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 - 코로나 시대, 새로운 교육을 위하여 코로나19 3부작
인디고 서원 지음 / 궁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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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푸른책시렁 156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

 인디고 서원 엮음

 궁리

 2020.4.24.



우리나라 교육 제도는 매번 이런 식이었습니다. 정시와 수시 비율을 조금씩 바꿔 가며, 늘 ‘대입’에 맞춰져 있는 획일화된 교육으로, 이번 해에는 누구를 더 유리하게 대학에 가게 해줄지 수 싸움을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38쪽)


여러분이 지금 당장 바꾸고 싶은 공간은 어디인가요? 여러분이 마음에 드는 공간으로 바꿔 보고 탈바꿈한 공간의 특징을 마치 사진으로 보듯이 글로 표현해 주세요. (95쪽)


저는 청소년들이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이유가 사회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48쪽)


지구가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과학 시간도 필요하지만, 큰 지구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149쪽)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역량은 기존의 틀에서는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았던 것임이 분명합니다. (292쪽)



  찔레나무에 아직 꽃망울이 맺히지 않을 즈음 어떤 나무인지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시큰둥하게 지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미일까 하고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 테며, 굵직굵직 가시를 보고서 싫다고 꺼리는 사람이 있어요.


  찔레싹을 보고는 맛나겠네 여기면서 바로 톡톡 훑어 냠냠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시 돋은 잎줄기를 어찌 먹느냐며 손사래치는 사람이 있어요. 이 가시 잔뜩 나무가 하얗게 꽃잔치를 벌이며 온통 달콤하게 감쌀 적에 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요.


  언제나 새로 배웁니다. 날마다 싱그럽게 익힙니다. 겨울 가고 봄이 오다가 여름으로 접어드는 철을 배워요. 늘 새롭게 흐르는 철이지만, 이러한 철을 알아볼 겨를이 없이 바삐 몰아치는 곳에서 ‘철없이 가는 삶’을 지켜보고 배우기도 하겠지요.


  부산이란 고장에서 푸름이가 푸르게 물드는 책을 곁에 두면서 푸른길을 익히도록 이바지하려고 힘쓰는 ‘인디고서원’이 있습니다. 이곳 책집지기는 푸름이랑 배움벗이 되면서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인디고 서원 엮음, 궁리, 2020)라는 책을 여밉니다.


 책이름을 그대로 옮긴다면 ‘배움길은 바른길로 나아간다’예요. ‘배우는 사람은 바르게 나아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배우기에 싱그러이 바른삶이 된다’는 얘기이고요.


  이때에 물어보기로 해요. 배우기에 바를 수 있을까요? 배우지 않는다면 바르지 않을까요?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른길을 걸을까요? 안 배우는 사람이기에 안 바르고야 말까요?


  학교를 오래 다녔기에 배운 사람이지 않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녔으면 그저 ‘학교를 오래 다닌’ 사람입니다. 이런 졸업장이나 저런 자격증이 있으면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거머쥔 사람입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은 ‘그 사람을 말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이나 사랑이나 살림’인가를 밝히지 못합니다.


  한국사람이라 해도 다 다릅니다. 일본사람이라 해도 모두 달라요. 어느 나라 사람이기에 더 좋거나 나쁘지 않아요. 서울사람이나 시골사람도 매한가지입니다. 서울에 살기에 숲을 모르지 않고, 시골에 살기에 흙을 사랑하지는 않아요. 스스로 배우려는 마음이라면 서울에서도 숲을 알고, 스스로 안 배우려는 마음이라면 시골에서도 흙을 마구 다룹니다.


  돌림앓이가 퍼지기 앞서까지 끝이 없도록 입시지옥으로 내달린 이 나라를 들여다보기로 해요. 돌림앓이가 퍼져서 학교가 더는 아이들이 모이는 자리가 되지 못하는 요즈음에도 ‘배움길’ 아닌 ‘입시제도·학사일정’만 걱정하는 교육부 나리를 바라보기로 해요. 왜 《공부는 정의로 나아가는 문이다》하고 이야기할까요? 아니, 왜 이 책으로 우리한테 물어볼까요?


  배우는 척할 적에는 배움길이 아닙니다. 졸업장하고 자격증을 따는 길은 배움길이 아닙니다. 배움길은 살림길이요, 사랑길이며, 숲길입니다. 살림을 사랑하는 숲으로 나아가지 않고서야 배움길이 되지 않아요. 책읽기는 책을 읽는 길입니다. 책이어야 배우지 않아요. 꼭 초·중·고등학교에 대학교를 거쳐야 ‘배웠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대학교에 대학원에 유학까지 마쳤다지만 어리석거나 엉터리이거나 어쭙잖거나 엉성한 사람이 꽤 많습니다. 학교 문턱을 안 디뎠어도 슬기롭고 사랑스러우며 상냥한 사람이 퍽 많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에 설 적에 즐거이 노래하고 아름다이 춤추는 참어른이란 자리에 설 만할는지, 이제부터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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