳에서 아이들을 못 챙기지 않았을는지요.

 골목동네에 살아 보지 않은 분은 골목동네에 어떤 사람이 살고 어떤 이야기가 있으며 어떤 이웃과 동무를 사귀며 지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골목동네를 알기 어렵습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어버이는 으레 아파트에서 삽니다. 아파트가 아니어도 빌라에 살며, 골목에서 이웃집과 문과 담을 마주하면서 늘 얼굴 부딪히며 살아가는 사이가 아니기 일쑤입니다. 햇볕에 빨래를 말리고, 골목길 안쪽 모퉁이나 차가 뜸하게 다니는 너른 볕바른 자리에 놓인 걸상에 앉아 다리쉼을 하면서 동네 할매 할배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재미를 모릅니다. 사진으로는 보고 말로는 들을지언정, 살갗으로 받아들이는 이야기가 되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용산 철거민 참사’가 일어나도 왜 ‘철거민이 생존권을 외치’는지, ‘보상 받고 떠나면 될 일을 왜 저리 난리법석’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날 아파트 삶터는 고향이 아닌, 돈굴리기를 하고자 잠깐 머무는 곳이거든요. 스무 해조차 채 버티지 못하는 곳은 집도 보금자리도 아닙니다. 부동산일 뿐입니다.

 지난주에 동네 헌책방 마실을 하면서 《과학의 나무를 심는 마음》(전파과학사,1985)이라는 작은 책을 장만했습니다. 글쓴이는 장학사를 하면서 여러 국민학교(옛날이니까) 자연시간 시찰을 나가며 겪은 일을 적어 놓는데, 요오드 실험을 하는 아이가 틀림없이 검은빛으로 나왔음에도 “녹말가루에 요오드 용액을 떨어뜨리면 보라색으로 변하니까요.” 하고 ‘선생님이 가르쳐 주고 교과서에 나온 대로’ 말하더랍니다. 알코올램프가 넘어지면 물을 부어야 하는 줄 모르는 교사들 이야기를 보면서, 주먹구구요 점수따기 주입교육만 되풀이되는 예전 이런 모습이 오늘날이라고 조금이라도 바뀌었을까 싶어 고개를 갸웃갸웃하지만 그예 슬플 뿐입니다.

 아침에 구청(인천 동구청)에서 열린 ‘동인천 재정비사업에 따른 주민설명회’라는 데에 다녀왔습니다. 주민 숫자가 몇 만 사람임에도, 걸상을 고작 150개 갖다 놓았고, 골마루까지 북적인 주민들 앞에서 ‘돈없는 사람한테까지 재정착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말을 대놓고 합니다. 두어 시간 내내, 재개발 정책을 꾸리는 분은 자기 사는 동네를 재개발로 밀어없애는 일을 할까 안 할까 궁금했습니다. (4342.2.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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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73 : 한 번 보고 버립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었다가 갑작스레 몰아닥친 강추위 때문에 골목마을 옥탑에 자리한 우리 집도 꽁꽁 얼어붙습니다. 옆지기와 아기가 걱정이 되어 일산에 있는 옆지기 식구 사는 집으로 옮겨 지내기로 합니다. 옆지기 식구들 사는 아파트는 불을 따로 넣지 않아도 집온도가 20도 안팎입니다. 불을 넣어도 방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불 안 넣은 마루와 다른 방은 영 도 밑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우리 집하고 사뭇 견주게 됩니다. 이러니 골목집에 살던 이들도 아파트로 옮겨 살고픈 꿈을 꿀는지 모릅니다만, 골목집도 냉난방 시설을 손질해서 지낼 수 있다면, 굳이 아파트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느냐 싶습니다. 달삯 내며 살아가는 이들 스스로 집을 고칠 겨를이란 없습니다만.

 인천집 물이 얼어붙을까 걱정이 되어 부랴부랴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종로3가에서 국철로 갈아타고 용산에서 내려 동인천 가는 급행을 기다립니다. 손이 시리고 날이 차지만 한손에는 책을 쥐고 한손에는 볼펜을 쥡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때마다 빈자리에 끄적끄적 몇 마디 적어 놓는데, 날이 추워서 볼펜이 잘 안 나옵니다.

 전철이 들어옵니다. 아침때라 그런지 타는 이가 얼마 없습니다. 빈자리에 띄엄띄엄 공짜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아마, 앞서서 이 전철에 탄 이들이 내리면서 그 자리에 놓아 두었나 봅니다. 얼마 있자니 헌 신문 모으는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와 지팡이로 선반 위에 놓인 것은 툭툭 쳐서 떨구고, 자리에 놓인 것은 손으로 집어 옆구리에 낍니다. 지금은 아침 아홉 시를 조금 넘긴 때인데, 저 공짜신문은 몇 시쯤 사람들한테 읽히고 이렇게 금세 폐휴지 나라로 가게 될까요.

 뒤뚱뒤뚱 걷는 할머니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저 신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신문종이로 쓰여진 나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뒤잇습니다. 이 신문을 만드느라 땀흘린 기자도 불쌍하고, 사진가, 조판원, 인쇄공, 배달부, 또 지하철역 나들목마다 옷 차려입고 한 장씩 나누어 주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불쌍하다고 느껴집니다. 고작 하루치도 아니요 한 시간치도 아니며 몇 분치 몫으로 쓰이다가 사라져야 하는 요 제법 도톰한 공짜신문들인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이 땀과 얼마나 많은 자연자원을 여기에 바치고 있는가요. 공짜신문에 고개를 처박는 사람들마저 불쌍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곱고 아름답고 훌륭한 품과 땀과 돈과 세월을 이 공짜신문에 바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신문을 만들고, 나누고, 보고 하는 데에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또다른 품과 땀과 돈과 세월을 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냥저냥 시간 때우기에 좋아서 만드는 신문이고 읽는 신문인가요. 그저 날마다 새소식을 돈푼 안 들이고 살펴볼 수 있으니 좋은 신문인가요. 하루도 못 가는 새소식을, 한 시간도 못 가는 새 이야기를, 몇 분 스윽 스치면 또다시 쏟아지는 새소식과 새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받아먹어야 하는가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부품과 마찬가지로 내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짜신문처럼, 날마다 산더미같은 쓰레기가 되는 공짜신문처럼, 우리 몸과 마음을. (4342.1.15.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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