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0.19.

 : 길이 좁은 가을



가을걷이가 한창일 때에는 시골길이 좁다. 마을마다 나락을 길가에 널어서 말리기 때문이다. 여느 때에는 워낙 자동차가 안 지나다니니 이 시골길에 나락을 널 만하다. 그런데 자동차가 여느 때에 워낙 없더라도 어쩌다가 지나가는 자동차가 드문드문 서로 엇갈리는데, 이럴 때에는 서로 살짝 고단하다. 가을에는 군내버스가 시골길을 조금 더 천천히 달린다. 길가를 따라 죽 나락을 말리니 군내버스도 가을만큼은 함부로 싱싱 달리지 않는다.


이 가을에는 군내버스 다니는 찻길이 반토막이 나기에 웬만하면 그냥 논둑길로만 달린다. 논둑길에까지 나락을 말리지 않으니까.


나락 벤 논이 하나둘 늘면서 샛노란 들은 차츰 누런 빈 논으로 바뀐다. 앞서 베어 말리는 나락이 마를 무렵 차근차근 다른 논을 벨 테고, 다른 논을 벤 나락은 새삼스레 길가에 널어 말릴 테며, 가을 끝자락까지 이 모습이 이어질 테지.


하늘을 보면서 논둑길을 달린다. 들하고 하늘을 찬찬히 바라보면서 논둑길을 천천히 달린다. 요새는 자전거를 달리면서 무릎이 괜찮다. 거의 다 나았다고 할 만하다. 그래도 자전거를 한 번 달리면 몸에서 힘이 많이 빠져나가네 하고 느낀다. 십일월에는 이 몸을 더욱 튼튼히 다스려야지 하고 생각한다. 자전거순이는 억새씨앗을 훑어서 머리에 뿌리면서 재미있게 논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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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0.18.

 : 이제 저녁에는



낮에는 여름 못지않게 햇볕이 뜨겁다. 가을볕은 나락이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해가 기울어 저녁이 되면, 또 해가 지는 밤이 되면, 바람이 퍽 쌀쌀하다. 해가 떨어질 무렵 자전거를 타자면 긴소매에 장갑을 갖추어야 한다.


해가 떨어질 무렵 자전거를 함께 탄다. 아이들하고 별을 보는 자전거를 누리고 싶어서 해거름에 자전거를 끌고 나온다. 저녁에도 들은 노랗게 빛난다. 초승달은 우리하고 함께 달리고, 별이 하나씩 돋는다. 저녁 자전거 나들이를 마치고 집에 닿을 무렵 온통 캄캄해지면서 마당에서도 별이 잘 보인다.


지난겨울에 쓰고 처음으로 꺼낸 모자랑 장갑에서 냄새가 난다고 큰아이가 투덜댄다. 미리 꺼내어 해바라기를 시키거나 빨았어야 했는데 미처 못 했네. 미안해. 그래도 이 저녁에는 모자랑 장갑을 해야 하는걸. 길을 나설 적에는 냄새 때문에 안 하겠다고 하던 큰아이는 조금 달리고 나서는 바람이 차다면서 냄새 이야기는 한 마디도 안 한다. 이튿날에는 다른 모자하고 장갑을 모두 꺼내어 말리고, 큰아이 모자랑 장갑을 빨아야겠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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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0.12.

 : 하늘 땅에 고운 바람



바야흐로 가을걷이가 한창인 시골. 우리 집은 논이 없으니 가을걷이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집은 가을걷이를 하는 이웃을 살펴보고, 가을걷이를 앞둔 들판을 널리 살핀다. 가을걷이를 하는 이웃은 기계를 부르랴, 기계를 부려 짚을 솎느라, 알맹이만 훍은 나락을 길바닥에 펴서 말리느라, 그야말로 아침저녁으로 부산하다. 우리 집은 가을일을 하지 않으니 이 마을 저 마을 두루 돌면서 하늘하고 땅에 드리우는 고운 바람을 바라본다. 이웃님도 가실(가을일)을 하면서 이 하늘을 함께 보고 이 바람을 함께 마실 테지.


우리 집이 가실을 하는 집이라면 나락 한 톨을 더 찬찬히 바라보는 이야기를 누릴 테고, 나락을 햇볕에 말리면서 함께 해바라기를 하는 이야기를 누릴 테지. 우리 집은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들길을 달리니, 자전거로 가을길을 달리면서 바라보고 마주하는 이야기를 누린다.


하늘에 구름이 재미나게 걸린다. 드높은 하늘은 온통 그늘만 베풀다가, 눈부신 햇살을 퍼뜨리다가, 뜨거운 햇볕을 내려 주다가, 다시 시원한 그늘을 베풀다가, 새삼스레 곱게 갈라지는 햇발을 나누어 준다. 요즈음 같은 때는 들판에 서서 하늘바라기만 해도 배부르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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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7.31.

 : 푸른 들, 돌기둥



여름에 우리는 푸른 들을 바라보며 달린다. 논둑길을 두 다리로 달리고, 이 길을 자전거로도 달린다. 푸른 들을 가로지르며 달리면 어디로 가나? 글쎄, 아직 모르지. 골짜기로 갈 수 있고, 바다로 갈 수 있지. 그냥 이 마을 저 마을 빙글빙글 돌 수 있고, 면소재지를 거쳐서 집으로 살그마니 돌아올 수 있어.


씩씩한 자전거순이는 끈으로 사진기를 묶고는 목에 건다. 자전거를 달리면서 바람소리를 찍고 싶단다. 하늘도 찍고 싶단다. 그래, 너는 참 멋지구나.


들길을 지나 우체국에 닿는다. 편지를 부치고 자전거를 돌린다. 샛자전거에 앉은 자전거순이는 “이제 어디 가요?” 하고 묻는다. “어디 갈까?” “음, 골짜기 가요!” “그럼 골짜기에 가 볼까?” 자전거돌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자전거순이는 힘차게 발판을 굴러 준다. 원산마을을 끼고 논둑길로 달린다. 천천히 땡볕을 받으며 달리다가 돌기둥 어귀에서 자전거를 세운다. 저 돌기둥은 ‘당간 지주’라고도 하는데, 우리는 그런 어려운 말을 쓰지 않는다. 아이들한테 손쉽게 ‘돌기둥’이라고 말한다. 돌로 세운 기둥이니까 돌기둥이지.


새근새근 자던 자전거돌이는 어느새 일어난다. “응, 뭐야?” 하며 묻더니 누나가 저기 돌기둥까지 달리자고 하니까 “알았어!” 하고 일어나서 신나게 달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누나는 동생을 헤아려 조금 천천히 달려 준다.


땀을 한껏 쏟은 아이들은 땀을 안 훔친다. “아, 덥다. 그래도 괜찮아. 우리 골짜기에 가서 씻고 놀 테니까.” 이제부터 언덕길을 자전거로 달린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골짜기로 간다. 골짜기에서 한 시간 사십 분 즈음 골짝물에 몸을 담그고 논다. 땀은 모두 사라졌고, 시원한 기운만 남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이기에 바람을 싱싱 가른다. 이제 아무도 안 덥다. 하늘은 파랗고 들은 푸른 여름날이 싱그럽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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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10.3.

 : 가을꽃과 가을들



시월에 가을들을 달린다. 일찍 나락을 심은 논은 일찍 베지만, 거의 모든 논이 노랗게 물들면서 무척 고운 빛을 나누어 준다. 앞으로 이 같은 빛물결은 얼마나 이을 수 있을까. 너른 들이 온통 노랗게 물결치는 이 모습을 며칠쯤 지켜볼 수 있을까.


나락꽃이 피는 때를 맞추어 나락꽃을 지켜보기도 만만하지 않지만, 너른 들이 온통 노랗게 물든 가을들을 누비면서 자전거를 달리는 날도 한 해에 며칠이 안 된다. 아직 덜 노란 들은 며칠 뒤면 노랗게 바뀔 테고, 노란 빛이 싱그러운 들은 며칠 뒤에 더욱 노랗게 거듭날 테지.


억새씨앗이 하얗게 흩날리고, 코스모스도 곳곳에서 꽃송이를 흔든다. 아이들은 다른 들꽃 곁을 지나갈 적에는 인사를 안 하더니, 코스모스 곁을 지나갈 적마다 “꽃스모스꽃 안녕!” 하면서 인사한다. 큰아이한테 ‘코스모스’라고 말하지만 큰아이는 그냥 ‘꽃스모스’라고 말한다. 그래서 굳이 큰아이 말을 더 바로잡지 않는다. ‘꽃스모스’도 무척 고우면서 예쁜 이름이다.




면소재지에 닿아 놀이터에 들른다. 놀이터에서 한 시간 남짓 놀고서 해가 기울어지는 바람결을 살펴서 집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갈 적에 모처럼 논둑길로 달린다. 거의 한 달 만에 논둑길을 달린다. 오른무릎이 제법 나아졌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큰길보다는 논둑길이 자전거한테 어울린다. 무엇보다 논둑길이 훨씬 고요하면서 들내음이 짙다.


도랑다리에 까마귀가 여럿 앉는다. 자전거가 가까이 다가서니 비로소 날아오른다. 그냥 앉아서 쉬어도 될 텐데.


오른무릎이 많이 낫기는 했지만 아직 성하지는 않기에 자전거에서 내린다. 큰아이는 그냥 샛자전거에 앉힌 채 자전거를 끈다. 십 분 즈음 천천히 걸으면서 자전거를 끈다. 들바람을 마시고 들내음을 맡으면서 이 길을 천천히 지나간다. 수레에서 잠든 작은아이도 꿈속에서 들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며 놀까. 가을꽃에 가을들을 마주하며 오늘 낮을 포근하면서 부드러이 누린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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