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셈틀 밥이 얼마 없어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에 책을 읽다가 이제 무릎셈틀을 꺼내어 글을 쓰려고 합니다. 그런데 무릎셈틀 밥이 얼마 안 됩니다. 왜? 엊저녁에도 아이들이 이 무릎셈틀로 영화를 보았는데? 아, 그렇구나. 엊저녁에 아이들이 영화를 보면서 밥 주는 전깃줄을 제대로 안 꽂은 듯합니다. 아이들끼리 무릎셈틀을 펼친다며 부산을 떠느라 그만 살짝 전깃줄을 대기만 하고, 무릎셈틀로 밥이 안 들어간 듯해요. 예전에도 이런 일이 몇 차례 있었어요. 엊그제에도 코앞에서 이 일을 보았고요. 그래서 그때그때 아이들한테 이를 일러 주는데, 그래도 아이들은 또 잊고 다시 잊으며 자꾸 잊습니다. 이때에 나는 아이들을 타이를 수 있고 꾸짖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으며, 이야기를 하나 지어서 들려줄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내가 가는 길입니다. 다만 타이르거나 꾸짖을 적에는 안 달라지겠지요. 가르치면 조금씩 달라질 테고, 이야기를 지어서 넌지시 이 손놀림을 짚어 주면 곧바로 달라질 만하지 싶습니다. 2017.9.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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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가 결려 못 앉는



  아침 열 시 반부터 낮 세 시 반까지 부엌 치우기를 합니다. 시간으로 치면 다섯 시간인데, 이동안 이것저것 치우고 쓸고 닦고 버리고 갈무리하면서 허리가 결려 쪼그려앉지 못합니다. 바닥에 있는 것을 허리를 숙여 못 줍는 터라 아이들을 불러서 집어 달라고도 합니다. 늘 바지런히 치우고 살았다면 한꺼번에 치우거나 쓸어야 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미루던 일을 한꺼번에 하니까 허리가 결려요. 그런데 하나씩 둘씩 제자리를 찾으면서 깔끔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부엌을 바라보자니, 다섯 시간을 내처 치우고서 한 시간쯤 쉬다가 다시 세 시간 남짓 마저 치운 이 하루란, 참으로 신나게 잘 보냈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린 허리란 곧 반듯하게 펼 수 있을 테지요. 2017.8.2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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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를 두 손에 쥐고서



  두 손에 부채를 하나씩 쥐고서 부채질을 합니다. 곯아떨어진 두 아이가 여름밤에 시원하게 잠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크게 팔을 저어서 부채질을 하기도 하고, 가볍게 팔을 놀리며 부채질을 하기도 합니다. 자다가 밤에 문득 일어나서 부채질을 하기도 하는데, 요새는 때때로 선풍기를 틉니다. 큰아이가 아홉 살이던 지난해까지는 선풍기로 재운 일이 없이 늘 부채로 재웠어요. 올들어 때때로 선풍기를 쓰기는 하되, 웬만한 때에는 으레 부채입니다. 선풍기가 안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부채를 손에 쥐면 아이들 몸에 맞추어 조금 세게 부치거나 살몃살몃 부쳐 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채질은 무척 조용하면서 따사롭구나 싶어요. 더운 여름에 웬 따사로움을 찾느냐 싶을 만한데, 에어컨 바람보다 부채질 바람이 땀을 한결 잘 식혀 준다고 생각해요. 2017.8.6.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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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별빛을 줍다



  두 아이를 재우는 잠자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하루 무엇을 먹었고, 무엇이 즐거웁거나 좋았으며, 이 즐거웁거나 좋았던 기운을 어떻게 몸이랑 마음에 받아들이면서 새롭게 꿈을 꾸는 잠자리인가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밤에 잠이 들면서 몸에 기운이 새로 차오르도록 할 뿐 아니라, 아침을 맞이할 적에 우리가 하루 동안 새삼스레 배우면서 즐거이 지을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 나도 잠자리에 누우려다가 물 한 모금 마시려고 부엌으로 가는데 부엌 바닥에 뭔가 하얗게 있는 듯해요. 허리를 숙여서 부엌 바닥을 짚는데 어라 아무것도 안 집힙니다. 아니, 별빛이 집히네요. 달빛하고. 2017.7.2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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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간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데 간을 보기 어렵습니다. 몸이 매우 무겁고 오들오들 떨리기 때문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시외버스를 달려 바깥잠을 자면서 서울하고 수원에서 바깥일을 한다며 부산스레 다녀온 터라 몸에 새 기운이 아직 오르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밥짓기를 미룰 수 없으니 용을 써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데 혀에 닿는 맛을 하나도 못 느낍니다. 그동안 밥을 지으면서 간을 본 어림으로 겨우 국냄비 불을 끄고 부엌바닥에 폭 주저앉습니다. 개수대를 두 손으로 잡고 주저앉은 채 한참 끙끙거리다가 일어납니다. 이쁜 아이들아, 부디 맛나게 먹으렴. 틀림없이 간은 잘 맞았으리라 생각해. 이 무더위에는 조금 짜게 먹어도 괜찮을 테지. 땀 옴팡지게 흘리면서 뛰어놀고, 시원한 믈로 씻고, 낮잠도 자다가, 너희 그릇은 너희가 설거지를 하렴. 너희 아버지는 도무지 설거지까지 할 기운은 없네. 2017.7.22.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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