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 창비시선 367
민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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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13



쑥 캐서 버무리 빚어 고향동무 만나고픈 할배

―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

 민영 글

 창비 펴냄, 2013.9.20. 8000원



  비가 그친 봄은 한결 맑습니다. 바람도 볕도 더욱 싱그럽습니다. 아침 빨래를 마치고 마당을 내다보니 참새 세 마리가 서까래하고 빨랫줄 사이를 오갑니다. 마루문을 여니 이 참새들은 마당 가장자리 초피나무로 옮겨 앉습니다. 요 며칠 사이 늘 보는 참새입니다. 어쩌면 이 참새는 몇 해 앞서부터 겨울마다 우리 집 서까래에 깃들어 지내던 이웃일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서까래에서 참새가 흔히 겨울나기를 하고 새끼를 까거든요.


  쑥이 돋고 매화꽃이 피며 동백꽃이 터지는 새로운 봄날입니다. 참새들은 서까래를 자꾸 드나드는데 어쩌면 또 알을 낳았을 수 있어요. 그리고 머잖아 제비가 이 땅에 돌아오면 처마 밑 둥지에 깃들 테지요. 올해에도 참새하고 제비가 우리 집 처마 밑이나 서까래 언저리에서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볼 수 있으려나 하고 기다립니다.



바람은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날아가는가? / 바람은 저 남쪽 쪽빛 바다에서 불어왔다가 / 아스라이 눈 덮인 저 북쪽 높은 산으로 날아가고, / 다시 발길을 돌려 남쪽에 있는 섬나라로 돌아온다. (바람의 길)



  1934년에 철원에서 태어난 뒤 네 살 무렵에 만주 간도성 화룡현으로 가서 살다가 1946년에 두만강을 건넌 뒤 남녘에 깃들어 여든 나이를 훌쩍 넘었다고 하는 시인 민영 님이 선보인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창비,2013)를 조용히 읽습니다. 쑥내음이 물씬 피어나는 곁으로 매화꽃내음도 어우러지는 봄날에 이 작은 시집을 고즈넉하게 읽습니다. 새벽부터 새소리를 반가이 들으면서 시집을 가만히 읽습니다. 오늘은 볕도 바람도 좋아서 빨래가 잘 마르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시집을 즐거이 읽습니다.



땅에서 뽑아든 흙 묻은 손을 / 하늘 높이 들어 보이는 / 농부들의 기쁨을 아시는가? (격양가)


찬바람이 불어도 아이들은 / 강에서 얼음을 지치며 놀고 있다. (겨울 강에서)



  여든 살이 넘은 할아버지 시인도 노래하지만, 아이들은 찬바람이 불어도 얼마든지 씩씩하게 놉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랑 아버지 살림이 가난해도 씩씩하게 놉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랑 아버지가 가멸찬 살림이어도 씩씩하게 놉니다. 어떤 자리 어떤 살림 어떤 나날이어도 아이들한테는 놀이가 있어서 하루를 새롭게 엽니다.


  그리고 시골지기는 새봄에 새롭게 흙을 만지면서 한 해를 열어요. 나라에서 농업정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더라도 그예 살가이 흙을 만집니다. 해마다 시골에서 어린이하고 젊은이가 빠르게 도시로 떠나서 너무 고요하다 싶은 마을이 되어도 꿋꿋하게 흙을 만집니다. 따스한 볕에 싱그러운 바람이 흐르는 이 땅에서 알뜰살뜰 흙을 만집니다.



하모니카가 지나간다. / 야심한 시간 11시 35분 / 손님이라곤 없는 전동차 안에서 / 잘 있거나 나는 간다 / 이별의 말도 없이…… / 하모니카 소리가 지나간다. (소야곡)


여기서 북쪽으로 눈을 돌리면 / 육십년 전에 떠나온 / 고향 마을이 보인다. // 불에 타 허물어진 돌담 곁에 / 접시꽃 한 송이가 / 빨갛게 피어 잇다. // 얘들아, 다 어디 있니, / 밥은 먹었니, / 아프지는 않니? // 보고 싶구나! (비무장지대에서)



  할아버지 시인은 쑥을 캡니다. 할아버지 시인이 쑥을 캐면 이녁 곁님이 쑥버무리를 합니다. 봄날에 쑥을 캐는 할아버지 시인은 남북으로 갈리면서 다시 찾아갈 수 없도록 길이 막힌 옛 마을을 그립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쑥을 캐는데, 오늘 저곳에서도 쑥을 캘까 하고 헤아립니다. 오늘 이곳에서는 쑥을 캐서 쑥버무리를 하는데, 오늘 저곳에서도 쑥을 캐서 쑥버무리를 할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눈앞에서 마주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는 늘 도사리는 고향 마을입니다. 두 발로 찾아갈 수는 없지만 마음자리에는 늘 맴도는 고향 마을입니다.


  쑥도 접시꽃도 울타리를 가리지 않습니다. 아무리 높직하게 울타리를 쌓더라도 꽃씨는 바람을 타고 가뿐히 울타리를 넘습니다. 아무리 두껍게 시멘트담을 세우더라도 풀씨는 바람에 얹히 사뿐히 시멘트담을 넘어요. 아무리 무시무시하게 쇠가시로 된 울타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총을 든 군인이 지켜서더라도 꽃씨랑 풀씨랑 나무씨는 모두 사뿐사뿐 이곳저곳 드나듭니다.



지난 4월의 어느 날 / 매지리로 간다니까 아내는 / 쑥을 캐 가져오라고 말했다. / 맷돌에 갈아서 체로 친 미분에 / 물에 씻은 봄쑥을 넣어 / 쑥버무리를 만들면 예전에 떠나온 / 고향 생각이 날 거라고 하면서. (매지리에서 쑥을 캐며)


이 양반아, / 나는 새벽에 나오면 밤늦게까지 / 이 쓸쓸한 간이역을 지키고 있다오. / 설마 당신이 나보다 더 / 힘들다고는 하지 않겠지요? (기차를 잘못 내리고)



  쑥부침개를 먹고 싶다는 큰아이하고 쑥을 뜯으러 뒤꼍에 서는데, 마을 할매 한 분이 우리 집 뒤꼍에서 벌써 동이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쑥을 캐셨습니다. 할머니, 우리 집 뒤꼍 쑥은 우리가 뜯어서 먹으려고 그동안 고이 모셨는걸요? 말 없이 들어오셔서 이 쑥을 그렇게 샅샅이 캐시면 어쩌시나요.


  겨우내 기다리던 쑥이 얼마 안 남습니다. 그러나 남은 쑥은 새로 돋을 테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씨앗도 곧 새로 깨어나겠지요.


  어떻게 할까 하다가 다른 봄풀을 뜯기로 합니다. 갈퀴덩굴하고 살갈퀴하고 봄까지꽃하고 코딱지나물을 훑어서 풀부침개를 하자고 생각합니다. 쑥만 부침개로 맛나지 않으니까요. 쑥도 숱한 봄풀도 모두 반가우면서 맛난 봄밥이요 봄맛입니다. 삼월로 접어들었어도 북쪽은 많이 추워서 쑥이 안 돋았을는지 모르는데, 곧 북쪽 이웃들도 쑥내음을 맡고 손가락마다 쑥물이 들면서 맑고 환하면서 고운 봄바람을 마실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저 나무의 이름이 무엇인지요?” / 하고 물었더니, / 싸리비로 마당을 쓸던 노스님이 / “목백일홍이지요.” 하고 대답했다. (목백일홍)


벌써 저 / 시끄럽게 떠드는 바깥세상에 / 나가지 않은 지도 석달이 지났다. (겨울 들판에서)



  시집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를 선보인 민영 님은 앞으로 새로운 시집을 더 선보이실 수 있을까요? 그리운 곳을 그리는 이야기도, 그리운 곳을 가지 못하는 채 일흔 해 가까이 살아온 이야기도, 이곳에서 새롭게 짓고 가꾼 살림하고 얽힌 이야기도, 여든 나이에 나무 이름을 새로 배우는 이야기도, 시끄러운 바깥세상에 나가지 않고 조용히 지내는 하루 이야기도, 모두 고즈넉하게 시 한 줄로  태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얼어붙은 두 나라 사이에 모든 앙금이 풀리기를 빕니다. 차가운 마음이 부딪히면서 갈래갈래 찢긴 이곳과 저곳 사이에 고운 봄바람이 불면서 다 같이 봄잔치를 벌이고, 봄쑥노래를 부르며, 봄맞이 쑥버무리를 두레상에 올려서 막걸리 한 잔을 나눌 수 있기를 빕니다.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기쁜 삶을 할아버지 시인이 더없이 환한 웃음으로 지켜보면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시 한 줄이 예쁜 노래로 흐르는 시집을 더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2016.3.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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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이 쑤신다 책 읽는 어린이 연두잎 6
이상교 지음, 홍성지 그림 / 해와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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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9



아이처럼 신나게 뛰노는 어른이 되기를 빈다

― 좀이 쑤신다

 이상교 글

 홍성지 그림

 해와나무 펴냄, 2011.3.30. 8500원



  집 안팎을 드나들며 노는 우리 집 아이들은 비가 오는 날에는 “비가 오네. 밖에서 못 놀겠네.” 하고 한 마디를 합니다. 이러면서 집 안쪽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그림놀이를 하며 뛰기놀이와 잡기놀이와 숨바꼭질을 다 합니다. 옷장에도 숨고, 이불에도 숨어요. 이러다가 슬금슬금 집 바깥으로 나갑니다. 어느새 비옷을 챙겨 입고는 “비 맞으며 놀아야지.” 합니다. 얼마쯤 지난 뒤, 비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꿰어 말리고는 헛간에서 우산을 꺼내어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놉니다. 바야흐로 빗물놀이입니다.


  아직 이른봄이라 날이 많이 따뜻하지는 않기에 ‘비 맞으며 놀기’까지는 하지 않는데,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노는 날씨가 되면 ‘비 오는 날에는 비 맞으며 놀기’로 바뀌어요. 세찬 비가 쏟아지면 세찬 비대로 맞으면서 놀고, 가랑비가 노래처럼 내리면 가랑비대로 맞으면서 입을 헤 벌리면서 빗물을 받아서 먹습니다.



툭, 투둑! // 빗방울은 씨앗이다. // 뭐든 / 돋아 낸다. (빗방울)


어린 뿌리 / 어린 줄기 / 어린 잎 / 어린 꽃망울 / 어린 열매…… / 어린 것은 다 예쁘다. (어린 것)



  이상교 님이 글을 쓰고, 홍성지 님이 그림을 그린 동시집 《좀이 쑤신다》(해와나무,2011)를 읽습니다. 이 동시집 이름이기도 한 〈좀이 쑤신다〉를 보면 ‘밖에서 놀고 싶은 아이’ 마음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아무래도 이 동시를 쓴 어른부터 도시에서 살고, 이 동시를 읽을 아이도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밖에서 놀지 못해 좀이 쑤신 삶’을 그리는구나 싶어요. 오늘날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지 못하거든요.


  첫째, 도시에 자동차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골목에서도 자동차 때문에 제대로 뛰놀지 못하고, 아파트에서도 손바닥만 한 놀이터를 빼고는 온통 자동차가 드나드는 길이에요. 둘째, 학원에 얽매이느라 힘겹습니다. 학원을 다녀야 하는 아이들은 놀 겨를이 없고, 놀 동무를 만나기 어렵지요. 셋째, 놀이터도 마땅하지 않고 놀이동무하고 밖에서 뛰놀지 못하다 보니, 인터넷게임에 푹 빠집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흔히 인터넷게임에 사로잡혀서 못 헤어나온다고들 말하지만, 집 바깥에서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고단한 마음을 인터넷게임으로 풀 수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좀, 좀, 좀 / 좀이 쑤신다. // 밖으로 뛰어나가 / 놀고 싶어 / 좀이 쑤신다. (좀이 쑤신다)



  봄비가 내리는 봄날 저녁에 부엌에서 김치를 담급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마당하고 뒤꼍에서 갓을 솎았고, 갓을 함께 헹구었습니다. 소금물에 갓을 담가 놓은 뒤 양념을 마련했고, 이때에 큰아이는 마늘하고 생강을 찧는 일을 거들었어요. 아홉 살 큰아이가 마늘찧기랑 생강찧기를 거뜬히 도와주었기에 한결 수월하게 갓김치를 담글 수 있어요.


  소금물로 절인 갓잎에 양념을 고루 묻히면서 포개는 일은 제가 혼자서 합니다. 저녁밥을 다 차려서 먹인 뒤에 씩씩하게 갓김치를 담그는데, 이동안 두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글놀이도 하고 그림놀이도 합니다. 이러다가 노래도 부르지요.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며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 사이 등허리 결린 줄 잊습니다. 나도 아이들 곁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양념 버무리기를 마무리짓습니다.



가을 해님이 / 샛노란 볕을 / 몇 가마니나 / 한꺼번에 떨어뜨렸다. // 놀란 나머지 / 은행나무 / 통째로 / 샛노랗게 물들었다. (샛노랗다)


베어진 나무가 / 흙바닥에 엎드려 / 잔다. // 흙의 가슴에 / 아기처럼 엎드려 / 잔다. (베어진 나무)



  동시집 《좀이 쑤신다》를 읽으면서 자꾸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좀처럼 놀지 못하는 고단한 이야기가 이 동시집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시집을 보아도 요즈음 아이들 모습은 엇비슷해요. ‘신나게 뛰노는 아이’ 삶을 그리는 동시를 요즈음 찾아 읽기는 퍽 어렵습니다. ‘거의 못 뛰노는 아이’가 얼마나 고단한가 하는 대목을 그리는 동시가 많아요. 놀이동무뿐 아니라 말동무조차 만나지 못하는 힘겨운 나날을 그리는 동시가 많아요. 학원과 입시와 학교와 시험과 숙제에 얽매인 아이들이 슬프고 아픈 모습을 그리는 동시가 많아요.


  아무래도 우리 사회가 이러한 모습이라 할 테니, 동시를 쓰는 어른도 우리 사회 모습을 고스란히 그릴 수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신나게 뛰노는 아이’를 만나기가 어려우니, 어쩌면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만하니, ‘노는 웃음’을 그리는 동시는 좀처럼 태어나기 어렵다고 할 만하구나 싶어요.



학원을 새로 옮겨 / 아는 애 없어 속상했다. / 산더미 숙제에 쫓겨 / 이래저래 속상했다. / 짝과 말다툼으로 / 며칠 내리 속상했다. (손톱이 자랐다)



  나는 우리 시골집에서 우리 아이들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놉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아주 조금도 안 쉬고 그야말로 개구지게 뛰어놉니다. 지치지도 않더군요. 이부자리에서까지 발을 구르면서 깔깔대며 놀아요. 놀이순이랑 놀이돌이를 재우자면 어버이인 나까지 아이들하고 지칠 대로 지쳐서 다 같이 곯아떨어지는 몸이 되도록 뛰놀고 일해야 하지요.


  봄비 소리를 들으며 까무룩 잠들었다고 문득 눈을 뜹니다. 두 아이가 이불깃을 잘 여미었는가 살핍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저녁에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부엌일을 마저 합니다. 설거지를 하고, 밥상을 훔칩니다. 양념으로 버무린 갓김치를 살피고, 새로운 아침에 어떤 밥을 지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물 한 모금 마신 뒤 마당을 내다봅니다. 마을고양이가 야옹거리면서 우리 자전거 밑에 옹크린 모습을 바라봅니다. 비가 오니 처마 밑에 놓은 자전거 밑에 깃들어 비를 긋는 고양이들입니다. 자전거 밑에 두 마리, 헛간에 네 마리, 집 옆으로 두 마리, 연장 상자에 한 마리, 이밖에 나무 밑에도 보일러실 앞에도 수많은 고양이가 우리 집을 둘러쌉니다. 고양이가 잔뜩 모인 시골집이 되다 보니, 우리 집만큼은 쥐가 한 마리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둘레에서 개구리 소리가 잘 안 나던데 마을고양이가 개구리까지 잡아먹어서 씨가 마를 수 있겠군요. 며칠 앞서부터 마을논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머잖아 밤마다 개구리 노랫소리가 우렁차게 퍼지는 하루를 누리겠다고 느낍니다. 논마다 물이 가득 고여야 비로소 밤노래잔치가 펼쳐지겠지요.



우리 아파트 동네에 내린 / 눈은 / 얼마 가지 않아 / 질척질척 다 녹는데, // 시골 외가 마당에 내린 / 눈은 / 한참까지도 푸근푸근 / 녹지 않는다. (외갓집 눈)



  좀처럼 놀지 못해서 좀이 쑤시고 마는 도시 아이들 마음을 달래려는 동시집 《좀이 쑤시다》를 아이하고 함께 읽는 어른들이 ‘놀이하는 어른’ 마음으로 달라질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놀이하는 아이’를 사랑해 주면서, ‘놀이하는 어버이’가 되어 보기를, 이리하여 서로 즐겁게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살림을 지어 보기를 빌어 봅니다. 놀지 못해서 좀이 쑤시는 아이들은 사라지고, 신나게 놀아서 까무룩 곯아떨어지면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아이들이 새롭게 나타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아야 마을이 살고, 마을이 살 때에 온누리가 아름답게 살아나리라 생각해요. 2016.3.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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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시편 문학의전당 시인선 163
정경미 지음 / 문학의전당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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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3



시와 새봄 (새봄이 되면 바람이 바뀐다)

― 거제도 시편

 정경미 글

 이원조·거제타임즈 사진

 문학의전당 펴냄, 2013.10.7. 1만 원



  날마다 새로운 아침이요, 새로운 저녁입니다. 아침볕은 어제하고 오늘이 달라요. 밤별도 어제하고 오늘이 다릅니다. 날짜가 다르기에 다른 어제하고 오늘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찾아오는 하루이기 때문에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달력으로 삼월이 되었기에 봄이지 않다고 느낍니다. 달력보다 바람이 바뀌었기에 봄이로구나 하고 느껴요. 고작 이레 앞서까지만 해도 뭍바람이었는데, 이제는 바닷바람이 되었어요. 어느새 철바람이 바뀌었습니다. 철바람이 바뀌면서 볕이 한결 포근하고, 날씨도 한결 따스해요.



마른 땅이 꿈틀거리는 아침 / 거제도를 펼치자 / 붉은 소망 하나 솟아오른다 / 툰트라에서 몸부림치던 핏덩어리 / 요란한 어둠을 뚫는 동안 (거제도 해맞이)



  거제시 연초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지낸다고 하는 정경미 님이 빚은 시집 《거제도 시편》(문학의전당,2013)을 읽으면서 봄 날씨를 새삼스레 헤아립니다. 나는 바람을 읽으면서 날씨랑 철을 느껴요. 날씨를 살피면서 날씨하고 철이 어떻게 흐르는가를 생각합니다. 날씨를 알리는 방송이 아니라 바람을 보고 듣고 맡으면서 날씨하고 철을 헤아립니다. 모르긴 몰라도 예전에는 누구나 바람결을 살피면서 하루 날씨를 읽고, 이레나 달포 날씨를 헤아렸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신문도 방송도 책도 없이 오직 우리 몸으로 날과 달과 철을 알아야 했거든요.


  시골마을 할매하고 할배는 흙을 읽습니다. 늘 흙을 만지고 살았으니 흙만 보면 어떤 씨앗을 심을 만한지 알 수 있습니다. 농협에서 심으라고 하기에 잘 되는 씨앗이 아니라, 마을마다 바람도 볕도 물도 다르니, 마을마다 살아온 결에 맞추어 흙을 살피면 어떤 씨앗이 잘 자랄 만한가를 저마다 알 수 있어요.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은 글을 읽으면서 글쓴이 마음을 읽기도 하듯이, 시골지기는 흙을 읽으면서 흙이 어떠한 결인가를 읽습니다. 어버이는 아이들 몸짓과 눈빛과 말씨를 읽으면서 아이들이 어떠한 마음결인가를 읽어요. 그러니 우리는 누구나 하늘을 바라보면서 바람으로 날을 읽을 수 있다고 느껴요.



섬의 빗장을 열면 / 휴식하는 안개가 / 식물원 어깨 위로 긴 숨을 내뿜는다 (외도일지 2)


길섶 넘보는 해당화 이마에 / 아침이슬 털어내는 파도소리 / 고샅길 올라와 푸른 귀 세우는 동안 (산달도 여름)



  거제내기 교사인 정경미 님이 빚은 싯말마다 흐르는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이 싯말마다 흐르는 이야기란 바로 고향마을을 마음으로 읽는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지리 정보나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고향마을을 마주보고 바라보면서 느끼고 살핀 이야기를 싯말로 가만히 풀어놓았지 싶어요.


  해당화라는 꽃송이를 바라보면서 “아침이슬 털어내는 파도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푸른 귀”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바로 마음으로 듣고 읽으려 하기에, 참말 마음으로 듣고 읽습니다.


  그러니까 “칠판에서 파도소리 철썩거린다” 같은 싯말처럼 언제 어디에서라도 마음으로 살며시 다가오는 고향마을 이야기를 찬찬히 갈무리할 만합니다. 물빛을 읽고 햇빛을 읽으며 흙빛을 읽습니다. 꽃빛을 읽고 풀빛을 읽으며 낯빛을 읽지요. 이러면서 웃음빛이랑 노래빛을 함께 읽어요.



바다가 앉아 있는 꼬막 교실 / 칠판에서 파도소리 철썩거린다 / 물빛에 씻긴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 오르간 건반 위로 뛰어다니고 / 해풍에 튀겨낸 오후 햇살은 / 스피커를 타고 온 동네 기어든다 (지심도 기억)


수월리 포로수용소 땅 그림자가 / 택지개발 플래카드 어깨를 몰아친다 / 성난 띠풀 더미에 분홍빛 날숨 내뱉는 들녘이 / 서러운 하늘을 지킨다 (개망초 풍문)



  새봄이 되어 새롭게 바뀌는 바람을 마시면서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나 마음을 읽을 줄 알기 때문입니다. 동무가 어떤 마음인지 읽고, 아이가 어떤 마음인지 읽어요. 어버이가 어떤 마음인지 읽고, 이웃이 어떤 마음인지 읽습니다. 때로는 마음을 잘못 읽거나 엉터리로 읽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나중에라도 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리기 마련이지요.


  서로 마음으로 사귀기에 동무가 되고 벗이 되어요. 서로 마음으로 아끼기에 이웃이 되며 두레를 하지요. 나이만 같기에 동무이지 않습니다.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기에 동무입니다. 옆집에 사니까 이웃이 아닙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살뜰한 사이로 지내니까 이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저마다 여느 때에 마음으로 만나고 사귀며 아끼는 숨결을 고이 돌아본다면, 참말 누구나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살림을 지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내 마음을 너한테 띄우고, 네 마음을 고스란히 받습니다. 내 마음을 그대한테 보내고, 그대가 건네는 마음을 기쁘게 받습니다.



봄보다 먼저 담을 넘는 / 바다 꽃이 붉게 탄다 / 오송마을 물 숲에 / 흐드러진 꽃 타래 / 막 건져 올리면 / 벙글어진 봄소식 따라 / 살풋 얼린 숙성된 살점들 (바다목장 2, 멍게 비빔밥)



  거제내기 정경미 님은 이녁이 나고 자란 거제를 그리면서 《거제도 시편》을 씁니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가 태어난 마을을 가만히 그리면서 “우리 마을 노래”를 쓸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대단한 문학이나 예술이 되도록 노래를 써야 하지는 않습니다. 수수하고 투박한 숨결 그대로 고이 살릴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수수하게 노래하면 어느새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아끼는 마음을 투박하게 노래하면 어느덧 시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좋아하며 그리는 마음을 가만히 노래하면 시나브로 시라는 옷을 새롭게 입을 수 있습니다. 새봄에 새로운 바람이 불며 온누리를 따스하게 어루만지듯이, 마을마다 아기자기하면서 어여쁜 노래가 흐를 수 있기를 빕니다. 2016.3.3.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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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시선 394
송경동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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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12



노래 한 가락에 이빨 넉 대 나간 시인은

―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송경동 글

 창비 펴냄, 2016.2.22. 8000원



  바야흐로 봄볕이 무르익습니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우리 집이 깃든 전남 고흥은 봄볕이 무척 따사롭기에 어른도 아이도 신나게 일하거나 놀 만합니다. 나는 뒤꼍에 어떤 씨앗이나 나무를 심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땅을 밟습니다. 아이들은 두껍고 긴 옷가지가 덥다면서 개구지게 뛰어놉니다. 어느덧 트랙터를 몰고 논을 갈아엎는 이웃 할배가 있습니다.


  봄은 달력이 아닌 햇볕으로 찾아듭니다. 봄은 날씨를 알려주는 방송이 아니라 바람으로 찾아듭니다. 봄은 숫자로 ‘3’월이 아니라 쏙쏙 돋는 쑥내음으로 찾아듭니다. 어제 처음으로 쑥국을 끓였더니 큰아이는 쑥부침개를 먹고 싶다고 밥상맡에서 노래합니다. “얘야, 쑥부침개를 먹으려면 쑥이 얼마나 자라야 할까?” “몰라.” “모르니? 그러면 뒤꼍에 가서 쑥이 얼마나 돋았는지 보렴. 쑥부침개를 먹으려면 소쿠리 가득 쑥을 뜯을 수 있어야 한단다.”



내가 죽어서라도 세상이 바뀌면 좋겠다며 / 내어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 노동자들이 목숨을 놓을 때마다 //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고 / 보수언론들이 이야기한다 (고귀한 유산)


어디선가 빌려와 / 언젠간 돌려보내줘야 할 / 딴 나라 사람 같던 / 어머니 // 가장 가깝고도 머나먼 / 소라와 조개가 많이 난다는 나라 / 어머니의 그 나라말을 / 우리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어머니의 나라말)



  노동자하고 벗님이 되는 시인 송경동 님이 새로 선보인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2016)를 읽습니다. 전남 벌교에서 나고 자란 송경동 님을 가리킬 적에는 ‘그냥 시인’이 아닌 ‘노동자하고 벗님하는 시인’이라는 이름을 쓰곤 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참말 송경동 님은 그냥 시만 쓰는 시인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를 읽으면 이녁 곁님 이야기가 살짝 나옵니다. 집안일하고 아이키우기는 곁님이 도맡는다고 해요. 집에서 곁님이 집살림하고 아이를 알뜰히 돌보는 힘을 바탕으로 송경동 님은 집 바깥에서 숱한 이웃하고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지을 수 있습니다. 든든한 보금자리가 있기에 언제나 씩씩하게 기운을 내어 ‘여린 이웃’한테 손을 내밀 수 있고, ‘아픈 동무’하고 어깨를 겯을 수 있어요.



탈근대, 탈영토, 탈식민지, 탈구조화…… / 탈이라면 이런 것들만 생각해왔는데 / 오늘은 탈곡기로 콩 터는 일을 돕는다 (다른 서사)


비 피하러 들어간 자재창고 후미진 구석에 박혀 / 쓸쓸한 노래 한곡을 부르는데 / 창고장이 웬 청승이냐고 나가라 했다 / 너무 야박하지 않으냐고 돌아서는데 뒷골이 띵 / 쓰러졌다 일어나는데 다시 앞에서 풀스윙 / 코 옆에서 입술까지 너덜너덜 찢어지고 / 이빨 넉대가 산산조각이 났다 / 노래 한곡 값이었다 (그 노래들이 잊히지 않는다)



  ‘시인 송경동’이 아닌 ‘노동자 송경동’으로 살던 무렵, 송경동 님은 온몸으로 아프면서 고된 일을 으레 겪었다고 합니다. 비가 오는 날 노래 한 가락을 뽑았다가 드센 주먹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이빨 넉 대가 나갔다고 합니다. ‘노동자 송경동’에서 ‘시인 송경동’으로 거듭난 뒤에, ‘노동자하고 벗님하는 시인’으로 살아가니, 한꺼번에 여섯 가지 소환장이 집으로 날아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노동자 송경동은 노래 한 가락 뽑았다고 이빨이 넉 대가 나가야 했고, 시인 송경동은 노동자하고 벗님하는 살림을 지었다고 법원에서 벌금 삼백만 원을 내야 했다고 합니다. 〈시인과 죄수〉라는 시를 보면, 어느 날 서울중앙법원 재판정에 서야 했는데, 집시법이나 여러 법으로 얽혀 벌금 삼백만 원 선고를 받았고, 그날 낮에는 천상병시문학상을 받으면서 덤으로 상금을 오백만 원 받아서 겨우 벌금을 메우면서 살림에 보탤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이 시를 더 보면, 신동엽문학상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은 날 낮에는 체포영장이 나왔다는 “벅찬 소식”까지 함께 들었다고 합니다.



“○○씨랑은 어떤 관계죠?” / “진술하지 않겠습니다” / 나의 청춘을 / 나의 거리를 / 나의 고뇌를 / 결코 말하지 않겠습니다 (진술을 거부하겠습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하며 위장폐업한 / 기타 만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 복직을 요구하는 /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시인 송경동은 그악스럽거나 무시무시한 사람이라도 될까 궁금합니다. 왜 시인 한 사람은 재판정에 서서 선고를 받아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왜 시인 한 사람은 자꾸 경찰서로 불려 가서 진술서를 써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왜 시인 한 사람한테 자꾸 벌금을 물리고, 이녁을 감옥에 가두려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궁금함은 아주 쉽게 풀 만하다고 느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요즈막 정부는 ‘테러방지법’을 세우겠다면서 온힘을 쏟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살림 걱정을 하지 않도록 북돋우는 정책이 아니라, 테러방지법 같은 정책에 온힘을 쏟겠다는 정부 권력이에요.


  시인 한 사람은, 노동자였던 시인 한 사람은, 노동자하고 벗님하는 시인 한 사람은, 곁님하고 아이를 사랑하는 시인 한 사람은, 시골바람을 마시면서 투박하게 자란 시인 한 사람은, 대단하거나 놀라운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작고 작은 시인 한 사람은 오직 하나를 조그맣게 바랍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 저작권 관련 글을 한편 써달라는데 / 나는 누구의 삶을 팔아 얼마를 챙긴 것일까 /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온 / 아내의 저작권은 몇 퍼센트일까 (저작권)



  사랑이 흐를 수 있는 삶터가 사랑스럽습니다. 사랑이 흐를 수 있는 삶터일 때에 평화롭습니다. 사랑이 흘러서 평화로울 수 있는 삶터일 때에 평등합니다. 사랑이 흘러 평화롭고 평등한 삶터일 수 있을 때에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흘러 평화롭고 평등하여 아름다운 삶터일 수 있을 때에 서로 어깨동무하는 기쁜 살림을 지을 만합니다.


  논갈이를 하는 시골 할배나 아재는 방송이나 신문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봄볕을 읽고 봄바람을 읽을 뿐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고작 5퍼센트가 될랑 말랑 하는 시골지기는 서울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잘 모르고, 알 길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시골지기는 이 새로운 봄에 새롭게 흙을 일구어 봄맞이를 합니다.


  삶을 사랑하기에 흙을 만지면서 씨앗을 심습니다. 이 씨앗에 싹이 트고 줄기가 올라 꽃이 피면, 온누리에 아름다운 숨결이 퍼져요. 씨앗 한 톨에서 핀 꽃이 지고 열매가 익을 무렵이면, 온누리에 사랑스러운 바람이 불지요. 씨앗 한 톨에서 맺은 꽃이 지고 열매가 맺은 뒤에 갈무리를 할 즈음이면, 온누리에 넉넉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가을걷이는 고된 일이면서 기쁨이 가득한 노래이거든요.



국회에서 맺은 합의서도 종잇조각 / 천억대 회사를 육천만원짜리로 빼돌린 배임도 무혐의 / 노동자를 버리고 떠난 야반도주는 합법 / 백주대낮 회장 집 방문은 주거침입 (기륭과 보낸 십년)



  노래 한 가락에 이빨 넉 대 나간 시인은 사랑을 노래하려는 꿈으로 시를 짓습니다. 작은 시가 모여서 작은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가 태어납니다. 이 작은 시집에서 송경동 님은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하는 말을 자꾸 읊습니다. 아무래도 이 나라에서 송경동 님 같은 사람은 ‘한국사람이 아니다’라는 딱지가 붙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송경동 님이 벗님으로 삼는 노동자는 한국에서 한국사람으로 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나 공무원까지, 이런 분들은 모두 ‘권력자’가 아니라 ‘심부름꾼’이어야 옳지 싶습니다. 정치와 행정을 맡는 분들은 ‘수수한 사람들 살림살이’를 북돋우고 돌보며 아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손길로 일을 하는 마음일 때에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수수한 사람들한테 참다운 평화를 북돋우는 정책을 마련해서 이끌 적에 비로소 ‘정치 심부름꾼’이지 싶습니다. 집시법이 아니라 헌법을 헤아리면서 나라살림을 바라볼 적에 비로소 ‘행정 심부름꾼’이지 싶습니다.


  새봄에 서울 국회나 청와대 언저리에 계신 분들을 시골로 부르고 싶습니다. 바쁘고 어수선한 서울을 이 봄에 살짝 벗어나서 시골로 와 보셔요. 시골에는 군대도 탱크도 없어도 평화로워요. 시골에는 전쟁무기도 전투경찰도 그냥 경찰도 없어도 사건이나 사고가 없어요. 시골에는 이 봄에 흙을 만지면서 새하고 노래하고 쑥이랑 나물을 뜯는 기쁨을 누려요.


  노동자와 벗님하는 시인 한 사람이 이녁 고향인 벌교 시골마을에서 탈곡기로 콩을 탈탈 털면서 사랑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아늑하게 지을 수 있는 꿈을 부디 기쁘게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를 고요히 덮습니다. 모든 사랑스러운 꿈은 머잖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스러운 꿈이기에 이룰 수 있어요. 2016.2.2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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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산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9
박철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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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11



네 작은 손에 온누리가 있네

― 작은 산

 박철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3.4.29. 8000원



  작은아이가 파란 빛깔을 좋아합니다. 분홍도 좋아하고 노랑도 좋아하며 풀빛도 좋아하는데, 문득 파랑을 퍽 좋아하는 마음으로 흐릅니다. 큰아이는 집에서 어머니하고 놀도록 한 뒤에 작은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오는 길에 작은아이한테 물어봅니다. “우리 곁에 파랑이 어디에 있을까?” “음, 몰라.” “잘 생각해 봐. 하늘은 무슨 빛깔일까?” “하늘? 오늘 구름 많이 껴서 하얀데.” “그래, 이 구름이 걷히면 하늘은 파랗지.”


  작은아이하고 이야기를 잇습니다. “바다는 어떤 빛깔일까?” “파랑.” “바다는 왜 파랑일까?” “몰라.” “바다는 하늘이 파라면 파래. 해가 질 적에 하늘이 붉으면 바다도 붉어.” “누나하고 바다에 가고 싶다.” “바람이 가라앉고 볕이 좋으면 바다에 가자. 하늘이 파랑이면 바람은 무슨 빛깔일까?” “몰라.” “바람은 어디에 있지?” “하늘에?” “그래. 바람이 하늘에 있으면 바람은 무슨 빛깔이지?” “몰라.” “생각해 봐. 하늘이 파랑이고, 바람으로 하늘이 이루어졌으면 바람은 무슨 빛깔일까?”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한 사내가 / 껌을 밟고 섰듯 우렁차게 먼 이야기를 하지만 / 사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다 (개화산에서)



  여섯 살이라는 나이를 지나가는 작은아이하고 파랑과 하늘과 바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들이를 합니다. 둘이서 오붓하게 읍내마실을 마치고 시골버스에 오릅니다. 마을에서 읍내로 갈 적에는 큰 버스였는데, 읍내에서 마을로 올 적에는 작은 버스입니다. 작은 시골버스에 타고서 가방에서 시집을 한 권 꺼냅니다. 시인 박철 님이 빚은 《작은 산》(실천문학사,2013)입니다. 버스에서 살짝 읽어 보려고 챙겼습니다.


  시를 한 줄 읽다가 다시 파랑 이야기를 묻습니다. 시를 두 줄 읽고서 파란 하늘과 파란 바람 이야기를 잇습니다. 우리는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하늘빛을 파랑으로 느끼면서 바라보지만, 정작 바람한테는 아무 빛깔이 없는듯이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숨을 쉴 적에는 바로 이 바람을 마시고, 우리가 마시는 바람이 바로 하늘을 이루니, 우리는 늘 하늘을 마시는 셈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파란 숨결을 맞아들여서 몸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노릇이라고 알려줍니다.



요즘 나는 늙으신 부모에게 / 이별에 대해 가르치는 중이다 / 불쑥 들어설 것 같아 하루 종일 / 마당가에 앉아 있다는 어머니 / 참기름처럼 고소한 상추 잎들이 / 아들이 보고 싶은 어머니 손에서 시들어간다 (작은 산)


요즘은 또랑 보기가 참 어렵구나 / 중요하지도 않은 작은 시냇물을 떠올리다가 / 우물도 볼 수가 없지 겨울이면 얼음 더께가 두둑한 / 우물가로 가던 여인네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 근데 왜 그 추위에 우물가에선 웃음이 넘쳐났을까 (또랑)



  작은아이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큰아이가 마당에서 반깁니다. 한 시간 반 남짓 동생하고 떨어진 큰아이는 이때부터 저녁을 먹을 때까지 둘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함께 놉니다. 저녁을 먹다가 졸음이 쏟아져서 작은아이가 곯아떨어지고, 그 뒤 큰아이는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나도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이었을 적에 동생처럼 밥을 먹다가 잠들었어?” 고작 너덧 해 앞서 일이지만 큰아이는 예전 일을 못 떠올리는가 봅니다. 그렇지만 나는 잊지 않아요. “그럼, 너도 자주 그랬어.”


  낮에 작은아이한테 들려준 파랑이랑 하늘이랑 바람 이야기를 큰아이한테도 들려줍니다. 큰아이는 이 얘기를 재미있게 들어 주기는 하지만 아직 다 알아듣지는 못하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파랑하고 하늘하고 바람이 서로 어떻게 맞물리는가 하는 대목을 깊이 헤아린 지 얼마 안 됩니다. 어릴 적에는 이 대목을 무척 궁금하게 여겼어요. 하늘이란 바로 바람일 텐데, 하늘을 보면 파랑이지만 왜 바람은 빛깔이 없는 듯할까 하고 궁금했거든요.



할머니의 오랜 동무가 발밑에 사는 것을 / 그래서 아이는 지구가 할머니의 놀이터고 / 지구 너머 우주의 꽃들도 물처럼 흐르는 은하수도, / 모든 것이 아이의 작은 손과 이어져 있음을 (노인과 아이)


우리는 제각기 서서 / 한 그루 나무로 /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다 (해빙 12, 나무)



  부엌을 치우고 나서 시집을 마저 읽습니다. 큰아이가 혼자 놀다가 그림책을 보는 동안 시집을 더 읽습니다. 큰아이한테 찢어진 책을 어떻게 손질하는가를 보여주고는, 잠자리에 들 적에 즐겁게 꿈을 꾸면서 포근히 쉬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놀았는가를 큰아이 스스로 일기로 쓰도록 돕습니다. 이제 불을 다 끄고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작은아이가 불쑥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아무 말을 않고 마당으로 나가서 쉬를 합니다. 쉬가 마려워서 스스로 깼군요.


  졸음이 가득하지만 쉬를 잘 가린 작은아이가 대견해서 이 아이를 안다시피 이끌어서 양말을 벗기고 발을 씻긴 뒤 잠옷으로 갈아입혀 주고 이를 닦아 줍니다. 아이가 혼자 할 일이지만, 졸음돌이가 폭 잠들기를 바라며 하나하나 재빨리 챙겨 주고 자리에 누입니다. 자리에 누운 작은아이는 이내 다시 꿈나라로 갑니다.


  초를 켜서 시집 《작은 산》을 마저 읽습니다. 고요한 밤바람을 살며시 느끼면서 마지막 줄을 읽습니다. 기지개를 켜면서 싯말을 하나하나 되새깁니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라고 노래하는 싯말을 되새기고, 작은 산에서 바라보는 먼 곳을 헤아리는 싯말을 되새깁니다. 이러면서 ‘작은아이’를 일컬을 적에 쓰는 ‘작은’이라는 말마디를 곱씹습니다.



어제 못다 내린 눈이 마저 내리러 왔네 / 어제 못다 걸은 길이 마중을 나왔네 (흰 눈)



  나한테는 형이 있기에 나는 어릴 적부터 ‘작은아이’로 컸습니다. 어버이 자리에 선 나로서는 두 아이가 모두 “(몸이) 작은” 아이입니다. 두 “작은 아이” 가운데 동생은 ‘작은아이(둘째)’이지요. 작디작은 아이가 바로 둘째요 동생입니다.


  이 작은아이는 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갈라치면,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얼마나 노래를 신나게 하는가 하고 물끄러미 지켜보면, 고흥에서 서울까지 가는 다섯 시간 가까운 버스길에서 내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다만, 시외버스에서 내처 노래를 부르면 다른 손님이 잠을 못 주무시니 부디 목소리를 낮추어 달라고 해요.


  노래돌이인 작은아이는 버스를 타니 신나지만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없어서 힘들어합니다. 도시로 나와서 버스나 전철이나 택시를 탈 적에도 늘 노래를 부르는데, 집에서처럼 목청껏 불러요. 어쩜 이렇게 아무 눈치를 안 보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가 싶어서 놀라지요. 이때에도 노래는 부르되 목소리는 낮추어 주렴 하고 속삭이면 싱긋 웃으면서 목소리를 줄이는 듯하다가 다시 키웁니다. 이러다가 한마디를 해요. “아버지, 얼른 집에 가자. 노래하고 싶어.”



헌법 제1조 1항은 / 대한민국은 어린이를 최우선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이다로 바꿔야 합니다 (이상한 시)



  시집 《작은 산》은 거의 ‘짧은 시(작은 시)’로 이루어집니다. 이 가운데 꼭 하나 〈이상한 시〉만 깁니다. 그리고 이 긴 시인 〈이상한 시〉에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헌법 제1조 1항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흘러요.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 촛불에 기대어 이 시를 읽으며 속으로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깰까 싶어 목소리를 죽이면서 노래해 보았습니다. 어쩜 이렇게 예쁜 말이 다 있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참말 그렇지요. 우리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만 나오는데, 이 헌법이 ‘그냥 민주공화국’이 아닌 ‘어린이를 가장 높이 사랑하는 민주공화국’으로 바뀔 수 있으면, 아니 거듭날 수 있으면, 아니 새로 태어날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린이를 ‘최우선’으로 삼는 민주공화국이라면 전쟁무기가 아닌 평화로 돌아서겠지요. 어린이를 ‘가장 높이 아끼는’ 민주공화국이라면 입시지옥도 학벌도 모든 신분이나 계급도 걷어치우겠지요. 어린이를 ‘가장 거룩히 사랑하는’ 민주공화국이라면 불평등이나 반민주가 그야말로 발을 디딜 수 없으리라 생각해요.



일면식이 없는 /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버리긴 아깝고)



  자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가만히 한마디를 읊습니다. “네 작은 손에 온누리가 있네.” 자그마한 시집을 가만히 덮으면서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이 작은 이야기에 온사랑이 있네.” 작은 목소리로 작은 꿈을 노래하는 사람들한테서 사랑스러운 숨결이 흘러나옵니다. 작은 마을에서 작은 살림을 가꾸는 사람들한테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작은’ 어른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면 아름다우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큰’ 것을 챙기거나 찾는 사회나 경제나 문화나 정치가 아니라, 다 같이 ‘작은’ 손을 내밀어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사회나 경제나 문화나 정치라면 더없이 사랑스러우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작은 아이가 큰 마음이고, 작은 사랑이 큰 꿈이요, 작은 숨결이 큰 살림이지 싶습니다. 2016.2.2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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