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이 키우는 나무 시작시인선 87
김완하 지음 / 천년의시작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시를 노래하는 말 258



바람 타고 놀아 보렴

― 허공이 키우는 나무

 김완하 글

 천년의시작 펴냄, 2007.9.5. 7000원



  꿈에서라면 얼마든지 바람을 타며 놀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꿈을 꾸는 자리에서마저 바람을 못 탈 수 있어요. 삶에서도 꿈에서도 바람을 타고 날아다닐 생각은 엄두조차 못 낼 수 있어요. 그리고 삶에서나 꿈에서나 늘 바람을 타며 날아다니는 홀가분한 몸짓이 될 수 있어요.



나란히 선 두 그루 은행나무 / 서로 닿으려 팔을 뻗고 뻗어도 / 닿지 못하던 거리. / 비로소 하나 되어 누웠네 / 그늘 속에서 몸을 섞었네 (한쪽 어깨를 밀어 주네)


잠시 멈추었던 / 풀벌레들 다시 목청을 세워 / 숲 속을 한껏 돋운다 / 그때 수세미는 주렁주렁 / 수직으로 제 그리움을 매단다 / 박주가리 열매 속에는 / 가을볕이 꽉꽉 쟁여 있다 (가을 수목원)



  김완하 님이 빚은 시집 《허공이 키우는 나무》(천년의시작,2007)를 들여다봅니다. 삶을 가만히 바라보는 이야기가 흐르는 시집입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숲을 바라봅니다. 도시를 바라보고 자동차를 바라봅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자전거를 바라보다가는, 아이를 바라보고 멧새 노랫소리를 바라봅니다.


  바라보려 한다면 하늘빛도 바람결도 바라볼 수 있어요. 바라보려 하지 않으면 하늘빛은커녕 바람결조차 못 느끼고 못 보고 말아요. 바라보려 하기에 사랑스러운 이웃하고 동무를 살가이 느끼며 마주해요. 바라보려 하지 않기에 우리 둘레에 이웃하고 동무가 살가이 있는 줄 못 알아채기 마련이에요.



아버지의 삼천리표 자전거, 장에서 돌아오며 짐받이는 항상 고등어자반 뻥튀기 호미 낫 농기구로 가득했다 어느 날 내 흰 고무신 사오기로 하고 아버지 밤늦도록 오지 않았다 아침에 깨보니 고무신 내 가슴에 안겨 온기로 따뜻해져 있었다 (미로)



  비가 오고 바람이 불기에 나무가 자랍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기에 아이들이 뛰놀면서 자랍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 풀도 숲도 싱그럽습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부니 마을마다 고운 숨결이 퍼집니다.


  늦도록 저자마실을 하던 아버지가 새 고무신을 장만해 줍니다. 이 따스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이녁 아이를 새롭게 사랑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넌지시 흐르는 사랑이고, 가만히 지켜보는 사랑입니다. 도시에서 부는 바람하고 시골에서 부는 바람이 언제나 똑같은 줄 느끼는 눈길이라면,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살림을 정갈하게 짓는 손길을 그릴 만합니다.



놀이터 미끄럼틀 옆 / 아이가 세워놓은 세발자전거 / 작은 바퀴 달리던 길 잠시 쉬는 사이 / 세상은 통째로 자전거 앞에 놓여 있다 (바퀴 앞에서)


뻐꾹새 소리 따라 걷는다 / 산 속 들어도 / 뻐꾹새 보이지 않고 / 소리만 환하게 산을 울린다 (산길)



  밤이 깊어 별이 밝습니다. 밤이 깊어도 전깃불이 환하면 별이 어둡습니다. 해가 높이 뜨며 풀잎하고 꽃잎이 기지개를 켜요. 해가 뜨고 지면서, 별이 돋고 저물면서, 하루가 흐르고 삶이 흐릅니다. 아이도 어른도 꽃도 나무도 모두 바람을 타면서 차츰차츰 자랍니다. 이 바람을 보기에, 이 바람을 사랑하기에, 이 바람을 온몸으로 마시기에, 서로 다르지만 모두 같은 아름다운 넋으로 이 땅에서 이웃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2016.11.2.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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