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이 쑤신다 연두잎 6
이상교 지음, 홍성지 그림 / 해와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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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시 79



아이처럼 신나게 뛰노는 어른이 되기를 빈다

― 좀이 쑤신다

 이상교 글

 홍성지 그림

 해와나무 펴냄, 2011.3.30. 8500원



  집 안팎을 드나들며 노는 우리 집 아이들은 비가 오는 날에는 “비가 오네. 밖에서 못 놀겠네.” 하고 한 마디를 합니다. 이러면서 집 안쪽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그림놀이를 하며 뛰기놀이와 잡기놀이와 숨바꼭질을 다 합니다. 옷장에도 숨고, 이불에도 숨어요. 이러다가 슬금슬금 집 바깥으로 나갑니다. 어느새 비옷을 챙겨 입고는 “비 맞으며 놀아야지.” 합니다. 얼마쯤 지난 뒤, 비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꿰어 말리고는 헛간에서 우산을 꺼내어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놉니다. 바야흐로 빗물놀이입니다.


  아직 이른봄이라 날이 많이 따뜻하지는 않기에 ‘비 맞으며 놀기’까지는 하지 않는데, 반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노는 날씨가 되면 ‘비 오는 날에는 비 맞으며 놀기’로 바뀌어요. 세찬 비가 쏟아지면 세찬 비대로 맞으면서 놀고, 가랑비가 노래처럼 내리면 가랑비대로 맞으면서 입을 헤 벌리면서 빗물을 받아서 먹습니다.



툭, 투둑! // 빗방울은 씨앗이다. // 뭐든 / 돋아 낸다. (빗방울)


어린 뿌리 / 어린 줄기 / 어린 잎 / 어린 꽃망울 / 어린 열매…… / 어린 것은 다 예쁘다. (어린 것)



  이상교 님이 글을 쓰고, 홍성지 님이 그림을 그린 동시집 《좀이 쑤신다》(해와나무,2011)를 읽습니다. 이 동시집 이름이기도 한 〈좀이 쑤신다〉를 보면 ‘밖에서 놀고 싶은 아이’ 마음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아무래도 이 동시를 쓴 어른부터 도시에서 살고, 이 동시를 읽을 아이도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밖에서 놀지 못해 좀이 쑤신 삶’을 그리는구나 싶어요. 오늘날 도시에서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지 못하거든요.


  첫째, 도시에 자동차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골목에서도 자동차 때문에 제대로 뛰놀지 못하고, 아파트에서도 손바닥만 한 놀이터를 빼고는 온통 자동차가 드나드는 길이에요. 둘째, 학원에 얽매이느라 힘겹습니다. 학원을 다녀야 하는 아이들은 놀 겨를이 없고, 놀 동무를 만나기 어렵지요. 셋째, 놀이터도 마땅하지 않고 놀이동무하고 밖에서 뛰놀지 못하다 보니, 인터넷게임에 푹 빠집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흔히 인터넷게임에 사로잡혀서 못 헤어나온다고들 말하지만, 집 바깥에서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고단한 마음을 인터넷게임으로 풀 수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좀, 좀, 좀 / 좀이 쑤신다. // 밖으로 뛰어나가 / 놀고 싶어 / 좀이 쑤신다. (좀이 쑤신다)



  봄비가 내리는 봄날 저녁에 부엌에서 김치를 담급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마당하고 뒤꼍에서 갓을 솎았고, 갓을 함께 헹구었습니다. 소금물에 갓을 담가 놓은 뒤 양념을 마련했고, 이때에 큰아이는 마늘하고 생강을 찧는 일을 거들었어요. 아홉 살 큰아이가 마늘찧기랑 생강찧기를 거뜬히 도와주었기에 한결 수월하게 갓김치를 담글 수 있어요.


  소금물로 절인 갓잎에 양념을 고루 묻히면서 포개는 일은 제가 혼자서 합니다. 저녁밥을 다 차려서 먹인 뒤에 씩씩하게 갓김치를 담그는데, 이동안 두 아이는 아버지 곁에서 글놀이도 하고 그림놀이도 합니다. 이러다가 노래도 부르지요. 아이들이 재잘재잘 떠들며 부르는 노랫소리를 듣는 사이 등허리 결린 줄 잊습니다. 나도 아이들 곁에서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면서 양념 버무리기를 마무리짓습니다.



가을 해님이 / 샛노란 볕을 / 몇 가마니나 / 한꺼번에 떨어뜨렸다. // 놀란 나머지 / 은행나무 / 통째로 / 샛노랗게 물들었다. (샛노랗다)


베어진 나무가 / 흙바닥에 엎드려 / 잔다. // 흙의 가슴에 / 아기처럼 엎드려 / 잔다. (베어진 나무)



  동시집 《좀이 쑤신다》를 읽으면서 자꾸 마음이 아픕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좀처럼 놀지 못하는 고단한 이야기가 이 동시집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다른 동시집을 보아도 요즈음 아이들 모습은 엇비슷해요. ‘신나게 뛰노는 아이’ 삶을 그리는 동시를 요즈음 찾아 읽기는 퍽 어렵습니다. ‘거의 못 뛰노는 아이’가 얼마나 고단한가 하는 대목을 그리는 동시가 많아요. 놀이동무뿐 아니라 말동무조차 만나지 못하는 힘겨운 나날을 그리는 동시가 많아요. 학원과 입시와 학교와 시험과 숙제에 얽매인 아이들이 슬프고 아픈 모습을 그리는 동시가 많아요.


  아무래도 우리 사회가 이러한 모습이라 할 테니, 동시를 쓰는 어른도 우리 사회 모습을 고스란히 그릴 수밖에 없으리라 느껴요. ‘신나게 뛰노는 아이’를 만나기가 어려우니, 어쩌면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만하니, ‘노는 웃음’을 그리는 동시는 좀처럼 태어나기 어렵다고 할 만하구나 싶어요.



학원을 새로 옮겨 / 아는 애 없어 속상했다. / 산더미 숙제에 쫓겨 / 이래저래 속상했다. / 짝과 말다툼으로 / 며칠 내리 속상했다. (손톱이 자랐다)



  나는 우리 시골집에서 우리 아이들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놉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아주 조금도 안 쉬고 그야말로 개구지게 뛰어놉니다. 지치지도 않더군요. 이부자리에서까지 발을 구르면서 깔깔대며 놀아요. 놀이순이랑 놀이돌이를 재우자면 어버이인 나까지 아이들하고 지칠 대로 지쳐서 다 같이 곯아떨어지는 몸이 되도록 뛰놀고 일해야 하지요.


  봄비 소리를 들으며 까무룩 잠들었다고 문득 눈을 뜹니다. 두 아이가 이불깃을 잘 여미었는가 살핍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저녁에 미처 마무리짓지 못한 부엌일을 마저 합니다. 설거지를 하고, 밥상을 훔칩니다. 양념으로 버무린 갓김치를 살피고, 새로운 아침에 어떤 밥을 지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물 한 모금 마신 뒤 마당을 내다봅니다. 마을고양이가 야옹거리면서 우리 자전거 밑에 옹크린 모습을 바라봅니다. 비가 오니 처마 밑에 놓은 자전거 밑에 깃들어 비를 긋는 고양이들입니다. 자전거 밑에 두 마리, 헛간에 네 마리, 집 옆으로 두 마리, 연장 상자에 한 마리, 이밖에 나무 밑에도 보일러실 앞에도 수많은 고양이가 우리 집을 둘러쌉니다. 고양이가 잔뜩 모인 시골집이 되다 보니, 우리 집만큼은 쥐가 한 마리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둘레에서 개구리 소리가 잘 안 나던데 마을고양이가 개구리까지 잡아먹어서 씨가 마를 수 있겠군요. 며칠 앞서부터 마을논에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는데, 머잖아 밤마다 개구리 노랫소리가 우렁차게 퍼지는 하루를 누리겠다고 느낍니다. 논마다 물이 가득 고여야 비로소 밤노래잔치가 펼쳐지겠지요.



우리 아파트 동네에 내린 / 눈은 / 얼마 가지 않아 / 질척질척 다 녹는데, // 시골 외가 마당에 내린 / 눈은 / 한참까지도 푸근푸근 / 녹지 않는다. (외갓집 눈)



  좀처럼 놀지 못해서 좀이 쑤시고 마는 도시 아이들 마음을 달래려는 동시집 《좀이 쑤시다》를 아이하고 함께 읽는 어른들이 ‘놀이하는 어른’ 마음으로 달라질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놀이하는 아이’를 사랑해 주면서, ‘놀이하는 어버이’가 되어 보기를, 이리하여 서로 즐겁게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살림을 지어 보기를 빌어 봅니다. 놀지 못해서 좀이 쑤시는 아이들은 사라지고, 신나게 놀아서 까무룩 곯아떨어지면서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아이들이 새롭게 나타날 수 있기를 빌어 봅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놀아야 마을이 살고, 마을이 살 때에 온누리가 아름답게 살아나리라 생각해요. 2016.3.8.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동시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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