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문신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2
박경희 지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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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67



시골 할매 손길을 노래하는 시 한 줄

― 벚꽃 문신

 박경희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2.9.26. 8000원



  글을 쓸 적에는 ‘글쓰기’라고 합니다. 글쓰기를 한자말로 옮기면 ‘작문’쯤 됩니다. 시를 쓰면 ‘시쓰기’입니다. 시쓰기를 한자말로 옮기면 ‘시작’쯤 됩니다.


  시쓰기를 쉽지 않다고 여긴다면, 시를 쓰는 분들이 ‘글쓰기’처럼 ‘시쓰기’라고 하는 쉬운 말을 좀처럼 안 쓰고 ‘시작’이라는 한자말을 무척 널리 쓰는 탓도 제법 있지 싶습니다. ‘글’이라고 해도 여느 사람들은 쉬 다가서지 못하곤 하는데 ‘문학’이라고 하면 여느 사람은 넘보기 어려운 울타리라고 여겨요. 게다가 ‘문학비평’에서 흐르는 말은 몹시 어렵다고까지 할 만합니다.



간밤 꿈이 하도 뒤숭숭하여 길가 돌멩이 채이듯 가로거치는 / 새끼들한테 전화 돌리고 찬물에 밥 말아 싱건지 올려 / 바들거리며 뜬 밥 한술 / 괜스레 장독대에 엎어놓은 시루도 뒤집어보고 / 아귀 맞지 않은 부엌문 툭툭, 차본다 (꿈)


밭 가생이만 살살 긁다가 / 화장실 간다고 들어가면 깜깜무소식 / 삼십 분 일하고 두 시간 쉬고 / 전화 오면 삼십 분 수다 / …… / 주둥이는 신작로 버스 댕기는 곳까지 / 길게 나와 있어 무슨 말을 해도 / 쇠 귓구멍에 경 읽기 / 이래도 흥! 저래도 흥! / 그게 누구냐고 물으니, // 너야! 너! (건달 농부)



  충청도 보령에서 살며 시를 쓰고 시골 아이한테 글쓰기를 가르친다고 하는 박경희 님이 선보인 시집 《벚꽃 문신》(실천문학사,2012)을 읽으면서 시쓰기란 얼마나 쉽거나 어려운가 하는 대목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이 시집을 읽으면 ‘늙은 아버지하고 어머니 꾸지람’은 귓등으로 듣는 둥 마는 둥하는 ‘시집 안 가는 가시내’ 모습을 푸근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밭 한 자락을 내주었더니 일다운 일은 안 하고 맨 놀기만 하고 이러면서도 “주둥이는 신작로 버스 댕기는 곳까지 길게” 나왔다고 하는 박경희 님이라고 한답니다. 이 말은 이녁 아버지가 이녁한테 들려준 말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시골에서 늙은 두 어버이하고 살면서 늙은 두 어버이가 박경희 님한테 들려주는 말을 고스란히 옮겨서 ‘시쓰기’를 한 셈입니다. 머릿속에서 굴린 시가 아니라, 몸뚱이에서 태어난 시입니다. 머리로 뚝딱거리듯이 꿰어맞춘 시가 아니라, 삶이 뚝뚝 묻어나는 시예요.



마흔이 다 된 게 / 밥물도 맞출 줄 모르느냐고 / 고두밥도 모자라 쌀이 씹힌다고 / 국수는 오래 삶아야 속까지 익지 / 예산 국수 공장에서 금방 뽑아 왔느냐고 / 시금치나물은 살짝 익혀야지 / 흐물흐물해서 어디 씹히기나 하겠느냐고 (퉁박꽃)



  시집 《벚꽃 문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골사람 말씨랑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골 할배 이야기가 흐르고, 시골 할매 이야기가 흐릅니다. 시쓰기를 한 분은 박경희 님이지만, 곰곰이 따지면 ‘시골 할배’하고 ‘시골 할매’가 ‘입으로 쓴 시’를 박경희 님이 ‘손으로 옮겨적었’다고도 할 만합니다. 시골 할배하고 할매는 대수롭지 않게 ‘입으로 노래를 하듯이 시를 쓰신’ 셈이요, 박경희 님은 이런 ‘시골노래’를 귀여겨듣고 좋아하고 사랑해 주면서 새로운 시를 일군 셈이에요.



엄니가 그냥 두란다 / 일 년 곡식 잘도 갉아먹어 / 그리 속을 썩이더니 / 비누까지 갉아먹던 주둥이 붉은 / 고얀 놈인지 년인지 / 하여튼 맞다고 건져내지 말라고 / 재차 말에 탑을 쌓는다 / 찍찍, 비누 거품으로 올라오는 소리 /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잠시 광에 다녀오던 중 / 뜰채로 쥐를 건져 멀리 가 놓아준 엄니 / 툭툭, 묻은 물기를 털며 / 늘어진 젖퉁이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 / 너도 시집가 애새끼 나보면 / 알 거라고, 해 가는 곳으로 / 고개를 개우뚱 돌리는 (해바라기)



  어쩌다가 쥐 한 마리가 어느 구멍에 빠져서 허우적거렸대요. 늘 곡식을 갉아먹었으니 잘된 셈이라고 늙은 어머니가 한 말씀 하셨답니다. 그런데 늙은 어머니는 이 쥐를 조용히 건져서 살려 주었대요. 가만히 쥐를 들여다보니 ‘새끼를 밴 어미 쥐’였기에, 이 ‘새끼 밴 어미 쥐’가 그냥 죽는 꼴을 볼 수 없었대요.


  잔잔히 흐르는 삶이 차분하게 새로운 이야기 한 자락으로 깨어납니다. 조용히 이어지는 살림이 어느새 올망졸망 아기자기한 새로운 노래 한 마디로 태어납니다. 고즈넉하게 짓는 사랑이 하나둘 어여쁜 가락을 입고서 즐거운 시 한 줄로 거듭납니다.



머위를 잘라 / 바구니에 담자 // 세 살 된 조카 서현이가 다가와 / 양손에 하나씩 쥔다 // ‘나비야, 나비야’ // 머위 잎이 팔랑거리며 / 꽃잔디에 앉는다 (나비)



  시쓰기는 안 어렵다고 느낍니다. 박경희 님이 보령 시골마을에서 길어올리는 시골노래를 읽다 보면, 그러니까 수수하고 투박하면서 맛깔스러운 ‘시읽기’를 가만가만 누리다 보면, 시읽기도 시쓰기도 참으로 수수하고 투박하네 하고 느낍니다. 이러면서 참 맛깔스러운 이야기나 노래가 바로 시 한 줄이겠네 하고 느낍니다.


  세 살 조카가 머위 잎사귀로 나비 놀이를 하듯이, 마흔 살 넘은 ‘시골 가시내’ 박경희 님은 시골스러운 이야기밭을 일구고, 이야기놀이를 하며, 이야기꿈을 짓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시를 들려줍니다. 우리 삶이 바로 시 한 줄이라는 이야기를 밝힙니다. 우리가 스스로 짓는 사랑이 언제나 곱게 시로 피어날 수 있다는 대목을 보여줍니다. 2016.11.11.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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