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문신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2
박경희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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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67



시골 할매 손길을 노래하는 시 한 줄

― 벚꽃 문신

 박경희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2.9.26. 8000원



  글을 쓸 적에는 ‘글쓰기’라고 합니다. 글쓰기를 한자말로 옮기면 ‘작문’쯤 됩니다. 시를 쓰면 ‘시쓰기’입니다. 시쓰기를 한자말로 옮기면 ‘시작’쯤 됩니다.


  시쓰기를 쉽지 않다고 여긴다면, 시를 쓰는 분들이 ‘글쓰기’처럼 ‘시쓰기’라고 하는 쉬운 말을 좀처럼 안 쓰고 ‘시작’이라는 한자말을 무척 널리 쓰는 탓도 제법 있지 싶습니다. ‘글’이라고 해도 여느 사람들은 쉬 다가서지 못하곤 하는데 ‘문학’이라고 하면 여느 사람은 넘보기 어려운 울타리라고 여겨요. 게다가 ‘문학비평’에서 흐르는 말은 몹시 어렵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간밤 꿈이 하도 뒤숭숭하여 길가 돌멩이 채이듯 가로거치는 / 새끼들한테 전화 돌리고 찬물에 밥 말아 싱건지 올려 / 바들거리며 뜬 밥 한술 / 괜스레 장독대에 엎어놓은 시루도 뒤집어보고 / 아귀 맞지 않은 부엌문 툭툭, 차본다 (꿈)


밭 가생이만 살살 긁다가 / 화장실 간다고 들어가면 깜깜무소식 / 삼십 분 일하고 두 시간 쉬고 / 전화 오면 삼십 분 수다 / …… / 주둥이는 신작로 버스 댕기는 곳까지 / 길게 나와 있어 무슨 말을 해도 / 쇠 귓구멍에 경 읽기 / 이래도 흥! 저래도 흥! / 그게 누구냐고 물으니, // 너야! 너! (건달 농부)



  충청도 보령에서 살며 시를 쓰고 시골 아이한테 글쓰기를 가르친다고 하는 박경희 님이 선보인 시집 《벚꽃 문신》(실천문학사,2012)을 읽으면서 시쓰기란 얼마나 쉽거나 어려운가 하는 대목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시집을 읽으면 ‘늙은 아버지하고 어머니 꾸지람’은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하는 ‘시집 안 가는 가시내’ 모습을 푸근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밭 한 자락을 내주었더니 일다운 일은 안 하고 맨 놀기만 하고 이러면서도 “주둥이는 신작로 버스 댕기는 곳까지 길게” 나왔다고 하는 박경희 님이라고 한답니다. 이 말은 이녁 아버지가 이녁한테 들려준 말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시골에서 늙은 두 어버이하고 살면서 늙은 두 어버이가 박경희 님한테 들려주는 말을 고스란히 옮겨서 ‘시쓰기’를 한 셈입니다. 머릿속에서 굴린 시가 아니라, 몸뚱이에서 태어난 시입니다. 머리로 뚝딱거리듯이 꿰어맞춘 시가 아니라, 삶이 뚝뚝 묻어나는 시예요.



마흔이 다 된 게 / 밥물도 맞출 줄 모르느냐고 / 고두밥도 모자라 쌀이 씹힌다고 / 국수는 오래 삶아야 속까지 익지 / 예산 국수 공장에서 금방 뽑아 왔느냐고 / 시금치나물은 살짝 익혀야지 / 흐물흐물해서 어디 씹히기나 하겠느냐고 (퉁박꽃)



  시집 《벚꽃 문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골사람 말씨랑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골 할배 이야기가 흐르고, 시골 할매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쓰기를 한 분은 박경희 님이지만, 곰곰이 따지면 ‘시골 할배’하고 ‘시골 할매’가 ‘입으로 쓴 시’를 박경희 님이 ‘손으로 옮겨적었’다고도 할 만합니다. 시골 할배하고 할매는 대수롭지 않게 ‘입으로 노래를 하듯이 시를 쓰신’ 셈이요, 박경희 님은 이런 ‘시골노래’를 귀여겨듣고 좋아하고 사랑해 주면서 새로운 시를 일군 셈이에요.



엄니가 그냥 두란다 / 일 년 곡식 잘도 갉아먹어 / 그리 속을 썩이더니 / 비누까지 갉아먹던 주둥이 붉은 / 고얀 놈인지 년인지 / 하여튼 맞다고 건져내지 말라고 / 재차 말에 탑을 쌓는다 / 찍찍, 비누 거품으로 올라오는 소리 /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잠시 광에 다녀오던 중 / 뜰채로 쥐를 건져 멀리 가 놓아준 엄니 / 툭툭, 묻은 물기를 털며 / 늘어진 젖퉁이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 너도 시집가 애새끼 나보면 / 알 거라고, 해 가는 곳으로 / 고개를 개우뚱 돌리는 (해바라기)



  어쩌다가 쥐 한 마리가 어느 구멍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대요. 늘 곡식을 갉아먹었으니 잘된 셈이라고 늙은 어머니가 한 말씀 하셨답니다. 그런데 늙은 어머니는 이 쥐를 조용히 건져서 살려 주었대요. 가만히 쥐를 들여다보니 ‘새끼를 밴 어미 쥐’였기에, 이 ‘새끼 밴 어미 쥐’가 그냥 죽는 꼴을 볼 수 없었대요.


  잔잔히 흐르는 삶이 차분하게 새로운 이야기 한 자락으로 깨어납니다. 조용히 이어지는 살림이 어느새 올망졸망 아기자기한 새로운 노래 한 마디로 태어납니다. 고즈넉하게 짓는 사랑이 하나둘 어여쁜 가락을 입고서 즐거운 시 한 줄로 거듭납니다.



머위를 잘라 / 바구니에 담자 // 세 살 된 조카 서현이가 다가와 / 양손에 하나씩 쥔다 // ‘나비야, 나비야’ // 머위 잎이 팔랑거리며 / 꽃잔디에 앉는다 (나비)



  시쓰기는 안 어렵다고 느낍니다. 박경희 님이 보령 시골마을에서 길어올리는 시골노래를 읽다 보면, 그러니까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맛깔스러운 ‘시읽기’를 가만가만 누리다 보면, 시읽기도 시쓰기도 참으로 수수하고 투박하네 하고 느낍니다. 이러면서 참 맛깔스러운 이야기나 노래가 바로 시 한 줄이겠네 하고 느낍니다.


  세 살 조카가 머위 잎사귀로 나비 놀이를 하듯이, 마흔 살 넘은 ‘시골 가시내’ 박경희 님은 시골스러운 이야기밭을 일구고, 이야기놀이를 하며, 이야기꿈을 짓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시를 들려줍니다. 우리 삶이 바로 시 한 줄이라는 이야기를 밝힙니다. 우리가 스스로 짓는 사랑이 언제나 곱게 시로 피어날 수 있다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2016.11.1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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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지음, 고혜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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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65



추위에 지지 않는 민들레 같은 중남미 역사

― 모두의 노래

 파블로 네루다 글

 고혜선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6.8.5. 22000원



  민들레가 꽃을 피우는 자리를 가만히 살펴봅니다. 겨울 추위가 닥칠 무렵부터 민들레는 아주 조그맣게 잎을 내밉니다. 한겨울에도 어느새 잎을 제법 넓게 내놓아요. 이러다가 겨우내 눈을 맞고 추위에 떨기도 하지만, 일월하고 이월이 지나면 외려 더 푸르게 빛나고, 삼월 즈음부터 꽃대를 올려 사월에도 오월에도 유월까지도 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곤 합니다.


  십일월로 접어든 이즈음 우리 집 뒤꼍 한쪽에서 잎을 제법 넓게 벌린 흰민들레를 바라보면서 《모두의 노래》(문학과지성사,2016)라는 시집을 생각합니다. 파블로 네루다 님이 빚은 이 시집은 칠레라는 나라뿐 아니라, 중남미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기나긴 삶과 발자국과 사람 이야기를 다룹니다. 시 한 줄로 중남미 역사를 아로새겨요.



비오비오 강아 내게 말하려무나. / 내 입에서 미끄러져 나오는 것은 / 바로 너의 말들이다. 너는 내게 / 말을 주었고, 비와 나뭇잎이 / 엉켜진 밤의 노래를 주었다 (35쪽)



  민들레는 뿌리가 깊기로 이름이 높습니다. 민들레 줄기를 꺾어도, 누군가 군홧발로 민들레잎을 짓이겨도, 깊이 박은 뿌리는 씩씩하게 다시 줄기를 올리고 잎을 내놓아요. 밟히고 또 밟혀도 민들레는 사그라들지 않아요.


  어쩌면 밟히면 밟힐수록 더욱 기운을 내는 민들레일 수 있어요. 이처럼 중남미 사람들 발자국도 ‘서양 제국주의 군대’ 군홧발에 짓밟히고 짓이기면서도 꺾이거나 시들거나 주눅들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할 만해요. 총칼에 아파하고, 총칼에 스러지기도 하며, 총칼에 눈물젖기도 하지만, 모진 추위를 이기고 하얗게 꽃을 피우는 민들레마냥 다시 웃음꽃으로 일어서는 사람이 바로 ‘민중’이라고 할까요.



코르테스에게는 고향이 없다. 차가운 번개. / 갑옷 속에 죽은 심장을 가진 사내. / “폐하, 옥토와 / 금 박힌 신전이 / 인디오의 손에 있나이다.” (80쪽)


그들은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칭했다. / 클럽에서는 서로 훈장을 수여하고 / 역사책을 써 나갔다. / 의회는 칭찬 일색이었고, / 그 후에는 땅, 법 / 가장 좋은 길, 공기, / 대학, 구두를 / 나눠 가졌다. (289쪽)



  시집 《모두의 노래》는 책이름처럼 “모든 이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누구나 부르는 노래”입니다. 너랑 내가 서로 이웃이자 동무가 되어 부르는 노래입니다. 꺾이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꺾지도 않는 따사로운 손길로 부르는 노래입니다. 살가이 어깨를 겯으면서 수수하게 살림을 짓는 작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 땅에 뿌리박은 민들레 꽃송이처럼, 이 땅에 뿌리박은 사람들이 곱고 정갈하게 가꾸는 보금자리에서 피어나는 노래입니다.



형편없이 살았습니다. 쓰러져가는 집에 / 또다시 찾아온 배고픈 시절, 선생님. / 우리가 월급 1패소만 올려달라고 / 모이면, 선생님. / 경찰은 몽둥이, 불, 붉은 바람에, / 구타까지 했지요 / 그래서 저는 직장에서 / 해고되었습니다. (437쪽)


“어머니, 그분은 우리와 / 같은 가난한 분이에요. 그분은 우리의 / 헐벗은 삶을 조롱하지도, 비웃지도 않아요. / 그분은 그런 생활을 치켜세우고, 보호하세요.” / “그래서 제가 말했지요. 그렇다면 / 오늘부터 이 집은 그분의 집이다.” (492쪽)



  외교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시인으로 삶을 지은 파블로 네루다 님은 ‘이웃’을 바로 곁에 둡니다. 저기 권력자나 벼슬아치 곁에 이웃을 두지 않아요. 흙을 두 손으로 만지는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어요. 기름밥을 먹는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어요. 지붕이 낮은 집에서 옹기종기 살림을 가꾸는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어요.


  이리하여 시집 《모두의 노래》는 중남미 사람들이 서로서로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웃을 아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평화를 바라는 노래요, 민주와 평등을 바라는 노래입니다. 기쁨과 웃음을 바라는 노래요, 사랑과 아름다움을 바라는 노래예요.



영원한 젊은이, 시골 사람, / 밀과 봄의 씨앗이 넘치는 사람, / 순수한 광물처럼 주름지고 어두운 존재, / 너의 갑옷을 올려줄 시간을 기다리면서 사는 사람. (556쪽)


내 노래의 영역은 인간의 / 공통 책, 열린 빵이다. / 어떤 때 그 불을 모아 / 대지의 배에 다시 한 번 / 그 불꽃을, 그 잎을 심으리라. // 다시 이 말이 태어날 것이다. / 어쩌면 다른 시절에는 고통이 없이, / 내 노래에 검은 식물을 붙이는 / 불순한 실도 없이, / 다시 한 번 저 높은 곳에서 내 마음은 / 불타며 별에 부딪치며 타오를 것이다. (696쪽)



  권력자는 두 손에 권력을 거머쥐려 하면서, 이 권력으로 더 센 권력을 드높이려 합니다. 더 센 권력으로는 더 많은 돈을 가로채려 합니다. 더 많은 돈을 가로챈 뒤에는 더 으리으리한 이름을 드날리려 합니다.


  칠레뿐 아니라 중남미에 한때 들어섰던 ‘독재 권력자’는 ‘독재를 찬미하는 교과서’를 써서 그 나라 아이들한테 억지로 가르치려 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뜬금없는 국정 역사교과서’로 말썽이 생겨요.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교과서를 쓸 수 있어요. 국정교과서가 나쁠 까닭은 없어요. 그렇지만 ‘흙을 만지는 수수하고 작은 사람들 눈길에서 평화롭게 사랑을 가꾸려는 살림을 노래하려는 이야기’를 담는 교과서가 아니라면, 그만 독재 권력에 기울어지고 말기 일쑤예요.


  바람을 먹고 한결 새하얀 민들레꽃처럼 겨울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더욱 씩씩한 사람들 이야기가 《모두의 노래》에 흐릅니다. 겨울에도 햇볕 한 줌을 받으며 푸르게 잎을 내놓는 민들레처럼 이 겨울에 포근히 어깨동무를 하는 수수하고 투박한 사람들 이야기가 마치 꽃처럼 흰꽃처럼 들꽃처럼 도란도란 피어나는 《모두의 노래》입니다. 2016.11.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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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문예중앙시선 46
박지웅 지음 / 문예중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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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63



‘빈 손가락’ 가득 사랑을 주고받아요

―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

 박지웅 글

 문예중앙 펴냄, 2016.10.1. 9000원



  시를 쓰는 박지웅 님은 세 권째 시집인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문예중앙,2016)를 선보이면서 이녁 마음자리에 오랫동안 꾹꾹 눌러 두던 이야기를 하나 드러냅니다. 책이름에 나오기도 한데, “빈 손가락” 이야기를 시로 써요.


  “빈 손가락”이란 무엇일까요? 말 그대로예요. “빈 손가락”이란 빈 손가락입니다. 빈 손가락이라면 주먹에 손가락이 비었다는 뜻일까요? 네, 시를 쓰는 박지웅 님은 어릴 적부터 한손은 손가락이 비었다고 해요.



눈밭에 찍힌 손바닥이 늑대 발자국이다 / 나는 발 빠르게 손을 감춘다 // 손가락이 없으면 주먹도 없다 주먹이 없으니 팔을 뻗을 이유가 없다 한 팔로 싸우고 한 팔로 울었다 한 팔로 사랑을 붙들었다 (늑대의 발을 가졌다)


엄마는 쥐구멍이었다 / 나 살다가 궁지에 몰리면 / 언제나 줄달음치는 곳 (우리 엄마)



  손가락이 빈 손으로 눈밭에 찍은 자국을 보고 누가 “늑대 발자국”이라 말했을까요? “늑대 발자국”이라는 소리를 들은 박지웅 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런 말을 읊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빈 손가락으로 찍든 “찬 손가락”으로 찍든 모두 “사람 자국”입니다. 한 손가락이든 다섯 손가락이든 모두 “사람 손가락”이에요.


  손가락이 비어서 “주먹도 없다”고 하는 박지웅 님은 “주먹이 없으니 팔을 뻗을” 까닭이 없었다고 해요. 싸울 까닭도 싸울 수도 없는 셈입니다. 주먹을 쥐는 힘이 없으니 싸울 힘이 없고, 싸울 힘이 없으니 저절로 평화입니다. 빈 주먹은 남을 때리지도 않고, 나를 때리지도 않습니다. 빈 주먹은 아귀힘이 아닌 너른 팔로 이웃이나 동무를 따스히 껴안는 손길이 됩니다.



어디선가 벌써 망가져 온 청년이 잔을 깨뜨리지만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는다 / 우리 모두 매번 놓치지 않았는가, 사랑을 / 한때 내 눈동자의 상속녀가 되고 싶다던 여자 / 여자가 떠난 뒤, 나는 꺾인 신발처럼 누구의 발에도 쉽게 허락되었다 (꿈에 단골집 하나 있다)



  시집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에 실린 〈꿈에 단골집 하나 있다〉를 읽다가 문득 내 어린 날을 떠올립니다.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마디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면서 내 어린 날을 조용히 되새깁니다.


  나는 혀가 짧은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혀가 짧은 몸으로 태어났기에 어릴 적부터 뭔 말만 했다 하면 말소리가 새거나 겹쳤어요. 마치 웅얼거리는 소리처럼 말마디끼리 감기기 일쑤였어요. 때로는 어버버 하고 말을 더듬기도 했어요.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말’을 하려 하지만, 막상 내 입에서는 ‘저런 말’이 튀어나오거나 혀가 꼬여서 말을 더듬습니다.


  어린 날, 동무들하고 즐겁게 노는 자리에서 동무들이 조잘조잘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나도 한마디를 보태고 싶어서 입을 열어 혀를 놀립니다. 그러나, 아차차! 나는 혀짤배기 소리를 내면서 말을 더듬었고, 문득 둘레가 조용합니다. 동무들은 내가 혀짤배기인 줄 뻔히 압니다. 아마 텔레비전 같은 곳에서 익살꾼이 나와서 일부러 말더듬이 흉내를 내어 웃기려 했으면 다들 웃었을 텐데, 저희하고 함께 노는 동무가 즐겁게 읊은 말이 그만 ‘텔레비전 익살꾼이 일부러 웃기려고 할 적에 나오는 듯한 말씨’가 되었어요. 웃길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닌데 말이에요.


  머릿속에서 굴리던 말하고 다른 말이 혀끝에서 터져나왔구나 하고 느끼면 언제나 얼굴이 붉어집니다. 더 말을 잇지 못합니다. 나 스스로 참 바보 같네 하고 생각하는데, 동무들은 아무도 웃지 않아요. 이러다가 누군가 “그래, 그렇다는 말이지?” 하고 받아 주어요. 혀짤배기가 말을 더듬어도 따스히 품어 주었어요.



과자를 빼앗긴 아이가 울고 있다 그 옆에 술을 빼앗긴 어른이 울고 있다 그 옆에 장난감을 빼앗긴 막내가 울고 있다 그 옆에 한 달 만에 들어온 여자가 울고 있다 그 옆에 살이 숭숭 빠진 생선이 울고 있다 그 옆에 어떤 최후가 울고 있다 그 옆에 모든 옆이 와서 울고 있다 그 옆에 생글생글 눈 내리는 창가 그 옆에 밑 빠진 독처럼 앉은 하느님이 멀뚱멀뚱 하늘만 본다 (옆이 없다)



  “빈 손가락”으로 살아온 시인은 어떤 동무하고 이웃을 만났을까 하고 그려 봅니다. 손가락은 비록 ‘비었다’ 할지라도, 마음은 늘 넉넉하고 푸진 동무하고 이웃을 만나면서 오늘까지 살림을 지었으리라 하고 헤아려 봅니다. 시집 《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에 흐르는 마음은 빈 손가락으로 꿈을 꾸고 사랑을 노래하며 삶을 어루만지고 싶은 숨결이지 싶어요. 눈밭에 사람 자국을 찍고, 마음밭에 사랑 자국을 찍으며, 온누리에 자그마한 이야기 자국을 찍고 싶은 몸짓이지 싶어요.



나는 갈대밭에 애인을 세우고 / 카메라에 흑백필름을 장전하고 있었다 // 찰칵, / 실패를 누를 때마다 애인의 입술은 뻣뻣하게 굳었다 / 미소를 지적하자 애인은 피곤한 듯 일어서고 / 돌탑에 올린 불안한 돌처럼 입술이 떨어졌다 / 급히 주워 올렸으나 이미 삐뚤어져 있었다 (물금역 필름)


오래도록 첫 줄을 쓰지 못했다 / 첫 줄을 쓰지 못해 날려버린 시들이 / 말하자면, 사월 철쭉만큼 흔하다 (습작)



  갈대밭에 선 사랑님은 사진기를 바라봅니다. “빈 손가락” 시인은 빈 손가락으로도 즐겁게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그런데 자꾸 ‘실패’를 합니다. 갈대밭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아무래도 추운 바람이 부는 철이었을 테지요. 찬바람을 흠씬 맞으면서 ‘예쁘게 찍어 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려야 하는 사랑님은 입술이 뻣뻣하게 굳었대요. 힘들기도 하고 춥기도 하겠지요.


  “빈 손가락” 시인으로서는 그야말로 멋진 사진을 찍어서 두고두고 건사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텐데, 시인하고 갈대밭 마실을 나온 사랑님은 다른 마음이었으리라 생각해요. 굳이 사진으로 안 찍어도 마음에 남는 삶이자 오늘이에요. 따로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오래오래 마음에 사랑이 흐를 수 있는 살림이자 오늘이에요.


  그날 그 갈대밭을 함께 거닐었던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남아요. 그날 그 갈대밭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이야기는 오래오래 이어져요.



땅은 어둠이란 걸 몰랐다 / 원래 땅에는 오로지 땅뿐이었다 // 속을 파내자 땅에 눈이 생겼다 / 땅이 비로소 어둠을 본 것이다 (터널)



  빈 손가락 가득 사랑을 받습니다. 빈 손가락 가득 사랑을 줍니다. 빈 손가락에 나비가 내려앉습니다. 빈 손가락에 바람이 내려앉습니다. 빈 손가락에 햇볕이 내려앉고, 달빛이 내려앉으며, 별빛도 꽃빛도 웃음빛도 노래빛도 내려앉아요. 모든 고운 숨결이 빈 손가락에 내려앉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사랑이 빈 손가락을 거쳐 흐릅니다. 마음으로 보고 기쁨으로 노래할 수 있는 사랑이 빈 손가락에 사뿐히 내려앉다가 훨훨 하늘을 날아 온누리로 퍼집니다.


  눈을 감으면 우리가 서로 바라보는 모습은 손가락 갯수가 아닌 마음밭입니다. 마음을 활짝 열어 따사로운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시 한 줄로 마음을 열고, 시 한 줄로 마음을 노래해요. 2016.11.3.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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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이 키우는 나무 시작시인선 87
김완하 지음 / 천년의시작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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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58



바람 타고 놀아 보렴

― 허공이 키우는 나무

 김완하 글

 천년의시작 펴냄, 2007.9.5. 7000원



  꿈에서라면 얼마든지 바람을 타며 놀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꿈을 꾸는 자리에서마저 바람을 못 탈 수 있어요. 삶에서도 꿈에서도 바람을 타고 날아다닐 생각은 엄두조차 못 낼 수 있어요. 그리고 삶에서나 꿈에서나 늘 바람을 타며 날아다니는 홀가분한 몸짓이 될 수 있어요.



나란히 선 두 그루 은행나무 / 서로 닿으려 팔을 뻗고 뻗어도 / 닿지 못하던 거리. / 비로소 하나 되어 누웠네 / 그늘 속에서 몸을 섞었네 (한쪽 어깨를 밀어 주네)


잠시 멈추었던 / 풀벌레들 다시 목청을 세워 / 숲 속을 한껏 돋운다 / 그때 수세미는 주렁주렁 / 수직으로 제 그리움을 매단다 / 박주가리 열매 속에는 / 가을볕이 꽉꽉 쟁여 있다 (가을 수목원)



  김완하 님이 빚은 시집 《허공이 키우는 나무》(천년의시작,2007)를 들여다봅니다. 삶을 가만히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르는 시집입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숲을 바라봅니다. 도시를 바라보고 자동차를 바라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자전거를 바라보다가는, 아이를 바라보고 멧새 노랫소리를 바라봅니다.


  바라보려 한다면 하늘빛도 바람결도 바라볼 수 있어요.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 하늘빛은커녕 바람결조차 못 느끼고 못 보고 말아요. 바라보려 하기에 사랑스러운 이웃하고 동무를 살가이 느끼며 마주해요. 바라보려 하지 않기에 우리 둘레에 이웃하고 동무가 살가이 있는 줄 못 알아채기 마련이에요.



아버지의 삼천리표 자전거, 장에서 돌아오며 짐받이는 항상 고등어자반 뻥튀기 호미 낫 농기구로 가득했다 어느 날 내 흰 고무신 사오기로 하고 아버지 밤늦도록 오지 않았다 아침에 깨보니 고무신 내 가슴에 안겨 온기로 따뜻해져 있었다 (미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기에 나무가 자랍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기에 아이들이 뛰놀면서 자랍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 풀도 숲도 싱그럽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 마을마다 고운 숨결이 퍼집니다.


  늦도록 저자마실을 하던 아버지가 새 고무신을 장만해 줍니다. 이 따스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이녁 아이를 새롭게 사랑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넌지시 흐르는 사랑이고, 가만히 지켜보는 사랑입니다. 도시에서 부는 바람하고 시골에서 부는 바람이 언제나 똑같은 줄 느끼는 눈길이라면,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살림을 정갈하게 짓는 손길을 그릴 만합니다.



놀이터 미끄럼틀 옆 / 아이가 세워놓은 세발자전거 / 작은 바퀴 달리던 길 잠시 쉬는 사이 / 세상은 통째로 자전거 앞에 놓여 있다 (바퀴 앞에서)


뻐꾹새 소리 따라 걷는다 / 산 속 들어도 / 뻐꾹새 보이지 않고 / 소리만 환하게 산을 울린다 (산길)



  밤이 깊어 별이 밝습니다. 밤이 깊어도 전깃불이 환하면 별이 어둡습니다. 해가 높이 뜨며 풀잎하고 꽃잎이 기지개를 켜요. 해가 뜨고 지면서, 별이 돋고 저물면서, 하루가 흐르고 삶이 흐릅니다. 아이도 어른도 꽃도 나무도 모두 바람을 타면서 차츰차츰 자랍니다. 이 바람을 보기에, 이 바람을 사랑하기에, 이 바람을 온몸으로 마시기에, 서로 다르지만 모두 같은 아름다운 넋으로 이 땅에서 이웃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2016.11.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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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꽃이 불편하다 창비시선 221
박영근 지음 / 창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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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62



대궁밥 먹고 자라며 꽃이 된 시인

― 저 꽃이 불편하다

 박영근 글

 창작과비평사 펴냄, 2002.11.15.



  낫을 쥐어 억새를 끊습니다. 큰아이 손에 억새를 한 다발 안깁니다. 나도 억새를 한 다발 안습니다. 가을이 깊으면서 억새는 눈부시도록 하얀 꽃씨를 터뜨립니다. 바람 따라 한들거리는 억새는 부드러우면서 해맑은 빛깔로 고개를 까딱여요.


  억새꽃씨를 쓰다듬고, 억새줄기를 만집니다. 끊은 억새를 들고 논둑길을 걷습니다. 밭자락 한쪽 흙으로 된 거님길에 억새를 곱게 깔아 놓습니다. 요새는 시골에서도 흙길이나 논둑길에 으레 시멘트를 덮지만, 나는 우리 보금자리에 시멘트를 덮고 싶지 않습니다. 애써 낫으로 억새를 끊어서 흙바닥에 깔아 놓습니다. 시멘트를 덮은 길에서는 아이들이 뛰놀다 넘어지면 무릎이나 낯이나 팔꿈치가 쉬 까지는데, 짚을 깔아 놓은 흙바닥에서는 아이들이 뛰놀다 넘어져서 살짝 긁히거나 까질 뿐, 또는 멀쩡하지요.


  가을 억새를 끊어 흙바닥을 덮고서 시집 한 권을 손에 쥡니다. 이제 이 땅에 없고 저 흙에 몸을 맡긴 옛 시인 한 사람을 그려 봅니다. 어느새 흙으로 돌아가서 온누리를 홀가분하게 지켜볼, 또는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풀씨가 되어 온누리를 나긋나긋 바라볼 숨결을 헤아려 봅니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길)


이제 고개를 숙인다 온통 쇼핑몰이 되어 흘러가는 길 / 인파와 소란 속 / 무스탕을 걸치고 웃고 있는 네거리 현대백화점 / 마네킹 앞에서 // 맨주먹의 이력서를 쓰는 마음으로 / 그러나 몇번이고 고쳐써도 지워낼 것은 / 나밖에 없다는 듯이 / 그것을 똑똑히 확인하는 자세로 (고개를 숙인다)



  1958년에 태어난 박영근 님은 1984년에 첫 시집을 선보였고, 2002년에 다섯째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를 선보입니다. 이녁은 2006년에 흙으로 돌아갔고, 2007년에 유고시집이 나옵니다. 첫 시집부터 다섯째 시집에 이르기까지, 또 유고시집에서도, 박영근 님이 노래하는 이야기에는 ‘취업공고판’하고 ‘공장’이라는 말마디가 곧잘 흐릅니다. 그리고 ‘꽃’이라는 말마디가 ‘어머니’하고 ‘나’ 사이에서 가만히 어우러져요.


  전북 부안이라는 시골에서 나고 자란 뒤, 인천이나 서울 같은 도시에서 공장 어귀에서 땀을 흘린 한 사람은 기름때와 땀과 일옷 사이에서 꽃을 그립니다. 어릴 적부터 늘 곁에 있던 꽃을 되새깁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기름밥을 먹던 나날에는 도무지 만날 길이 없던 꽃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이 꽃을 문득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으면서 어쩐지 “저 꽃이 불편하다”고 한 마디 내뱉습니다.



그러나 집이 어디 있느냐고 성급하게 묻지 마라 / 길에 제가 가닿을 길을 모르듯이 / 풀씨들이 제가 날아갈 바람 속을 모르듯이 / 아무도 그 집 있는 곳을 가르쳐줄 수 없을 테니까 / 믿어야 할 것은 바람과 / 우리가 끝까지 지켜보아야 할 침묵 / 그리고 그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 (흰 빛)



  날마다 먹는 밥 한 그릇에 담긴 쌀알은 나락이 맺은 열매입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꽃이 핍니다. 그냥 손쉽게 사다 먹는 쌀이 아니라, 이 땅 저 너른 들에서 자란 나락을 시골지기가 손으로든 기계로든 벤 뒤에 햇볕이나 건조기에 말리기에 비로소 먹을 수 있는 쌀입니다. 꽃이 지고서 맺는 열매인 쌀이요, 그러니까 열매를 먹는다고 할 적에는 꽃을 먹는다는 소리도 되고, 꽃으로 피어나는 씨앗을 먹는다는 소리도 되어요.


  시인 박영근 님은 흙을 짓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기름밥을 먹는 어른으로 살림을 지었습니다. 이른바 ‘노동자 시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녁은 노동자 시인이면서도 이녁이 어릴 적에 언제나 곁에서 누리던 시골집을, 논밭을, 들을, 바다를 멧자락을 되새깁니다. 공장 담벼락만 바라보지 않고, 공장 담벼락 한쪽 귀퉁이에서 조그맣게 고개를 내미는 들꽃을 함께 바라봅니다. 골목에서도, 아파트 꽃밭에서도,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아무리 도시가 커지고 높은 건물이 올라서더라도 어디에선가 반드시 고개를 내미는 들꽃을 으레 바라봅니다.



때로 어떤 시간은 아무것도 떠나보내지 않는다 / 그곳을 떠나서도 내 안에서 / 봄이면 어김없이 판자울타리 개굴창에 개나리꽃들 피어올랐고, / 먼 데서 샛강물이 밤새 흘려보내던 뜨개기 같은 소식들 (문장수업)



  흙으로 돌아간 시인 한 분은 왜 “저 꽃이 불편하다”고 노래해야 했을까요. 그냥 저 꽃하고 함께 흙에 뿌리를 내리면서 살 수 있지 않았을까요. 굳이 도시에 남아서 도시 노동자로 있기보다는, 이녁이 나고 자란 어린 날 너르고 따사로운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서 흙을 사랑하고 “저 꽃이 사랑스럽다”고 노래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공장 담벼락을 타고 올라 / 녹슨 철조망에 / 모가지를 드리우고 망울을 터뜨리다 / 담장 넘어 비로소 피어나는 꽃들, / 흐르는 바람에 / 햇살 속에 (꽃들)



  참으로 많은 시골사람이 도시로 와서 도시사람으로 바뀝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90퍼센트가 훨씬 웃도는 숫자가 도시에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늘 도시사람이지만, 아버지나 어머니만 거슬러 올라가도, 또 할아버지나 할머니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모두 ‘시골사람’ 뿌리이기 마련입니다. 몸은 도시에 있되 마음은 아직 시골하고 이어진 삶이라고 할까요. 몸은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 있어도, 마음은 꽃이나 풀이나 나무 곁에 있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시인 한 사람은, 흙으로 돌아간 시인 한 사람은, 꽃을 바라보면서 마냥 꽃내음을 누리거나 즐기지 못합니다. 자꾸만 “저 꽃이 불편하다”는 마음이고 맙니다. 이녁 뿌리인 흙을 밟거나 만지지 못하는 삶으로 공장 담벼락에 서서, 이녁 몸통이던 흙을 가꾸거나 일구지 못하는 살림으로 아파트 꽃밭 앞에 서서, “저 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는지 망설이면서 가슴이 아픕니다.



돌아보면 / 옛집 마당가엔 지금인 듯 싸락눈이 붐벼 / 개오동나무는 하얗게 머리를 풀고, / 애비의 대궁밥을 기다리던 소년이 / 애써 고개를 들어 / 아잇적 어머니 얼굴을 더듬는다 // 문득 세월이 잿더미 속에 묻어둔 불씨를 찾아 / 엄동에 샙겨밥을 짓고, / 집강아지 한 마리 / 정짓간 환한 아궁이 불 곁에서 / 잠이 든다 (문득 세월이 잿더미 속에서)



  애비가 물려줄 ‘대궁밥’을 기다리던 앳되고 가녀린 아이를 그려 봅니다. 노동자 시인으로 숨을 거둔 어른이 아닌, 아버지 대궁밥을 침을 꼴깍 삼키면서 말없이 가디리던 그 앳되고 가녀린 아이를 그려 봅니다.


  그 아이네 그 시골 아버지는 이녁 아이가 ‘대궁밥을 기다리는’ 줄, ‘침을 삼키면서 바라는’ 줄 뻔히 알았을 테지요. 그 시골 아버지는 이녁 배가 차지 못하는 밥을 먹으면서도 일부러 ‘밥맛 없다’면서 밥그릇을 물리며 대궁밥을 잔뜩 남겼을 테지요.


  대궁밥을 먹고 자란 가녀린 아이가 이웃을 따사로이 품는 마음을 시 한 줄로 노래하는 씩씩한 일꾼으로 살아냈습니다. 대궁밥을 기다리던 작은 아이가 이웃을 넉넉히 보듬으려는 사랑을 시 한 줄로 빚어내는 고운 숨결로 살아냈습니다.


  입으로는, 글로는 “저 꽃이 불편하다”고 읊었을지라도, 속으로는, 마음으로는, 또 깊게 우러나는 사랑으로는 “저 꽃이 곱다”고 웃음지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 꽃이 어머니 같다”라고 웃기도 하고, “저 꽃이 누이 같다”라며 웃기도 하고, “저 꽃이 울 아버지 같다”라며 웃기도 했겠지요. 2016.10.22.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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