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산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9
박철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시를 노래하는 시 111



네 작은 손에 온누리가 있네

― 작은 산

 박철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3.4.29. 8000원



  작은아이가 파란 빛깔을 좋아합니다. 분홍도 좋아하고 노랑도 좋아하며 풀빛도 좋아하는데, 문득 파랑을 퍽 좋아하는 마음으로 흐릅니다. 큰아이는 집에서 어머니하고 놀도록 한 뒤에 작은아이를 데리고 나들이를 나오는 길에 작은아이한테 물어봅니다. “우리 곁에 파랑이 어디에 있을까?” “음, 몰라.” “잘 생각해 봐. 하늘은 무슨 빛깔일까?” “하늘? 오늘 구름 많이 껴서 하얀데.” “그래, 이 구름이 걷히면 하늘은 파랗지.”


  작은아이하고 이야기를 잇습니다. “바다는 어떤 빛깔일까?” “파랑.” “바다는 왜 파랑일까?” “몰라.” “바다는 하늘이 파라면 파래. 해가 질 적에 하늘이 붉으면 바다도 붉어.” “누나하고 바다에 가고 싶다.” “바람이 가라앉고 볕이 좋으면 바다에 가자. 하늘이 파랑이면 바람은 무슨 빛깔일까?” “몰라.” “바람은 어디에 있지?” “하늘에?” “그래. 바람이 하늘에 있으면 바람은 무슨 빛깔이지?” “몰라.” “생각해 봐. 하늘이 파랑이고, 바람으로 하늘이 이루어졌으면 바람은 무슨 빛깔일까?”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한 사내가 / 껌을 밟고 섰듯 우렁차게 먼 이야기를 하지만 / 사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다 (개화산에서)



  여섯 살이라는 나이를 지나가는 작은아이하고 파랑과 하늘과 바람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들이를 합니다. 둘이서 오붓하게 읍내마실을 마치고 시골버스에 오릅니다. 마을에서 읍내로 갈 적에는 큰 버스였는데, 읍내에서 마을로 올 적에는 작은 버스입니다. 작은 시골버스에 타고서 가방에서 시집을 한 권 꺼냅니다. 시인 박철 님이 빚은 《작은 산》(실천문학사,2013)입니다. 버스에서 살짝 읽어 보려고 챙겼습니다.


  시를 한 줄 읽다가 다시 파랑 이야기를 묻습니다. 시를 두 줄 읽고서 파란 하늘과 파란 바람 이야기를 잇습니다. 우리는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하늘빛을 파랑으로 느끼면서 바라보지만, 정작 바람한테는 아무 빛깔이 없는듯이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우리가 숨을 쉴 적에는 바로 이 바람을 마시고, 우리가 마시는 바람이 바로 하늘을 이루니, 우리는 늘 하늘을 마시는 셈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파란 숨결을 맞아들여서 몸을 살리거나 살찌우는 노릇이라고 알려줍니다.



요즘 나는 늙으신 부모에게 / 이별에 대해 가르치는 중이다 / 불쑥 들어설 것 같아 하루 종일 / 마당가에 앉아 있다는 어머니 / 참기름처럼 고소한 상추 잎들이 / 아들이 보고 싶은 어머니 손에서 시들어간다 (작은 산)


요즘은 또랑 보기가 참 어렵구나 / 중요하지도 않은 작은 시냇물을 떠올리다가 / 우물도 볼 수가 없지 겨울이면 얼음 더께가 두둑한 / 우물가로 가던 여인네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 근데 왜 그 추위에 우물가에선 웃음이 넘쳐났을까 (또랑)



  작은아이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큰아이가 마당에서 반깁니다. 한 시간 반 남짓 동생하고 떨어진 큰아이는 이때부터 저녁을 먹을 때까지 둘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함께 놉니다. 저녁을 먹다가 졸음이 쏟아져서 작은아이가 곯아떨어지고, 그 뒤 큰아이는 아버지한테 묻습니다. “아버지, 나도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이었을 적에 동생처럼 밥을 먹다가 잠들었어?” 고작 너덧 해 앞서 일이지만 큰아이는 예전 일을 못 떠올리는가 봅니다. 그렇지만 나는 잊지 않아요. “그럼, 너도 자주 그랬어.”


  낮에 작은아이한테 들려준 파랑이랑 하늘이랑 바람 이야기를 큰아이한테도 들려줍니다. 큰아이는 이 얘기를 재미있게 들어 주기는 하지만 아직 다 알아듣지는 못하는 느낌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파랑하고 하늘하고 바람이 서로 어떻게 맞물리는가 하는 대목을 깊이 헤아린 지 얼마 안 됩니다. 어릴 적에는 이 대목을 무척 궁금하게 여겼어요. 하늘이란 바로 바람일 텐데, 하늘을 보면 파랑이지만 왜 바람은 빛깔이 없는 듯할까 하고 궁금했거든요.



할머니의 오랜 동무가 발밑에 사는 것을 / 그래서 아이는 지구가 할머니의 놀이터고 / 지구 너머 우주의 꽃들도 물처럼 흐르는 은하수도, / 모든 것이 아이의 작은 손과 이어져 있음을 (노인과 아이)


우리는 제각기 서서 / 한 그루 나무로 /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다 (해빙 12, 나무)



  부엌을 치우고 나서 시집을 마저 읽습니다. 큰아이가 혼자 놀다가 그림책을 보는 동안 시집을 더 읽습니다. 큰아이한테 찢어진 책을 어떻게 손질하는가를 보여주고는, 잠자리에 들 적에 즐겁게 꿈을 꾸면서 포근히 쉬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놀았는가를 큰아이 스스로 일기로 쓰도록 돕습니다. 이제 불을 다 끄고 잠자리에 들려 하는데 작은아이가 불쑥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아무 말을 않고 마당으로 나가서 쉬를 합니다. 쉬가 마려워서 스스로 깼군요.


  졸음이 가득하지만 쉬를 잘 가린 작은아이가 대견해서 이 아이를 안다시피 이끌어서 양말을 벗기고 발을 씻긴 뒤 잠옷으로 갈아입혀 주고 이를 닦아 줍니다. 아이가 혼자 할 일이지만, 졸음돌이가 폭 잠들기를 바라며 하나하나 재빨리 챙겨 주고 자리에 누입니다. 자리에 누운 작은아이는 이내 다시 꿈나라로 갑니다.


  초를 켜서 시집 《작은 산》을 마저 읽습니다. 고요한 밤바람을 살며시 느끼면서 마지막 줄을 읽습니다. 기지개를 켜면서 싯말을 하나하나 되새깁니다. 낮은 산이 더 오래된 산이라고 노래하는 싯말을 되새기고, 작은 산에서 바라보는 먼 곳을 헤아리는 싯말을 되새깁니다. 이러면서 ‘작은아이’를 일컬을 적에 쓰는 ‘작은’이라는 말마디를 곱씹습니다.



어제 못다 내린 눈이 마저 내리러 왔네 / 어제 못다 걸은 길이 마중을 나왔네 (흰 눈)



  나한테는 형이 있기에 나는 어릴 적부터 ‘작은아이’로 컸습니다. 어버이 자리에 선 나로서는 두 아이가 모두 “(몸이) 작은” 아이입니다. 두 “작은 아이” 가운데 동생은 ‘작은아이(둘째)’이지요. 작디작은 아이가 바로 둘째요 동생입니다.


  이 작은아이는 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갈라치면,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얼마나 노래를 신나게 하는가 하고 물끄러미 지켜보면, 고흥에서 서울까지 가는 다섯 시간 가까운 버스길에서 내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다만, 시외버스에서 내처 노래를 부르면 다른 손님이 잠을 못 주무시니 부디 목소리를 낮추어 달라고 해요.


  노래돌이인 작은아이는 버스를 타니 신나지만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없어서 힘들어합니다. 도시로 나와서 버스나 전철이나 택시를 탈 적에도 늘 노래를 부르는데, 집에서처럼 목청껏 불러요. 어쩜 이렇게 아무 눈치를 안 보고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가 싶어서 놀라지요. 이때에도 노래는 부르되 목소리는 낮추어 주렴 하고 속삭이면 싱긋 웃으면서 목소리를 줄이는 듯하다가 다시 키웁니다. 이러다가 한마디를 해요. “아버지, 얼른 집에 가자. 노래하고 싶어.”



헌법 제1조 1항은 / 대한민국은 어린이를 최우선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이다로 바꿔야 합니다 (이상한 시)



  시집 《작은 산》은 거의 ‘짧은 시(작은 시)’로 이루어집니다. 이 가운데 꼭 하나 〈이상한 시〉만 깁니다. 그리고 이 긴 시인 〈이상한 시〉에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가 흐릅니다. 헌법 제1조 1항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흘러요.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 촛불에 기대어 이 시를 읽으며 속으로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깰까 싶어 목소리를 죽이면서 노래해 보았습니다. 어쩜 이렇게 예쁜 말이 다 있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참말 그렇지요. 우리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만 나오는데, 이 헌법이 ‘그냥 민주공화국’이 아닌 ‘어린이를 가장 높이 사랑하는 민주공화국’으로 바뀔 수 있으면, 아니 거듭날 수 있으면, 아니 새로 태어날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어린이를 ‘최우선’으로 삼는 민주공화국이라면 전쟁무기가 아닌 평화로 돌아서겠지요. 어린이를 ‘가장 높이 아끼는’ 민주공화국이라면 입시지옥도 학벌도 모든 신분이나 계급도 걷어치우겠지요. 어린이를 ‘가장 거룩히 사랑하는’ 민주공화국이라면 불평등이나 반민주가 그야말로 발을 디딜 수 없으리라 생각해요.



일면식이 없는 /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 서명을 한 뒤 잠시 바라보다 /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버리긴 아깝고)



  자는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기면서 가만히 한마디를 읊습니다. “네 작은 손에 온누리가 있네.” 자그마한 시집을 가만히 덮으면서 마음으로 노래합니다. “이 작은 이야기에 온사랑이 있네.” 작은 목소리로 작은 꿈을 노래하는 사람들한테서 사랑스러운 숨결이 흘러나옵니다. 작은 마을에서 작은 살림을 가꾸는 사람들한테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흘러나옵니다.


  ‘대’통령이 아니라 ‘작은’ 어른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면 아름다우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큰’ 것을 챙기거나 찾는 사회나 경제나 문화나 정치가 아니라, 다 같이 ‘작은’ 손을 내밀어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사회나 경제나 문화나 정치라면 더없이 사랑스러우리라 하고 생각합니다. 작은 아이가 큰 마음이고, 작은 사랑이 큰 꿈이요, 작은 숨결이 큰 살림이지 싶습니다. 2016.2.2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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