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73 : 한 번 보고 버립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었다가 갑작스레 몰아닥친 강추위 때문에 골목마을 옥탑에 자리한 우리 집도 꽁꽁 얼어붙습니다. 옆지기와 아기가 걱정이 되어 일산에 있는 옆지기 식구 사는 집으로 옮겨 지내기로 합니다. 옆지기 식구들 사는 아파트는 불을 따로 넣지 않아도 집온도가 20도 안팎입니다. 불을 넣어도 방에서는 입김이 나오고 불 안 넣은 마루와 다른 방은 영 도 밑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우리 집하고 사뭇 견주게 됩니다. 이러니 골목집에 살던 이들도 아파트로 옮겨 살고픈 꿈을 꿀는지 모릅니다만, 골목집도 냉난방 시설을 손질해서 지낼 수 있다면, 굳이 아파트가 아니어도 괜찮지 않느냐 싶습니다. 달삯 내며 살아가는 이들 스스로 집을 고칠 겨를이란 없습니다만.
인천집 물이 얼어붙을까 걱정이 되어 부랴부랴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종로3가에서 국철로 갈아타고 용산에서 내려 동인천 가는 급행을 기다립니다. 손이 시리고 날이 차지만 한손에는 책을 쥐고 한손에는 볼펜을 쥡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을 때마다 빈자리에 끄적끄적 몇 마디 적어 놓는데, 날이 추워서 볼펜이 잘 안 나옵니다.
전철이 들어옵니다. 아침때라 그런지 타는 이가 얼마 없습니다. 빈자리에 띄엄띄엄 공짜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아마, 앞서서 이 전철에 탄 이들이 내리면서 그 자리에 놓아 두었나 봅니다. 얼마 있자니 헌 신문 모으는 할머니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와 지팡이로 선반 위에 놓인 것은 툭툭 쳐서 떨구고, 자리에 놓인 것은 손으로 집어 옆구리에 낍니다. 지금은 아침 아홉 시를 조금 넘긴 때인데, 저 공짜신문은 몇 시쯤 사람들한테 읽히고 이렇게 금세 폐휴지 나라로 가게 될까요.
뒤뚱뒤뚱 걷는 할머니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저 신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 신문종이로 쓰여진 나무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뒤잇습니다. 이 신문을 만드느라 땀흘린 기자도 불쌍하고, 사진가, 조판원, 인쇄공, 배달부, 또 지하철역 나들목마다 옷 차려입고 한 장씩 나누어 주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불쌍하다고 느껴집니다. 고작 하루치도 아니요 한 시간치도 아니며 몇 분치 몫으로 쓰이다가 사라져야 하는 요 제법 도톰한 공짜신문들인데,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이 땀과 얼마나 많은 자연자원을 여기에 바치고 있는가요. 공짜신문에 고개를 처박는 사람들마저 불쌍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우리들 곱고 아름답고 훌륭한 품과 땀과 돈과 세월을 이 공짜신문에 바쳐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한 번 보고 버리는’ 신문을 만들고, 나누고, 보고 하는 데에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또다른 품과 땀과 돈과 세월을 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냥저냥 시간 때우기에 좋아서 만드는 신문이고 읽는 신문인가요. 그저 날마다 새소식을 돈푼 안 들이고 살펴볼 수 있으니 좋은 신문인가요. 하루도 못 가는 새소식을, 한 시간도 못 가는 새 이야기를, 몇 분 스윽 스치면 또다시 쏟아지는 새소식과 새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받아먹어야 하는가요. 어쩌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한 번 쓰이고 버려지는’ 부품과 마찬가지로 내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짜신문처럼, 날마다 산더미같은 쓰레기가 되는 공짜신문처럼, 우리 몸과 마음을. (4342.1.15.나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