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담은 교문 - 학생들이 만들어 가는 학교 공간 혁신
배성호 지음 / 철수와영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배움책

맑은책시렁 230


《꿈을 담은 교문》

 배성호

 철수와영희

 2020.3.15.



햇빛과 비를 피할 수 있는 교문이었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교문이 쉼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고요. 그다음에 앉아서 쉴 휴식 공간이 필요하다, 교문이 이정표이자 쉬어 가는 고갯마루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지요. (43쪽)


그래도 제자들이 해결책을 내놓아요. 교문을 만들기 어려워졌다, 그럼 이제 어떡할까? 아이들과 의논했습니다. (129쪽)


명령하는 것보다 공간을 바꾸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조심조심 걸으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무리예요. 한창 뛰어놀 나이잖아요. (145쪽)


조달청에서 납품하는 학교 책걸상에도 납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오히려 국가 안전 기준이 더 강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거예요. 가격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152쪽)


조사를 해 보니, 유해 성분 없는 안전한 제품을 만드는 업체의 경영 상태가 좋지 않아요 … 안전한 제품은 생산이 제대로 안 되니까 구입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요. 정부가 물건을 살 때 ‘가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154쪽)



  며칠 앞서 읍내에 볼일을 보려고 시골버스를 타고 가는 길입니다. 이웃 면소재지를 지나가는데 그곳 중학교 푸름이가 잔뜩 시골버스에 탑니다. 몇 아이는 쇠돈을 집어던지듯 넣고, 몇 아이는 버스칸을 오락가락하면서 떠들고, 몇 아이는 발을 앞자리까지 뻗으면서 까불거립니다. 한두 아이가 아닌 모든 아이가 까불질을 하는데, 이 아이들 가운데 몇쯤 앞으로 이 시골에 남아서 보금자리를 가꿀 생각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곧 여름인데, 시골 고등학교 들머리에 지난가을께 내건 걸개천이 그대로입니다. 이 걸개천에는 큰고장 어느 큰일터에 뽑힌 아이 이름을 큼직하게 새겼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뿐 아니라 이웃 시골도 매한가지입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붙거나 이름난 큰일터에 들어간 아이들 이름을 크게 내붙이더군요. 자랑할 일인가 봅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시골이란 터전을 사랑으로 돌보며 보금자리를 슬기로이 가꾸는 아이들 이름을 보람차게 내건 시골은 여태 본 일이 없습니다.


  학교에 안 들어가고서 숲살림을 익힌다든지, 학교는 손사래치면서 사랑살림을 배우는 어린이나 푸름이 이름이라면, 더더욱 학교 들머리에서 이 이름을 보기 어렵겠지요? 교육청이건 군청이건 똑같을 테고요.


  초등학교 샘님으로 일하는 분이 엮은 《꿈을 담은 교문》(배성호, 철수와영희, 2020)을 읽으며 여러모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첫째, 학교 들머리를 처음부터 새롭게 바라보고서 이 얼거리를 손질하려는 뜻을 품는 어른이 있어서 놀랍습니다. 둘째, 학교 얼거리를 손질하는 일을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어 차근차근 이야기한 다음, 이 학교 모든 아이가 함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고 틈을 내려는 생각을 하는 어른이 있기에 놀랍습니다. 셋째, 제가 살아가는 시골 군청이나 교육청이나 학교에서 이만한 생각을 하는 샘님을 아직 못 보았는데요, 앞으로는 있을는지 없을는지 가물가물하구나 싶어 새삼스럽습니다.


  책을 엮은 배성호 샘님 한 사람이 대단하기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이분이 어른으로서 샘님이란 길을 가기 앞서 이끌고 가르친 어진 어른이 있었겠지요. 뜻을 함께하는 슬기로운 동무하고 이웃이 있었을 테고요.


  혼자서 갈아엎거나 바꾸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혼자서 조그맣게 가꾸는 손길이라면, 어느새 한 사람 두 사람 곁에 서면서 함께 걷는 발걸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른끼리 하는 일이 아닌,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스스로 앞장서서 어깨를 겯는 살림길이에요.


  첫걸음이 대수롭다고 하는 옛말처럼, 배움자리라면 들머리가 더없이 대수로울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네 배움자리는 들머리에 뭘 세우거나 내걸까요? 배움자리를 오가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들머리에서 날마다 무엇을 볼까요? 배움자리를 오가는 길목에 나무를 우거지게 가꾸는 곳이 더러 있습니다. 오가는 길뿐 아니라, 울타리를 나무로 겹겹이 싸고, 옆이나 뒤에는 푸르게 우거진 숲이며 골짜기를 둔 배움자리도 있지요.


  배움책 《꿈을 담은 교문》은 들머리 하나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폅니다만, 우리가 들머리를 비롯해 모든 자리를 차근차근 바라보면서 가꾸는 눈썰미를 키울 수 있다면 아름답겠지요. 아파트 사이에 배움자리를 두렵니까? 숲이나 바다나 들판 곁에 배움자리를 두렵니까? 배움자리 앞에 온갖 가게가 늘어서는 마을이 되도록 하렵니까? 배움자리가 살림자리 품에 고이 안기도록 하렵니까?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배움자리에서 꿈이며 사랑을 즐거우면서 상냥하게 지켜보거나 배울 만한지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