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저녁에 나는 작은아이 바지를 기웁니다. 큰아이는 스스로 제 바지를 기웁니다. 큰아이하고 나는 마주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작은아이는 장난을 치면서 놀다가 먼저 자리에 눕습니다. 큰아이는 다른 심부름까지 하고서야 잠자리에 들고, 나는 하루 일감을 마무리지을 때까지 옆방에서 작은 등불을 켭니다. 비로소 일손을 마무리짓고 나니 어느새 열한 시가 넘습니다.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마저 합니다. 기지개를 켜고 물 한 잔을 마십니다. 앞으로 우리 집이 한결 널찍해서 이것저것 펼쳐서 느긋하게 살림을 가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 이마를 쓸어넘깁니다. 나도 곧 아이들 곁에 누워야지요. 조용한 겨울밤이 흐릅니다. 별빛이 매우 곱습니다. 2018.1.14.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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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르다



  이제 해가 달라집니다. 저는 아이들한테 아침 낮으로 파란 물병을 평상에 내놓아 햇볕을 쬐도록 시키곤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물병을 내놓고 들이면서 해가 어떻게 흐르는가를 날마다 다르게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느새 해는 한 뼘씩 길어지고 높아집니다. 새해로 접어들면 해는 더욱 길고 높아지리라 봅니다. 반가우며 고마운 이웃한테 마음으로 절을 올립니다. 우리 보금자리를 이루는 이쁜 숨결한테 사랑한다는 마음을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한 뼘씩 길고 높아지는 해처럼 한 뼘씩 자라는 삶이 되고 사랑이 되며 살림이 되는 새해를 비손합니다. 2017.12.3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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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푸진살림이다



  예전에는 스스로 ‘푸진살림’이라는 생각을 못 하거나 안 했습니다. 예전에는 스스로 ‘가난살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나 스스로 가난살림이어야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제 나는 스스로 푸진살림이면서 늘 착하고 참다우며 고운 길을 걷자고 생각을 바꿉니다. 푸지게 살림을 지으면서 푸지게 글을 쓰고 푸지게 책을 읽을 뿐 아니라, 푸지게 사랑하고 푸지게 어깨동무하며 푸지게 웃고 노래하는 삶을 꿈꾸어요. 길을 걷다가도, 국을 끓이며 간을 보다가도, 잠자리에 들다가도, 조용히 읊습니다. “나는 푸진살림이다.” 2017.12.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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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 있단다



  일곱 살인 작은아이가 코앞에 놓은 손천에 손을 닦지 않고 자꾸 바지나 웃옷이나 소매에 닦으려 합니다. 일곱 살인 작은아이 곁에 앉아서 “보라야, 옷 말고 손천.” 하고 다섯 차례 이야기해 주는데, 그때그때 자꾸 잊으면서 바지나 웃옷이나 소매에 닦으려 합니다. “보라야, 네 코앞에 있는데 안 보이니?” “아니, 너무 멀어서.” “그래, 네 코앞인데도 멀다고 여기는구나. 네가 손천을 쓸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멀다고 생각할 뿐, 바로 너하고 아주 가까운 곳에 있어.” 마음에 두지 않으면 언제나 아주 멀고, 마음에 두면 늘 함께 있겠지요. 2017.12.18.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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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남기는 말


  우리 아이들한테 언제나 남기는 말 한 마디. 우리 오늘 하루 새롭게 열면서 즐겁게 짓자. 우리 아이들이 전화를 걸면 늘 들려주는 말 한 마디. 우리는 서로 마음으로 고이 이어졌으니 눈을 가만히 감고 떠올리면 반가이 만날 수 있어. 맛있게 먹고, 넉넉히 놀고, 찬찬히 배우고, 사이좋게 나누고, 꿈을 그리는 하루를 살자. 아버지는 이제 바깥일 보러 마실길 떠나야겠구나. 2017.12.12.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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