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6.7.

 : 넷이서 달리는 자전거



오랜만에 네 사람이 함께 자전거를 달린다. 그동안 세 사람이 달리는 자전거였으나, 넷이 줄줄이 시골길을 달린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자꾸 뒤를 돌아본다. 어머니가 잘 달리는가를 살핀다.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멀어질라 치면 “어머니! 빨리 와!” 하고 외친다.


논둑길을 따라 천천히 달린 뒤에 면소재지에 닿는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들었지만 이내 깬다. 놀이터에 온 줄 알 테지.


놀이터에서 실컷 놀고 난 뒤에 다시 자전거를 달린다. 천천히 이웃마을을 둘러본다. 곁님이 자전거에 익숙할 수 있도록 곧은 시골길을 천천히 달려서, 다시 면소재지를 스친 뒤에 집으로 돌아간다. 산그림자가 논물에 비친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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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6.3.

 : 바다 보러, 아니 딸기 훑으러 가자



햇볕이 따끈따끈하게 내리쬐는 낮에 자전거를 달리기로 한다. 어디로 갈까? 아무튼 우체국에는 가야 해. 그래, 우체국으로 가면서 생각해 보자. 꽃순이요 자전거순이인 큰아이는 우체국 앞에서 철쭉꽃을 보면서 논다. 바람 따라 톡톡 떨어지는 꽃송이를 줍는다. “이 꽃 집에 가져가고 싶어.” 그래?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체국에 들어가면, 통장 넣는 기계에 봉투가 있어. 거기에서 봉투 하나를 가지고 오렴.” “응, 알았어!” 큰아이는 후다닥 달려 들어가서 봉투 하나를 챙긴다. “자, 봉투를 이렇게 벌리고 꽃을 넣으면 돼.”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친 뒤 어디로 갈까 하고 생각하다가, 큰아이한테 묻는다. “바다에 갈래? 아니면 골짜기에 갈래? 옷은 챙겼어.” “음, 바다에.” “그러면, 모래 있는 바다에 갈까, 돌 있는 바다에 갈까?” “돌? 아니, 모래 있는 바다에.”


모래 있는 바다에 가기로 하면서 자전거를 달린다. 면소재지를 벗어나서 봉산마을 앞 언덕길을 오른다. 이때에 다른 생각이 하나 든다. 모래 있는 바닷가는 그동안 우리가 늘 다니던 발포 바닷가만 있지 않다. 다른 모래밭 바다도 있다. 그래, 오늘은 이제껏 안 가 본 바다를 가 보자. 이쪽도 저쪽도 모두 바다인데, 늘 가는 바다 말고, 새로운 바다를 찾자.


자전거를 돌린다. 면소재지 쪽으로 돌아가서 지등마을 쪽으로 달린다. 고개를 헉헉 넘는다. 감나무가 줄줄이 늘어선 고갯길을 넘는다. 감잎은 노란 기운이 많이 빠졌다. 그래도, 노란 기운이 제법 있다. 머잖아 짙푸른 잎으로 달라지겠지.


여덟 살 큰아이가 샛자전거로 힘껏 밟아 주니 고갯길이 한결 수월하다. 두 아이는 차츰 몸무게가 붙으니 두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달리자면 더욱 힘이 든다. 그러나 큰아이는 몸이 크는 만큼 다리힘도 늘어서 샛자전거에서 크게 도와준다.


지등마을을 지나간다. 볕이 뜨겁다. 그래도 자전거를 달리면서 바람을 일으키니 시원하다. 우리 모두 살갗이 잘 타겠구나. 이목동마을 앞 세거리에서 구암리로 접어드는 길로 꺾는다. 고흥에서 살며 그동안 구암 바닷가에는 안 갔다. 오늘 가 보자.


원도동마을로 가는 고갯길은 멧자락을 넘는 길이다. 기어를 낮추고 낮춰서 진땀을 흘린다.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길이기에 두 찻길을 모두 쓰면서 구불구불 기듯이 오른다. 찔레꽃 냄새를 맡고, 새로 돋는 칡싹 냄새를 맡는다. 멧새가 우리를 반기면서 이 골 저 골에서 노래한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는 멧딸기가 있는가 하고 두리번거린다.


고갯길을 하나 넘고 또 하나 넘고서야 원도동마을에 닿는다. 마을 할매들이 마을회관 앞에서 일손을 쉬면서 우리를 바라보신다. 할매들한테 자전거에 탄 채로 인사한다. 할매들은 아이들을 보고는 “너그들이 가장 좋네. 안 덥냐? 덥다!” “동백 사는 사람들이 여까지 이 더운 날에 오네.” 하신다.


마을회관 옆에 자전거를 세우고 아이들이 물을 마시도록 한다. 마을회관 뒤에 있는 우람한 느티나무한테 간다. 얘들아, 우리 느티나무한테 인사하자. 느티나무한테 다가서는데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주먹만큼 큰 아이가 펄쩍 튀어나온다. 곧바로 풀뱀 한 마리가 재빨리 따라 나온다. 응? 무슨 일이 있었지? 개구리가 뱀한테 잡아먹히려던 때였나? 아니면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으려던 터에 내가 나타났나?


얼마나 오래 살아온 느티나무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사오백 해는 거뜬히 살아온 느티나무인 줄 알 수 있다. 어른 셋이 팔을 벌려서 안아야 할 만큼 밑둥이 굵다. 숲에 폭 싸이면서 바다와 맞닿은 마을이 곱다. 이 고운 마을에서 바다랑 들이랑 숲하고 한덩어리가 되어 살아온 마을 분들은 바다한테서 배우고 들한테서 배우며 숲한테서 배우는 삶이었으리라. 이곳에서 나고 자라서 도시로 떠난 아이들도 가슴속에는 모두 이 기운이 흐르리라.


이제 바닷가로 내려가면 된다. 어느 길로 내려갈까 하고 어림하다가 숲이 우거진 길이 하나 보여서, 그리로 가기로 한다. 바다로 내려가는 길이 몹시 가팔라서 멈추개가 듣지 않는다. 서둘러 자전거에서 뛰어내린다. 두 발로 자전거를 버티면서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내리도록 한다. 그러고는 자전거를 눕혀서 작은아이도 수레에서 내리도록 한다. 히유. 여기부터는 걸어서 가야겠네.


그런데 큰아이가 소리친다. “와, 아버지 여기 봐요! 딸기밭이야!”


자전거를 눕힌 둘레가 온통 딸기밭이다. 새빨간 딸기알이다. 그렇구나. 바다로 나들이를 온 우리들은 바다를 잊고 딸기를 훑느라 바쁘다. 훑는 대로 두 아이 입으로 들어간다. 어머니 몫도 건사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두 아이가 배부르다고 할 때까지 딸기를 훑으면서 천천히 걷는다.


어느새 바닷가에 닿는다. 제법 먼 길을 씩씩하게 잘 달리고 걸어서 바다에 닿는다.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쐰다. 원도동마을 앞에 있는 바다에는 유리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뻘이 넓게 드리우고, 모래밭이 아주 살짝 있다. 예쁜 바닷가이네. 관광객이 이리로 올 일은 없을 테고, 마을사람만 누리는 아주 멋진 곳이로구나.


챙겨 온 도시락을 꺼낸다. 두 아이한테 한 술씩 먹인다. 마을 할매 한 분이 우리 쪽으로 걸어온다. 바닷일을 하러 오시는 듯하다. 할매는 소나무 그늘에 앉으시더니 보따리를 풀고는 소주 한 병을 꺼낸다. “여보시게, 이리 와서 한잔 하시게.” “고맙습니다만, 아이들이 있어서요. 괜찮습니다.” 할매는 홀로 소주 몇 잔을 자신 뒤 술병을 다시 보따리에 넣고는 천천히 뻘로 걸어가신다.


도시락이랑 딸기를 배불리 먹은 아이들은 바닷가를 거닐면서 바닷바람을 쐰다. 느긋하게 쉬면서 논 우리는 슬슬 집으로 돌아갈 때이다. 자, 이제 돌아가 볼까.


오던 길을 거슬러서 올라간다. 낑낑대며 자전거를 끈다. 돌아가는 오르막에서는 두 아이를 모두 자전거에 태운다. 아이들이 힘들 테니까. 턱에 숨이 차오르지만 씩씩하게 자전거를 끈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나도 나이를 거꾸로 먹으면서 새로운 힘살이 붙는다고 느낀다.


오르막을 달리는 자전거는 땀이 흐른다. 내리막을 달리는 자전거는 땀을 모두 씻긴다. 다시 오르막을 달리는 자전거는 다리가 무겁다. 새롭게 내리막을 만난 자전거는 바람을 가르면서 싱그럽다.


노래를 부르면서 자전거를 달린다. 다리힘이 줄어들수록 더 기운을 내어 노래를 부른다. 우리 자전거는 ‘노래하는 자전거’이다. 바람을 노래하고, 오늘 하루를 노래한다. 바다를 노래하고, 오늘 신나게 훑은 들딸기를 노래한다. 그런데 말야, 오늘 우리는 바다를 보러 나왔는데, 들딸기 훑느라 신나는 하루가 되었지 싶다. 다음에는 어머니도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다시 이 길을 달려 보자.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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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5.21.

 : 휘파람 부는 자전거



자전거를 달린다. 자전거를 달리고 싶으니 자전거를 달린다. 자전거를 달려 어디까지 갈까? 가고 싶은 데까지 간다. 멀리 갈 수 있고, 바다에 갈 수 있으며, 골짜기에 갈 수 있다. 지지난해에는 더러 읍내까지 자전거로 달렸으나, 지난해에는 읍내까지 자전거로 한 번도 안 갔고, 올해에도 읍내까지 자전거로 갈 생각이 없다. 왜 그러한가 하면, 읍내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재미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너무 많다. 서울 같은 도시에 대면, 이 시골에서는 ‘자동차가 없다’고 할 만하지만, 시골에 자동차가 매우 드문 만큼, 좁은 시골길에서 너무 우악스럽게 달린다. 게다가 아이가 함께 탄 자전거인데 생생 달리면서 빵빵거리는 자동차도 곧잘 스친다. 아이하고 함께 자전거를 달릴 적에는 되도록 시골 들길로만 달린다. 자동차는 안 다니는 논둑길로만 달리고 싶다.


우리도 자동차를 타야 할 적에는 탄다. 군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를 탄다. 택시를 불러서 타기도 한다. 그러나, 타야 할 때가 아니면 굳이 탈 일이 없다. 자전거를 아이하고 천천히 달리면 바람내음이 온몸을 감싸면서 시원하다. 자전거를 아이들하고 함께 달리면 햇볕과 햇살과 햇빛이 골고루 스며들면서 따스하다.


자전거순이가 샛자전거에 앉아서 휘파람을 분다. 휘파람을 불고 싶다고 앙앙거리던 지가 아스라하다. 영화에서 휘파람을 잘 부는 아이를 본 뒤, 그러니까 다섯 해쯤 지난 일이지 싶은데, 그때부터 휘파람을 가르쳐 달라고 하던 큰아이인데, 거의 날마다 틈틈이 휘파람 불기를 하려고 입술을 오므리고 용을 쓴 끝에 올해부터 휘파람을 제법 잘 분다. 참말 스스로 하면 다 된다. 자전거도 스스로 타려고 해야 탈 수 있고, 휘파람도 스스로 불려고 해야 불 수 있다. 삶노래도 스스로 부르려고 해야 부른다. 사랑노래도 꿈노래도 스스로 가슴에 담아야 비로소 활짝 펼칠 수 있다. 자, 저 너른 하늘까지 신나게 달리자. 다만, 빨리 달리지는 않을 생각이야. 느긋하게 파란 바람 쐬면서 달리자.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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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5.31.

 : 꽃치마 입고 달리는 길



꽃순이가 꽃치마를 입고 자전거를 달리겠단다. 이 꽃치마는 ‘기모노’라고 하는 일본옷인데, 일본에서는 저희 겨레 옷에 꽃무늬를 참 큼지막하게 새겨 넣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치마는 ‘꽃치마’라고 해도 되지 싶다. 모든 기모노가 꽃치마는 아닐 테지만, 꽃무늬 치마가 많은 기모노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여름 시골길은 시원하다. 맞바람일 적에는 더 시원하고, 등바람일 적에는 덜 시원하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더라도 발판을 알맞게 구르면 땀이 흐르지 않는다. 힘을 많이 내어 빨리 달리려고 하면 땀이 흐르지만, 느긋하게 산들바람을 쐬면서 자전거를 달리려고 할 적에는 그야말로 느긋하면서 시원하다.


먼 길을 걷는다고 해서 꼭 땀이 흐르지 않는다. 알맞다 싶은 빠르기보다 더 빠르게 걸으려고 하면 땀이 흐르기 마련이요, 짐을 무겁게 짊어질 적에도 땀이 흐르기 마련이다. 홀가분한 차림으로 가볍게 걸으면 한여름에도 땀이 흐를 일은 드물다.


마을에서 벗어나 면소재지로 접어드는 길목에 금계국이라는 샛노란 꽃이 가득 피었다. 여름이로구나. 큰아이가 저 노란 꽃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큰아이한테 “무슨 꽃일까? 저 샛노랗게 예쁜 꽃은 무슨 꽃일까? 벼리가 스스로 이름을 붙여 주면 꽃이 좋아할 텐데.” 하고 말한다. 이럴 때에 여덟 살 큰아이는 아직 ‘노란꽃!’이라고만 말하는데, 조금 더 생각을 쏟아서 꽃을 바라보고 숲을 마주한다면 꼭 알맞춤한 새 이름을 지을 수 있으리라 본다.


- 놀이터에서 땡볕을 쬐면서 실컷 논 뒤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손발을 씻기고 낮잠을 재운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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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5.15.

 : 우리가 선 곳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시골길이니 큰길로 다녀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자동차가 거의 안 다니는 시골길인 터라, 어쩌다가 지나가는 자동차가 대단히 거칠다. 길에 다른 자동차가 없으니, 웬만한 자동차는 무시무시하게 내달리기 일쑤이다. 곧은길이건 굽이길이건 빠르기를 줄이지 않고 달리면서 건너편 찻길로 넘어가는 자동차가 아주 많다. 자전거를 길섶에 붙여서 달리다가도 큰길로 접어든 뒤 이런 자동차를 만나면 갑갑하다. 이들은 길섶에 붙어서 달리는 자전거를 살피지 않기 일쑤이고, 길섶을 걷는 사람도 살피지 않기 마련이다.


시골길을 달릴 적에 되도록 큰길로 나오지 않는다. 시골마을이지만, 큰길에는 나무도 없고 길섶도 좁으니, 자전거를 달리거나 걷는 즐거움을 누리기 어렵다. 요즈음 관광지마다 ‘걷는 길’을 새로 마련한다면서 애쓰는데, ‘걸을 만한 길’은 길그림에 금을 죽 그어서 이곳은 문화이고 저곳은 예술이고 그곳은 벽그림이고 꾸미기에 생기지 않는다. 꽃내음과 풀내음이 흐르면서 나무그늘이 있는 데가 걸을 만한 길이다. 걷다가 풀숲에 앉아서 다리를 쉬면서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고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데가 걸을 만한 길이다.


논둑길로 에돌아서 면소재지를 다녀온다. 마을과 면소재지를 잇는 자리는 큰길이다. 논둑길 가운데 아스팔트를 깐 곳도 있다. 이런 곳을 지날 때면 쓸쓸하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데, 오늘은 때죽나무에 핀 고운 꽃을 보고, 논둑 한쪽에서 노랑괴불주머니꽃을 잔뜩 본다. 꽃내음이 물씬 퍼지는 곳에서 자전거를 한동안 세운다. 오월에 흐드러지는 꽃내음을 넉넉히 들이마신다. 나무가 자라는 곳이 늘어날 수 있기를 빈다. 우리가 서는 곳이 나무가 우거지는 자리가 되고, 우리가 사는 곳이 나무내음과 나무노래로 넘실거리는 보금자리가 되기를 꿈꾼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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