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손발



  이 늦가을에도 노느라 흙이며 모래가 잔뜩 묻는 작은아이 고무신. 신뿐 아니라 손도 옷도 얼굴도 머리도 온통 흙투성이에 모래투성이. 너는 흙놀이를 한 손으로 책을 그냥 쥐는구나. 책이 네 흙손을 좋아할까? 읽어 주니 반길까? 아니면 책은 네가 손을 깨끗이 씻고서 살살 넘겨 주기를 바랄까? 한번 책한테 물어보지 않겠니? 2017.11.1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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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까



  잠자리에 들기 앞서 아이들을 이끌고 마당에 섭니다. 오늘은 별이 안 보이네요. 구름인가, 안개인가, 아니면 먼지인가 알 길이 없습니다. 마당을 휘휘 돌다가, 여러 놀이를 하다가, 마을 한 바퀴를 돌려 하는데, 우리가 딛는 자리가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일 뿐이라고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달음박질로 마을 한 바퀴를 돌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집 뒤꼍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우리 집 뒤꼍에서 흙을 밟고서 잠자리에 들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흙을 밟지 못하고서, 겨울을 앞두고 시들어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스러지는 풀노래를 듣지 못하고서, 추위를 맞이하며 노랗게 익는 유자가 밤에도 나누어 주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서, 그냥 잠들 수 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노느라 땀을 쏟은 아이들이 11월 13일 이 깊은 가을에 부채를 하나씩 챙겨서 부치면서 잠들겠노라 합니다. 너희는 참 대단하네. 2017.11.1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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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본 큰아이 꿈글



  어느 날이었던가 큰아이가 쪽종이에 잔글씨로 적은 꿈글을 보았습니다. 큰아이가 쪽종이에 꿈글을 적어 놓고서 잊어버렸지 싶어요. 저는 이 꿈글종이를 고이 건사해서 제 책상맡에 놓았습니다. 아마 큰아이는 종이에 꿈글을 적은 일은 잊었을는지 모르는데, 그래도 그 종이에 적은 꿈은 잊지 않았으리라 생각해요. 저는 큰아이 꿈을 제 마음에도 품고서 하루하루 지냈고, 곧 큰아이 꿈을 작은 조각으로 하나 이룰 수 있습니다. 큰아이는 어떤 꿈글을 적었을까요? 네, 큰아이는 “언제 나도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지을 수 있을까요?” 하고 꿈글을 적었어요. 오롯이 큰아이 손길로만 태어날 책은 아니지만, 큰아이가 그동안 그린 그림을 제 글하고 함께 엮어서 책을 하나 내기로 했어요. 어제 출판사 대표님을 뵌 자리에서 ‘그림 작가 그림삯’을 큰아이 계좌로 ‘그림삯을 보내는 출판사 이름’이 찍히도록 해 주십사 하고 말씀을 여쭈었습니다. 2017년 올해가 가기 앞서 큰아이 책상맡에 큰아이 그림이 고이 깃든 책 하나 놓을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2017.10.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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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거나 미적거리거나



  어제 문득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서두르지 말되 미적거리지 말자.’ 이 한 마디를 조용히 읊었어요. 이 말처럼 스스로 몸짓을 가다듬자고 생각합니다. 이 말마디는 저 스스로 거듭나려는 몸짓이면서 아이 앞에서 보여주려는 몸짓이요 아이들이 어버이한테서 배우기를 바라는 몸짓이에요. 어느 일을 하든 서두르지 말자고 늘 입으로 들려주어요. 바쁘게 일을 하지 말자고, 바쁘게 걷거나 달리지 말자고, 바쁘게 끝내려 하지 말자고, 입으로 말할 뿐 아니라 몸으로도 이렇게 하려 하지요. 서두르지 않기란 쉽지 않을 수 있으나, 막상 서두르지 않으면서 지내니 대단히 느긋할 뿐 아니라 오히려 머리도 몸도 마음도 더 빠르게 움직인다고 느껴요. 이러면서 미적거림이나 늦춤이나 미룸 같은 몸짓이 되지 않도록 헤아립니다. 늑장을 부린다면 서두르지 않더라도 부질없는 셈이라 할까요. ‘서두르지 말되 미적거리지 말자.’라는 말을 다시금 입으로 읊으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서두르지 않으려면, 이러면서 미적거리지 않으려면, 제 마음은 늘 즐거움으로 가득해야지 싶어요. 스스로 즐겁다면 서두를 일이 없을 뿐 아니라 미적거리지도 않겠네 싶어요. 즐겁게 웃고, 상냥하게 말하고, 가볍게 춤추고, 따스히 밥을 짓고, 넉넉히 빨래를 하고, 차근차근 일을 하노라면 살림꽃이 피어나네 싶습니다. 2017.10.3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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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반바지, 치마바지



  가을에도 반바지를 입고 싶습니다. 더 이쁜 반바지를 지어서 입고 싶습니다. 아직 바지를 바느질로 짓지는 못하지만, 남들이 지은 멋진 바지를 가만히 살피면서 바느질을 헤아립니다. 아이들이 입다가 무릎이 터진 바지를 기우면서, 제가 열 해 남짓 입는 동안 어느새 엉덩이가 닳아서 구멍이 나는 바지를 덧대면서, 즐겁게 옷을 입는 살림을 헤아리다가, ‘치마반바지’가 있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그래, 치마반바지라면 사내도 입을 만하겠지? 한국에서는 치마를 입는 사내를 보기 어렵습니다만, 치마는 누구나 입을 만한 옷이라고 느껴요. 더욱이 바지하고 치마를 하나로 묶은 치마바지는 더없이 멋진 옷이로구나 싶어요. 멋스럽기도 하고 더 따뜻하기도 하달까요. 아버지가 치마반바지를 입고 지내는데 아이들은 딱히 쳐다보지 않습니다. 따로 묻지조차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사내는 이래야 하거나 가시내는 저래야 한다는 틀을 세우지 않아요. 곱다고 여기는 옷이면 누구나 입는 옷이라고 여깁니다. 아버지도 치마를 입고 어머니도 바지를 입어요. 마음에 안 드는 옷이라면 그냥 안 입으면 된다고 여깁니다. 사내라서 머리카락을 짧게 쳐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가시내라서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야 한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가시내인가 사내인가에 따라서 옷을 가르지 않고, 쓰임새에 맞추어 옷을 지어서 입을 노릇이요, 저마다 좋아하는 결을 살펴서 즐겁게 옷을 손질해서 입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7.10.30.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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