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정면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43
김선향 지음 / 실천문학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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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18



네 코앞에 미사일을 들이대 볼까?

― 여자의 정면

 김선향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6.6.27. 8000원



  나는 사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났습니다. 사내라는 몸을 입었으니 스물을 갓 넘길 무렵 군대라는 곳에 갔습니다. 군대라는 곳에 간 사내이기에 두 손에 총을 쥐면서 ‘누군가를 나쁜 놈으로 여겨서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칼로 찔러 죽이거나 주먹이나 발길로 때려서 죽이는 재주’를 익히는 솜씨를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군대에 있어야 하던 사내로서 그때에 늘 생각해 보았어요. 왜 이렇게 정갈하고 아름다운 멧골에 막사를 세우고 군사훈련을 시키는 짓을 남녘이나 북녘 모두 바보스레 해야 할까 하고요. 남·북녘은 서로 돈이 얼마나 많기에 전쟁무기와 군부대에 이토록 어마어마하게 돈을 쏟아부어야 할까 하고요.



엄마, 그거 알아? 난 노점상에서 떨이로 사온 귤 대신 고디바초콜릿이 먹고 싶었어. 단화를 신고 온종일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 같은 여자, 생리휴가도 없이 서서 피 흘리는 가장은 사절이야. (안녕, 엄마)


그녀는 늘 옆모습만 보여줬지 / 왼쪽이 웃는 듯해서 / 오른쪽을 보면 울고 있었어 / 왼쪽은 나를 사랑했고 / 오른쪽은 나를 증오하는 것 같았지 (그녀의 정면)



  흔히 ‘군부대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 나라에 군부대가 없으면 저쪽에서 이쪽을 얕보고 쳐들어오리라 여기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아이들한테도 고스란히 이어져요. 아이들은 어릴 적에 ‘호신술’을 익혀야 합니다. 골목마다 감시카메라를 달아야 합니다. 이웃사람을 ‘이웃’이 아닌 ‘수상한 사람’으로 바라보도록 길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렇게 온 사회에 전쟁이나 감시라고 하는 바람이 불도록 하면서, 막상 사회는 그리 평화스럽거나 아늑하지는 못합니다. 경찰이나 군대가 있으니 ‘이만큼 평화롭다’고 여길 분도 있을 텐데, 막상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웃사랑’이나 ‘마을사랑’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요. 젊은 사내는 군대에서 ‘이웃을 나쁜 놈으로 여겨서 때려죽이는 재주’에 길들어야 하고요.


  평화를 가꾸는 평화교육이 아니라, 전쟁무기를 남보다 더 갖추어서 남을 윽박지르거나 꺾어누르는 ‘전쟁교육’을 시키는 사회가 아닌가 하고 느낍니다. 그러니까 한국 정치·사회는 새삼스레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조용하고 한갓지면서 평화로운 시골마을에 ‘사드’ 같은 무시무시한 미사일을 들이겠다는 정책을 내놓습니다.



자장 자장 우리 엄마 자장 자장 잘도 잔다 // 기차 타고 전철 타고 마을버스 타고 / 양손에 어깨에 들고 메고 와서는 / 문전부터 딸년에게 핀잔만 들었구려 (엄마를 위한 자장가)


동네 오빠 아는 오빠 친구의 오빠 / 신세대들은 남편에게도 오빠라 부른다지 / 쥐꼬리 월급 어디에 다 썼냐고 잔소리해대는 남편 오빠 / 결혼하더니 남이 되어버린 피붙이 오빠 / 노래를 기차게 잘하는 오빠 / 오입질에 선수인 오빠 /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오빠 (오빠들)



  김선향 님이 빚은 시집 《여자의 정면》(실천문학사,2016)을 읽습니다. 이 시집은 오롯이 ‘가시내(여자)’ 목소리와 눈길과 숨결이 흐릅니다. 사내(남자)한테 눌리거나 밟히거나 치이거나 차이거나 꺾이거나 눌리거나 죽는 가시내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내하고 가시내를 가르는 가장 큰 금이라면, 가시내는 새로운 목숨(아기)을 몸소 낳습니다. 사내는 아기를 낳는 씨앗을 몸에 건사하기는 하지만, 몸소 새로운 목숨을 낳지 못해요. 가시내는 몸소 아기를 낳으면서 새로운 사람을 새롭게 사랑하는 마음을 북돋울 수 있다면, 사내는 먼발치에서 마치 남 일처럼 구경하거나 아예 모르기까지 하기 일쑤입니다. 이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사내는 젊은 나이에 군부대에 들어가서 군사훈련을 받고,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잔뜩 억눌린 몸으로 ‘성욕해소’에 마음을 빼앗기지요.


  군부대 둘레에 있는 술집과 방석집을 떠올려 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조선 가시내를 비롯해서 중국과 아시아 가시내를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사로잡아서 노리개로 삼은 짓을 떠올려 봅니다. 전쟁무기를 손에 쥔 사내는 마음에 평화를 생각하거나 키우지 못해요. 전쟁무기를 손에 쥐고 군사훈련을 받는 사내는 평화롭거나 사랑스러운 마을을 즐겁게 짓는 길에 힘을 쓰지 못해요.



한국에 온 지 이태가 되어서야 / 자기 이름을 겨우 쓸 수 있는 프엉 씨 //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 호치민, 버스, 여덟 시간, 까마우, 더워 // 공부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도 / 읽을 수 있는 단어는 열 개 남짓 / 하지만 모르는 게 없는 생선 이름들 (붉은 꽃, 흰 꽃)



  북녘에서 우리 코앞에 미사일을 들이대는데 남녘에서도 북녘 코앞에 미사일을 들이대야 하지 않느냐고 여길 수 있습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제 아이들을 다시 생각해 봐야지 싶어요. 두 아이가 뭔가 어떤 일이 있어서 틀어져서 식식거리며 노려본다고 해 보셔요. 이 두 아이더러, “자, 신나게 싸워! 한 놈이 자빠져서 죽을 때까지 때려눕혀!” 하고 말해도 될까요?


  남녘뿐 아니라 북녘에서도 군부대를 줄이고 전쟁무기를 없애도록 정치 우두머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슬기로운 길을 찾은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한테 이런 전쟁무기가 있으니 우리한테도 저런 전쟁무기가 있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어마어마한 돈을 전쟁무기에 들이붓는 짓은 이제 그쳐야 합니다.


  우리가 피땀과 같이 내놓은 돈(세금)은 바로 우리 삶터를 가꾸고 사랑하면서 아끼는 길에 쓸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가르치는 자리에 피땀 같은 돈을 써야지요. 아프고 슬픈 이웃을 따스히 보살피면서 북돋우는 길에 피땀 같은 돈을 써야지요. 아름다운 마을이 되고 아름다운 숲이 되며 아름다운 나라가 되는 곳에 피땀 같은 돈을 써야지요.



― 피임 같은 건 여자가 알아서 해야지 / ―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 // 흡반처럼 달라붙는 말들을 뜯어내 / 쓰레기통에 처넣지 못한 채 / 비디오방에 갔다 // 거기서 차승원, 설경구랑 놀았다 / 눈물이 쏟 빠지도록 웃다가 / 간이소파에 파묻혀 / 웅크리고 잠을 잤다 (도둑고양이)


너무 추워, 엄마. / 봄은 어디에 있어요? / 세 살 딸아이가 묻는다 (봄은 어디에)



  시집 《여자의 정면》을 가시내뿐 아니라 사내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읽는 모습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이 나라에서 이 땅에서 이 지구라는 별에서, 수많은 가시내가 사내한테 밟히고 눌리고 차이고 꺾이고 얻어맞고 노리개로 뒹굴어야 하던 발자국을 이 조그마한 시집에서 두 눈 똑바로 뜨고 읽는 모습을 곰곰이 그려 봅니다.


  전쟁무기는 멈추어야 합니다. 전쟁이 아닌 평화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싸움은 그쳐야 합니다. 싸움이 아닌 어깨동무로 거듭날 노릇입니다. 참된 사랑이 되도록, 착한 이웃이 되도록, 고운 살림이 되도록, 이제 우리 보금자리하고 마을을 바라볼 때입니다. 내 이웃 코앞에 미사일을 들이대는 바보스러운 짓은 이처럼 똑같이 바보스러운 짓으로 우리한테 돌아옵니다. 오직 사랑만이 사랑으로 돌아오고, 오로지 평화만이 평화로 돌고 돕니다. 2016.7.2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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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목록 창비시선 381
김희업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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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29



바람을 마신 숨결을 내 몸으로

― 비의 목록

 김희업 글

 창비 펴냄, 2014.11.10.



  빵을 반죽하면서 효모를 넣어야 부푸는데, 나는 이제껏 몇 번이나 이를 빠뜨립니다. 왜 이렇게 효모를 빠뜨리는가 하고 돌아보면, 나는 아직 빵굽기가 몸에 익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제대로 마음을 기울여서 반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깨닫습니다. 국을 끓이면서 마치 간을 하나도 안 한 짓이랑 똑같다고 할 테니까요.



안 팔리는 꽃이 조금씩 자라고 있다 / 수직으로 뻗다 지루하면 수평으로 서서히 방향을 튼다 / 아주 조금씩 자라서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다 / 주인 속 타는 줄 모르고 /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꽃들 (출생의 비밀)


잠긴 문 / 들끓는 어둠 / 맡긴 시간이 부패할 때까지 / 밖은 모를 것이다 / 누군가가 발굴하기 전까지는 (물품보관함)



  코앞에 있는 꽃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코앞에 꽃이 있어도 이를 느끼거나 알지 못합니다. 눈앞에 있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눈앞에 아이가 노래하고 춤추면서 활짝 웃어도 이를 느끼거나 알아채지 못합니다.


  김희업 님 시집 《비의 목록》(창비,2014)을 읽습니다. 시인을 둘러싼 여러 가지 삶을 바라보면서 느낀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인 둘레에 있는 여러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짓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전혁림미술관을 나와 차를 기다리는데 / 내 앞을 가로질러 가는 청바지 차림의 사내 / 페인트가 위아래로 묻어 있어 페인트공임을 알 수 있었다 (통영 2)


소녀의 공중비행을 우러러보던 지상의 유일한 목격자 / 화단의 꽃이 / 죽음을 애도하는지 / 고개를 반쯤 숙였다 / 그리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비행법)



  《비의 목록》을 쓴 시인은 ‘화가’와 ‘페인트공’이 서로 얼마나 다른가 하고 묻습니다. 미술관에 깃들어야 ‘그림’이 된다면, 미술관에 깃들지 못한 채 페인트를 바르는 일을 하는 일꾼은 ‘무엇’을 하는 셈인가 하고 묻습니다.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숨을 끊은 어린 가시내를 떠올리면서, 이 아이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을 꽃이 반쯤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이야기를 적습니다.


  시인은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시인은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알 만할까요. 우리는 저마다 무엇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배우거나 알거나 깨닫는 하루를 누릴까요.



그의 혈액형은 동물형이다 / 바람이 풀 위를 밟고 지날 때마다 / 풀이 한입 가득한 소 / 그런 소를 덥석 먹어치워 / 풀의 피가 몸속 푸릇푸릇한 그는 과연 육식주의자인가? (그의 혈액형은 동물형이다)


당신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돈은 / 어지간해서 나올 줄을 모른다 / 관 속의 당신 또한 나올 생각을 않는다 / 포근했던 호주머니 속 한때의 동전처럼 (호주머니)



  고기를 먹으면 고기가 내 몸이 됩니다. 한때 고기였던 짐승은 거의 풀을 먹던 짐승이었으니, 풀을 먹는 짐승을 이룬 살점은 거의 모두 풀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풀짐승 가운데 풀을 먹고 자란 짐승은 드물어요. 예부터 소는 풀을 먹었지만, 오늘날 소는 풀이 아닌 사료를 먹지요. 짚조차 못 먹고 항생제를 먹어요. 그러면 ‘사료 먹는 소’를 먹는 사람은 ‘풀로 이룬 살점’이 아닌 ‘사료로 이룬 살점’을 먹는 셈이 될까요?


  문득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풀을 먹든 고기를 먹든, 이 모든 목숨은 이 별에서 다 같이 살면서 모두 똑같이 바람을 마셔요. 바람을 마시지 않는 풀이나 짐승은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풀밥을 먹거나 고기밥을 먹을 적에 ‘잎이나 살점이 된 바람’을 나란히 먹는 셈이라고도 할 만해요. 깻잎을 이룬 바람을 내 몸으로 받아들이고, 돼지 살점을 이룬 바람을 내 몸으로 맞아들여요.


  이리하여 아이들은 어버이 사랑으로 마음을 이룹니다. 나는 아이들이 오롯이 사랑을 물려받아 즐겁게 웃는 숨결이 되도록 살림을 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 눈에 따라, 짓고 가꾸는 손에 따라, 삶을 돌보고 살림을 추스르는 생각에 따라, 오늘 하루는 늘 새롭게 거듭나리라 느낍니다. 2016.7.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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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는 나의 힘 창비시선 281
황규관 지음 / 창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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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28

 

뙤약볕에 지친 할머니를 느티그늘이 품어 주네
― 패배는 나의 힘
 황규관 글
 창비 펴냄, 2007.12.14.

 

  나무가 선 곳에 새가 찾아듭니다. 새가 찾아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애벌레가 있습니다. 애벌레는 새한테 잡히기도 하지만, 새가 알아채지 못해서 씩씩하게 살아남기도 합니다. 새한테 잡히지 않고 살아남은 애벌레는 나비로 깨어나기도 하고 나방으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새로운 몸으로 태어난 나비나 나방은 바지런하면서 기쁜 날갯짓으로 꽃을 찾습니다. 오랫동안 꿈을 꾸면서 잠만 자느라 몹시 배고프거든요. 이 꽃 저 꽃 수없이 찾아들며 꽃가루하고 꿀을 먹는 동안 나비나 나방은 어느새 꽃가루받이를 해 줍니다.


  가만히 보면 애벌레가 자라도록 해 준 나무는 나비나 나방이 깨어난 뒤에 즐겁게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어서 천천히 열매를 맺어 씨앗을 퍼뜨릴 수 있습니다.

나는 이승의 어떤 탐닉에 대해서는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 살이 얼었던 마음을 녹인다 / 살이 굳어버린 영혼을 살린다 / 강물 같은 살이 / 달빛 같은 살이 (흐르는 살)

 

아내가 사온 쌀은 여주쌀 / 20킬로그램 한 포대에 사만팔천원이나 한다 //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깻잎무침 오천원어치 / 구운 김 삼천원어치 등등, 이렇게 / 나는 금방 장에서 돌아와 쌀을 푼다 (쌀을 푸다)

  황규관 님이 빚은 시집 《패배는 나의 힘》(창비,2007)을 읽습니다. 시집 이름에 드러나기도 하는데, 황규관 님으로서는 이녁 삶에 ‘지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일터에서도 지고, 곁님한테도 지고, 아이들한테도 지고, 또 술벗한테도 지고, 여기에서도 지고 저기에서도 지고, 더욱이 어머니 병문안을 다녀오며 병원삯을 변변히 보태지 못하는 살림에도 진다고 해요.


  어제도 지고 오늘도 지는 바람에 앞으로 다가올 날에도 자꾸 지겠구나 하고 여긴다는데, 그렇지만 이렇게 지고 자꾸 지면서도 다시 일어섭니다. 그리 씩씩하지 못한 몸짓이라 하더라도 다시 아침을 맞이하면서 하루를 엽니다. 새 일자리를 찾으려고 기운을 내어 다시 이력서를 쓰고, 먼지를 수북히 먹은 자전거를 바라보면서 어릴 적 꿈을 되새깁니다.

왜 우리는 결핍에 시달리며 사랑을 해야 하나 / 봄비 그친 오늘 아침엔 / 마른 가지마다 어린잎이 입도 안 가리고 웃었다 / 그게 우주고 또 우리의 생활은 거기서 피어나는 것 (완전한 슬픔)

 

아침에 일어나 다시 뒷산을 걸어도 / 떡갈나무야, 나는 아직 아는 바가 없구나 / 분노보다도 슬픔에 익숙해진 이후라야 / 혼자 길을 갈 수 있을까  가난, 사랑, 바람, 잎사귀, 자벌레 / 이런 뭉게구름 같은 말들에 마음이 닿는지 / 옮겨적은 말씀이 가벼웁다 (금강경을 옮겨적다)


  새한테 잡아먹힌 애벌레는 얼핏 보기에 ‘삶에 진’ 모습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애벌레는 어느 모로 본다면 ‘새와 한몸이 된’ 모습일 수 있습니다. 내가 먹은 밥 한 그릇도 이와 같이 바라볼 수 있거든요. 내 몸이 되어 준 모든 밥, 모든 목숨, 모든 숨결, 모든 넋을 돌아본다면, 내 몸을 이루는 수많은 목숨과 숨결이란 언제나 나를 새롭게 이루는 꿈이나 사랑이라고 여길 만하다고 느낍니다.


아파트 복도에 자전거가 기대 서 있다 / 큰애가 내리자 작은애가 한때 / 즐겁게 달렸던 낡은 자전거 / 중학교 삼년, 자전거만 타면 /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전거)

폐지수거하다 뙤약볕에 지친 / 혼자 사는 103호 할머니를 / 초등학교 울타리 넘어온 느티나무 그늘이 / 품어주고, (품어야 산다)

  뙤약볕에 지친 할머니를 느티나무 그늘이 지켜 주었다고 합니다. 지고 또 지는 삶에 지친 황규관 님한테도 이녁을 따사롭거나 시원하거나 너그럽거나 넉넉하게 지켜 주거나 돌보아 주는 느티나무 그늘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벚나무 그늘이나 구름 그늘이 있을는지 몰라요. 감나무 그늘이 있을는지 모르고,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기쁘게 그늘을 드리워 줄 수 있을 테고요.


  들판이나 시골에서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나비와 나방이 씩씩하게 깨어납니다. 조그맣고 수수한 빛깔인 나비와 나방도, 알록달록 곱거나 눈부신 무늬를 갖춘 나비와 나방도, 저마다 즐겁게 바람을 가르면서 아침을 엽니다. 새들도 먹이를 찾아 나무를 찾아듭니다. 우리도 저마다 새롭게 삶을 이루고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꿈꾸면서 아침을 엽니다. 지고 지고 거듭 지면서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란 바로 우리 마음속에 꿈꾸는 샘물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새처럼 노래하고 나비처럼 춤추는 마음이 되어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2016.7.11.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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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뼈대 문학과지성 시인선 441
곽효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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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27



오래된 책을 잃어버린 시인

― 슬픔의 뼈대

 곽효환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14.1.10. 8000원



  똑같은 일을 두고도 사람들마다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이 일이 누군가한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지만, 이 일이 누군가한테는 대단한 일이 됩니다. 저 일이 누군가한테는 슬픈 일이 되지만, 저 일이 누군가한테는 슬프지 않은 일이 되어요.


  꽃이 지기에 슬퍼할 수 있습니다. 꽃이 지기에 ‘꽃이 지는구나’ 하고 여기기만 할 수 있어요. 꽃이 져서 더 꽃을 못 본다고 슬퍼할 만한데, 꽃이 지니 이제 열매를 맺고 씨앗이 새로 나오는구나 하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지난여름, 한 사람을 보냈다 / 오랫동안 사랑했으나 / 함께 웃고 울고 뒹굴고 부비고 / 더러는 행이었고 더러는 불행이었던 / 혹은 그 경계를 넘나들던 / 그를 보내고 오랫동안 아팠다 (한 사람을 보내다)


21세기가 열리고 10년이 더 지났어도 / 개발의 꿈은 그칠 줄 몰라 / 가장 넓은 길을 뒤로하고 광장이 된 광화문 세종로 / 길은 막히고 소통은 뒤엉켜 있어도 이벤트는 계속되지 (피맛길을 보내다)



  곽효환 님 시집 《슬픔의 뼈대》(문학과지성사,2014)를 읽습니다. 살면서 슬픔으로 느끼거나 바라볼 만한 뼈대를 놓고 찬찬히 말을 엮은 노래가 흐릅니다. 틀림없이 슬픔이 되고, 틀림없이 슬픈 일이 되며, 틀림없이 슬픈 이야기가 되는 노래가 흐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슬픔은 늘 슬픔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일을 놓고도 어느 모로 본다면 기쁨으로 볼 수 있고,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어요. 슬플 적에 눈물이 날 만하지만, 슬프면서도 웃음으로 슬픔을 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 날 보고 웃네요 / 찻잔 둘 덩그러니 놓여 있는 / 낡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 오래전에 그랬듯이 / 당신, 여전히 날 보고 웃네요 / 어느새 창밖에는 눈발 가득하고요 (웃는 당신)



  글을 모르는 사람은 글을 모릅니다. 이뿐입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어리석거나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저 글을 모를 뿐입니다. 글을 모르는 사람은 ‘글로 엮은 책’을 읽지 못하니, ‘글책 지식’은 없거나 얕아요. 다만, 글책 지식이 없더라도 ‘삶책 이야기’를 품기 마련입니다. 〈오래된 책〉이라는 시에서 나오듯이 곽효환 님 할머니가 물려주었다고 하는 ‘사람책’이나 ‘삶책’은 글이 아니라 삶을 지은 사람으로서 온몸과 온마음으로 아로새긴 책이에요.



아직 글을 다 깨치지 못한 어린 내게 / 할머니는 살아 있는 귀한 책이었다 / 할머니에게도 그런 책이 있었을 테고 / 다시 그 할머니의 할머니에게도 / 오래된 그런 책이 있었을 게다 / 오래오래 전해져 내려오다 / 그만 내가 잃어버리고 만 (오래된 책)



  글로 담는 이야기가 있고, 글로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글로 새롭게 빚는 이야기가 있고, 글로는 도무지 빚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니, 모든 이야기를 글로 빚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버이가 아이를 돌보며 누리는 살림을 모조리 글로 옮길 까닭이 없어요. 아이들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구태여 몽땅 글로 옮겨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을 가꾸는 바탕이 되는 이야기는 ‘글이나 책이라는 꼴로 따로 묶이’지 않더라도 마음자리에 튼튼하게 깃들기 때문입니다.



바람 깊은 밤, 어느 골목 어귀 / 불 꺼진 반지층 창문을 본다 / 외등 아래 앙상한 몸통을 드러낸 플라타너스에게 / 무성했던 잎새의 기억을 물었지만 그네는 답이 없다 (조금씩 늦거나 비껴간 골목)



  나뭇잎을 읽고 장마를 읽습니다. 옥수수를 읽고 콩꼬투리를 읽습니다. 쑥불을 읽고 구름을 읽습니다. 여름바람을 읽고 여름볕을 읽습니다. 장마철에는 빨래에서 퀴퀴한 냄새가 흐르는구나 하고 읽습니다. 얼른 이 비가 그치고 다시 해님을 마주하면서 옷가지를 보송보송 말리면서 햇볕내음을 먹이고 싶다는 꿈을 그립니다. 비와 해와 바람이 모두 싱그러이 어우러지면서 알맞게 함께 있는 삶일 때에 넉넉하며 즐겁다는 대목을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남다른 말이 아닌 수수한 말 한 마디에서 시가 태어납니다. 남달라 보이지 않더라도 이 수수한 말 한 마디에서 시가 자라납니다. 시집 《슬픔의 뼈대》가 조금 더 수수한 자리에서 조금 더 투박한 노래여도 재미났을 텐데 싶으나, 이 모습도 이 모습대로 재미난 노래일 만하겠지요. 오래된 책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시인인데, 오래된 책을 잃어버렸으면 이제 새로운 책을 지어서 이녁 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으면 됩니다. 2016.7.4.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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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 여림 유고 전집
여림 지음 / 최측의농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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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16



고졸 아닌 대학 중퇴라는 실랑이

―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

 여림 글

 최측의농간 펴냄, 2016.5.25. 11200원



  1967년에 태어나 2002년에 흙으로 돌아갔다고 하는 여림 님입니다. 여림 님은 1999년에 〈실업〉이라는 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뽑혔다고 해요. 시인 최하림 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이름 끝 자를 빌어 ‘여림’이라는 글이름을 따로 지었다고도 합니다. 1999년에 신춘문예에 뽑힌 뒤 2002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시 한 줄로 글빛을 펼칠 겨를이 얼마 없었다고도 할 만합니다.



즐거운 나날이었다 가끔 공원에서 비둘기 떼와 / 낮술을 마시기도 하고 정오 무렵 비둘기 떼가 역으로 교회로 가방을 챙겨 떠나고 나면 나는 오후 내내 / 순환선 열차에 앉아 고개를 꾸벅이며 제자리걸음을 했다 (실업)


허름한 옷에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 요즘은 도시 공공 근로자 일을 합니다 / 은빛 피라미 떼 같은 햇살이 자욱한 점심때 / 양은 도시락 하나씩을 찬 손에 꺼내 들고 / 저희들은 잔디밭에 둘러앉아 밥을 먹습니다 (나는 공원으로 간다)



  여림 님이 숨을 거두고 열 몇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시집이 나옵니다. 시와 산문을 모은 《비 고인 하늘을 밟고 가는 일》(최측의농간,2016)이 바로 이 시집입니다. 시집을 읽으면서 아련한 옛 자취를 곰곰이 그려 봅니다. ‘실업’이라는 자리에 서서 고개를 꾸벅이며 졸기도 하고, 비둘기하고 말을 섞던 모습을 그려 봅니다. 공공근로를 하는 시인 모습을 그려 보고, 출판사에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대학 자퇴-고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을 그려 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고졸인 학력입니다. 나는 여림 님이 신춘문예에 뽑히던 그해에 출판사 영업부 일꾼으로 들어갔는데 ‘고졸’이면서 이런 자리에 뽑히기란 아주 어려웠다고 합니다.



대학 중퇴의 학력은 고졸이라는 출판사 사장과의 면접에서 가벼운 실랑이를 벌인 뒤 방송국 스크립터로 일하는 대학 동창을 만나 늦도록 술추렴을 하다 귀가한 다음날 나는 책상 위에 커다랗게 대체로 사는 건 싫다라고 써붙여 두었었다. (대체로 사는 건 싫다)



  장마철을 맞이해서 줄줄이 내리는 비가 때때로 멎곤 합니다. 빗줄기가 멎으면 바로 멧새가 노래하는 소리가 퍼집니다. 빗줄기가 몰아치면 새도 풀벌레도 모두 숨을 죽이는데, 빗줄기가 그치기 무섭게 새랑 풀벌레는 싱그럽게 노래를 불러요.


  나는 내가 고졸인 가방끈으로 이런 일 저런 일을 했기에 나로서는 ‘나만 누릴 수 있는 발자국’을 찍습니다. 여림 시인은 여림 시인대로 고졸에다가 실업자로 지낸 발자국이 있기에 ‘여림 님만 쓸 수 있는 시’를 써서 남깁니다.



나 / 오랜 시절 / 꿈으로 지은 집에 세 들어 살았노라고 / 그 집의 세간들에 정 들 무렵 / 홀연 / 먼길을 떠났노라고 (木에게)


몇 년 전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친 다음부터 / 나는 계단을 오르내리기가 무서워졌다 (계단밟기)



  아침에 밥을 끓이면서 빗자루를 들고 마루하고 방을 쓸었습니다. 밥물하고 국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비질을 했어요. 밑반찬은 미리 해 두었으니 오늘은 아침을 차리면서 손 갈 일이 적어서 ‘불 앞에서 멀거니 지키기’를 하기보다는 비질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가운뎃방을 쓸고 나서 끝방을 쓸 때인데, 구석진 한쪽에서 조그마한 뭔가가 폴짝 뜁니다. 뭔가 하고 허리를 숙여서 쳐다봅니다. 옳거니, 조그마한 풀개구리입니다. 내 손톱보다 작은 가녀린 목숨입니다.

  이 녀석은 어떤 구멍으로 우리 집에 들어왔을가요? 창호종이로 얇게 가린 문에 구멍을 내어 들어왔을까요? 아니면 모기그물 한쪽에 틈을 내어 살살 비집고 들어왔을까요? 비질을 멈춥니다. 한손으로 풀개구리를 낚아채려고 바쁩니다. 예닐곱 번 손을 휘드른 끝에 잡습니다. 아이들을 부른 뒤 섬돌에 섭니다. “우리 집에 개구리가 들어왔네.” 하고 말하니 두 아이는 “어디! 어디?” 하면서 우르르 달려옵니다. “자, 보렴.” “안 보이는데?” 풀개구리가 워낙 작아서 처음에는 안 보인다고 하더니, 이 풀개구리가 제 손가락에 살그마니 올라타니 그제야 알아챕니다.


  풀개구리는 몇 초쯤 제 손가락을 올라타고 가만히 있다가 힘차게 폴짝 뛰어서 마당에 내려앉습니다.



구름은 바람의 뼈 / 바람은 제 뼈를 조금씩 화장시키며 이 도시를 지난다. (폭죽처럼 터지는 첫눈, 그리운 사람들.)


노래가 없는 밤은 쓸쓸하다 / 어둠을 뒹굴고 있는 / 바람 몇 줄을 잡아 음을 고르고 (낯선 도시의 밤)



  차분하면서 낮술 내음이 흐르는 시를 돌아봅니다. 고즈넉하면서도 힘차게 폴짝 뛰어오르고 싶은 꿈이 깃든 시를 돌아봅니다. 김치도 잘 담근다고 하고 살림도 잘 할 줄 안다고 하는 여림 님이었다는데, 집안도 늘 정갈하게 추스르면서 살았다고 하는 여림 님이었다는데, 참말로 “비 고인 하늘을 밟고 바람을 타면서 저 먼 길을 떠난” 여림 님이라고 하는데, 바람내와 구름내와 하늘내를 새삼스레 맡아 봅니다. 비내음이 가득한 여름바람과 여름구름과 여름하늘을 새삼스레 올려다봅니다.


  조그마한 풀개구리처럼 조그맣게 이 땅에 찾아와서 아주 작은 폴짝임을 보여주고는 조용히 스러진 시인 한 사람 발자국이었을까요. 내가 걷는 발걸음을, 아이들이 걷는 발걸음을, 이웃들이 걷는 발걸음을, 모두 새삼스레 되새기면서 짙푸른 여름에 흐르는 바람을 마십니다. 하늘 같은 바람을 마십니다. 2016.7.2.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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