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1.21.

 : 노는 길



시골에서 살며 우리가 온힘을 기울여서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해 보면, 언제나 첫손으로 꼽는 한 가지는 ‘놀이’라고 할 만하다. 아이들이 실컷 놀기를 바라면서 시골에서 산다. 그러면, 나랑 곁님은 어릴 적에 논 적이 없나? 어릴 적에 못 놀아서 두 아이를 실컷 놀리려고 하나? 아니다. 나도 곁님도 어릴 적에 그야말로 신나게 논 사람이다. 그렇기에 두 아이가 그저 신나게 뛰놀면서 어린 나날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공부나 저런 공부는 앞으로 얼마든지 언제라도 할 만하다. 그러나 놀이는 ‘어느 나이’에 하지 않고서는 그야말로 할 수 없기 일쑤이다. 다섯 살에 할 수 있는 놀이와 열 살에 할 수 있는 놀이가 있으며, 네 살하고 여덟 살 때에 할 수 있는 놀이가 있다. 이 나이에 이러한 놀이를 누리지 못하면 앞으로 다시는 ‘그 나이’가 돌아오지 않으니 ‘그 놀이’를 못 한다.


자전거마실이란 자전거를 타고 노는 마실이라고 할 만하다. 자전거로 어디 멀리 다녀와야만 자전거마실이라고 할 수 있지 않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끌고 달렸지만, 이내 아버지가 힘이 빠져서 “얘들아, 우리 이제부터 좀 걸어 볼까?” 하고 한마디를 터뜨리면, 두 아이는 빙그레 웃다가 또는 성가셔 하다가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달리고 또 달리면서 까르르 크게 웃음꽃을 터뜨린다.


놀자꾸나. 놀려고 자전거를 타지. 고된 날을 누리려고 자전거를 타지 않아. 일부러 힘을 들여서 애먹으려고 자전거를 타지 않는단다. 기쁘게 노래하려고 자전거를 타지. 웃으려고 자전거를 타지. 자, 집까지 누가 더 활짝 웃으면서 달리기를 하는지 실컷 놀아 보자.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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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1.14.

 : 찌푸린 하늘이어도



찌푸린 하늘인가? 그래, 그러면 오늘 우리는 찌푸린 하늘을 보자. 비가 올 듯한 하늘인가? 아하 그렇구나. 그러면 오늘 우리는 비가 올 듯 말 듯한 재미난 구름을 보면서 자전거를 달리자. 자전거를 달리다가 비가 올까? 아니야, 비 안 와. 우리가 자전거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비는 틀림없이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아버지는 비옷을 한 벌도 안 챙기고 길을 나서겠어. 우리가 바라고 우리가 꿈꾸면 하늘은 늘 우리 뜻대로 흘러 주지.


자전거를 달리다가 숲빛이 알록달록 고운 모습을 보면 살짝 멈춘다. 우리 예쁜 아이들아, 우리 예쁜 아이들처럼 예쁘장한 잎빛으로 물든 나무가 곳곳에 있네. 저 숲을 바라보고 나서 다시 가자.


하늘을 본다. 멧자락을 본다. 들길을 본다. 바람을 본다. 가을잎을 본다. 그리고, 이 자전거를 함께 달리는 우리 아이들 마음결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나도 나 스스로 내 마음을 살며시 들여다보면서 내가 걷고 달리며 선 이 길을 헤아린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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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2.6.

 : 많이 춥지



이제 겨울이야. 알지? 겨울에 타는 자전거이니까, 수레에 앉은 작은아이한테는 두꺼운 겉옷을 한 겹 더 씌워 주기로 한다. 어때, 이렇게 해도 춥니? 이렇게 하니까 좀 따스하니? 겨울이어도 씩씩하게 자전거를 타고, 겨울이니까 찬바람을 신나게 쐬면서 자전거를 타며, 겨울이기에 가을하고는 다른 날씨를 느끼면서 자전거를 탄다.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며 가자. 코와 귀가 시려도 고개를 들고 구름을 보자. 하늘을 보렴. 저무는 하늘빛이 새롭지 않니? 여름에는 다섯 시 언저리에도 더웠지만, 겨울에는 다섯 시 즈음이면 벌써 해가 떨어지면서 더욱 춥지. 그러나 겨울에는 다섯 시만 되어도 해거름 빛살을 만날 수 있어. 더 일찍 찾아오는 밤인 만큼 밤빛을 훨씬 오래 길게 짙게 마주할 수 있지. 그래서 한겨울에는 별빛이 더 밝다고 느낄 만하고, 한겨울에는 그야말로 한가득 쏟아지는 별자리를 볼 수 있어. 그나저나 바람이 제법 차니까 걸어 보자. 추운 날에는 자전거보다는 두 다리로 걷거나 달릴 적에 몸에서 뜨거운 기운이 흐르리라 생각해.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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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1.22.

 : 늦가을 밤길을



늦가을 밤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오늘도 유자를 썰어서 유자차를 담그는데, 유자씨가 많이 나와서 면소재지 가게에서 맑은술을 사야겠다고 느낀다. 흔히 소주에 유자씨를 담근다지만, 우리는 굳이 소주를 안 쓰고 맑은술을 쓰기로 한다.


아이들은 집에서 만화영화를 보고, 나는 혼자서 자전거를 달린다. 겨울을 앞둔 늦가을이기도 하니, 밤에 타는 자전거는 꽤 춥다. 손가락이 얼어붙도록 시린 바람은 아니지만, 목덜미와 다리가 차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한손으로 단추를 채운다.


긴소매를 내려서 단추를 채우면서 돌아본다. 우리가 사는 곳이 전남 고흥이니 이 늦가을 밤에도 반바지에 맨발에 고무신으로 자전거를 달린다고. 전라남도에서도 구례쯤 되면 밤길이 꽤 추울 테고, 전라북도로 올라가면 두꺼운 옷을 꽁꽁 껴입어야 할 테지.


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밤자전거를 달린다. 불빛 하나 없는 시골길을 아무렇지 않게 달린다. 도시에서는 도무지 누릴 수 없는 밤자전거이다. 전등 불빛이 없으니 길이 새까맣지만, 달빛하고 별빛에 기대면 잘 달릴 수 있다. 전등 불빛이 없기 때문에 밤눈을 밝혀서 즐거우면서 호젓한 시골길을 자전거로 신나게 달린다.


 면소재지 가게에 들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땀이 난다. 한겨울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늘 땀이 흐른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이 늦가을 밤에 히터를 틀면서 다닐 테지만, 자전거를 모는 나는 땀을 훅훅 내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새도 모두 잠든 이 밤에 나긋나긋 노래를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간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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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1.9.

 : 우중충 하늘과 빈들



길이 좁은 가을이 끝나고, 길이 넓은 가을이 된다. 가실(가을걷이)도 다 끝났고, 길에 나락을 널어 말리던 일도 끝났다. 새삼스레 널찍한 시골길을 달린다. 하늘은 구름이 가득하다. 시월 한 달에는 비가 이틀만 살짝 내렸고, 십일월로 접어든 뒤에도 비가 며칠 안 내렸다. 가을 가뭄이라 할 수도 있고, 가을일을 다 마치도록 빗줄기가 들지 않아서 고마운 하늘이라 할 수도 있다.


이제 겨울이 코앞이다. 볕이 드는 날은 포근하지만, 볕이 들지 않거나 구름이 짙거나 바람이 불면 쌀쌀하다. 샛자전거에 앉는 큰아이는 장갑을 낀다. 수레에 앉는 작은아이는 턱 밑까지 겉옷을 뒤집어씌운다.


발판을 천천히 굴린다. 차갑지만 싱그러운 늦가을 바람을 쐬면서 들길을 달린다. 까마귀떼가 꽤 우렁찬 소리로 운다. 여느 때에도 까마귀를 보지만 겨울을 앞둔 늦가을이면 까마귀가 무리를 지어서 다닌다. 까마귀가 무리를 짓는 이즈음에는 까치도 무리를 짓는다. 까마귀떼와 까치떼는 곧잘 맞붙는데 어느 쪽이 이기거나 지는지는 잘 모른다. 두 새떼가 맞붙어 뒤엉킬 적에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시끄러우면서 하늘이 까맣다.


이 까마귀는 그동안 어디에서 살다가 이렇게 무리를 지을까. 무리를 짓는 까마귀는 밤에 잘 적에도 함께 모일까. 까마귀는 숲에서 밤을 지새운 뒤 아침이면 온 마을을 두루 돌면서 먹이를 찾을까. 전깃줄에 무리지어 앉은 까마귀는 자전거가 지나가자 하나둘 날아서 다른 곳으로 간다.


면소재지로 접어들어 우체국에 닿을 무렵 군내버스가 우리 뒤에서 지나간다. 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 버스를 만났다. 두 시간에 한 번 지나가는 버스이니, 이 버스를 만나는 날은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군내버스 꽁무니를 사진으로 한 번 찍는다.


우체국에 자전거를 대려는데, 이런저런 자동차가 아무렇게나 선 바람에 자전거를 대기 쉽지 않다. 시골 우체국이라 도시와 달리 손님이 드물다지만, 자동차를 세울 적에는 한쪽에 알맞게 댈 노릇이 아닐는지. 고작 자동차 두어 대라 하더라도 우체국 마당에 아무렇게나 세우면 자전거가 들어설 자리가 안 생기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시골은 도시보다 ‘아무렇게 세우기(무단주차)’가 아주 흔하다. 읍내를 보면 그야말로 엉터리라고 할 만하다. 고작 두찻길(이차선)인 읍내인데, 이쪽과 저쪽 모두 차를 대는 사람들이 많다. 이리하여, 두찻길밖에 안 되는 읍내 찻길은 버스도 다른 자동차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기 일쑤이다.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1미터 걷기도 싫어하거나 두려운 듯하다.


우체국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호덕마을 앞에 있는 자작나무를 새삼스레 바라본다. 읍내로 가면서 바라보는 빛결하고 읍내에서 나오며 바라보는 빛결이 사뭇 다르다. 이쪽에서 보는 모습하고 저쪽에서 보는 모습이 새롭다. 여덟 살 큰아이한테 저 나무는 이름이 ‘자작나무’라 한다고 알려주지만, 큰아이는 그냥 ‘하얀나무’라고만 한다. 오늘도 “아버지 저기 봐요! 하얀나무가 더 하얘졌어!” 하고 외친다.


줄기가 하얗게 보이니 ‘하얀나무’라고도 할 만하다. 아이 나름대로 재미나게 지은 이름이다. 게다가 늘푸른나무와 떨잎나무 사이에 오직 한 그루만 있는 하얀 빛깔 나무이니 더욱 도드라진다. 봄이며 여름에는 푸른 잎사귀에 가려서 하얀 빛깔이 잘 안 드러나지만, 잎이 모두 떨어진 늦가을에는 나뭇줄기가 멀리에서도 잘 보인다.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바람이 세기에 자전거를 멈춘다. 작은아이가 바람을 맞지 않도록 옷깃을 여미기로 한다. 큰아이가 이 일을 해 준다. 잠든 동생한테 “보라야, 잠들면 추우니까 옷을 제대로 덮어야지.” 하고 타이른다. 작은아이는 누나가 여느 때에 이처럼 알뜰히 챙겨 주는 줄 알까. 알 테지.


오늘 따라 바람이 세지만 큰아이가 샛자전거에서 함께 발판을 굴러 주니 씩씩하게 나아간다. 그래도 제법 힘에 부친다. 원산마을 앞에서 자전거를 멈춘다. 조금 걷기로 한다. 큰아이도 바람이 차서 춥다고 한다. 저쪽 신기마을까지 걷거나 달리면 몸이 다시 따스해지겠지.


바람에 눕듯이 춤추는 억새를 보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싹이 트고 꽃대를 올리는 유채를 본다. 옛날 같은 이렇게 잎이 펑퍼짐하게 퍼진 유채를 그냥 두지 않으리라. 이제 시골에는 이 펑퍼짐한 유채를 뜯어서 건사할 젊은 손이 없으니, 논둑이나 밭둑에서 잘 자라는 유채잎을 나물로 뜯지 않고 그대로 둔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우중충하면서도 몽실거리는 하늘을 본다. 오늘이 지나면 비가 올까. 오늘 밤부터 비가 올까. 마을마다 나락을 모두 거두어서 빈들이 된 시골마을에 늦가을 비가 내려서 이 땅을 다시금 촉촉하게 적시고 못물도 채워 줄까. 신기마을 어귀에서 다시 자전거를 달려서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온몸이 땀으로 젖었고, 큰아이는 얼른 집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쓴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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